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SS] 나는 밀레니얼 세대입니다 - 인스타그램에는 절망이 없다

밀레니얼 세대는 세상을 어떻게 이해하는가
글 입력 2020.02.27 0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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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레니얼 세대는

세상을 어떻게 이해하는가”

 

 

『인스타그램에는 절망이 없다』

_정지우

 


인스타그램 표1.jpg

 

 

[PRESS]

나는 밀레니얼 세대입니다

 

 

“인스타그램에는 절망이 없다.” 처음 문장을 마주했을 때 순간적으로 너무나 사실이라고 생각했다. 인스타그램은 이십 대인 나와 같은 세대, 밀레니얼들에게는 아주 익숙한 문화다. 감성적이고 보기에 좋은 ‘인스타그램스러운’ 사진을 찍는 사람을 길거리에서 마주하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며, 그런 행위가 일어나는 과정 속에선 ‘절망’이라는 것을 조금도 찾아볼 수 없기 때문이다. 차고 넘치는 핫플과 인생샷을 건질 수 있는 장소에 찾아가서 같은 장면도 여러 번 찍어내고, 그렇게 쌓인 몇십장의 사진 중 손가락으로 꼽을 수 있는 사진을 고르고 보정하기 위해 시간을 투자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렇게 쌓인 무수한 이미지들로 인스타그램에는 낭만적이고, 멋지고, 반짝이는 순간들이 넘쳐나는 곳이 되었다.

 

하지만 실제로 밀레니얼 세대가 살아가는 사회는 인스타그램과는 전혀 다르다. 최악의 청년 실업률, 스펙 경쟁이 주는 미래에 대한 불안감, 이미 공고히 자리 잡은 사회에서 받아야 하는 억압, 공정성을 추구하는 사이에서 일어나는 충돌과 상처, 일상에서 겪게 되는 편견과 갑을관계, 그야말로 살갗으로 많은 문제를 떠안고 살아가는 세대이기도 하다. 인스타그램에서 보이는 밀레니얼들은 그 누구보다 많은 것을 누리고 사는 것 같지만 그들이 처한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화면 속에는 남부러워할 순간을 만끽하며 존재하는 동시에, 현실에서는 숱한 문제와 충돌을 마주한 순간을 살아가는 이들이 바로 밀레니얼들이었다.

 

이처럼 『인스타그램에는 절망이 없다』는 제목만으로도 내가 가지고 있던 현실과 다른 모습을 한 SNS 문화에 대한 여러 생각에 하나의 방점을 찍어 주었었다. 작지만 울림이 있는 인상을 남긴 마주침이었다. 이후 관심을 두고 책의 소개를 읽으면서는 나 역시 같은 밀레니얼 세대이자 그중에서도 한국 사회에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이 책을 꼭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단지 나뿐만이 아닌 나의 세대를, 밀레니얼 세대로서 살아가는 세상을 사유하고 이해하려 했던 적이 있었는가?” 라고 질문한다면 사실 그리 진심이 담긴 사색을 지속한 적이 없었던 것 같다. 천천히 생각해보면 당장 눈앞에 놓인 문제를 다루는 데 급급해서, 그리고 격한 감정이 얽힌 상황을 이해하는 것만으로도 지쳐서, 모든 상황을 살갗으로 느끼면서도 그 자체를 구체적으로 살피기 위해 깊이 사색한 적이 없었던 것 같다. 우리는 왜 이렇게 살아야 하는지, 우리는 서로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이 모든 것의 이해관계에 대해서 말이다.

 

이 리뷰 글을 읽으시는 분들 중 많은 분들이 밀레니얼 세대이고, 또 사회에 선연히 존재하는 여러 문제와 상황 간의 충돌 앞에서 여러 감정을 느껴온 분들일 것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공존’으로 바라본다면 ‘밀레니얼 세대’에 대한 대화와 성찰은 한 세대에만 필요한 것이 아니라 모두에게 필요한 것이다. 그렇다면 <인스타그램에는 절망이 없다>는 이미 모두에게 다가갈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기성세대의 사회가 아닌, 기성세대가 말하는 밀레니얼 세대가 아닌, 밀레니얼 세대가 자신의 목소리로 전하는 밀레니얼 세대의 이야기가 담긴 이 책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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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레니얼 세대 문화평론가의

한국사회 밀레니얼 담론

 

 

젊은이들은 왜 노력을 ‘노오력’이라고 조롱하고 세상이 이미 ‘수저’로 결정되어 있다는 회의주의에 빠져 있는가? 젊은이들은 왜 이 세계의 거대한 불평등에 분노하지 않고, 자기가 속한 작은 영역의 공정성만을 요구하는가? 젊은 남성들은 왜 ‘가진 자’인 상류 계층의 같은 남성을 증오하기보다는 여성을 증오하는 쪽을 택했는가? 작가는 그 속에 속해보지 않은 사람으로서는 좀처럼 알기 어려운 밀레니얼의 세계관에 대해, 최소한 한 번쯤 그들의 입장에 서서 문제를 바라보고 함께 해결해나갈 것을 끊임없이 이야기한다.


