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영화 따라가보기 [여행]

같았던, 달랐던, 그리고 새로웠던 비엔나 여행
글 입력 2020.03.07 1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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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보다 보면 문득 ‘저기는 언젠가 꼭 한번 가봐야지.’하는 막연한 생각을 할 때가 있다. 영화에서 장소의 특성이 부각될 때는 더 그런 생각이 들었다. <국제시장>에서의 부산이 그랬고, <맘마미아!>에서의 그리스가 그랬다. 그러나 실제로 영화를 보고 실제로 그 장소를 여행한 적은 없었다. 부산을 여행하긴 했지만 영화 때문에 간 것이 아니었고, 그리스 여행은 여전히 꿈꾸고 있는 상태로 시간과 비용 등 여행을 실행하기엔 필요한 조건이 너무 많았다.

 

그래서 이번엔 발상을 바꾸기로 해봤다. 영화를 보고 여행을 꿈꾸는 것이 아니라, 여행지를 정하고 그 장소가 나오는 영화를 보자. 여행 기간은 크리스마스 연휴로, 여행지는 오스트리아의 비엔나로! (당시 나는 유럽에서 지내고 있었는데, 한국에 있을 때보다 자유시간이 훨씬 많았고 유럽 내의 국가는 접근성이 좋아 비용적 측면에서도 합리적이었다.)

 

단순히 항공권이 제일 저렴하기에 정해진 도시 비엔나. 내가 비엔나에 대해서 알고 있는 정보라고는 ‘오스트리아의 수도’라는 것 하나뿐이었다. 그렇게 흥미도, 아는 것도 없던 도시를 여행할 계획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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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비포 선라이즈>

 

 

유럽 여행을 하기 전, 많은 사람들이 영화 <비포 선라이즈>를 보는 것을 추천하곤 했다. 1996년에 개봉한 20년도 더 된 영화로, 내용은 기차에서 만나게 된 남녀가 비엔나에서 사랑에 빠지는 내용이다. 흔한 로맨스 영화로 내용은 다소 지루했지만, 주인공들이 '비엔나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며' 사랑에 빠진다는 것이 이 영화를 보고 여행을 하기로 결심하게 된 결정적 요인이었다. 그렇게 영화 <비포선라이즈>를 통해 내게 남겨진 비엔나의 인상은 로맨틱하고, 아직 그 옛날의 감성이 남은 아날로그적 도시였다.

 

그러나 실제로 방문한 비엔나는 영화 속 모습과는 사뭇 달랐다. 지나간 시간을 간과했던 탓일까. 영화 개봉 이후로 강산이 변한다는 10년을 두 번이나 보낸 비엔나. 그래서인지 영화와 현실의 괴리감은 말할 것도 없었다. 게다가 생각과 달랐던 비엔나에서 우연히 만나게 된 친구들이 추천한 비엔나의 장소들은 줄을 서서 가게의 입구에서 기다림을 겪어야만 입장 할 수 있는 초콜릿 케이크를 파는 ‘카페’와, 유럽에서 최대 규모라는 ‘아웃렛’이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추위 속에서 30분 이상 떨며 줄을 서 기다리는 것과 아웃렛 쇼핑은 내가 생각했던 로맨틱과는 거리가 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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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엔나의 거리

 

 

그냥 도시를 걸어보기로 했다. 주인공처럼 무작정 걸어 다닌 것은 아니고 가고 싶은 장소를 정해서 걸었다. 우리 이외의 다른 관광객들을 좀처럼 찾아보기 힘들었던 도시의 구석구석은 도시의 중심가와 다르지 않게 상당히 발전돼 있었다.


곳곳에 위치한 초고층 건물들과 스타벅스 안에서 대화하며 노트북으로 업무를 보는 사람들에게서는 아날로그의 이미지를 찾아볼 수 없었다. 이로써 영화 속에서 느꼈던 비엔나의 이미지는 모두 산산이 조각났다. 역시 영화는 현실과 많이 다르군, 하고 생각했다. 친구의 생각도 내 생각과 많이 다르지 않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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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터 공원

 

 

그렇지만 영화 덕분에 알게 되었고, 영화에서 느낄 수 있는 아련한 감성이 남아 있는 장소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해 질 녘에 방문한 프라터 공원은 디즈니랜드나 에버랜드와는 확실히 다른 감성의 놀이공원이었다. 웅장하거나 빠르고 스릴 있는 놀이기구는 없지만 그저 좋은 사람과 솜사탕 하나만 들고 있어도 충분히 즐거운 곳. 마치 1996년에 머무르고 있는 듯한 여유를 주는 장소였다.

 

조금 더 늦은 밤에 본 오페라 하우스는 무척 아름다웠다. 전 세계에서 온 관광객들이 모두 영화 속 주인공처럼 사진을 찍고 계단에 앉거나 난간에 기대 말없이 거리를 바라보았다. 영화 덕분에 언어도 생각도 다른 모두가 같은 추억과 기대감을 가지고 그곳에서 모여 같은 감정을 느꼈던 것이다. 도시의 모습은 영화 속과 꼭 같지는 않았지만, 오히려 조금은 다른 모습이 이러한 장소들을 더 빛나게 하는 듯했다.

 

새로운 방식으로 해본 여행, 장소를 정하고 그 장소를 배경으로 하는 영화를 보고 난 뒤 여행하기. 만약 다른 영화를 봤다면 어쩌면 완전히 다른 여행이 되었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비포 선라이즈>를 선택했고, 결론적으로 도시는 영화와 완전히 같은 모습이 아니었다. 영화에서의 모습만을 기대하고 갔다면 많이 실망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안에서 비엔나라는 도시의 또 다른 모습을 보았고 기대하지 않은 경험들도 하게 되었다. 초여름을 배경으로 했던 영화에는 나오지 않았던 크리스마스 마켓과 벨베데레 궁전에서 본 클림트와 에곤 쉴레의 작품들이 그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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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비포 선라이즈>속 오페라 하우스

 

 

또, 영화는 낯선 이들과 나 사이에 미묘한 연대감을 주었다. 낯선 나라의 오페라 하우스 앞에서, 공원의 벤치에서 우연히 만나게 되었던 사람들. 말은 통하지 않아도 같은 감정과 추억의 이미지를 가졌던 우리들. 모두 내가 그 영화를 보고 여행하기를 선택함으로써 얻은 결과물이었다.

 

그래서 나는 추천한다. 장소를 먼저 정한 뒤에 영화를 보고 여행을 해보자. 모두가 느끼는 만족감은 다를지 몰라도 충분히 해볼 만한 가치가 있는 경험이다. 기대했던 것을 경험하고 새로운 것을 만나기 위해, 아무런 걱정 고민 없이 장소를 정하고 영화를 고를 수 있는 날이 하루빨리 다가오길 바란다.

 

 

[홍혜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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