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역사를 움직인 가느다란 실 - 총보가 강한 실 [도서]

실은 어떻게 역사를 움직였나
글 입력 2020.03.20 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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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식주는 현대에 가장 기본적으로 보장되어야 하는, 너무 기본적이라 굳이 언급할 필요도 없는 요소로 생각된다. 그중에서도 ‘의(衣)’는 가장 당연하다. 먹을 식량이 없는 사람도, 집이 없는 사람도 알몸으로 밖을 돌아다니지 않는다. 사람들은 잘 입지 않는 옷을 쉽게 버리고, 질린 옷을 대량으로 처분한다. 현대에서 ‘옷’은 단순히 몸을 가리는 천이 아니라 시대에 따라가는 자기의 표현이다.

 

우리는 우리가 입는 옷의 원단이 어디서부터 왔는지 알기는 쉽지 않다. 옷의 ‘브랜드’가 강조될수록 옷의 기원은 사라지고 그 속에 담긴 이야기는 사라진다. 옷을 만들어낸 ‘실’은 금방이라도 자르거나 없애버릴 수 없는 취급을 받게 된 것이다. 그러나 “총, 균, 쇠”에서만 우리의 모든 역사가 담겨있지는 않다. 청동기, 철기 시대보다 오래된 인류에서 ‘실’은 존재했다. “총, 균, 쇠”에 가려진 가장 깊은 역사를 실은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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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보다 강한 실』은 ‘실’이 움직인 역사에 주목한다. 우리는 작가의 설명에 따라 옷감 짜기의 시초, 이집트의 미라, 고대의 중국 비단과 실크로드에 따라 건설된 도시, 바이킹, 중세, 산업혁명에서 현대까지 관통하는 실의 역할을 만나게 된다. 그리고 그 속에서 주목받지 못한 혹은, 은폐된 과거의 이야기를 보여준다.

 

 

“거대한 기계실이 나를 둘러싸고 있었다. 예배당만큼 넓은 공간이었다. 길이가 20미터쯤 되는 기계들은 나에게는 신기한 물체일 따름이었다. (…중략…) 엄청난 소음과 산의 고약한 냄새 때문에 정신이 멍했다.” - 아녜스 험버트, 「레지스탕스」, 1946년

 

 

옷을 빠르게 생산하기 위해 공장의 노동자들은 강제 노역을 해야만 했다. 그나마 자유로웠던 건 남성 노동자들이었고 남성 노동자들은 더 나은 환경으로 나갔다. 제대로 물도 마시지 못하고 온종일 일만 하는 자리는 여성들로 채워졌다.


공장에서의 일은 처참했다. 노동자들은 점차 시력을 잃었고 피부가 썩어갔다. 물도 제대로 마시지 못하고 화장실도 가지 못하는, 기초적인 노동환경도 없는 곳에서 강제되는 노동은 노동자를 고통스럽게 했다. 결국 노동자들이 자살 시도를 했지만, 그들은 강제로 다시 노동 환경으로 돌아왔다.

 

 

“한번은 공장에서 일하던 여자가 공장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아녜스가 보기에는 심장발작을 일으킨 것 같았다. 그런데 관리자가 와서는 포동포동한 손가락으로 그녀의 눈을 쿡쿡 찔러보더니 그녀가 죽은 게 아니라 의식을 잃었을 뿐이라는 사실을 확인하고는 그 기회를 이용해 그녀의 가슴을 더듬었다.”


 

이 끔찍한 기록은 아녜스가 강제 노역에 해방되고 나서야 제대로 밝혀졌다. 다행히 아녜스의 정신은 마지막까지 온전했기 때문이다. 우리가 아녜스처럼 섬유를 생산하는 공장에서 일하게 될 가능성은 높지 않다. 그러나 우리는 그 옷을 만들기 위해 죽어갔던 노동자를 기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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옷은 모든 영역에서 영향을 끼친다. 모든 분야는 이어져 있는 것처럼 옷은 체육, 과학, 무역 등 복잡하게 관련되어 있다. 이는 경제적 발전을 만들고, 스포츠에 기록을 경신하게 하고, 인류를 우주까지 뻗어나가게 했다. 그러나 그런 발전과 더불어 어두운 이면도 존재했다.


책에서는 스포츠에서 여성에게 강요된 옷차림을 언급한다. 올림픽에 여성은 참가할 수 있게 되었지만 1900년 파리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딴 테니스 선수는 블라우스, 코르셋, 굽이 있는 신발을 착용하고 경기를 해야 했고 수영 선수들은 짧은 수영복 차림으로 포즈를 취해야 했다. 여성의 스포츠 브라 착용은 그보다 한참 뒤에서야 가능했다.

 

우리는 과거 여성 운동복이 없어 블라우스와 구두를 신고 올림픽에 나간 것과 비교해 현대의 스포츠복을 비교하면 지금까지의 차별의 역사가 생생히 느껴진다. 아직도 스포츠에는 유독 여성 선수에게 짧거나 달라붙는 의상을 입는 경우가 있다. 우리는 옷을 통해 당대의 역사적 배경과 사회적 인식을 알 수 있다.

 

‘Text’와 ‘Textile’은 같은 어원을 공유한다. 라틴어로 ‘직물을 짜다’를 의미하는 texere가 그 어원이다. 비슷한 예로 fabric과 fabricate도 라틴어인 fabrica를 어원으로 한다. 이처럼 언어와 직물은 서로 긴밀하게 얽혀 있다. 『총보다 강한 실』을 통해 우리가 미처 알지 못했던 깊고 넓은 ‘실’의 이야기를 읽어보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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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보다 강한 실
- 실은 어떻게 역사를 움직였나 -


지은이
카시아 세인트 클레어
 
옮긴이 : 안진이

출판사 : 윌북

분야
역사 / 세계사

규격
145*220mm

쪽 수 : 440쪽

발행일
2020년 02월 10일

정가 : 17,800원

ISBN
979-11-5581-258-7 (03900)






[이승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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