- 보도자료 중

 

 

도서 <인스타그램에는 절망이 없다>는 밀레니얼 세대가 말하는 밀레니얼 세대에 대한 담론이다. 이들이 살아가는 사회는 어떤 사회인지 살피는 사회비평이자, 한 사람의 삶에서 우러나온 경험과 사유가 담긴 에세이기도 하다. 밀레니얼 세대는 도대체 어떤 세대인지, 그들은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고 살아가는지에 대해 87년생 밀레니얼 세대인 저자가 한 명의 증언자로서 그 담론과 이야기를 펼쳐나간다.

 

이 책은 밀레니얼 세대가 그 삶을 살아간 주체로서 써 내려간 글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큰 도서다. 기존에 있던 관찰자의 입장에서 쓰인 기성세대의 '청춘 담론'은 여전히 청춘의 실제 목소리를 대변해주지 못하고 있으며, 그러한 담론들은 밀레니얼의 핵심적인 특성을 보지 못하고 '개인주의,' '나 중심,' '효율성'이라는 몇 개의 단어로 청춘들을 정의하는 데에서 그쳤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한국사회의 청년이자 작가로서 여러 매체를 동해 동시대 청년들과 소통해온 저자는 이번 저서를 통해 한 명의 밀레니얼이자 평론가로서 밀레니얼 세대가 어떤 세대인지 독자들에게 들려주고자 한다.

 

 

나는 진실을 이야기하고 싶었고, 그러면서도 그런 진실들이 내 삶을 해하지는 않길 바랐고, 또한 이 세상에 어떤 울림을 남겨 누군가의 삶에 작은 파문이나마 일으키고, 내 삶도 이 세상도 또 다른 누군가의 삶도 더 온전해지길 바랐다.


- '작가의 말' 중

 

 

책 속 ‘작가의 말’을 보면 저자는 쓰고 싶은 글이라서 써왔던 이전의 많은 저작과 달리, 처음으로 ‘의무감’을 가고 글을 썼다고 말한다. 본격적인 내용에 앞서 아슬아슬한 삶의 끝자락에서 세상에서 목격한 가장 절실한 모습들과 그 세상과 자신의 삶이 만나는 지점에 대해 쓰기 시작했다는 작가의 말을 읽으며 책에 담긴 저자의 마음이 느껴졌다. 삶에서 겪은 경험과 사유는, 다른 관찰이나 평가가 넘어설 수 없는 '진심'이란 것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작가는 밀레니얼 세대를 ‘시소의 세계관’을 가진 ‘환각의 세대’라고 정의하며, 청년의 시선에서 이제껏 없었던 구체적이고도 깊이 있는 ‘밀레니얼 담론’을 만들어낸다. 작가이기 이전에 한국사회를 살아가는 한 명의 청년으로서 경험하고 사유한 것들을 균형감각을 잃지 않는 섬세한 글쓰기로 진실하게 담아냈다.


- 보도자료 중


 

이러한 방식속에서 저자는 밀레니얼 세대를 ‘시소의 세계관’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환각의 세대’라 정의하며, 또한 이들에게 삶과 직결된 중요한 문제들은 ‘청춘,’ ‘젠더,’ ‘개인과 공동체’로 수렴한다고 본다. 그리고 책은 밀레니얼 세대에 대한 저자의 비평과 함께 이 세 가지 문제들을 큰 가지로 두며 더 구체적인 사건, 문제, 현상으로 뻗어나간다.

