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사이버대학' 드립이 불편하다 [문화 전반]

글 입력 2020.03.27 1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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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켈 (출처: '시사in')


 

‘코로나19(COVID-19)’가 일상을 마비시키고 있다. 대면 강의가 불가능해져 실시간 온라인 강의나 녹화 수업 등 일명 ‘싸강’으로 대체하여 개강을 한 지 2주, 대학 내엔 전에 없던 에피소드들이 생겨나고 있다. 마이크가 켜진 줄 모르고 수업 시간 내내 게임을 한 것이 생중계 됐다든지, 이제 막 잠에서 깨어난 자연인의 상태에서 예상치 못하게 캠을 켜라는 교수님의 요구에 제대로 흑역사를 만들었다는지, 커뮤니티는 저마다 자신의 썰을 풀어놓는 사람들의 글들로 폭주하고 있다. 불과 세 달 전까지만 해도 상상할 수조차 없었던 개강 후의 풍경이다.


아직은 적응이 안되고 상당히 민망한 이 ‘비대면 강의’ 기간에, 별의별 에피소드들 뿐만 아니라 새로운 드립들도 생겨나고 있다. 가장 널리 퍼진 드립은 ‘서울사이버대학’, ‘고려사이버대학’ 등 원래의 대학에 ‘사이버’를 붙이는 방식으로 지어지는 것들이다. 덧붙여 “나의 성공시대 시작됐다”라는 진짜 ‘서울사이버대학’의 홍보 영상 노래 가사까지 부르며 마무리해야 한다.


자조인지, 냉소인지 모를 이 기발한(?) 드립에 사람들은 ‘개웃기다는’ 등의 반응을 보이고, 학생들의 핫한 반응에 서울대학교 공식 인스타그램 계정에서조차 이 드립을 이용하여 학내 굿즈를 홍보하고 있다. 그러나 나는 일파만파로 퍼지는 이 ‘사이버대학’ 드립에서 농담이라는 무기로 무장한, 특정 집단에 대한 차별적 시선을 본다.

 

근본적인 질문을 던져본다. ’ㅇㅇ사이버대학’은 왜 웃긴가? 원래 ‘대학’인 학교가 ‘사이버대학’이 되어서?


정말 순수한 의도로 지금 사태에 대한 직관적인 자조의 방식이 필요했다고 치자. 사실상 ‘사이버대학’의 수업 운영과 다를 바 없는 비대면 강의들이 이어지고 있기에, ‘ㅇㅇ사이버대학’이 되었다고 말할 수도 있겠다. 그런데 그게 왜? 그게 어떻게 단순히 ‘대학 수업 운영 방식에 대한 변화’에 대한 센스있는 캐치를 넘어, ‘개웃기다’는 반응을 이끌어낼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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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서울대학교 공식 인스타그램



‘사이버ㅇㅇ대학’, ‘ㅇㅇ온라인대학’이었더라도 이렇게 웃겼을까? 한 방에 이해할 수 있는 짧은 단어로 상황을 요약하길 좋아하는 우리가, 정말 지금의 상태를 순수하게 직관적으로 나타낼 수 있는 말이 필요했다면 이 정도의 표현들로도 충분히 만족할 수 있었으리라. (표현이 어색한 것은 이해해주길 바란다. 필자는 신조어 개발에는 영 소질이 없다.)


‘사이버 대학’이라는 드립의 맥락에는, 실제로 ‘사이버대학’이 존재한다는 중요한 사실이 있다. 실재하는 ‘사이버대학’으로의 동일시가 좋게 말하자면 뜨거운 반응을, 나쁘게 말하자면 ‘웃기다는’ 반응을 이끌어내고 있다. 직접적으로 말해, 사람들은 평소 동일시하지 않던 ‘사이버대학’이라는 집단과의 동일시가 웃긴 것이다.


김지혜는 《선량한 차별주의자》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사람들은 자신이 동일시하는 집단을 우월하게 느끼게 하는 농담, 달리 말하면 자신이 동일시하지 않는 집단을 깎아내리는 농담을 즐긴다. 만일 상대 집단에 감정이입이 일어나면 그 농담은 더이상 재미있지 않다. 상대를 나와 관계없는 사람, 별로 중요하지 않은 사람이라고 여겨야 농담을 즐길 수 있다. (87쪽)



‘ㅇㅇ사이버대학’이라는 드립을 웃음의 소재로 사용할 수 있는 배경에는, ‘사이버대학’과 실제로 재학 중인 학교는 전혀 ‘다른’ 것이라는 확신과, 진정으로 동일시되지 않을 것이라는 발화하는 사람의 자신감이 있다. 또한 이러한 드립이 누군가에게는 상처가 될 것이라는 생각조차 하지 못하는 무관심함이 있다. 과대해석이 아니냐고? ‘사이버대학’ 드립은 대부분 그 홍보 영상의 노래까지 붙임으로써 마무리된다. 이것은 명백히 진짜 ‘서울사이버대학교’를 겨냥한 드립이다.


코로나19는 일상의 많은 것들을 뒤집고 있다. 평소 느끼지 않던 소소한 일상의 즐거움 같은 것들이 얼마나 소중한 것이었는지 새삼 낯설게 보게 한다. 우리가 의식하지 못했던 것들을 의식의 영역으로 가져오고 있다. 그리고 그것은 항상 긍정적인 것만을 들춰내는 것은 아니다.


‘사이버대학’은 갑자기 소환되어 농담의 소재가 되었다. 무언가를 쉽게 농담의 소재로 만들 수 있는 것은, 발화하는 사람의 우월적 위치를 드러낸다. 설령 사회적으로 그가 더 높은 위치에 있지 않더라도, 그가 그 농담의 소재에 대해 가지는 ‘우월적인 시선’을 드러낸다.

 

나는 이 ‘사이버대학’ 드립을 치는 사람들의 위치를 다시 생각한다. 그리고 결론을 내린다. 나는 ‘사이버대학’ 드립이 불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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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김지혜, 《선량한 차별주의자》, 창비, 2019.

 


[장은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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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2
  •  
  • Uuu
    • 서울 사이버 대학의 cm송이 전국만이 다 알 정도로 중독적인게 전 가장 큰 요인아라고 생각해요. 딱히 좋은 대학에 다니는 사람들만 이 드립을 치는 것도 아니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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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현정
    • 사이버대학 '드립'을 들을 때마다 왠지 석연치 않은 느낌이 들었는데 이 글을 읽고 나니 그 불편함이 어디서 온 것인지 알 것 같습니다. 먼저 댓글 다신 분이 말씀하신 것처럼 '드립'을 둘러싼 뚜렷한 위계의식은 보이지 않으나, 사실 이 '드립'은 누군가의 존재 가능성을 말끔히 배제해야만 비로소 자연스럽게 공유될 수 있는 발화이지요. 어떤 집단에 대한 자연스러운 배제는 높은 확률로 차별에 근거하며 또한 차별을 낳습니다. 사이버대학 '드립' 역시 이러한 차별의 과정과 밀접히 연관되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선량한 차별주의자》를 인상 깊게 읽었는데도 이 맥락에 적용해 볼 생각을 못했네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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