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SNS 감성의 대명사로 다시 태어난 앙리 마티스 [시각예술]

마티스의 야수주의, 그 이외의 면모
글 입력 2020.02.16 0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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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가장 사랑받는 미술은 인상파 미술이라고들 한다. 절대 실패해서는 안 되는 전시회를 꾸리고 싶다면 인상파 미술을 가져오라는 이야기도 있을 정도다.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화가로 가장 많이 언급되는 인물 또한 후기인상파를 대표하는 빈센트 반 고흐이다.


그를 비롯한 인상파, 혹은 후기인상파 특유의 회화적인 스트로크와 해사한 색감을 보고 있노라면 그 말들이 과언이 아님을 알 수 있다. 그리고 그들의 작품을 많은 대중들 사이에서 꾸준한 인기를 자랑하는 장르로 분류할 수 있다면, 최근에 급부상하고 있는 장르는 과연 무엇일까? 그 주인공은 바로 앙리 마티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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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앙리 마티스, 마티스 부인의 초상, 1905

 

 

마티스는 드랭과 함께 야수주의 그룹을 이끌었던 프랑스의 화가로, 그는 주관적인 색채와 선명한 원색, 자유로운 형태를 통해 사실적인 재현이 아닌 자율적인 회화성을 추구했다. 이러한 그들의 과격한 실험성은 당시 보수적이었던 관제 살롱, 이른바 봄 살롱에서는 환영받을 수 없었다. 그래서 야수주의 그룹은 이에 대항해 진보적인 성향의 살롱 도톤느(Salon d'Automne: 가을 살롱)를 개최해 자신들의 작품을 선보이기도 했다.

 

이처럼 도전적이었던 마티스의 대표작들은 선명하고 짙은 색채와 두터운 형태감을 자랑한다. 그림이 걸린 공간 전체를 잡아먹을 듯 강력한 존재감을 표출하며 보는 이의 눈길을 단번에 사로잡는다. 그러나 필자가 지금 말하고자 하는 트렌디한 마티스의 작품들은 야수주의의 특성과는 거리가 멀다. 당장 국내 포털 사이트에 마티스의 이름을 검색해 보면 <춤>이나 <마티스 부인의 초상>과 같은 그의 대표작은 한눈에 찾아볼 수 없다. 그보다도 검색 결과 상단을 점령하고 있는 것은 간결한 드로잉 작품으로 제작된 굿즈 상품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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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앙리 마티스, Nadia with smooth hair(Nadia aux cheveux lisses), 1948, 종이에 애쿼틴트

 

 

그 속에서도 가장 익숙한 것은 바로 이 그림이다. 누군가의 인스타그램 피드에서 한 번쯤은 봤을 법한 이 작품 속 주인공은 ‘나디아’라는 여성이다. 과감하지만 디테일은 빠뜨리지 않은 노련한 필치가 돋보이는 작품으로, 최소한의 선들로만 완성된 여성의 두상이 멋스럽다. 이 작품 이외에도 나디아를 모델로 한 작품은 여러 점이 전해지고 있는데, 그중 대부분은 대량 인쇄가 가능한 동판화 기법 중 하나인 애쿼틴트로 제작되었다. 그의 작업을 포스터나 액자, 엽서 등 인쇄물로 간편히 즐길 수 있는 오늘날의 모습과도 맞닿아 있는 것 같아 흥미롭다.

 

그렇다면 오늘날 많은 젊은이들이 지금껏 크게 조명 받은 적 없었던 마티스의 간결한 드로잉 속에서 그들만의 ‘감성’을 찾는 이유는 무엇일까. 간결함, 세련됨, 모던함, 무심함. 수많은 이들의 SNS 속 감성샷을 장식하는 마티스의 그림을 보면 떠오르는 키워드들이다.


그중에서도 ‘모던함’은 다층적인 의미를 포함한다. ‘모던(modern)’이란 19세기 말 유럽 사회에서 모더니즘 운동을 통해 처음으로 등장한 개념인데, 구시대의 권위주의를 타파하고 냉철한 과학과 이성을 신뢰하는 사고방식을 뜻했다. 모던이란 당시의 문예, 예술, 사회 등 수많은 분야에서 거대한 물살을 일으켰던 세련된 감각 그 자체였다.

 

물론 모더니즘의 시대는 간결함과 기능성을 과도하게 끌어올린 나머지 개개의 다양성을 존중하는 포스트모더니즘에 의해 전복됐지만 모던은 여전히 우리 곁에서 유효하다. 구시대의 판도를 뒤집은 경향이 바로 모더니즘이었던 만큼 우리에게도 모던은 아직도 ‘세련됨’의 의미로 사용되기 때문이다. 물론 이론상으로 모던이라는 단어 속 의미는 여전히 기능성, 단순함 등을 향하고 있겠지만, 많은 이들이 이 단어를 정제된 세련미를 가리키는 말로 광범위하게 사용한다.

 

그렇다면 지금의 우리에게 모던한 것으로 느껴지는 최신의 경향은 무엇일까? 아마도 ‘편안함’일 것이다. 밀레니얼 세대의 트렌드는 거창하거나 화려한 것이 아니다. 능률적인 교육을 받고 미디어 매체를 가까이하며 자라난 이들 세대는 합리적이고 편리한 것을 선호한다. 그들은 질리지 않으면서도 지루하지 않고, 그 자체로 매력적이지만 어디에나 쉽게 어우러지는 것을 원한다. 이때 과도한 정성이 들어간 듯한 인상은 금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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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ether Handwritten Font

 

 

재미있는 것은 이를 폰트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는 점이다. 지금은 공들여 한 자 한 자 눌러 쓴 글씨보다는 대충 흘려 쓴 글씨가 더 멋스러운 시대다. 연남동이나 가로수길에 흔히 자리하는 인기 많은 카페 몇 군데만 들어가 보아도 알 수 있다. 메뉴판 속 글씨들이 백이면 백 펜으로 흘려 쓴 영문으로 이루어진 것을 보면 말이다. 그리고 몇 자의 글자 속에서도 느껴지는 편안한 감성은 마티스의 드로잉과 일맥상통한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작위적이지 않고 힘을 뺀 편안한 감성에 빠져드는 것은, 하고 싶은 것보다 해야 하는 것이 더 많은 의무적인 일상 밖에서 여유를 찾고자 하는 마음 때문이 아닐까. 매일을 함께하며 가만히 바라보아야 할 그림이라면 화면을 가득 채운 화려한 물감보다는 흰 종이를 바탕으로 그어진 간결하고 부드러운 선이 숨통을 터 줄 테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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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티스는 알까. 자신이 그린 나디아의 초상이 새로운 흐름 속에서 다시 태어나 수많은 이들의 취향을 사로잡고 있다는 것을. 혹은 반대로, 지금껏 대표작의 그림자에 가려져 있었던 크고 작은 드로잉들에 매력을 느끼는 우리 스스로에게 질문해 보자. 한 인물일지라도 새로운 깊이감과 시도 속에서 언제든지 새로움을 발산할 수 있다.


그런 시선에서 보면 마티스의 드로잉은 우리에게 편안함뿐만 아니라 다른 이야기까지도 전하고 있다. 첫 번째, 하나의 모습으로만 사랑받을 필요는 없으며, 두 번째, 새로운 매력은 언제든 다시 발견될 수 있다는 것을 말이다.

 


[유수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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