 

 


 

 

*

 

꿈과 현실 사이의 분열,

'환각의 세대'

 

 

“너는 꿈이 뭐니?” 내가 어릴 때 쉬지 않고 들어온 질문이었다. 어리던 나는 누구 앞에서 자기소개할 때면 항상 이루고 싶은 꿈을 같이 이야기했고, 무엇인가를 할 때마다 꿈이 무엇인지 적어 내야 했으며 이 모든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면 어른들은 그 꿈을 꼭 이루라고 말하며 열심히 한다면 어른이 되면 다 이룰 수 있다는 것처럼 내게 말했다. 마음에 생각해 꿈이 없으면 잘못된 것처럼 느껴질 정도로 ‘꿈’을 이야기하고 또 이루라고 격려받아오며 살아왔다. 마치 이루고 싶은 꿈이 없으면 걱정하던 세대, 이루고 싶은 커다란 꿈이 없으면 억지로 뭐라도 써내며 자라온 세대가 아니었는가.

 

물론 사람마다 다를 수도 있겠지만 적어도 나는 그랬었다. 나는 초등학생 때부터 중학생 때의 나는 몇 년간 나의 꿈이 ‘디자이너’로 변하지도 않고 확고하다는 게 아주 큰 자부심일 정도로 나의 꿈을 믿으며 살아왔고 어른들도 꿈을 꾸준히 가지고 있는 나를 칭찬해주었다. 아이러니한 것은 꿈은 디자이너였지만 주변에서는 외국어고등학교를 가라 했다. 외고는 선생님들도 부모님들도 '좋은 학교'라며, 마치 그곳에 가면 꿈을 보장해주는 것처럼 내게 말했고 나는 아무렇지 않게 꿈을 이루려면 당연히 외고를 가면 된다는 생각뿐이었다. 그리고 그곳에 입학하는 순간 나는 다가올 게 뭔지도 모른 채 나의 꿈에 한 걸음 더 다가갔다는 희망을 품에 가득 안았었고 동시에 그만큼 지나치게 치열한 경쟁 구도에 갇히면서 어른이 되기 전 미리 나의 꿈을 성적이 안 된다는 이유로 아무렇지 않게 버리는 법을 배워가기 시작했다. 막상 다가온 현실은 꿈이 아닌 오로지 남보다 먼저 달성해야만 할 공부와 성적만이 존재하고 있던 것이다.

 

 

그 가운데 우리는 명확히 분열증적인 증세를 겪을 수밖에 없었다. 그 어느 세대보다 어릴 적부터 꿈을 좇기를 요구 받았던 세대, (...) 하지만 그 모든 꿈들이 완전히 거짓에 불과하다는 듯이, (...) 연이어 도래한 외환위기와 금융위기는 이제 삶을 시작하려는 우리에게 지각변동과 같은 불안감, 위기의식, 공포를 심어주었다. 그렇게 대한민국 역사상 최대의 몽상가이자 현실주의자인 세대, 이상과 현실의 가장 극적인 분열을 겪는 우리 ‘환각의 세대’가 탄생했다.


- ‘나의 시대, 나의 세대, 나의 삶’ 중

 

 

다채로운 꿈과 달리 우리가 마주한 것은 오로지 하나의 레이스 위, 하나의 경쟁뿐이었다. 그것은 성적이었고 ‘일단’ 목적은 대학이었으며 숫자에 따라 줄 세워지면 그 순서대로 ‘사회의 성공’을 좌우한다는 대학에 줄이어 입장하는 것이었다. ‘꿈’은 내가 존재하는 현실과 아무 상관 없는 일이 돼버렸고, 대학을 다니며 사회에서 마주한 것은 내가 할 수 있는 무엇인가가 아니라 아무것도 확신할 수 없는 공허함에서 오는 불안함이었다. 그래서 할 수 있는 것을 모든 것을 했다. 여전히 열심히 공부하고, 대외 활동을 하고, 스펙을 위해 자격증 공부도 해보고, 돈이 필요하니 아르바이트도 하고, 열심히 살아보지만 왜인지 노력은 하면 할수록 불안한 것이었다. 그리고 바삐 현실을 살아가니 어느 순간 내가 이루고 싶던 꿈은 허망한 사치처럼 느껴지기까지 했다.

 

나는 몽상가이자 현실주의자라는 밀레니얼 세대의 정체성이 너무도 공감되었다. 내게 존재하는 간극은 나조차도 이해하기가 어려울 때가 많았고, 그런 이도 저도 아닌 기괴한 모습에서 자존감을 잃기도 했다. 몽상가와 현실주의자를 오가는 자아 사이에서 어른이 된 나의 ‘환각’은 그 간극을 잊기 위한 YOLO와 인스타그램을 위해 꾸며진 순간을 채우는 것이 되었다가, 결국 지쳐 나를 포기하려는 노력이었다가, 끝내는 지나친 자기혐오로 이어졌었다.


