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짙은’은 묵직한 울림을 주는 싱어송라이터다. 2008년 정규 1집 [짙은]을 시작으로 [December] (2009), [Wonderland] (2010), [백야] (2011) 등의 음반을 꾸준히 냈다. 특히나 2014년도에 발매된 [diaspora : 흩어진 사람들]은 팬들에게 큰 위로를 안겨다 주어 폭발적인 반응을 이끌어내었다.
앨범은 [망명], [안개], [Try], [해바라기], [Hero] 총 5개의 곡으로 이루어져 있다. 노래들은 정처 없이 이리저리 떠도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로, 세상에 홀로 남겨진 외로운 정서를 담아내었다. 전반적으로 우울하고 슬픈 삶의 모습을 그려내고 있지만 동시에 이를 이겨내기 위한 몸부림을 표현하고 있다. 어딘가로 훌쩍 떠나는 것, 목표를 향해 끝까지 가보는 것 등 ‘짙은’은 저마다의 답으로 그 몸부림을 나타내고 있다.
갈 곳 없이 방황하는 인간의 내면이 5개의 곡에 반영되어 있는데 이는 각박한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나’의 삶과 맞닿아있다. 일기장처럼 써내려 간 솔직한 가사와 울부짖는 그의 목소리는 더욱이 공감가게 만든다. 감미로운 멜로디로 설 곳을 잃고 떠도는 자들의 손을 잡아주며, 용기를 북돋아 주는 가사로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힘을 주는 그이다.
이렇듯 ‘짙은’은 환영받지 못하는 오늘날의 디아스포라들을 위해 [diaspora : 흩어진 사람들] 앨범 속에 마음을 담아 진심이 담긴 노래들을 전했다. 그의 진심이 더 많은 사람들에게 전해지길 바라며 [안개], [Hero]
안개
“떠나자” 아무도 거닐지 않은 잔디밭을 건너 안개가 자욱한 숲속으로. 소년과 소녀는 마을로부터 짙은 안개가 깔린 숲으로 도피한다. 안개가 드리워진 그곳은 둘만의 비밀스러운 아지트였고, 걱정거리, 고민들을 모두 잊을 수 있는 안식처였다. 서로의 눈을 마주 보고 손을 잡는 두 사람. 숲속은 둘만의 애틋한 사랑을 허락했고 그들을 이해할 수 있는 유일한 장소였다. 소년과 소녀는 서로를 ‘오직 나를 믿어주는 단 한 사람’ 이라고 믿으며 그렇게 끝도 없는 숲속을 거닌다. 안개는 소년, 소녀의 모습을 가려주는 보호막 같아 보이는데 그렇게 가려진 시간 속에서 둘만의 사랑이 이루어진다.
[안개]를 들으며 소원을 빈다. 나와 같은 소년이 나타나서 함께 도망 쳐주었으면 좋겠다고. 떠나고 싶지만 현실의 것들에 치여 매번 떠나지 못하는 나. 해야 할 것도 많고 책임질 것도 많으니까.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싶은 마음, 누군가에게 이해받고 싶은 마음이 이렇게나 큰데 현실의 벽이 자꾸 나를 가로막는다. ‘도피’의 욕망은 커지고 커져 노래 [안개]를 계속해서 붙잡게 된다. “처음 같은 곳으로 떠나가자” 라는 가사를 곱씹으며 생각하고 또 생각한다.
어쿠스틱 기타로 흐르는 선율은 잔잔함과 부드러움을 더해준다. ‘짙은’의 조근조근 이야기하는 창법은 마치 남자친구가 내 옆에서 속삭이는 것만 같다. 노래는 처음부터 끝까지 비슷한 음조로 이루어져 있는데 한결같은 느낌을 주어 마음을 평온하게 만든다. 누군가에게 호소하듯 ‘우-우’ 라고 부르짖는 부분에선 가수의 간절한 마음이 느껴진다. 악기, 목소리, 음조는 서로 조화롭게 뒤섞여 “떠나가자” 의 의미가 담긴 가사들을 잘 전달해 준다. [안개]의 가사는 “처음 같은 곳으로 도망가기 좋은 날” 이라는 문장으로 마무리되는데 이는 세상에 상처를 받아 아파하는 사람들을 향해 살며시 손을 내밀어 주는 것만 같다.
