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그 사이 어디쯤 - 이성과 감성 [도서]

글 입력 2020.02.22 2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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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인 오스틴의 소설은 따뜻하다. 따뜻한 햇살 아래 어머니의 무릎을 베고 어머니께서 들려주시는 옛 이야기처럼 따뜻하지만, 그 속엔 날카로운 질문들이 담겨있다. 제인 오스틴의 작품을 두 번째로 다 읽은 뒤 확신할 수 있었던 생각이다. 그녀의 작품은 그 유명한 <오만과 편견>으로 처음 접했었다. 처음으로 고전을 접해 당황스러워하고 낯선 느낌을 받던 내게 따뜻한 환영인사를 내어준 것 같았지만 책을 덮고 나면 멍해진다. 나는 소설 속 인물처럼 오만이나 편견으로 둘러싸여 있지는 않았는가.


제인 오스틴의 문체는 간결하고 명확해서 술술 잘 읽힌다. 마치 한 자 한 자 써 내려갈 때마다 이를 읽을 독자를 배려하는 것처럼. 그래서 따뜻하다고 느껴지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 속에는 은근한 풍자와 유머도 가득하다. 소설 속 인물들의 우스꽝스러운 모습들을 너무나도 아무렇지 않게 묘사하는데 그 무미건조한 묘사에 독자로서는 더 웃음을 흘리게 된다.


이번에 읽은 <이성과 감성>은 제인 오스틴의 처녀작으로 상당한 장편소설에 해당한다. 하지만 너무 두껍다고 겁먹을 필요는 없다. 앞서 말한 것처럼 글이 술술 읽힐뿐더러 단순히 두 자매의 사랑 이야기를 풀어나가다 보니 그리 어려운 이야기는 담겨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럼 은근한 풍자와 유머가 가득한 소설 속으로 들어가 보도록 하자.



 

그 균형,


 


“이렇게 톡톡히 효과를 본 충고를 한 맏딸이 바로 엘리너인데, 그녀는 깊은 이해력과 냉철한 판단력을 겸비하고 있어서 불과 열아홉인데도 어머니의 조언자가 될 자격이 충분했다. ⵈ 그녀는 뛰어난 마음을 가졌다. 성향은 다정했고 감정은 강렬하였다. 그러나 그런 감정을 다스리는 법을 알았다.”


“메리앤의 능력은 여러 모로 엘리너의 능력과 맞먹었다. 그녀는 분별력도 있고 영리했다. 그러나 모든 일에 너무 열심이었다. 그녀의 슬픔, 그녀의 기쁨에는 절도란 것이 있을 수 없었다. 신중하지 않은 것 빼고는 나무랄 데가 없었다.”

 

- P.14

 


사람을 묘사하는 방법으로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이성적인 사람과 감성적인 사람으로 나눌 수도 있을 것이다. 이성과 감성. 우리는 그 두 개의 균형을 상황에 맞추어, 자신의 성향에 맞추어 자유로이 넘나들며 살아간다. 누군가는 이성에 치우쳐져 있을 것이고 누군가는 감성에 치우쳐져 있을 수도 있다.

 

그런 의미에서 소설 <이성과 감성>의 주인공 자매 중 언니인 엘리너는 이성의 표상으로, 동생인 메리앤은 감성의 표상으로 설정한 점은 상당히 흥미롭다. 누구나 가지고 있을 이성과 감성을 두 인물로 나누어서 표현하는데 그 두 개의 균형을 찾아가기 위한 여정으로 두 자매의 로맨스는 3부에 걸쳐 진행된다.


두 자매는 각각 자신들과 정말 비슷한 성향의 남자들을 만나게 된다. 이성으로 뭉쳐진 엘리너 커플의 애정 방식을 메리앤은 인정하지 못하고 감정을 폭발시키는 메리앤 커플을 엘리너는 이해하기 힘들어하는데, 각자가 이성과 감성 부분으로 치우쳐져 있다 보니 두 자매의 로맨스는 어딘가 삐걱거리곤 한다.


엘리너의 완전한 자제력과 냉철한 판단력은 올바른 길로 연애를 이끄는 척도가 될까, 혹은 서로에게 솔직한 표현을 하지 못해 좋지 못한 결말에 이르게 될까. 메리앤은 끝없이 펼쳐져가는 감정 속에서 서로를 위해주는 사랑을 이루게 될까, 혹은 모든 감정을 쏟아내 더 이상 감정이 남아있지 못하게 될까.


소설을 읽는 동안 이성으로 가득한 엘리너도 감정에 한 없이 빠져버리는 메리앤도 현명하다고 보기 어려웠다. 엘리너는 지극히도 이상적인 프레임에 자신을 끼워 맞추고 있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는데 그러다 보니 자신이 힘들 때조차도 예의를 차리기 위해 모든 일들을 완전한 자제력으로 버티어내곤 했다면, 메리앤은 자신의 감정에 너무나도 충실하다 보니 예의를 갖추어야할 때조차 자신만을 생각하고 주위를 신경 쓰지 않아 둘 모두 마냥 좋아 보이진 않았다. 하지만 결국 두 자매는 소설이 마지막을 향해 갈수록 많은 경험을 하며 이성과 감성 사이의 균형을 찾아가는데 이를 보며 나는 적절한 상황과 때에 맞추어 두 가지를 조절해나가고 있는지 되돌아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이성과 감정 사이에 균형을 잡지 못하는 부분들, 재산과 사회적 지위에 결혼이 흔들리는 모습들, 소설 속 인물들의 이기적이면서도 인자한 모습들. 제인 오스틴은 뛰어난 관찰력을 발휘해 자신이 보고 겪은 세상의 부조리함, 사람들의 우스꽝스럽고 모순적인 모습들을 예민하게 포착해 당시에 살아 숨 쉬고 걸어 다니는 현실적인 사람들을 소설에 담아내는데 그게 기막히지 않을 수 없다. 소설을 읽는 동안 이 인간은 대체 뭐지? 왜 이러는 거지? 싶지만 과연 지금 현실에는 그런 사람이 없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소설 속 인물들보다 더 하면 더 했지 덜 하진 않을 테니. 모든 것이 지극히도 현실적이라 조금 씁쓸하기도 했지만 그래서 더 재미있게 다가왔다. 과연 내가 그 상황에 있었다면 나는 어떤 행동을 취했을까, 나는 어떤 인물이었을까.

 


[신유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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