그런 아픔을 겪었음에도 ‘나’라는 몽상가는 여전히 살아있다. 누구나 그렇듯이 미래에 할 수 있는 일을 통해 안정된 수입으로 일상을 유지하는 삶을 그리면서도 나의 작품을 마음껏 펼칠 수 있기를 바란다.  꼭 미래가 아니더라도 지금 대학생으로서 살면서 이 둘을 어떻게 나의 두 모습을 모두 붙잡을 것인가에 대해 고민에 고민을 거듭한다. 나는 그토록 마음에 품어온 좋아하고, 하고 싶은 것들과 일상도 계속 추구하고 싶고, 현실에서도 잘 살아남고 싶다. '잘 살고 싶다'는 마음은 이미 무의미한 것이 되었다. 대신 어느 순간부터 나를 지킬 수 있는 최소한의 삶, 위대한 누군가처럼 꿈을 이루고 성공하는 것 대신 내가 나로서 살아가는 하나의 삶을 꿈꿔보기 시작했다.

 

 

*

 

어느 한쪽으로도 기울지 않는

'시소의 세계관'

 

 

기성세대가 정치적으로, 종교적으로, 혹은 사회문화적으로 비교적 공고한 가치관 속에서 집단적 정체성을 형성하고, 인생에서 어떤 확신 어린 상태를 부여받곤 했다면, 밀레니얼 세대는 처음부터 ‘확고한 정체성’을 가져본 적이 없다. 모든 가치관은 온라인에서 하나의 ‘관점’으로 전락하고, 상대적인 것이 되며, 존중해야 할 취향이자 하나의 의견이 될 뿐이다. 절대적으로 의지할 단일한 신념 대신, 이러한 가치관 저러한 가치관을 그때그때 시소 타듯이 무게중심을 옮기며 살아가는 ‘유동성’이 그 바탕에 깔려 있는 것이다.


- '밀레니얼과 시소의 세계관' 중

 

 

저자는 하나의 가치관이나 이념이 지배적으로 존재할 수 없는 세대, 어느 한 영역에 온전히 몸 담그지 않는 세대, 확고한 정체성 대신 자신을 끊임없이 성찰하며 의미와 가치의 기준을 계속 이동하는 밀레니얼 세대가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을 ‘시소의 세계관’이라 설명한다.

 

 

이런 이중성은 어느 한쪽의 가치에 절대적으로 기울지 않고, 어느 하나를 추구하는가 싶으면 다른 한 측면으로 이동하는 식의 '시소적인 세계관'이 이들에게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이는 좋게 말한다면 균형감각이고, 부정적으로 평가한다면 '결정장애'적인 특성이라고도 말할 수 있다. 결코 한쪽으로 온전히 넘어갈 수 없이, 그러한 넘어감이나 치우침 자체에 불안함을 느끼고 곧장 스스로의 위치를 재점검하면서 다른 쪽으로 몸을 기울이는 것이다. 그 근본 바탕은 '불안'이다.


- '밀레니얼과 시소의 세계관' 중

 

 

나 역시 주변에 있는 친구들과 나를 돌아보며 이제 우리들에겐 절대적인 것처럼 정해진 ‘정답’이란 것이 무의미해졌다는 생각을 해왔다. 하나의 정답으로 서로를 평가하기보다는 한 사람 안에는 한 사람만의 가치관과 의미에 대한 기준이 있음을 알고, 그 중심을 그 자체로 존중하고 함께하려는 움직임을 많이 보았기 때문이었다.  그런 분위기를 알고 있으니 이제는 정해진 몇 가지의 기준만으로 누군가를 평가한다는 것은 너무도 조심스러운 일이 되었고,  적어도 나와 지인들 사이에선 확실하지 않은 기준으로 누군가를 평가한다는 게 큰 의미를 가지지 못하게 된 것 같았다.


"꿈을 가지고 있어야지," "학생 때 공부를 열심히 해서 좋은 대학에 들어가면 안정된 삶을 살 수 있을 거야," 라는 등 기성세대가 말해온 '정답'이란 것에 가까운 삶을 살아가고도 결국엔 아무것도 가질 수 없던 밀레니얼의 세계관이 시소의 모습이 된 것은 당연한 결과일지도 모른다. 어릴 때부터 사회에 자리 잡을 수 있을 거라 기대하던 나이에 이르기까지의 밀레니얼이 지금까지 겪은 감정과 상실은 몇 문장만으로 설명하기에는 복잡하게 얽혀있는 모습일 테니 말이다. 그럴 수 있을 거라는 스스로의 확신에도 의심하게 되는 밀레니얼은 잘못 기울어지지 않기 위해 끊임없이 돌아볼 수밖에 없었다.


