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실로 엮어낸 역사 이야기 - 총보다 강한 실

실은 인간의 삶을 어떻게 직조했는가
글 입력 2020.03.23 16:33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어린 시절 나는 색색의 다양한 실타래들과 함께 자랐다. 20여 년 전의 엄마는 남들보다 조금 늦게 만난 나에게 가장 좋고 예쁜 옷을 직접 만들어 주고 싶다는 생각에 뜨개바늘을 잡기 시작하셨다고 한다. 엄마의 손끝에서는 귀여운 모자부터 화려한 원피스까지 정말 많은 옷들이 탄생했다.

 

그렇게 뜨개질을 하다 보니 엄마는 동네의 뜨개질 선생님이 되어 있었고, 학교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면 동네 아주머니들이 엄마를 중심으로 거실에 모여 앉아 삼삼오오 뜨개질을 하고 계셨다. 학교가 끝날 무렵 길어진 그림자, 굴러다니는 실타래와 뽀얗게 피어오른 먼지 그리고 아주머니들의 웃음소리를 떠올리면 어쩐지 마음 한편이 간질거린다.


이렇게 뜨개질의 왕이었던 엄마 덕에 실은 내 역사의 한 페이지를 아주 화려하게 장식하고 있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실은 태어나 강보에 쌓인 순간부터 이 글을 써 내려가고 있는 지금 이 순간까지 나와 함께하고 있지 않은가. 인간 사회에서 버려져 야생에서 자라게 되는 극히 일부의 사례를 제외하고는 실은 인류의 역사 전반과 함께 해왔다.


매일 입는 옷, 매일 덮고 있는 천, 들고 다니는 가방, 이런 것들이 모두 실로 만들어진 것들이라고 생각하니 새삼스러웠다. 너무 익숙해서 소중함을 잊는다는 것이 바로 이런 것일까.

 

 

책입체_총보다강한실.jpg

 

 

<총보다 강한 실>은 인류의 역사 속에서 실이 얼마나 지대한 영향력을 행사해왔는지 우리가 미처 조명하지 않았던 실의 역사를 짚어 나간다. 이 책과 함께 문자조차 없었던 선사시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시간이라는 기다란 실 하나를 붙잡고 조심스레 따라가다 보면 실에 엮여 있는 수많은 이야기들을 만날 수 있다.

 

 

우리의 생활과 문화에는 온갖 종류의 직물이 깊숙이 들어와 있다. 직물의 발명은 문화와 문명의 발달에 매우 중요한 사건이었다. 아담과 이브가 ‘지혜의 나무’에서 금단의 열매를 따먹었을 때, 그들은 자신들이 알몸이라는 사실을 인식하고 재빨리 무화과 잎사귀로 옷을 만들려고 했다. 오늘날 우리는 옷과 침구 덕택에 험하고 변덕스러운 날씨를 이겨낼 수도 있고 우리의 정체성과 소망을 겉으로 드러낼 수도 있다.

 

394p



힘센 턱은커녕 날카로운 발톱도 없고, 체온을 보호해 줄 따뜻한 털도 없는 약하디 약한 포유류인 인간이 동물들과 구분되기 시작한 것은 도구를 사용한 이후부터였다. 디폴트로 가지고 있는 것이 압도적으로 적으니 환경을 이용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문자가 없는 선사시대를 그 당시의 사람들이 사용한 도구로 이름 짓게 된 것도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그 많고 많은 도구들 중에 ‘석기’, ‘청동기’, ‘철기’로 구분한 것도 당연한 일일까?


분명 수많은 도자기와, 수많은 직물이 존재했으며, 일상생활에서 아주 유용하게 쓰였을 시대임에도 불구하고 학자들은 그 시대를 무기 등으로 많이 사용되었던 돌과 철로 이름을 붙였다. 이유는 두 가지이다. 첫 번째로는, 나무나 직물은 오래 보존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돌이나 금속들은 눈에 잘 띄고 오래 보존되지만 나무나 직물은 한 세기를 버티지 못하고 썩어 사라지는 경우가 많다. 두 번째로는 이런 물질들은 대부분 여성의 노동과 관련이 있었기 때문이다.


각 문화의 수많은 신화에서 실을 짓고 옷감을 짜는 일과 관련이 있는 신과 인물들은 거의 다 여성이었다. 가부장제가 등장하면서 여성이 가정의 안으로 귀속되었던 탓이다. 아이 양육, 가사 노동과 더불어 여성은 실과 직물을 만드는 노동을 몇 세기 동안 관장해왔다.

