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일상을 충만하게 [문화 전반]

당신이 머무는 공간들
글 입력 2020.02.22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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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매일, 그리고 매 순간 특정한 공간들을 향유한다. 아침에 눈을 떠서 가장 처음 마주하는 나만의 방 한 칸을 시작으로 집과 동네, 도시 등으로 그 영역은 점점 확장되어 간다. 순간마다 마주치는 공간들은 각자의 작은 파편들로 인해 끊임없이 그 의미를 주고받으며 존재한다. 물론 그것들이 너무나 일상적이라 그 의미를 일일이 헤아려볼 수 없더라도 말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공간들에는 그곳이 만들어진 이유와 목적이 존재한다. 그렇게 원래의 의미로부터 당신이 그곳에 머무는 순간이 합쳐지며 새로운 의미가 파생되고, 그 공간은 항상 변화하듯 존재하는 것이다.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그대가 머물고 있는 공간도 그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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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by Paul Hanaoka on Unsplash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우리를 둘러싼 주변의 의미들이 퇴색되는 듯한 느낌이 든다. 하루하루 바쁘게 돌아가는 도시의 풍경들, 사람들의 재빠른 발걸음, 스마트폰을 향해있는 눈동자들이 그 의미를 무력하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집을 떠나 하루의 절반 이상을 머무는 곳들에서, 그곳의 가치를 생각해볼 마음의 여유를 빼앗겼기 때문이 아닐까. 아니, 어쩌면 애초부터 그 공간들이 아주 빈약한 본질에 기반하고 있어서일지도 모르겠다.

 

자신의 일상적 공간에 지루함을 느낀 사람들은 항상 더 새롭고, 좋고, 즐거운 공간들을 찾아 나선다. 예쁜 카페, 맛있는 식당, 미술관, 영화관, 서점 등등. 그곳에 가서 당신은 반드시 사진을 찍어야만 한다. 찰칵. 찰칵. 인스타그램에도 올린다. 아, 해시태그는 필수지 그럼 그럼 그렇고말고. 업로드. 좋아요. 그렇게 그 공간의 의미들은 sns에 전시되고 그렇게 소비됨과 동시에 증발해버린다. 이러한 방식으로 우리가 마주하는 다수의 '핫플레이스'가 소비되고 생성된다. 그 휘발성이 더욱 강해질수록 어쩌면 우리는 궁극적으로  공간의 피상적 외연에만 집중하게 되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그 공간은 결국 텅 빈, 공허한 공간으로 자리매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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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by Toa Heftiba on Unsplash 

 

 

 

공간을 바라보는 태도


 

이렇듯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많은 공간들이 고유한 본질을 상실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공간의 가치를 바라보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더군다나 '집'이라는 가장 개인적인 공간마저도 그 가치가 훼손되고 있으니 말이다. 집이 살기 위한 곳이 아닌, 사기 위한 곳으로 전락해버린 이 시점에서, 집은 우리에게 어떠한 가치를 부여하는 것인가. 오로지 나만의 것으로 남아야 할 자기만의 방에서조차도 그 의미를 잃게 된다면, 우리는 도대체 공간이라는 것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 것인가. 사회에 의해 의도적이고 계획적으로 설계된 '내 집'이라는 이미지가 오히려 우리를 진정한 '집'으로부터 멀어지고 어색하게 만드는 것은 아닐까?

 

아직까지도 많은 사람들은 크고 넓은, 소위 남들이 말하는 '좋은 집'을 갖기를 꿈꾼다. 좋은 아파트, 좋은 동네, 멋있는 인테리어와 가구로 꾸며진 공간을 갖기를 원한다. 만약 당신이 자신의 집에 충분히 만족하고 있는 상태라면 당신은 행복한 사람이다. 하지만 어떠한 이유에서든 당신이 현재 머무는 공간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내가 정말 이 집에서 '살고' 있는 건지에 대해 의문이 든다면, 당신은 어떤 면에서는 반쯤 불완전한 상태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진정으로 자신이 머무는 공간을 사랑하지 못한다면, 그 집에 과연 어떤  질서와 배려의 마음이 깃들 수 있을까. 하물며 가장 최소의 공간인 자신의 방마저 애정 어린 시선으로 향유하지 못한다면, 그 공간의 확장체인 집과 동네, 그가 몸담고 있는 사회에 대해 진실된 애정을 가질 수 있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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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by Alvaro Reyes on Unsplash