무엇보다 시소 위에서 쉬지 않고 몸을 기울이는 밀레니얼들의 세계관 중심에는 '불안'이 자리하고 있다는 것에 공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 역시 안정적으로 머물 공간도, 삶에 있어 무엇인가를 잡을 수 없다는 게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깨닫게 된 경험과 기억이 있었고, 그래서 나름대로 긴 시간 동안 하라는 노력과 하고 싶은 노력을 하며 살아왔는데 여전히 그 두려움에 처할 수 있다는 불안감을 자주 경험하기 때문이었다. 그러고 싶지 않지만, 그럴 수 있는 상황에 더 가까이 놓였다는 있다는 것만으로도 불안에 마음을 쉽게 놓을 수 없는 일상을 살아야 했다.

 

그리고 나는 이런 흐름에서 하나의 실마리를 얻었다. 평소에는 '당연한 건데 여전히 당연하지 않은 현실이 이해되지 않는다'며 한숨과 함께 답답한 마음으로 생각을 끊어냈던 것에 대한 실마리였는데, 그건 바로 '공정성'에 대한 것이었다.

 

 

*

 

밀레니얼들이 의지할 수 있는 유일한 것,

"공정성"


 

청년들은 각자 출발선이 다름을 이미 인정하고 있다. 그것을 기성세대가 포기라고 부르더라도 말이다. 대신 그들이 절박할 정도로 원하는 것은 출발전도 다르고, 재능도 다르고, 따라서 능력도 다르더라도, 적어도 심판이나 경기 시작 이후의 룰은 동일하게 적용되는 것이다. 그 룰의 공평함에 절망적일 정도로 의지하고 있다.

 

- '공정성, 그 작은 세계의 룰?' 중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삶에서 내가 서 있을 수 있는 영역은 변할 수 없고, 나의 노력도 여전히 큰 의미를 가져오지 못한다면 남은 것은 '공정성'이었다. 나는 이 '공정성'에는 존중받기를 원하는 밀레니얼의 마음이 담겨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내가 나의 삶을 살아가기 위해 하는 노력과 의지가 단지 이런 조건에서 태어나 출발했다는 이유로 상처받고 매도당하지 않도록 보호해달라는 절박함과 불안감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태어날 때부터 주어지는 여러 개의 출발선 중에는 '젠더'도 있다. 공정성이 키워드라면 밀레니얼 세대에선 젠더 문제가 빠질 수 없다. 젠더 문제를 말하자면 공정성을 빼놓을 수 없고, 공정성을 이야기한다면 젠더 문제를 말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책의 한 챕터가 할애된 젠더 문제에 대한 내용을 읽으며 내가 새롭게 주목한 단어는 바로 ‘가부장제’였다. 그중에서도 '가부장제는 단순히 사회적인 강요를 넘어서 정체성 자체에 가해지는 억압'이라는 부분에 주목했다. 그저 경쟁 구도의 사회에서 잡을 수 있는 기회가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나’라는 한 사람으로서 살아가기 위한 생존의 문제라는 의미로 다가왔다.

 

 

최근 청년 남성의 분노는 ‘공정’하지 못한 데서 비롯된 것이라는 주장이 큰 호응을 얻고 있다. 젊은 남성들이 화가 나는 이유는 ‘남성과 여성의 경쟁’이 공정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그것은 문제의 근본이 아니다. 오히려 가장 근본적인 뿌리는 가부장적인 문화구조다. 그 속에서 강요받는 정체성이다.

 

- '가부장이 불가능해진 시대의 한국, 청년, 남성' 중

 

 

가부장제가 만들어 놓은 편견은 ‘의무’라는 탈을 쓰고 존재하고 있다. 이 가부장제라는 틀은 사실상 편견을 두고 존재하고 있지만, 그 틀은 우리가 달성해야 할 '의무'를 책임지고 있지 못한다며 압박을 가하고 있던 것이다. 시소의 세계관 위, 경계라는 것의 의미가 무용해진 밀레니얼 세대 사이에서 단지 여성이나 남성이라는 이유로 ‘짊어져야 한다’며 기존에 거의 이분법처럼 존재하던 ‘의무‘에 대해서는 결코 덜 말해질 수는 없는 것이다.


