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지 않은 어른은 없다 '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

상실을 아는 어른들에게 바치는 성장소설
글 입력 2020.02.21 1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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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음악 차트를 보면 유난히 눈에 띄는 제목들의 노래들이 많이 보인다.


장범준의 “흔들리는 꽃들 속에서 네 샴푸향이 느껴진거야”, 악동뮤지션의 ”어떻게 이별까지 사랑하겠어, 널 사랑하는 거지“, 백지영의 “다시는 사랑하지 않고, 이별에 아파하기 싫어” 등. 기존의 노래 제목들과는 다르게 길고 솔직하다. 마치, 아티스트가 청자들에게 쓴 편지 한 줄을 떼어온 것 같기도 하다. 그래서인지 한 단어로 이루어진 제목들과는 달리 부드럽지만 명확한 설명조의 제목들은 사람들의 마음을 단번에 흔들어내는 힘이 있다. 이 책이 주는 인상 또한 비슷했다. “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 이라는 다소 모호하고 긴 제목은 독자들의 이해를 돕는 부드러움을 가진다는 매력이 있다.

 


 

샤프란 포어, 아름답게 세상을 보다


 

해당 도서의 출판사인 민음사의 소개에 따르면 작가 조너선 샤프란 포어는 프린스턴 대학교 철학과 문학을 전공했다. 대학교 2학년 중 2차 세계 대전에서 자신의 할아버지를 학살로부터 구해 주었던 한 여성을 찾기 위해 우크라이나로 여행을 떠난다. 여기서부터’모든 것을 아름답다‘라는 그의 첫 번째 책이 시작된다. 이후 2005년에 발표한 소설 『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은 포어의 두 번째 작품으로, 9.11 사건을 배경으로 아홉 살짜리 소년 오스카의 이야기를 넘치는 에너지와 기발한 상상력, 그리고 다양한 방식의 시각적 효과를 동원해 그렸다.

 


 

9살 오스카의 여정


 

주인공인 오스카는 세상에 적응하기 어려워하는 9살 소년이다. 그 소년을 위해 아버지는 다양한 모험을 내며 소년이 스스로 세상으로 나아가도록 방법을 제시한다. 그러던 중 아버지는 9,11 테러로 죽게 되고 오스카는 아버지가 남긴 열쇠를 단서로 엄마 몰래 또 다시 모험을 시작한다. 단서는 열쇠와 봉투에 적인 black이라는 이름. 그래서 오스카는 말을 못하는 세입자 할아버지와 함께 모든 블랙들을 다 만나러 다닌다. 하지만 결국 그 열쇠는 아버지와 전혀 상관없는 물건이었음이 밝혀진다. 계속 해서 서술자가 바뀌는 복잡한 책의 구성으로 인해 끝까지 전부 읽고 나서야 글의 실마리는 깔끔히 풀린다. 세입자 할아버지는 드레스덴 폭격을 경험한 오스카의 할아버지였으며, 오스카의 엄마는 모든 것을 알고 오스카의 모험을 지지해준다. 또한, 열쇠에 대한 오스카의 집착은 끝까지 울리는 아버지의 전화를 받지 못한 자신의 자책과 상실의 고통 속에서 자라났다.

 

가장 먼저 이 책의 이야기를 풀어가는 가장 큰 사건의 발단은 9.11테러이며 등장인물들은 이로 인해 정신적 충격을 지니고 살아간다는 점에서 ‘상실’이라는 키워드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특히, 열쇠에 대한 집착이 아버지의 마지막을 놓친 자신에 대한 자책이라는 점에서 오스카의 초기 모험 자체는‘테러’에 대한 방어 기제로 발생했다고 해석할 수 있다.


오스카는 “아빠가 죽었다면 누구든 무거운 부츠를 신고 사는 것이 당연하고, 부츠가 무겁지 않은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이야말로 도움이 필요한데 말이다.(278) 라고 말한다. 여기서 작가는‘무거운 부츠’를 테러 이후 오스카가 가지고 있는 마음의 짐, 고통 등으로 상징한다. 책 속 전문가들과 독자들은 오스카는 정신과 상담이 필요한 아이로 평가한다. 오스카는‘무거운 부츠’를 가지고 있는 사실을 부정하지 않는다. 오히려 누구나 가지고 있어야 하는 ‘무거운 부츠’를 왜 부정하는가에 대해 어린아이의 시선으로 담담하게 의문을 던진다. 이를 매개로 작가는 독자들의 일반적인 시선과 편견을 돌아보게 한다. 과연 우리가 오스카를 비정상적인 아이로 평가할 수 있는가? 무게는 다르지만‘무거운 부츠’는 누구나 가지고 있다. 다만, 드러내길 두려워한다. 작가는 이를 인정하게 하면서 점차 독자를 오스카의 편으로 끌어들인다.

