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나는 예술을 잘하고 싶었다. [사람]

우연히 직면한 나의 '다소 곤란한 감정'
글 입력 2020.03.19 0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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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살 두 번째 시작


 

23살, 나는 두 번째 대학으로 예술대학을 갔다. 학기 초에 가장 많이 물어보는 질문은 ‘뭐 하고 싶어서 왔어?’와 ‘뭐 하다 왔어?’인데 나의 경우에는 23살의 두 번째 1학년이다 보니 ‘뭐 하다 왔어?’가 특히 많았다. 공대에서 왔다 하면 다들 놀라운 기색을 숨기지 못했다. 전혀 연관이 없는 전공이니 말이다. 보통 두 번째 1학년인 학생들은 예술 계열을 이미 전공하다 온 친구들이 대다수이다. 지금 예대의 분위기를 떠올려보면 과거의 두꺼운 교재와 실험실 가운에 익숙하던 내가 놀랍기도 하다.

 

이렇게 설렘 반 기대 반으로 온 예대의 첫 시작은 꽤 재밌었다. 입학식 날에 학교 앞 공원에서부터 학교 한 바퀴를 거닐며 노래 부르고, 끼가 넘치는 동아리들의 공연도 보고. 심지어 동문인 가수 ‘김나영’씨가 오셔서 노래 부르기도 했다. ‘아 대학이란 곳이 이렇게나 자유분방할 수도 있구나’라는 생각이 잠시 들었다. 사실, 예술에 관심이 있어서 나의 의지로 다시 들어오게 된 학교인 만큼 들떴던 것 같다. 그리고 그 들뜸은 첫 수업 날이 되자마자 걱정으로 다가왔다.

 

아마도 그날은 오리엔테이션을 제외한 첫 전공 수업 날이었다. 수업 때 교수님께서 사용하는 단어가 마치 외국어를 듣는 것처럼 알아듣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했다. 속으로 엄청난 혼돈을 겪고 있는데 주변 친구들은 어찌 된 건지 빠르게 이해하고 넘어가는 느낌이었다. 노트북 타자 소리만 맴돌던 강의실 한가운데에서 내 머릿속에서는 ‘큰일 났다’라는 말이 스쳐 지나갔다. 수업이 끝나고 암울한 심정으로 강의실을 나가면서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게 동기들과 대화를 나눴다.


동기 중 한 명이 나에게 ‘인생 공연이 뭐냐?’라고 물었다. 생각해보니 나에게는 인생 공연이라는 게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렇게 많이 본 적이 없으니 말이다. 그 친구는 자신이 좋다고 결론지은 수많은 공연의 이름을 나열하기 시작하며 ‘이건 꼭 봐야 한다’라고 말했다. 물론 난 그 공연도 몰랐다. 그 시선에서 솔직히 움츠러들었고 집에 와서는 작은 우울감에 빠졌다.


그때부터 나는 극장 사이트를 즐겨찾기 하기 시작했다. 국립극단부터 LG아트센터, 두산아트센터, 남산예술센터, 국립극장, 아르코 등등 일단 다 둘러보았다. 그리고 이름만 아는 많은 공연을 예매하기 시작했다. 영화관에서도 2시간 동안 영화를 집중해 보던 내가 극장에서는 졸았다. 학교생활을 바쁘게 끝마치고 지하철을 타고 1시간을 가서 공연을 보고, 다시 학교로 돌아오는 일상은 피곤함만을 지속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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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조씨고아, 복수의 씨앗>

 

 

그러한 생활을 반복하며 여느 때처럼 의무감으로 공연을 보러 간 날이었다. 그날은 국립극단의 <조씨고아, 복수의 씨앗>라는 연극을 봤다. 감상을 감히 말하기 어려울 만큼 처음으로 공연을 보며 오열하다시피 눈물을 흘렸다. 그 후부터 공연을 대하는 나의 태도는 공부를 떠나 위로하는 행위가 되기 시작했다. 그 후 수많은 공연에서 위로를 받을 수 있었다.

 

 

 

우연히 직면한 '다소 곤란한 감정'


 

인스타그램에서 우연히 김신식 작가님의 <다소 곤란한 감정>이라는 책의 일부를 보았다. 이 책에서는 이런 구절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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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신식 작가님의 <다소 곤란한 감정>


 

"잠깐 예술대학에 출강했을 때, 나는 학교를 두 번째 다니는 학생들의 삶을 알게 되었다. 물론 자신이 자발적으로 내린 선택의 삶이었으나, ‘난 아직 멀었다’는 움츠림으로 조금 더 예술을 공부해야겠다는 사연. 자주 들었다. 난 아직 멀었다는 자체 평가. ‘넌 아직 멀었다’는 선생, 선배, 동료, 부모의 생각 주입도 한몫했다. 사연을 들려준 예술대 학생들은 오래전부터 자신의 감수성에 서린 조숙과 성숙을 평가하고 평가받는 문화에 지쳐 있었다."

 

 

이 말을 듣고 이 글을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라고 콕 집어 말하긴 어려울만큼 수많은 사람이 아주 우연히 나에게 이런 말을 했던 것 같다. 말로만 하지 않더라도. 나 또한, 사실 스스로 제일 많이 자체 평가를 했다. 한 잣대만으로 나를 지치게 하고 결론 내렸다.

 

지금 생각해보면 나는 배우러 학교에 들어온 것인데 뭐가 그렇게 눈치 보이고 걱정을 했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지금은 누가 무언가를 아냐고 물어보면 모른다고도 말한다. 지금부터 알아가면 되는 것이라는 생각도 한다. 물론 지금도 다 아는 것이 아니기에 이러한 생각을 떨치기 힘들다.


하지만 분명히 알 수 있는 건 누군가에게 ‘넌 멀었어’나 ‘잘한다’라는 말을 쉽게 내뱉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 말로 서로를 평가하고 나를 평가하던 그때처럼 나의 잣대로 말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예술대 이전 나와 같은 대학을 다녔던 친구는 어떤 것이 되고 싶은 것이 아니라 행복해지고 싶다고 했다. 말의 결론을 짓기는 너무 힘들지만 이제야 그 말을 알 것 같다.

 


[김화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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