Hero
‘막막하다’ 깜깜한 밤, 한 소년이 정처 없이 길을 걷고 있다. 찌푸린 표정에 우울한 얼굴을 하고 있는 소년. 거리에는 자동차들만이 쌩쌩 달리고 있고, 소년은 사람들 어깨에 치여 비틀비틀 발걸음을 내디딜 뿐이다. 그를 아프게 한 기억들이 자꾸만 머릿속에 떠오르자 소년의 눈에 눈물방울이 조금씩 차오르기 시작한다. 그렇게 몇 발자국 내디뎠을까. 컴컴했던 어둠 너머 저 끝에서 빛이 보인다. 빨간색, 주황색, 흰색, 파란색 갖가지 빛들이 뜨거워진 눈시울 때문인지 동그랗게 빛나 보인다. 하늘 위에 떠있는 동그란 달이 내뿜는 빛은 소년을 감싸 안아주는 것만 같다. 반짝이는 빛들로 가득한 소년의 눈망울이 돋보인다.
마음이 울적할 때마다 옥상 위에 올라가 이어폰을 꽂고 하늘을 바라보며 노래를 듣곤 했다. 밤하늘에 반짝 빛나는 별, 얼굴에 스치는 시원한 바람, 그리고 내 귀를 감싸는 노래의 선율. 이 3가지야말로 나에게 진정으로 위로와 용기를 전해 주었다. 이렇듯 옥상은 유일하게 숨통을 틀 수 있는 곳, 나의 단 하나뿐인 Hero다. 이처럼 정처 없이 방황하고 있다면, 세상이 나를 짓누르는 것 같다면 자신만의 Hero를 정해보는 것은 어떨까. 사람이든, 물건이든, 장소든 그 무엇이든 상관없다. 나뭇가지에 비친 햇살 한줄기마저도. 내 마음에 와닿을 수 있다면 그걸로 충분하다.
“어두운 미로 속에 난 나를 잃었죠” 초반부, 가사들을 잔잔히 읊조리는 ‘짙은’의 목소리가 들린다. 그러나 중후반부부터, ‘짙은’은 호소력 짙은 목소리로 가사를 울부짖듯 외친다. 그동안에 쌓여왔던 설움과 슬픔을 한꺼번에 토해내는 듯하다. 어쿠스틱 기타로만 연주되던 초반부에 비해 중후반부부터 드럼과 피아노가 합세하는데 이러한 악기들이 어우러져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해준다. 어둠 속에 갇혀 있다가 빛을 보게 된 순간을 악기들의 콜라보레이션으로 나타낸 점이 인상 깊다.
Try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바다 한가운데에서 항해사는 길을 잃었다. 배 안에 있던 사람들은 우리는 머지않아 죽음을 맞이할 것이라고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다. 그러나 항해사는 포기하지 않는다. “해보는 거야.” 창창한 낮 태양이 뜨거운 빛을 내리쫴도, 깜깜한 밤 수많은 파도가 밀려와도 그는 계속해서 항해한다. 끝이 보이질 않지만 언젠간 끝이 있노라고 그렇게 결심하면서. 사람들이 우리가 이미 버려졌다고 얘기할 때쯤 저 멀리 무언가가 보인다. 항해사는 그곳을 가리키며 기뻐하고 사람들은 눈이 휘둥그레지며 그곳을 쳐다본다. 항해사는 소리친다. "Try!"
‘이제 다 끝났어’ 라고 여겨질 때가 많았다. ‘이 거지 같은 세상’ 이라며 내 책임을 세상 탓으로 돌릴 때도 있었다. 그러나 누군가가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끝까지 긍정의 힘을 잃지 마” 당장 내일이 시험인데 할 것 들은 많을 때, ‘긍정.’ 그 한 단어를 계속해서 곱씹었다. 그렇게 ‘할 수 있어’, ‘잘 될 거야’ 라는 생각들은 나에게 만족스러운 결과를 가져다주었다. 무슨 일이든 마음가짐에 달린 게 아닐까. 내가 못 할 것 같다고 여기면 할 수 없는 것이고, 내가 할 수 있다고 여기면 해낼 수 있는 것이다.
그전의 음악들이 잔잔한 분위기로 흘러갔다면 [Try]는 다르다. 피아노, 북, 현악기 등 여러 가지 악기에 우렁찬 목소리가 더해져 웅장한 파워를 안겨다 준다. 그 점에서 [diaspora : 흩어진 사람들]의 노래들 중에서 제일로 밝고 긍정적인 노래라고 얘기할 수 있다. 한 단계씩 높아지는 옥타브는 조금씩 힘을 불어넣어 주고, 둥-둥 울리는 북은 두근거리는 심장을 은유한 것 같다. 후반부에 오-오오-오 라고 외치는 창법은 “힘내!” 라고 응원 해주는 것 만 같다. 끝으로, 희미하게 들리는 미세한 파도 소리는 듣는 이의 마음을 시원하게 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