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노잼 인간으로 살기로 했다 [사람]

세상에서 노잼이 제일 쉬웠어요
글 입력 2020.03.01 0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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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그렇게 조용하니?"

"조용한 편이에요."

"넌 조용한 편이 아니라 그냥 조용한 거야."

 


언젠가 나눴던 대화다. 나는 조용한 편이 아니라 조용한 사람이다.

 

 

노잼02.jpg



어린 시절 부모님은 나를 내성적이라고 표현했는데 지금의 나는 나를 노잼 인간이라고 표현한다. 말이 없고 차분하고 재미없다. 사회성은 뛰어나지 못하며 친화력은 찾아야 겨우 보인다. 일주일에 다섯 번 마주하는 사람과 친해지기까지 기본 반년은 걸린다. 어떻게 해야 할 지 몰라 어색하게 웃는 것, 숨 쉬듯 자연스러운 일이다.


어릴 땐 나의 이런 성격 때문에 고민이 많았다. 세상에 나만큼 조용한 사람이 없으니 내가 잘못된 것 같아서 성격을 바꿔야 할 것 같았다. 하지만 당시 실존주의에 심취해있던 나는 사르트르의 구토를 읽었는데, 변화한 건 나 자신이라며 그것은 가장 손쉽고 불쾌한 해결이란 말에 아주 크게 공감했다. 당시 내가 자발적으로 나를 바꾸고 싶어진 게 아니라 사회적 기준에 나를 가져다 대보곤 맞지 않는다고 다시 재단하려 했으니까. 나만의 세상에 있을 때 나에겐 그 어떤 결격사유도 없는데 세간의 기준을 들이대면 결점투성이가 되는 것 같았다. '차라리 그 세상에 편입 안 되고 말지', 고잉 마이웨이 하기로 했다. 그땐 그게 정답으로 보였다. 그래서 있는 그대로, 조용한 사람이 되었다.


성격에 대한 고민은 사회생활의 시작과 함께 다시 찾아왔다. 신입으로 들어온 나에게 잘해주려는 분들에게 살갑게 대하지 못해서, 상대를 불편하게 만드는 것 같았다. 나중엔 친해져서 농담도 주고받고 장난도 쳤지만, 처음엔 내 눈치를 보는 것 같아서 너무 신경 쓰였다. 나에게 호의를 베푸는 사람들에게 벽을 치는 기분이었다. 하나 허물어야 그다음 단계로 넘어가는데,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몰라 아무것도 못 하고 그냥 웃어넘기고 말았다. 일주일에 5일을 마주하는 사람들과 빠르게 친해져서 나쁠 거라곤 하나도 없는데 그거 하나 제대로 못 하고 헤매는 것 같아서 고민이었다. 이때는 진지하게 내 성격이 사회에 그렇게까지 맞지 않나 싶어서 고민이 깊어졌다.


자아 성찰을 하면서 재미없음의 꼬리를 물다 보니 생각이 ‘재밌음’에 대한 내 태도에 다다랐다. 그러고 보니 나에겐 재밌게 살려는 인생 목표 같은 건 없고, 재밌는 사람이 되고자 하는 생각은 더더욱 없었다. 딱히 재밌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예능을 보고 웃고, 가벼운 책을 읽고 기분 전환을 하지만, 굳이 재밌는 걸 찾지는 않는다. 한때 나는 심오한 취향에 빠져서 미래의 나를 질리게 만들기도 했다. 재미라곤 찾아볼 수 없는 책만 책장에 늘어서, 취향이 달라진 나는 과거의 선택을 뒤로하고 새로운 취향을 꽂아 넣었다. 그마저도 재미와는 거리가 있었지만.

 

최근에 산 책은 ‘피해자가 남긴 지문 같은 이야기’라는 평을 받은 린이한의 ‘팡쓰치의 첫사랑 낙원’이고 위시리스트에 담긴 책은 대학 전공과 관련된 사회과학 서적이다. 재미없는 나는 전보다는 덜하지만, 여전히 재미없는 취향을 갖고 산다.


 

노잼03.jpg

 


나는 조용한 노잼 인간으로 살기로 했다. 이유는 하나, 나와 비슷한 사람이 나를 보고 ‘세상에 저렇게 조용하고 재미없는 사람이 있구나, 나만 그런 거 아니구나’ 할 수 있도록. 그래서 내가 했던 고민을 하지 않았으면 해서. 일찍이 나만큼 조용한 사람을 알았더라면 성격으로 고민하지 않았을 것 같다. 혼자가 아니었다면 소속감을 느꼈을 테고, 그 소속감은 나에게 안정감을 안겨다 줬을 것이다. 소속과 안정이 있었더라면, 나는 오랜 시간에 걸쳐 내 성격을 고민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조용한 성격은 허물어져야 하는 벽이 아니니까. 그걸 몰라서 오랜 기간 헤매고 고민하고 걱정했다. 내가 사회에 맞지 않을까봐 고민하는 밤은 인생에 없어도 되는 시간이다.

 

사람의 마인드는 쉽게 변하지 않는다고, 아니 변하기 무척 어렵다고 한다. 살아온 시간이 축적되면서 마인드는 점점 견고해지기 때문에 그걸 바꾸는 일은 많지 않다고 한다. 나는 노잼 인간으로 살기로 굳게 마음 먹었다. 마음 먹은 이후로 시간이 조금 지났으니 전보다는 단단해졌지만, 오래되지 않아서 아직 말랑하다. 하지만 이렇게 글까지 썼으니 앞으로 나아갈 방향은 견고함이 되겠다.


나는 오늘도 재미없이 살았다. 늦게 자고 일찍 일어나 빈둥거리다가 친구와 공원 한 바퀴를 돌았다. 오늘 외출했으니 내일은 꼼짝없이 집에 있을 예정이다. 오늘보다 재미없을 내일이다. 내일도 지금껏 살아온 날들과 비슷한 조용한 날이 기다리고 있다. 그래서 좋다. 아주 마음에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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