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위대한 장비로써 옷과 실이란 - 총보다 강한 실 [도서]

글 입력 2020.03.23 0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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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국가의 청년들이 매주 다른 안건을 상정하고 함께 토론하는 JTBC의 예능 프로그램 <비정상회담>을 요즘 다시 즐겨보는 중이다. 가장 최근에는, 세계의 패션아이템과 스타일, 패션산업 관련 이슈 등을 주제로 했던 ‘패션의 세계’ 편을 보았다. 예능이라는 장르의 특성상 시각을 사로잡는 화려한 디자인과 이미지를 자료화면으로 사용했고, 주로 흥미 위주의 이야깃거리들을 다루었던 것 같다.

그러나 장르와 관계없이, 그동안 우리가 미디어나 책을 통해 패션과 옷에 대해 얻을 수 있는 정보란 대개 최종적으로 만들어진 ‘상품’에 대한 정보로 한정되어왔던 건 사실이다. 즉 옷의 출생지나 제작과정에 관한 이야기는 생략되어왔다는 것. 반면 ‘의(衣)’, ‘식(食)’, ‘주(住)’ 가운데 먹는 일과 사는 일에 관해서는 다각적인 논의와 연구가 꽤 자주 이루어져왔으며, 이와 관련된 다양한 문제들 또한 미디어나 책을 통해 수면 위로 올라왔기에 정보에도 쉽게 접근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유독 입는 일에 관해 쏟는 관심과 고민이 부족하다는 생각이다. 그렇게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문득 옷은 어디서 왔으며 또 어디로 가는지 막연한 궁금증이 일었다. 최종적인 상품 이전의 원재료, 생산과정에 있던 사람들, 그리고 수천 년 전부터 내려오던 실의 역사에 대한 정보가 필요했다.

 


‘현대 디자인과 패션에 관한 글을 쓰면서도 위와 같은 우월 의식을 가진 사람들을 만나곤 한다. 직물에 대한 연구는 종종 주변부로 밀려난다. 간혹 직물이 사회의 주된 관심사로 떠오를 때조차도 초점이 맞춰지는 것은 그 직물의 원재료라든가 그 직물을 생산한 사람들이 아니라, 최종적으로 만들어진 상품의 외관과 매력이다.’

 

 

「총보다 강한 실」은 ‘직물’에 관한 탐구를 담은 책이다. 단순히 직물의 역사만을 상세히 나열한 책은 아니다. 먹는 일과 사는 일이 그러하듯, 입는 일 또한 오랜 역사를 지녔으며 현재의 우리 삶과도 밀접히 맞닿아 있다는 사실을 상기시켜주기 위한 책이다. 다시 말해 저자의 문장처럼 호기심 많은 사람들을 위한 책이면서 즐거운 독서를 위한 책이다.

 

 

 

우리가 몰랐던 청바지의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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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언급했던 <비정상회담>의 ‘패션의 세계’ 편에서는 ‘패션계의 스테디셀러’라는 제목으로 청바지의 유래와 역사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특히 ‘청바지의 원조는 무엇인가’에 대한 논쟁이 흥미로웠다.


1980년대에 미국에서 리바이 스트라우스가 금광의 노동환경을 고려한 튼튼한 작업복으로 고안해낸 오버올 작업복이 청바지의 원조라는 미국 측 패널의 주장도, 이탈리아의 항구도시인 제노바에서 ‘블루 드 젠(Blue de Genes)’이라는 이름으로 만들었던 파란 원단의 바지가 청바지의 원조라는 이탈리아 측 패널의 주장도 모두 일리 있게 들렸다.


