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view] 어른이 된 당신, 잊고 있는 것은 없나요? - 볼로냐 일러스트 원화전

글 입력 2020.03.12 1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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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나의 침대 맡에는 라디오가 있었다. 엄마가 라디오에 넣어 준 카세트 테이프에서는 신밧드의 모험, 보물섬... 여러 이야기가 흘러 나왔다. 캄캄한 방에서 눈을 감고 귀만 쫑긋 세운 채 나는 온 세계를 누비고 다녔다. 그런 때가 있었다. 거창한 것 없이도 많은 것을 꿈꾸고 상상하던 때가.

 

이불 속을 벗어 나면서, 점점 세상에 발을 딛던 나는 '옳은' 길을 가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렸다. 그 무엇에 관해서도 절대로 후회할 만한 결정을 내려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런 나에게 어릴 적의 상상과 자유는 믿지 못할 추상적인 것에 불과했다. 현실 앞에서 나는 그 무엇에도 자신이 없었고, 믿을 만한 건 잘 '닦인' 길을 따르는 것이었다. 내가 어릴 적 꾸던 작은 꿈들에 미련을 둔다고 해서현실이 달라지는 건 아니라고 생각했다.

  

어릴 적부터 미술관을 많이 다녔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미술관을 다녀온 날의 일기에는 내가 그림을 보고 무엇을 느꼈는 지에 관한 생각보다 그림에 관해 공부해야 겠다는 다짐이 빼곡히 쓰이기 시작했다. 종합장에 마구 그리던 그림들은 어느 샌가 오답으로 여겨지고, 명암과 구도를 맞추어 그리는 그림만이 정답이라는 생각에 붓을 들어본 지도 꽤 되었다. 그림을 그리고 있는 사람만 봐도 가슴이 콕콕 찔리는게 무슨 감정인지 몰랐다. 그건 겁없이 그림을 그리던 나를 그리워 하는 마음이었다.

 

어느 샌가 내가 싫어하던 어른들처럼 말하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그런 거 해서 뭐해, 그게 뭐야- 유치하게. 실없는 것에도 배를 잡고 웃던, 별 뜻없는 공상에도 일기장 한 바닥을 채우던 나는 이제 줄글 하나에도 내 생각을 담기 어려워졌다. 내가 무엇을 보고, 무엇을 느끼더라. 모두 아득하게만 느껴졌다. 나는 갑자기 어른이 되었다. 꿈이니, 희망이니 하는 친구들을 보면 배가 불러 보였다. 아직 현실을 모르나 보네- 한심하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가슴이 미어지게 부러웠다. 그 때야 알았다. 내가 뭔가 놓치고 있다는 걸. 나는 나를 뺀 나머지의 인생을 살고 있었다.

 

그림의 작가도, 그림에 담긴 뜻도 몰랐지만 작년 오르세 미술관에서 본 한 그림의 파도가 아직도 내 머릿속에서 철썩인다. 그 파도의 흐름과 덩어리와 빛을 바라보던 내가 떠오른다. 저 파도처럼 살겠다고 다짐하던 그 때의 내가 떠오른다. 이미 파진 구덩이를 따라 흐르지 않고 내 맘껏 철썩이며 모래 바닥을 긁어대겠다고 다짐하던 그 날이 떠오른다. 그림은 이런 힘을 가진다. 바쁜 현실에 치여 나를 잃어갈 때 쯤, 그림 속에서 나의 내면을 건져 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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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여기, <볼로냐 일러스트 원화전>이있다. 많은 사람이 '일러스트라니, 애들 그림 아니야?' 라는 생각을 할 것이다. 나도 그랬다. 일러스트가 애들 그림이라는 생각이 든다면, 그것은 아마 우리들의 '애들'때로 돌아갈 수 있는 힘을 주기 때문이다. 어른이 되기를 거부할 수 있는 힘을 주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림을 보며 우리는 그 속에서 이야기를 찾아낸다. 그 이야기는 우리들의 이야기다. 거창한 미술사를 몰라도, 우리는 작품을 진정으로 즐길 수 있다. 나의 눈과 나의 역사만을 가지고도 따뜻하고 다정한 일러스트를 한껏 즐길 수 있다.


누군가의 그림 일기를 보면 나의 초등학교 1학년 때의 어느 날이 떠오르 듯, <볼로냐 일러스트 원화전>은 그렇게 자연스럽고도 자유로운 연상을 즐길 수 있게 한다. 그 연상은 어른이 된 나에게 그것이 진짜 나인지 질문을 퍼부어 댈 것이다. 이 그림을 보고 있는 너는, 그 때의 너와 많이 다른 듯 하다고 속삭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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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na_Desnitskaya

 

 

<볼로냐 일러스트 원화전>은 1967년부터 시작하여 2019년 53회째를 맞은 오랜 역사를 지닌 전시로 2019년 볼로냐 올해의 일러스트레이터 수상자 76명의 작품 300여 점을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만나 볼 수 있다. 어른들을 위한 일러스트 원화 작품들과 그림책 전시가 마련되어 있다.


