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우리가 가족이 되려면 [영화]

글 입력 2020.03.19 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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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아이들을 두고 '우리의 미래'라고 말한다. 하지만 우리의 미래를 짊어질 수많은 아이들은 오늘도 어른들로 말미암은 상처와 고통 속에 살고 있다. 어린아이가 불행하다면 그 책임은 전적으로 부모를 비롯한 어른들에게 있다.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 하더라도 그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우리는 우리의 미래를 더 잘 보듬어 줄 수 없는 걸까? 모든 아이가 더 행복해질 순 없을까?


 

 

내 이름은 꾸제트


 

질 파리 (Gilles Paris)의 원작 소설을 기반으로 끌로드 바라스 (Claude Barras) 감독은 아이들을 위한 애니메이션 영화를 제작했다. 각본에는 최근 영화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으로 알려진 셀린 시아마(Celine Sciamma) 감독이 참여해 각색을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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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내 이름은 꾸제트> (2016)

 


이카르라는 이름의 아홉 살 소년은 불의의 사고로 엄마를 잃게 된다. 아이는 본래 자신의 이름이 아닌 '꾸제트'라는 이름으로 불리기를 원한다. '꾸제트'는 '기다란 호박'을 이른다. 이름으로 쓰기에는 조금 우습지만, 엄마가 꾸제트라고 불렀기에 그 이름은 아이에게 소중하다. 양친을 잃은 꾸제트는 퐁텐 보육원에 가게 된다. 보육원의 대장 노릇을 하는 빨간 머리 남자아이 '시몽'은 꾸제트를 '감자'라 부르며 괴롭힌다. 꾸제트의 부모님께서 돌아가셨다는 걸 알게 된 시몽은 '감자'가 아닌 '꾸제트'라고 불러주며 이내 가까워진다.

 

보육원 생활에 익숙해져 갈 때쯤, '까미유'라는 새로운 친구가 온다. 꾸제트는 까미유에게 첫눈에 반하고, 아이들은 서로에게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 준다.


 

 

부모에게 상처받은 아이들


 

알콜 중독자인 엄마와 함께 지낼 때 꾸제트의 방에는 맥주 캔들이 장난감을 대신하고 있었다. 아이의 아빠는 슈퍼 히어로처럼 연에 그려져 있지만, 그 행방은 묘연하다. 꾸제트는 연을 날리며 아빠를 기억하고, 맥주 캔을 통해 엄마를 떠올린다. 가족을 떠난 아빠와 자신을 내버려뒀던 엄마를 꾸제트는 원망하지 않는다.

 

무책임하고, 추방당하고, 학대하고, 배우자를 때리고, 강도질을 하고, 병이 들고. 부모들은 다양한 이유로 아이들을 보육원에 맡겼고, 부모들에 의해 새겨진 아이들의 상처는 각자 다르게 발현된다. 불안해지면 접시를 포크로 치고, 치약을 삼킨다. 자동차 소리가 들리기만 하면 엄마를 부르며 밖으로 나오기도 하고, 아침마다 오줌을 싸고, 샤워하지 않는다. 그리고 다른 아이들의 제압하고 우위에 서려고도 한다.

 

시몽은 꾸제트가 보육원에 오게 된 경위를 물으며 이런 말을 한다.


 

"다 똑같구나!

아무도 우릴 안 사랑해"

 


아이가 할 수 있는 가장 슬픈 말 중 하나가 아닐까 싶다. 세상에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이 없다고 믿는 아이만큼 슬픈 존재는 없다.

 

아이들이 보육원에 온 이유를 시몽이 그토록 궁금해하는 것은 그 아이의 잘못인지 궁금하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가 나쁜 아이들이기 때문에 버려졌는지 확인하고 싶어서. 하지만 어떤 아이들도 그들의 잘못 때문에 보육원에 오지 않았다. 엉망이기 때문에 집에서 쫓겨난 아이는 없다.