밀레니얼 남성들은 더이상 기성세대의 ‘아버지’처럼 가정을 이끌어가기 위해 모든 능력과 위치를 가진 '아버지'가 될 수 없으며, 여성들은 여전히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사회에서 배제되며 혐오의 시선과 편견을 겪고 있다. 그리고 한 사람으로 살아가기 위해 의지와 상관없이 강요되는 이 모든 것들을 짊어지며 괴로워할 이유가 없다는 것 또한 우리들은 알고 있다. 그래서 밀레니얼 세대는 내가, 그리고 모두가 존중받을 수 있는 공정함을 찾기 시작한 것이다. 분노 속에서, 연대 속에서, 슬픔 속에서, 그리고 절박함 속에서.

 

 

무엇이든 하고 싶은 일을 할 것이다, 원하는 꿈을 좇을 것이다, 나의 삶과 꿈 사이에서 집요하게 조화로운 지점을 찾으리라 믿었던 많은 이들이 결혼과 출산 이후에는 공직이나 전문직이 최고라고 자조 섞인 이야기를 하게 된다. 당연히 그 말이 옳기 때문은 아니다. 오히려 아직 현실은 바뀐 것이 없기 때문이라고 말해야 할 것이다. 흔히 세상에 성평등의 바람이 불고 있고, 그에 따른 역차별 문제가 제기될 지경이라고 하지만, 어쩌면 그 모든 것은 관념의 영역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실제로 아이를 둘러싼 경력단절, 정체성 상실, 삶의 포기와 강요는 흔한 일이고 일반적인 일이다.


- '어머니의 삶으로부터' 중

 

 

젠더 문제는 조금씩 인식이 변하고 있다고는 해도 여전히 혼란스러움이 더 거대한 모습이라고 생각한다. 누군가는 아직도 사람들이 문제의 어느 부분만이 계속해서 이야기되는 것을 보고 문제의 대부분이 해결되었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런 목소리들조차도 여전히 관념적으로만 인식될 뿐, 현실은 바뀌지 않은 채 틀에 갇혀 흘러가고 있다. 아직 우리가 존중받기 위해 소리치는 세상을 향한 목소리는 아직 우리가 사는 실제 현실에 온전히 맞닿지 못했다는 생각이 든다. 오랜 시간 동안 단단히 세워진 담은 여전히 높기만 하다. 그러나 단지 어렵다는 이유로 이 담을 무너뜨리는 것을 포기할 수는 없다. 이는 곧 인간으로서 당연히 존중되어야 할 많은 것들을 어렵다는 이유로 포기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찾고자 하는 공정성은 절대적인 정답이 아니니 어딘가에 고정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 사이에서 유연하게 흘러가는 모습일 것이다. 그래서 더 복잡하고, 더 많은 사람의 목소리가 존중 받으며 세상에 나와야 한다. 이는 마치 '공정성'이라는 하나의 호수에 들어찬 물이 모든 사람이 서 있는 곳에 닿을 수 있는 수로를 짜는 과정이라 생각한다. 모두에게 닿을 수 있는 하나의 수로를 만들려면 한 사람 한 사람이 서 있는 곳의 땅과 그 사람이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이해해야 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분명 누군가는 이 공정성을 누릴 수 없게 되기 때문이다. 이처럼 공정성은 그저 단정 짓는 것만으로는 메꿀 수 없으며, 소수가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닌 모든 사람이 함께해야 해결할 수 있는 문제인 것이다.

 

누군가에게 공정성이 닿지 못하면 그것은 인간으로서 누려야 할 당연한 것에 대한 무시와 소외가 되며, 자신에게 주어져야 할 공정성이 닿지 않았다고 강하게 말하는 것을 보며 귀찮다며 문제를 축소하고 외면하는 것은 혐오가 될 것이고, 그렇게 외면당한 사람에겐 또다시 불안과 상처만 남겨질 것이다. 아직 한국사회는 이러한 모습의 사람들이 너무도 많은 것 같다. 많은 외면과 혐오, 그리고 상처들이 사회에 남아있다.