 

 

 

가장 솔직한 공간


 

집은 한 사람의 인격을 구성하는 가장 최초의 공간이자 최후의 공간이 된다. 그대의 시작과 끝을 마주하는 공간으로서 집은 '나'라는 사람을 대변하는 가장 솔직한 공간이 될 터이다. 타인의 집을 마주하게 될 때 나는 그 사람을 가장 솔직하게 대면할 수 있게 된다. 전부는 아니더라도 그 사람이 어떠한 태도로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지는 알 수 있기 때문이다. 가끔 자취를 하는 친구들의 원룸에 놀러 가면 더욱이 그 연관성을 체감하는 순간을 마주한다. 주로 두 가지의 경우가 있다. 잠시 머무를 공간이니 집을 가꾸지 않고 방치하는 사람. 반대로 아주 잠깐 머물더라도 그 공간을 진심으로 가꾸고 사랑하는 사람. 이들이 인생을 살아가는 방식은 놀랍게도 자신의 방을 대하는 태도와 거의 일치한다. 아무리 열악한 공간이더라도 그곳을 자신만의 질서로 진지하게 마주하는 사람이라면 그만큼 자신의 삶을 사랑하는 일관성을 보여준다.  반면 원룸에서 지내는 그 시간마저도 결국 나중을 위해 거쳐가는 것으로 여기며 임시의 삶을 사는 사람은 결국 자신의 삶도 그러한 태도로 살아간다. 결국 하나의 방, 집이라는 것은 당신이 사물과 세상을 대하는 관계의 집약적 형태임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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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graph by Flickr user ofhouses.com


 

 

죽음 직전의 집이어야 한다면


 

현대 건축의 거장 르 코르뷔지에(Le Corbusier)는 프랑스 남부 해안가 근처 4평짜리 집에서 그의 마지막 나날들을 보냈다. 탁자와 두 의자, 캐비닛, 작은 세면대와 변기만으로 구성된 아주 작은 집. 자유롭게 배치된듯하면서도 나름대로 조화를 이루고 있는 이 공간을 보면 작지만 따뜻한 사랑을 느끼게 된다. 아주 작은 요소들이 철저하게 계획된 모듈에 의해 만들어진 이 작은 집이 르 코르뷔지에의 건축세계를 가장 잘 반영하고 있는 듯 보인다. 질서 속에 깃든 자유로움, 혹은 자유로움 속에 갖춰진 질서를 마주하다 보면 가장 작은 집이 가장 위대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많은 시간 동안 이 공간이 회자되는 이유는 바로 공간의 건축가이자 생활자였던 르 코르뷔지에의 섬세한 배려와 애정이 깃들어 있기 때문이 아닐까.


 

 

집이란 무엇인가?


 

지금 당신이 머무는 집이 아무리 빌려 사는 집이라도, 그곳이 아주 잠시 거쳐가야만 하는 임시의 공간으로 느껴지더라도, 현재 당신이 그곳에 몸담고 있는 이상 그 공간은 당신에게 말을 걸고 있다. 그리고 당신은 어떠한 방식으로든 자신도 알게 모르게 기꺼이 대답을 해주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당신과 당신의 집은 함께 호흡하며 존재한다. 이처럼 우리는 어떤 상황에서든 자신만의 공간을 필요로 한다. 그 공간이 그대라는 존재를 담아내고, 반영하는 공간이라는 사실을 의식적으로 감각하는 순간 그곳에 대한 애정을 가질 수 있게 된다.


"당신은 그곳을 진정 당신의 집으로 느끼고 있나요?"

 

우리에게는 단순히 편안한 공간을 넘어서 자신과 깊게 대화하고 사색할 수 있는 공간으로서의 집이 필요하다. 집에 있는데도 집에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면, 당신은 집의 본질적 가치에 대해 생각해봐야 한다. 자신의 가장 내밀한 공간을 애정 어린 시선으로 바라볼 때, 그때야 비로소 일상을 보다 풍요롭게 살아갈 수 있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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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by Toa Heftiba on Unsplash

 

 

[김지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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