 

오스카는 아빠라고 생각해 보관했던 타워에서 떨어지는 남자의 사진들을 재배치하는데 이를 보여주며 책은 끝난다. 작가는 이를‘플립 북’기법(flip book)을 통해 보여준다. 단순히 독자들의 상상에서 그 이미지가 그치지 않게 시각적으로 확실히 명시하는데 이는 독자들이 원래는 ‘하강’하는 남자의 사진을 ‘상향운동’ 의 모습으로 인식하게 하는 것을 의미한다. 앞의 설명들이 오스카 스스로의 극복이라면 black들과 오스카의 조부모는 독자들에게 상실에 대한 좀 더 신랄한 고통을 보여주면서도 오스카의 극복을 이끌어 내는 매개가 된다. 특히나 오스카의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소통의 부재로 인해 심화된 고통을 겪는 것을 보여주면서 오히려 오스카의 고통은 상대적으로 객관적인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만든다.

 

“너에게 지금까지 전하려 했던 모든 이야기의 요점은 바로 이것이란다, 오스카. 그 말은 언제나 해야 해. 사랑한다. 할머니가.“(439) 라는 부분은 오스카에게 표현과 소통의 중요성을 명백하게 보여준다. 이들에게 오스카는 소통과 따함을 전달받고 세상에 대한 두려움을 지워나갈 수 있게 된다.

 

 


종이책이 가진 매력을 극대화하다


 

이 책은 글의 내재적 측면과 외재적 측면에서 모두 독자들의 집중력을 끌어당기는 독특함을 지닌다. 먼저 소년의 관점으로 글이 전개되고 있다는 점에서 아이의 성장을 직접적으로 느끼며 책을 읽어나갈 수 있다는 특징이 있다. 포스트모던한 형식 실험을 적극 도입한 것이 특징이다. 수십 장의 흑백사진, 한 페이지에 한 줄만 싣거나 아예 백지 상태로 비워 놓은 페이지들, 문틈으로 엿듣는 상태를 표현하느라 토막토막 끊어진 문장들, 이미 쓴 글 위에 몇 겹 씩 겹쳐 써서 아예 까맣게 뭉개진 페이지, 그리고 오탈자를 골라 표시한 빨간 흔적과 글씨 연습을 한 총천연색 낙서장까지, 소설의 내용을 시각적으로 뒷받침하는 장치들이 다양하다.작가는 이러한 장치를 통해 의식적으로 어른의 시각으로 글을 읽어 나가려는 독자들을 붙잡아 독자들이 어린아이의 시각으로 글을 따라가고 있음을 넌지시 알려주어 글의 몰입을 돕는다.

   

또한, 작가는 아이들의 관점에서 어른들의 관념 섞인 태도들을 비판하는 다른 성장 소설들과는 다르게 엄마, 할머니, 할아버지를 통해 어른들을 조력자의 개념으로 표현한다. 모험의 발화 자체도 심지어 아빠로 인해 발행되며 세상으로 나가고자 하는 오스카의 신뢰와 발단 또한 아빠로부터 시작된다.


특히, 오스카와 가장 밀접하게 상호작용한 할아버지의 경우에는 말을 하지 않는 캐릭터로 설정했다. 이는 소통의 부재를 극단적으로 표현했다고 볼 수 있지만 조언을 최소화하고 묵묵히 돕는 이상적인 조력자의 역할을 수행하도록 하는 효과를 지니기도 한다. 이 외에도 오스카에게 17번의 포옹을 해주는 black 또한 언어적 조언이 아닌 행동으로 오스카를 이해하고 인정하는 모습을 보여주는데 오스카는 포옹을 당하면서 어색하지만 묘한 안정감을 느낀다.

 


 

안 아파 본 어른은 없다


 

따라서 아이의 성장을 보여주는 흐름의 소설임에도 불구하고 어른들은 아이에게 소외 당하지 않으면서도 묵묵하게 그들만의 서사를 지닌다. 이는 작가가 추구하는 이상적인 어른의 모습을 그려낸다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들은 오스카와 같이 각자의 사정을 가지고 있으며 오스카를 빛내는 존재들이다.


<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이라는 제목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된다. 오스카는 청력에 굉장히 민감한 아이이다. 특히 단절된 침묵 속에 있던 오스카에게는 그 어떤 소리도 엄청나게 시끄러운 소음이다. 하지만 온갖 소리들이 어우러진 세상 속에서는 그 어떤 소리도 견딜 수 있게 된다. 우리의 생각보다 그리고 오스카의 생각보다 우리는 모두와 믿을 수 없게 가깝다. 오스카는 점차 아이들의 소리, 대중교통의 소란함, 나를 제외한 모든 타인이 내는 세상의 소리들은 이제 소음이 아닌 하나의 소리로 받아들일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라 추측해 볼 수 있다.

 


 

괜찮아, 다 그런 거야


 

이 책은 성장 소설이지만 그에 그치는 것은 아니다. 물론 작가는 오스카라는 소년을 페르소나로 이야기를 전달하는 형태를 보인다. 하지만 작가는 주변 모든 인물, 조부모, 엄마, 수많은 black을 통해 사는 것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고민하게 한다. 책에서 보여주듯 고통은 모두가 겪는다. 가족 간의 불화가 될 수도 있고 죽은 가족을 그리워하며 살아가는 그 자체일 수도 있다. 강유정 문학 평론가의 말을 빌리자면 이런 점에서 작가가 말하는 삶이란 “상실이란 인생의 비의가 아닌 본질”임을 시사한다. 결국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그 어떤 비극조차도 기억 속에 묻어 놓았다가 다시 떠오르는 그 언젠가 모른 척 덮어 놓을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장미경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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