 

영화는 부모와 어른들에게 상처받은 아이들을 가만히 지켜봐 준다. 아이들의 잘못이 아니라고, 모두 어른들의 잘못이라고 말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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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구경을 하러 간 아이들이 엄마와 함께 온 아이를 멍하니 바라보는 장면은 안타깝고, 가슴이 아프다. 이 장면에서 감독은 시간을 충분히 들여서 아이들을 바라본다. 마치 부모가 될 사람들에게 '이런 슬픔을 아이들에게 주지 않을 수 있겠어?'라고 묻는 듯하다.

 

 

 

아이를 존중하는 법


 

경찰 아저씨 그리고 보육원 원장님과 선생님들은 이카르의 이름을 꾸제트라고 불러 준다. 아이가 그렇게 불러달라고 했기 때문이다. 네 이름은 이카르이니 이카르라고 부르겠다는 사람은 없다. 아이의 의견을 그대로 따라주고 존중해 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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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미유의 선택이에요"

 

"애가 선택은 무슨!"

 


어른은 아이를 존중하는 태도를 배워야만 한다. 까미유의 고모는 까미유의 의사 표현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작품 속에서 아이의 의견을 받아들이지 않는 유일한 인물일 것이다. 아이는 어른의 말을 따라야 하는 존재가 아닌 자기 생각과 의견이 있으며, 존중받아 마땅하다는 메시지를 명확하게 전한다.

 

아들이 있지만, 아이가 거부하기 때문에 떨어져 산다는 레이몽 아저씨는 결국 꾸제트와 까미유의 양부모가 된다.

 

 

"때론 아이가 부모를 거부하기도 하거든"

 

 

아이를 떠나 보냈기 때문인지는 모르지만 레이몽 아저씨는 꾸제트와 까미유를 진심으로 대했다. 그래서 때문에 아이들도 아저씨에게 마음을 열었고, 그들은 비로소 가족이 될 수 있었다. 어른이 일방적으로 아이들을 입양한 것이 아니라는 점이 좋았다.아이와 어른의 선택과 동의를 거쳐 탄생한 가족은 어쩌면 피로 이어진 가족보다 더 단단할 수도 있다.


 

 

아이들은 서로의 버팀목이 되어


 

꾸제트는 까미유가 처음 온 날부터 그의 얼굴에 가득한 슬픔을 이해한다. 서로의 슬픔을 알기에 안아주고, 위로해주려고 한다. 그렇게 보육원의 아이들은 서로의 상처를 가만히 보듬어 준다.

 

까미유를 고모에게서 구하기 위해 아이들은 모두 힘을 합친다. 시몽은 선물 받은 MP3를 까미유를 위해 기꺼이 사용한다. 하지만 언제까지나 함께할 수는 없었다. 꾸제트와 까미유를 떠나 보내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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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넌 우리를 위해 가야만 해"

 

 

특히 시몽은 굉장히 서운해하지만 꾸제트를 보내준다. 버림받았던 아이들은 상대방을 위해 보내줄 수 있을 만큼 단단해졌다. 사랑하기에 보내준다. 보육원의 아이들은 어른이 아니라 서로를 통해 사랑을 깨닫는다. 아무도 우리를 사랑하지 않는다던 시몽은 꾸제트와 까미유의 사랑을 느낀다. 이제 시몽에게도 맑게 갠 날이 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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꾸제트가 날리는 연에는 이제 슈퍼 히어로 아빠만 있는 것이 아니다. 그 뒤편에는 보육원 친구들이 다 함께 찍은 사진이 붙어 있다. 이제 꾸제트는 부모님과 함께한 세계에서 벗어나 새로운 세계로 나아갔다. 자신이 선택한 친구들과 가족들과 함께하는 세계로.

 

*

 

이 작품은 아마 어른들을 혼내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 아닐까 생각하게 되었다.


로지 선생님이 낳은 아기를 둘러싸고 아이들은 묻는다. 아이가 울어도, 중2병에 걸려도, 방귀 냄새가 심해도 버리지 않을 거냐고. 영화는 과연 당신은 부모가 될 준비가 되었냐고 계속해서 묻는다. 아이들을 존중해야 한다고 다그친다.

 

아이들을 위한 애니메이션이지만 어른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더 많은 작품이었다. 그리고 우리는 그 말을 주의 깊게 새겨들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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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채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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