 

 

여성과 직물의 오래된 친족관계는 축복인 동시에 불행이다.

 

30p



19세기 <자수론>을 쓴 딩 페이는 독자들에게 “바늘은 글을 쓰는 붓”이라 소개한다. 여성의 노동이라고 여겨졌던 자수라는 행위를 글쓰기와 연관 짓게 된 것이다. 글쓰기라는 행위는 보통 종이 위에 펜이나 연필로 활자를 적어 내려가며 이루어진다. 하지만 종이가 아니라 천 위에 글을 쓰게 된다면, 그 행위는 더 복합적이며 섬세한 작업으로 변주된다.


 

[크기변환]dcrva7tvqaac5io.jpg

 


4세기 중국 여성 소혜가 비단에 수를 놓아 만든 작품인 <선기도>는 이러한 직물(Textile)과 글(Text)의 아름다운 만남의 진수를 드러낸다. 소혜는 그녀의 자수 능력과 뛰어난 지성을 바탕으로 여성의 노동인 수 놓기를 통해 남성의 전유물인 글쓰기에까지 확장한다.


직물은 인류 최초의 기술 중 하나이며, 가장 오래된 기술이기에 인류의 역사에서 아주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다. 하지만, 가사노동이 그렇듯이 여성이 하는 노동은 폄하되기 마련이다.


게다가 과거의 여성들은 제대로 된 문자 교육조차 받지 못했기 때문에, 그들이 어떻게 실을 만들어내고 옷감을 짰는지에 대한 기록은 다른 노동들과 달리 많이 남아 있지 않다. 대부분이 남성이었던 고고학자들이다 보니, 이러한 정보의 불균형은 인류의 역사에서 계속 함께 해온 실의 중요성은 자연스레 지워지게 된 것이다.


 

02cd985bd1d90764d3824f653a0328a7_1515724047_2773.jpg

 


이러한 시각으로 인해 일어난 안타까운 사건 중 하나가 2장에서 소개되고 있는 투탕카멘 발굴 이야기이다. 고대 이집트 사람들은 여러 하얀 리넨을 청결의 상징이라고 여겼다. 그래서 미라 제작에서 시체를 리넨으로 감싸는 일과 여러 조각을 리넨으로 감싸는 일은 문화적, 종교적으로 중요한 단계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당시 투탕카멘을 발굴하던 카터의 시선에서는 이 리넨들은 쓸모없는 천 조각이었다. 이집트의 기후는 보존이 어려운 직물들이 썩지 않고 살아남을 수 있게 해주었지만, 직물을 하찮은 것이라고 치부했던 당시의 고고학자들로 인해 귀중한 사료들이 훼손 당하고 말았다.

 

*

 

미디어 학자 마셜 매클루언은 자신의 저서 <미디어의 이해>에서 옷도 일종의 미디어라고 주장했다. 그는 미디어는 인간의 감각기관의 확장을 도우며, 우리가 세상을 인식하는 방식 자체에 영향을 준다고 이야기한다. 기본적으로 인간의 체온 유지를 돕기 때문에 옷은 피부의 확장으로서 미디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옷은 인간에게 단순히 체온 유지의 목적으로서 기능하지 않는다. 여러 직물과 실로 만든 옷을 통해 우리는 자아를 표출하고, 문화를 형성하며,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는다. 실이 인간의 역사를 어떻게 섬세하게 엮어냈는지, 그리고 앞으로의 세계를 어떻게 직조해갈지 이 책 <총보다 강한 실>을 통해 한 번 살펴보는 건 어떨까.

 

 

161.jpg

 

 

총보다 강한 실

실은 어떻게 역사를 움직였나


지은이: 카시아 세인트 클레어

옮긴이: 안진이

분  야: 역사 > 세계사

판  형: 145*220

쪽  수: 440쪽

제  본: 무선

정  가: 17,800원 

ISBN: 979-11-5581-258-7 (03900)

발행일: 2020년 2월 10일

펴낸곳: 윌북


 

 

이지현.jpg





[이지현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이름
비밀번호
자동등록방지
63993
 
 
 
 

등록번호 : 경기, 아52475   |   E-Mail : artinsight@naver.com
발행인/기사배열책임자 : 박형주   |   청소년보호책임자 : 박형주
Copyright ⓒ 2013-2020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트(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