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모두의 책임에 대해. '스포트라이트'(Spotlight, 2015) [영화]

누구도 완전한 외부인일 수는 없다.
글 입력 2020.03.20 1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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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턴가 사회 뉴스를 보는 것이 두려워지기 시작했다. 하루도 빠짐없이 쏟아지는 성범죄와 살인사건의 소식을 자세히 아는 것이 두려웠다. 언제부터였을까? 가해자의 터무니없는 구실이 인정받는 사회라는 것을 깨닫게 되면서? 피해자의 무결함을 평가하는 2차 가해의 잣대들이 도배되기 시작하면서부터? 이것들이 ‘어쩔 수 없는 것’으로 이야기되는 것이 미칠 듯이 답답해지기 시작했을 때부터? 아니면 이러한 여론의 무심함이 사실은 선별적으로 수행된다는 것을 알게 된 때가 기점이었던가.

 

한순간으로 단정 짓기 어려워 보인다. 이 모든 순간은 차곡차곡 쌓여 분노를 좀먹고 무력감을 낳는다. 하지만 이 무력감은 순간이어야 한다. 범죄 자체보다 무서운 것은 그것이 묵인되는 사회이다. 그래서 우리는 다시 현실을 마주 보고 한 마디라도 더 얹어야 한다. 생각의 존재를 알려야 한다. 변화의 실패든 성공이든, 그 결과야 단편적일지 몰라도 이야기는 끊기지 않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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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스포트라이트>(Spotlight, 2015)는 끈질기게 이야기하려고 하는 이들의 모습을 담는다. 이야기의 주제는 보스턴 사제들의 성범죄와 이를 알고도 묵인한 추기경이다. 미국의 일간지 보스턴 글로브의 집중 취재팀 ‘스포트라이트’는 공동체의 압박을 직면하면서도 취재를 멈추지 않는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이 영화는 무력감을 느끼는 이들에게 기시감과 생소함을 동시에 안겨준다.

 

[이후의 글은 스포일러를 포함할 수 있습니다.]

 

영화는 사제들의 범죄 사실을 소재로 삼아 자극적으로 남용하지 않는다. 쓸데없는 플래시백, 사실적인 실루엣 등으로 범죄의 과정을 그려내지 않는다. 범죄 사실들은 어른이 된 생존자의 언어로, 기록으로, 연구 결과로 나타난다.


이 모든 것들이 숨겨져 있지는 않지만 복잡한 과정을 거쳐 발견된다. 예를 들어, 결정적 단서가 되는 신부들의 교구 명단은 여러 문을 거쳐야 나오는 어두운 서재에 있다. 지워지지도, 사라지지도 않은 채 그대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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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파악된 범죄의 규모와 실체가 공개될 때 즈음 아이들이 성당에서 찬송을 부르는 장면이 나온다. 영화는 내내 아이들을 담지 않다가 처음으로 그들을 직접 포착한다.


아이들의 얼굴을 천천히, 가까이 찍는다. 한 시간이 넘도록 아동 대상 성범죄의 추적을 관람하던 관객에게 아이들은 단순한 성가대원으로 보이지 않는다. 무방비 상태로 노출된 범죄 대상으로 보인다. 저 중에도 피해자가 있을까? 있을 것만 같다.


사건과 관련이 없는 아이들이지만 사건이 영향을 미칠 아이들이다. 하지만 스포트라이트의 기사가 공개되기 직전이다. 그래서 관객은 짐작한다. 모든 아이가 피해자가 아니라고 확언할 수는 없지만, 모든 아이가 생존자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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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영화는 가해자에 초점을 맞추어 그들의 빈약함이나 잔인함을 중점적으로 보여주지 않는다. 대신 간접적인 가해자들을 다양하게 보여준다. 사제들의 성범죄를 방조한 변호사들. 확증도 없이 피해자 단체와 변호사의 의견을 무시하던 기자들. 그중에서도 가장 강조되었던 간접 가해자가 있다.


영화 후반까지도 밝혀지지 않던 보스턴 글로브의 내부자. 과거 외부인들이 증거를 가지고 찾아왔음에도 사건을 취재하지 않은, 미궁의 내부자. 이 사람의 존재는 반복적으로 강조된다. 피해자 단체 ‘신성모독’의 필 사비아노(닐 허프)도, 부패한 변호사 에릭 맥클레쉬(빌리 크루덥)도 이 내부자의 존재에 대해 말한다. 왜 이제서야 사건을 취재하냐며 열을 낸다.

 

영화의 형식은 그 미궁의 내부자가 벤 브래들리 주니어(존 슬래터리)라고 가리킨다. 그것이 가장 잘 드러나는 것은 벤이 마이크(마크 러팔로)의 집에 방문하는 장면이다. 벤이 마이크의 집에 도착하기 전, 마이크는 신부들의 성범죄를 연구하는 학자 리처드 사이프와 통화를 한다. 리처드는 별안간 스포트라이트 팀의 취재를 막기 위한 압력이 가해질 것이라고 마이크에게 경고한다. 우연찮게 이 대화 직후 통화는 통신상의 이유로 끊겨버리고, 벤이 마이크의 집에 도착한다. 벤은 취조하듯 스포트라이트 팀의 진행 상황을 물어보고, 필 사비아노가 과거에 자료를 보냈었다는 말을 듣고 과하게 반응한다.

 

하지만 영화 후반, 과거에 제보받은 증거들을 무시한 사람은 다름 아닌 스포트라이트 팀의 수장, 월터 로빈슨(마이클 키튼)이라는 것이 밝혀진다. 이 사건의 실체를 밝혀내는 데에 큰 공을 들인 사람이, 이 사건이 5년간 지속되는 데에 기여한 사람인 것이다. 이런 사람이 비단 로빈슨뿐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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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를 키우는 것도 마을 전체의 책임이고 학대하는 것도 마을 전체의 책임이에요.”

 

영화 중반, 피해자들의 변호를 맡은 미첼 개러비디언(스탠리 투치)이 마이크에게 한 말이다. 수많은 사람이 알고 있었다. 마을의, 사회의 구성원인 이상 완전한 제3자일 수는 없다. 하지만 각자의 명목이 있었을 것이다. 신부님이니까, 교회니까, 내 일이 아니니까, 세상이 시끄러워질 필요가 없으니까, 관여하고 싶지 않으니까. 명목은 언제든지 만들 수 있다. 그리고 그 명목이 로빈슨의 5년을 형성했다. 그 명목이 수많은 새로운 피해자를 만들었다.

 

방조는 침묵을 낳고, 연대는 목소리를 키운다.

영화의 마지막 순간 오디오를 가득 채우던 벨 소리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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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소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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