 

 

나는 혐오와 매도 그리고 몰이해와 싸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아가 끊임없이 이해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람은 누구나 이해할 수 있지만, 이해하기 싫어서 이해하지 않을 뿐이다. 그러나 우리 사회가 어떤 잘못의 대가를 치른다면, 그것은 이해하지 않은 일의 대가가 될 것이다. 이해하지 않은 일, 손쉽게 증오한 일, 속 편하게 이해를 포기하고 혐오를 택한 일에 대한 결과는 그리 우습거나 만만하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우리 사회와 삶을 적당한 선에서 흔들어놓는 수준은 아닐 것이다.


- '가부장이 불가능해진 시대의 한국, 청년, 남성' 중

 

 

인용된 내용처럼 우리에겐 '끊임없는 혐오, 매도, 몰이해와의 싸움'과 '끊임없는 이해'가 필요하다. 밀레니얼 세대는 불안 속에서 너무도 예민해져 있다. 하지만 그런 날카로운 시선으로 우리가 비로소 싸워야 할 것이 무엇인지 보고, 결국 모두의 마음에 있는 상처와 억압을 서로 풀어가고 조금 더 이해하는 방향으로 나아간다면 어떨까?

 

나는 이따금 이렇게 '더 나아진 사회'라 할 수 있을 법한 희망에 대해서 생각해보다가도 내게도 가까이에 있는 여러 문제 앞에서 결국 꿈뿐일까 싶어 금방 그만두곤 했었다. 하지만 이번 책을 통해서 불안과 충돌이 여전히 반복되고 있음에도 사회가 계속해서 조금 더 모두를 위한 모습에 나아가야 한다면 지금에 머물 수만은 없다는 것을 다시금 기억하게 되었다.

 

그러면서 '먼저 가져야 할 것은 희망이 아니라 의지가 아닐까,' 라는 생각도 들었다. 조금 더 움직이며 다른 사람들을 좀 더 이해하려는 노력이 있어야 희망이란 단어가 가진 그 의미가 제빛을 발할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지금껏 내가 이해할 수 없는 사회를 궁금해하던 이유도, 여러 사회 문제를 외면하지 않고 매번 분노하고 고민하던 이유도, 내가 사는 이곳이 결국 바뀔 수 있을 거란 희망과 나란히 놓여있는 '의지'를 때문이었을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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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밀레니얼 세대입니다"

 

 

항상 프레스 리뷰에서는 나를 ‘필자’로 언급해왔지만 이번 리뷰는 ‘나’라는 표현으로 조금 더 글의 앞으로 데려와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이렇게 글에 ‘필자’라는 단어 대신 아닌 ‘나’라는 표현으로 나를 드러냈다. 이유는 생각보다 단순했다. 나는 밀레니얼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 단순한 이유를 정하기까지에는 복잡한 마음으로 읽어 내려간 <인스타그램에는 절망이 없다>가 있었다. 도서를 읽으며 처음으로 밀레니얼 세대로서의 나에 대해서 생각하고 저자의 에세이적인 담론을 읽으며 용기를 얻기도 했다. 서로의 삶에 귀 기울이고, 가만히 지켜만 보는 것이 아니라 나도 나의 목소리를 낼 수 있지 않을까, 그래야 하지 않을까, 하는 용기를 말이다. 내가 보아온 세상에 대해 진심을 담아 이야기하는 것이 조금 더 나아가는 방향이 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 같다.

 

항상 리뷰 글에 콘텐츠를 추천 드리고 싶은 분들을 남기기 때문에 이번에도 책을 읽으며 누구에게 추천하면 좋을까 고민했다. 근데 예상과 달리 가장 처음 들었던 생각은 부모님께 추천 드리고 싶다는 것이었다. 어쩌면 딸인 나를, 당신의 자식이 살아가는 세상이 어떤 상황이기에 이렇게 어려워하는지 궁금해 하던 분들이 바로 우리 부모님이시기 때문이다. 그리고 당연히 밀레니얼 독자로서 나와 같은 밀레니얼 세대인 분들께도, 밀레니얼 세대를 이해하고 싶은 모든 분들께 추천 드리고 싶다. 사실 세대, 나이, 성별 막론하고 나누면 나눌수록 좋은 책이라고 생각한다. 한국사회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필요하고 이야기되어야 할 내용들이 차곡차곡 담겨있으며, 사회문제만큼은 우리 모두가 마주한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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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스타그램에는 절망이 없다>의 서문을 읽을 땐 언제부턴가 나와 닮은 시선으로 내가 살아가는 세상에 대해 이야기하는 누군가의 담론을 찾고 있었다는 숨어있는 마음을 찾아낸 기분이었고, 책을 읽으면서는 마음속으로 같이 울고 질문하며 때론 날카로운 시선으로 세상을 보고 다시 나를 바라보며 사색했다. 그리고 책을 덮은 순간 내 머릿속에 오랫동안 남은 단어는 바로 '진실'이었다. "우리는 결국 '진실'을 찾고 있는 것이 아닐까?"라는 질문.

