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분명히 있지만, 없다 [도서]

김초엽 작가의 「관내분실」 (2018)
글 입력 2020.03.16 0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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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도서관에 ‘서가부재도서확인’이라는 서비스가 있다. 시스템에는 ‘대출가능’이라고 표시되지만, 실제 서가에는 책이 없을 때 신청하면 책을 찾아 안내해주는 서비스이다. 생각보다 이 서비스를 이용할 일이 많았다. 책을 정리 중이거나 다른 사람이 잠깐 읽고 책상에 둔 경우에는 비교적 빠르게 안내받을 수 있지만, 대개는 신청한 후에 책을 찾았다는 연락이 닿기까지 며칠 이상이 걸리거나 아예 연락을 받지 못했다. 그래서 급할 때는 직접 책이 있을 만한 곳을 돌아다니며 찾기도 했다.

 

그러다 문득 ‘서가부재도서확인’을 신청하면 도서관 사서분들은 어떻게 찾는 것일까 궁금해졌다. 알고 보니 사서분들이 직접 서가를 돌아다니며 찾는 것이었다. 운이 좋으면 빨리 발견할 수 있지만, 정리 중이라 카트에 있는 도서가 아니면 기약이 없다. 그래서 ‘서가부재도서확인’을 신청한 도서는 최대 2주 동안 위치를 추적한다고 한다. 그 2주가 지나고 나면 다시 누군가 ‘서가부재도서확인’을 신청하기 전까지 그 책은 어떻게 되는 것일까. 어두컴컴한 서가 구석에 책이 덩그러니, 쓸쓸하게 꽂혀 있는 그림이 머릿속에 그려지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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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초엽 작가의 「관내분실」은 도서관 안에서 잃어버린 책은 찾기 힘들다는 메모에서 출발한 소설이라고 한다. 당장 빌려야 할 책이 있어 ‘대출가능’이라는 표시를 보고 갔건만, 넓고 넓은 도서관의 많고 많은 서가 어딘가에 분명 있을 텐데, 정작 어디 있는지 알 수 없어 빌리지 못한다면 그건 나에게 ‘대출불가’, 혹은 ‘대출중’과 같은 것 아닌가, 투덜거리던 기억이 떠올랐다.

 

「관내분실」은 ‘대출가능’도 ‘대출중’도 아닌 책들처럼, 분명히 존재하지만 그 존재가 지워진 이들의 이야기를 다룬다. 소설 속 세계의 ‘마인드 도서관’에서는 죽은 사람의 기억과 뇌의 시냅스 패턴을 저장해 마치 살아 있는 사람처럼 재현한다. 마인드 도서관은 이전의 장례 문화와 봉안당을 대체했고, 그래서 죽음이 주는 두려움과 그 의미도 달라졌다. 그렇다면 그 세계에서 인간은 ‘마인드 도서관’에서까지 소멸되어야 진짜 죽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지민은 출산을 앞두고 죽은 엄마를 찾아 3년 만에 처음으로 마인드 도서관에 가지만 엄마가 ‘실종되었다’는 소식을 듣는다. 생전 엄마는 '실종'이라는 단어와는 거리가 먼 사람이었다. 산후 우울증을 겪으며 항상 예상 가능한 장소에 존재했고, 지민과는 사이가 매우 나빠 연락을 끊고 서로가 없는 존재인 것처럼 살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엄마가 마인드 도서관에서 분실되었다는 사실은 지민을 매우 당혹스럽게 한다. 도서관 직원은 그 분실이 소멸과는 분명히 다르다고 말했지만, 지민에게는 마인드의 분실이 엄마의 소멸과 같다고 느껴진다. 분실된 마인드를 찾기 위해서는 고인을 고유하게 특정하는 물건, 그 사람과 많이 연결되어 있던 무언가가 필요하다고 한다. 그래서 지민은 엄마의 흔적을 더듬어 가지만 엄마를 특정할 수 있는 물건을 찾지 못한다. 지민의 기억 속 엄마는 ‘김은하’였던 적이 없었다. 항상 집에만 머무르며 최소한의 생활을 유지하는 그냥 ‘엄마’였다.


 

“엄마가 하나도 없어.”

 

“엄마는 마치 없는 사람 같았다. 최소한의 흔적만을 남기고 그냥 그렇게 살다가 가버린, 이제 없는 사람.”

 


지민의 엄마는 지민을 낳기 전 종이책 표지 디자이너였다. 지민은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았던 엄마의 과거를 마주한 뒤 그것이 엄마, 김은하의 진짜 삶이며, 엄마를 세상과 연결해 주던 끈이었음을 깨닫는다. 그리고 엄마의 몸이 살아있을 때도, 죽은 지금에도 엄마는 세계와 단절된 채 죽은 것도, 산 것도 아닌 상태에 머물렀다는 사실을 느낀다. 지민은 엄마의 책을 들고 도서관으로 가서 단절된 마인드를 찾아 접속한다.

 

지민은 분실된 엄마의 마인드를 찾는 과정을 통해 엄마가 생전에도 ‘분실된’ 사람이었음을 깨달았다. 엄마처럼 출산을 앞두고 ‘나름의 배려’라는 명목하에 직장에서 뒤로 밀려나야 했던 지민은 엄마를 찾아내 ‘무슨 말을 하더라도 엄마의 지난 삶을 위로할 수 있는 건 아니겠지만, 이제 엄마를 이해한다’고 말한다. 엄마는 지민의 말에 눈물짓는다. 마인드의 은하가 정말로 살아있는 정신인지, 아니면 단지 생전의 은하를 비슷하게 흉내 내는 것인지는 알 수 없으나, 어느 쪽이든 은하는 그 말을 듣고 싶었던 것 같다. 출산과 육아로 가정에 고립되어 결국에는 마인드에 검색되는 것까지 거부할 정도로 자신을 단절시켰지만, 은하는 그곳에서 간절히 세상과의 연결을 꿈꾸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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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히 있지만, 없다. 그런 상태를 우리는 정말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은하처럼 출산과 육아 때문에 직장에서 나와 집에 머물러야 했던 수많은 여성들 뿐만의 문제가 아니다. 특수학교를 ‘혐오 시설’이라 규정하는 사람들 때문에, 턱없이 부족한 장애인 편의시설 때문에 비장애인처럼 손쉽게 밖으로 나오지 못하는 장애인, 그 밖의 목소리를 잃은 수많은 소수자들. 이들과 세상이 닿아있는 끈을 끊어버리고서 ‘분명히 있지는 않냐’고 한다면 그것이 정말 온전히 존재하는 것일까. 또 ‘나’를 표현할 수 있는 어떤 것도 없이 그저 생존한다면 그것은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지민은 엄마와의 관계에서 받은 상처를 용서할 수는 없으나, 또 은하도 지민의 말에 지난 삶을 위로받을 수는 없겠지만, 둘은 이제 서로를 이해한다. 있는 것도 아닌, 없는 것도 아닌 채로 남겨진 이들을 전부 다 찾아내 완벽한 사회를 만든다는 것은 불가능할지 모른다. 하지만 그런 단절을 기억하고 포기하지 않는다면, ‘나’와 우리를 계속해서 찾고 이해하려는 노력이 쌓여간다면, 길을 잃고 쓸쓸히 고립된 사람들이 조금씩 제자리를 찾아 돌아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정다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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