이 책의 저자는 19세기 미국의 금광이 발견된 지역으로 사람들이 몰려들었던 ‘골드러시(gold rush)’ 현상으로 인해 당시 금광에 있었던, 광부들의 가장 소박하고 튼튼한 작업복을 청바지의 유래를 소개한다. 리바이 스트라우스는 오랫동안 거칠게 입어야 하는 작업복을 보강하기 위해 금속 리벳을 사용했으며 특허를 냈다. 그렇게 완성한 튼튼한 오버올 작업복은 즉각적인 성공을 거두었다. 청바지가 지금까지도 편하고 격식 없는 옷이라는 이미지로 통하게 된 계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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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청바지를 생산해내는 데 동원되는 인력은 현재 어디에 있을까. 청바지가 생산되면서 동시에 세계적으로 막대한 양의 면이 소비되기 시작했다. 특히 미국은 현재 세계에서 세 번째로 면을 많이 생산하고 있는 나라다. 미국의 수정헌법 제13조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공식적으로 노예제도를 폐지하고 적법한 절차에 따라 기소된 범죄자에 대한 처벌을 제외한 비자발적인 예속을 금지한다’. 하지만 조항의 허술함을 구멍 삼아, 현재 미국의 200만 명이 넘는 수감자들 상당수가 거의 무상으로 목화 수확을 위한 노동에 동원되고 있다. 수감자들은 노동을 거부하면 처벌을 받는다. 목화를 수확하는 강제노동이 척결되지 못한 채 남아있는 셈이다.


또 면은, 플라스틱과 함께 환경오염의 주범이라 불리는 합성섬유와 비교되면서 친환경적인 소재라는 긍정적인 이미지를 갖고 있지만, 사실상 면을 사용 가능한 직물로 가공하는 과정에서 낭비가 많은 건 부정할 수 없다. 가령 청바지 1벌을 만드는 데 물 11000리터가 소요되고, 청바지 염색에 사용되는 식물인 쪽도 이제는 대개 합성을 통해 만들어진다는 점, 뿐만 아니라 이러한 제작과정에 사용된 후 배출되는 화학물질은 시내와 강으로 흘러 들어간다는 점까지. 합성섬유를 대체할 친환경적인 직물로 불리기엔 한참 무리다.


 

 

소홀했던 실의 역사를 기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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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인 노예들은 의류를 구입하고, 획득하고, 갈망하고, 변형하고, 차려입으면서 백인들의 것과 대등하지만 백인들에게는 도저히 이해되지 않는 소비와 표현의 순환에 참여하고 있었다.’

 


어떤 일을 수행하기 위한 ‘장비(裝備)’를 갖춘다는 표현으로부터, 우리는 대개 쇠나 철로 만들어진 단단한 도구를 떠올린다. 물리적으로 약하고 부실한 도구가 장비라는 표현으로 불리는 일은 드물다. 하지만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까지 영토 개척에 힘썼던 시절엔, 남극을 탐험하던 수많은 원정대는 옷을 일종의 ‘장비’라 불렀다. 노르웨이의 로알 아문센 원정대의 아문센은 동물 가죽 방한복이 없는 탐험은 ‘장비가 부실한’ 탐험이 될 거라는 글을 남기기도 했으며, 구할 수 있는 직물에 큰 변화가 생김으로써 많은 사람들이 남극에 갈 수 있게 된 건 사실이다.


역사는 강자의 관점에서 쓰인다. 실이 역사에 기록되지 못했던 건 실이 쇠나 철보다 훨씬 빨리 썩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실과 바늘을 잡는 일은 주로 여성이 해왔던 일이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 책은 ‘총보다 강하고, 균보다 끈질기며, 쇠보다 오래된 실’이라는 문구를 내세운다. 그리하여 그동안 소홀했던 실의 역사를 다룬다.


즉 ‘이 책은 직물이 어떻게 세계와 역사를 바꾸었는지 알려주는 13가지 다양한 이야기로 구성되어있다’라는 머리말 속 저자의 문장은, 다르게는 그동안 손쉽게 지워졌던 여성들의 노동과 업적들이 어떻게 세계와 역사를 바꾸었는지 새롭게 기록하겠다는 문장으로도 읽힐 수 있겠으며, 이는 앞선 이야기들과 그 맥을 함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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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희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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