 

 

작가는 이 밀레니얼 담론을 개념이나 분석에 근거한 사회과학서의 형식이 아닌, 내면으로부터 우러나온 에세이의 형식으로 풀어낸다. 이 사회를 살아가는 한 명의 청년으로서, 남성으로서, 또 사회의 구성원이자 개인으로서 온몸으로 부딪치며 경험한 것들, '나'로 시작하는 가장 구체적인 이야기들이 결국 동시대인들에게 가장 진실하게 가 닿을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러한 진실이야말로 우리 사회에서 가장 실체적이며 유의미한 담론을 만들어낼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 보도자료 중

 

 

고백하자면 사실 나는 사회에 대해 글을 쓰는 것을 망설이는 사람이었다. 아직 나의 견해가 부족한 것 같아서, 누군가로부터 비난을 받을까 봐, 무엇보다 나의 부족함으로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거나 잘못된 생각을 전하게 될까 봐 두려웠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항상 나 혼자서라도 내가 살아가는 세상에 대한 내 생각을 언젠가는 풀어봐야겠다는 마음은 늘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인스타그램에는 절망이 없다> 는 처음 만났을 때 꼭 읽고 싶다는 생각이 바로 들었던 도서였다. 동시에 마음 한구석에선 이 도서를 만나 내가 리뷰 글이라는 도화지에서 책의 내용과 그로부터 흘러나온 내 생각을 잘 정리할 수 있을지 고민되었지만, 나에게는 꼭 필요한 시간이 될 거라는 확신을 가지며 책을 붙잡았다. 나에게 사회문제는 더이상 내가 외면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었다. 이미 당장 나를 지키기 위해선 이해해야 할 것이었고, 나의 삶이 존중받아지려면 올바른 방향을 찾아 나서야 하는 것이었다.

 

이번 독서는 나에게 많은 것을 안겨주었다. 내가 나를 이해할 수 있는 지점을 새롭게 얻었고, 벗어날 수 없는 불안함이 어떤 것이었는지에 대해 살필 수 있었고, 세대 차이에서 느껴지는 괴리감과 편견의 모습이 어디서 비롯되는 것인지, 우리 사회가 분노하고 매도하며 결국 찾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할 수 있는 근거와 이유를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정답이나 정리해버리는 담론이 아닌, 삶에서의 경험과 사유 속에서 밀레니얼 세대의 마음을 전하고자 하는 글을 만날 수 있었기에 동시에 나는 나의 삶을 불러오며 이해와 공감 속에서 사색할 수 있었기에 의미 있는 만남이었다.

 

 

밀레니얼 세대로부터 시작된 변화는 이미 우리 삶의 스타일, 우리 사회 전체를 바꾸어놓기 시작했다. 작가는 말한다. 이제는 청년의 목소리로 말해져야 한다. 청년의 시야로, 청년의 통찰로 말해져야 한다.


- 보도자료 중

 

 

문득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소통'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든다. 리뷰 글에서 나의 이야기를 집어넣으며 글을 이어나간 이유도 이것이었다. 나는 '삶'이라는 구체적인 경험과 사유가 담긴 이야기에서 서로 공감하고 얻을 수 있는 진심이란 것이 있다고 믿는다. 저자가 삶을 이야기한 글에 가까이에서 느껴지는 '진실'이 담겨있었듯이 말이다. 나를 말하고 다른 이의 말에 귀를 기울이며 이해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에서 우리가 찾으려는 공정성, 진실이란 것이 있을 거라 믿는다. 밀레니얼 세대들이 지금보다 더 정확한 삶과 구체적인 '나'의 정체성으로 살아가는 때가 오기를 간절히 바라본다.

 

 


 

 

[도서 정보]

 

 

『인스타그램에는 절망이 없다』

-밀레니얼 세대는 세상을 어떻게 이해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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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정지우

 

분야

사회정치 - 한국사회비평

에세이 - 한국에세이

인문 - 인문/교양 일반

 

쪽수

324쪽

 

정가

15,000원

 

발행일

2020년 1월 20일

 

출판사

한겨레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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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예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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