일러스트계에 관심이 높아지는 만큼 매력적인 일러스트 원화를 직접 볼 수 있는 기회이다. 쟁쟁한 경쟁과 심사를 거쳐 선발된 그림들은 실험적이고 도전적이다. 어린 아이와 어른 모두를 위한 일러스트 원화들은 당신을 고요한 바다 앞으로 데려다 줄 것이다. 생각에 잠겨, 당신의 모든 기억으로 원화들을 감상하고 난다면 당신은 당신이 어린 아이인지, 어른인지 확신하기 어려울 것이다.

 

<볼로냐 일러스트 원화전>은 '볼로냐아동도서전BCDF'의 핵심 프로그램이다. 이 원화전을 통해 많은 일러스트레이터들이 재능을 인정받고 있으며, 아동도서 뿐만 아닌 성인을 대상으로 한 컨텐츠로 성장하고 있다. 그야말로 일러스트 전시 중, 단연 최고라고 말할 수 있다.


알탄Altan, 무나리Munari, 이노첸티Innocenti, 퀀틴 블레이크Quentin Blake, 루자티Luzzati, 숀탠Shaun Tan까지 오랜 시간 수많은 유명 일러스트레이터들이 엄격한 심사를 통해서 전시에 참여했다. 전시는 이야기와 문화, 비전을 공유하는 특별한 장소가 되고 있다. 지금도 미래를 이어갈 수많은 차세대 아티스트들이 이 전시에 참여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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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로냐 일러스트 원화전>은 SM재단과 함께 심사를 통해 매년 1명에게 최고상 2018 International Award for Illustration – BCBF / Fundación SM을 수여하는데 선정된 작가에게는 상금과 출판 그리고 다음해 특별전을 열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볼로냐 일러스트 원화전 2018>에서 최고상을 수상한 작가는 벤디 베르니치Vendi Vernić (Croatia)으로 그녀의 책과 원화작품을 만날 수 있는 특별전시도 만나볼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어린이책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볼로냐아동도서전의 '라가치상' 2019년 수상도서 16권을 전시한다. 보림출판사는 2017년 해당 도서전의 최고의 출판사상을 수상했다. 한국 최초의 수상인 만큼, 그 의미가 남다르다. 보림출판사의 세계적인 그림책들도 전시에서 만나볼 수 있다.

 

일러스트와 도서를 눈으로 즐김과 동시에 젊은 층을 위해 전시장 속에서 숨은 그림을 찾듯 다양한 요소를 찾는 미션도 함께 진행된다고 하니 지루할 틈 없이 전시를 즐길 수 있을 듯하다. 눈과 마음으로, 그리고 온 몸으로 전시를 체험하다 보면 어느 새 놀이터에서 마구 뛰놀던 그 때로 돌아간 듯한 기분을 느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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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u_Jiang

 

 

<볼로냐 일러스트 원화전>은 전 세계 일러스트레이터들에게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 2019년 4월 볼로냐 전시를 시작으로 일본의 5개 도시와 한국의 서울을 거쳐 중국까지 월드투어로 전시될 예정이다. 볼로냐 일러스트 원화전의 인기가 얼마나 높은지 보여주는 한 예이기도 하다.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그림이 가진 힘을 믿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과거 이 전시가 한국에서 개최된 이력은 있으나, 이처럼 수십 년을 내다보는 월드투어에 정식으로 포함되어 서울에서 전시를 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놓칠 수 없는 기회다. 완벽해야 한다는, 틀리면 안 된다는 어른의 강박에서 벗어나 어린 시절의 침대 맡 라디오에서 흘러 나오던 이야기를 들으며 그 어떤 제약도 없는 풍요로운 꿈을 꾸던 어린 시절로 돌아갈 수 있는 기회!
 
<볼로냐 일러스트 원화전>이 일상 속 작은 카세트 테이프 같은 존재가 될 수 있기를 기원하며, 세계 권위 있는 심사위원들이 선정한 2019 올해의 일러스트레이터 76명의 실험적이고 따뜻한 작품들, 도서들을 만나보기 바란다. 당신이 진정으로 당신의 삶을 살고 있는지 질문을 건네는, 고요하고도 다정한 그림들을 마주하기를 바란다. 그리고 내가 오르세의 파도 그림을 계속해서 떠올리 듯, 원화전의 그림 중 한 점이라도 당신의 인생에 길이 남기를 바란다. 그리고 당신이 잊고 살았던 무언가를 떠올릴 수 있기를 바란다.

 



볼로냐 일러스트 원화전
- 세상을 담는 그림 -


일자 : 2020.02.06 ~ 2020.04.23

시간
오전 10시 ~ 오후 7시
(매표 및 입장마감 오후 6시 20분)

*
매주 월요일 휴관

장소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제7전시실

티켓가격
성인 : 12,000원
청소년 : 10,000원
어린이 : 9,000원

주최
예술의전당, ㈜씨씨오씨
 
주관: 메이크앤무브
 
관람연령

전체관람가

 


[황현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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