[에세이] 글쓰기의 기쁨과 슬픔

글 입력 2020.03.30 0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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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의 제목은 장류진의 단편집 《일의 기쁨과 슬픔》에서 착안했습니다.



언젠가부터 글을 쓸 때면 너무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생각을 정리하는 것이 글쓰기의 기초 단계인데, 쓰려고 마음을 먹으면 온갖 생각이 잡동사니처럼 어질러져서 결국 포기해 버리곤 한다. 글을 쓰지 않을 때, 더 정확히 말하자면 일기장에 나만 보는 글을 쓰거나 과제를 위해 레포트를 작성하는 게 글쓰기의 전부였을 때는 오히려 글쓰기에 대해 깊이 생각하지 않았다. 시켜서 쓰는 글 말고 내가 정말 원하는 글을 쓴다면 쓸 수 있는 게 무궁무진하리라 기대했다. 처음에는 분명 그러했다. 내가 쓰는 글들이 자기 방어나 억지라고 느껴진 건 언제부터였을까. 이제는 오히려 시켜서 쓰는 글이 마음이 편할 정도다.


글을 쓰고 싶었던, 혹은 글을 써야 한다고 생각했던 여러 가지 일들이 있었다. 하지만 쓰지 못했고, 쓰지 않았다. 대학 동기 중 한 명은 언젠가 글을 쓰는 게 두렵다고 했다. 가볍게 쓴 글은 가볍게 썼다고 욕을 먹고, 고민해서 쓴 글은 고민이 부족하다는 소리를 들을 것 같다고 했다. 어떻게 쓰든 비판받을 여지가 있다고 생각되어 한 글자 떼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그 때 나는 그 동기가 걱정을 사서 한다고 생각했지만, 지금 와서는 나 역시 크게 다르지 않은 마음이다.

 

세상은 넓고 사람은 다양하다. 비교적 같은 결의 생각을 공유하던 사람들 사이에 껴 있던 학창시절을 지나 졸업을 하고 나니 내가 알고 있던 세상이 한 줌임을 새삼 느낀다. 페미니스트라는 단어가 오염되었다는 말을 지극히 상식적이라 생각했던 사람에게 듣고,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여러 문제들이 제대로 이야기되지도 않는 상황을 종종 마주한다. 나만의 작고 안온한 세상을 벗어나 '보편적인' 세상을 마주하는 경험은 나를 움츠러들게 한다.

 

글을 쓰는 것은 말하는 것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자신만의 생각을 다듬고 정리해 세상에 내보인다는 점에서 그렇다. 하지만 집에서, 일터에서 내 의견을 조리 있게 전달하는 데 어려움을 느낀다. 사회적으로 논쟁이 뜨거운 소재에 대해 말하기가 꺼려지고, 아니라고 반박하고 싶은 것도 속으로 삼킨다. 한 마디. 딱 한 마디를 했으면 좋았을 텐데, 그 한마디로 내가 짊어져야 하는 이런저런 것들이 걱정되어 입을 닫고 시간이 지난 후에야 후회를 한다. 얘기가 시끄러워지는 게 싫기도 했다. 우리가 더 시끄럽게 싸워야 한다고 글을 썼던 사람 역시 나인데도 말이다.
 
어느 날은 내가 너무 '급진적인 페미니즘'을 추구한다는 남동생에게 열심히 해명을 하고 있었다. 그게 왜 해명의 성격을 띠어야 했던 건지, 그때 나는 왜 그렇게 긴장했으며 내 말을 들어주는 상대방에게 왜 고마워했는지. 지나고 보면 어떤 기억들은 수치스럽다. 그런 순간들의 나를, 나는 싫어한다. 그런데 그런 순간들이 늘어만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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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두려움 때문에 쓰지 못했다는 건 일종의 변명이다. 마음속 두려움과 현실에 존재하는 위협만이 글쓰기의 방해물은 아니었다. 사실 내 의견에 반대하는 사람의 차가운 눈초리 못지않게 나와 같은 방향을 보는 사람들의 눈도 신경이 쓰였다.

 

지난 몇 년 동안 내가 생각하는 바를 명확한 언어로 풀어내는 것이 줄곧 목표였다. 하지만 내 생각을 가지기보다 이리저리 휩쓸려 다니는 날이 많았고, 그걸 보완하기에 나는 게을렀다. 갑자기 말을 해야 할 때면 당황해 내 말에 내가 꼬여 넘어졌다. 그게 결과적으로 내 생각이 논리적이지 못하다는 걸 증명하는 일이 될까봐 차라리 말하지 않는 편을 택했다. 부족한 논리와 언어가 부끄러웠다. 한편으로는 지치기도 했다. 세상에는 늘 무슨 일인가가 일어나고 있고 대부분은 화나거나 슬픈 일들이기 때문이다.



나는 그런 사람이 되기 싫었어. 읽고 쓰는 것만으로 나는 어느 정도 내 몫을 했다, 하고 부채감 털어 버리고 사는 사람들 있잖아. 부정의를 비판하는 것만으로 자신이 정의롭다는 느낌을 어고 영영 자신이 옳다는 생각만으로 살아가는 사람들. - 58쪽



지난 계절에는 최은영의 《몫》을 읽었다. 소설에는 읽고 쓰는 여자 세 명이 나온다. 세 명 모두 같은 대학 교지 편집부 출신이다. 셋 중 가장 여성 인권 문제에 예민하고 글쓰는 재능도 있었던 희영은 오히려 글을 쓰지 않는 미래를 택한다. 앉아서 하는 글쓰기에 한계를 느낀 그는 직접 기지촌 여성 운동에 뛰어든다. 그가 운동가로 살던 중 하는 말에 나는 얻어맞은 느낌이었다. 나도 '그런 사람'인 것 같았기 때문이다.

 

어릴적 작가가 되고 싶었던 이유는 사실 글을 쓰고 싶어서라기보다 작가라는 직업에 담긴 아우라가 탐이 나서였다. 인정받고 싶은 욕구는 사람으로서 당연하지만, 어떤 면에서는 천박해질 수 있다. 내가 지금 읽고 쓰는 것도 사실 그런 천박한 욕구에 기대고 있지는 않은가. 내가 쓴 글의 비장한 어조와 달리 나는 안이한 태도로 평안한 생활을 할 때가 많았고, 거기에 죄책감이 드는 날들도 있었다.

 

선한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을까. 괜찮은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을까. 쓰기 전의 나는 의심하지 않았지만 이제는 쉽사리 확답할 수 없다. 나는 자신이 선하다고 믿으며 계속 자잘한 폭력을 저지르는 사람들을 알고 있다. 그들 중 몇몇은 때로 매우 가까운 사람이기도 하다. 완벽한 사람은 없다지만, 그런 상황에 맞닥뜨리면 생각이 복잡해진다. 나 역시 누군가에게 그런 사람이 아닐 리 없다. 인간은 너무나 입체적이고 복잡한 존재인 것이다.


그렇게 혼란한 존재인 인간이 인간에 대하여 글을 쓰는 것은 한 마디로 정의하기 힘든 복잡한 일이다. 글쓰기는 내게 내 생각을 표현하는 기쁨, 다른 사람들과 글을 나누고 존재를 인정받는 기쁨을 주었지만 동시에 여러 슬픔도 주었다. 글을 쓰는 이라면 누구든 그럴 거다. 하지만 즐거움과 슬픔 사이를 오가면서도 지치지 않고 매번 쓰고 말하고 행동하기를 택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도 안다. 늘 존경스럽다. 그런 사람들을 바라보며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생각한다. 고민이 많은 봄이다.

 




[김선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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