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나도 모르는 내 마음의 표정 - 책 "감정이 지배하는 사회"

글 입력 2020.02.12 0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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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감정 덩어리다. 내 몸에는 피 대신 짭짤한 눈물 혹은 박장대소 하다가 흘린 침방울 같은 것들이 흐를 거다.

 

어렸을 때 나는 감히 스스로를 논리적인 인간이라고 규정지으며, 고민이 많아 늘 심사숙고하여 결정하는 사람인 줄 알았다. 고민이 많긴 하지. 하지만 그 고민은 내 선택에 크게 영향을 주지 못했다. 암만 오래 머리를 쥐어싸고 앉아있어 봤자 결론은 늘 그 순간 끌리는 대로 선택했으니까. 그래서 내 선택에는 늘 힘이 없었다. 나 스스로도 그 점을 인지하고 있었다. 무언가를 선택하고 나서도 다른 사람들의 의견에 가느다란 갈대처럼 흔들렸다. 섣불리 내린 결론에 땅을 치며 후회하다가도 누가 좋은 선택이었다 말하면 금새 기분이 풀어져 맞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소설을 좋아했다. 주인공의 일대기를 옆에서 종종거리며 따라다니면서 지켜보는게 재밌었다. 난 무조건 화자의 입장에서 책을 읽었다. 난 책을 읽을 때 내 기준이나 내 논리를 대지 않았다. 백퍼센트 주인공에게 이입해서 공감하고 응원하고 있다 보면 이야기가 끝났다. 그래서 독후감을 쓰는게 너무 힘들었다. 난 글 쓰는걸 참 좋아했는데, 내가 쓴 독후감은 내가 봐도 재미가 없었다. 그냥 주인공의 생각과 어록을 읊는 것 같았다. 추상적인 감상으로 가득했다. 같은 맥락에서 논술도 참 힘들었다. 감정을 배제한 글쓰기라니, 난 그런거 못하겠다 생각했다. 우습게도 논술로 대학을 갔었지만. 더 웃긴건 지금도 어떻게든 글을 쓰고 있다는 거다.

 

여하간 그렇게 매 순간 오르락 내리락 거리는 감정에 휘말리던 작은 감정 덩어리는 생각했다. 스무살이 지나고 나면 나는 어른이 되어서, 아주 똑똑하고 논리적이며 자기 절제력이 뛰어난 사람이 되어 있을 거라고. 콩 심은데 콩이 나고 팥 심은데 팥이 난다는 말을 알고 있었음에도 난 그렇게 믿었다. 그리고 맞이한 스무살. 시간이 지나 맞이한 스물 일곱살. 난 그냥 작은 감정 덩어리가 무럭무럭 자란 커다란 감정 덩어리가 됐다. 꽤 오랜 시간 동안 내게 덕지덕지 붙어있는 감정을 덜어내려 애쓰고 애썼지만 맘대로 되는 일 없더라. 이젠 난 감정에 의해 움직이는 사람이라고 인정하고 산다.

 

 


 

 

아주아주 긴 서두를 지나 이제 짧은 본론. 이런 거대한 감정 덩어리가 책 <감정이 지배하는 사회>를 읽었다. 책의 논조는 초장부터 꽤 분명했다. 인간은 아무리 논리적인 사고를 한다 해도 무조건 그 이전에 정립되어 있던 감정의 영향을 받을 수 없고, 그러니 이 사회에서 합리적인 개인으로 살아가려면 감정이 부리는 트릭에 속아넘어가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비유를 하자면 내가 이 책을 읽는다는 것은 마치 노예가 신분제에서 벗어나기 위한 비법서를 읽는 느낌이랄까. 문제가 있다면 그 노예는 이미 본인의 정체성을 노예로 인정하고 행복한 노예 라이프를 보내고 있다는 점일 거다. 어쩄든 27년차의 행복한 감정의 노예는 그렇게, 오랜만에 감정의 지배에서 벗어나보자는 책을 읽었다. 결론부터 말하면 굉장히 유익했다. 내 생각을 차분히 정리하고 좀 더 안전한 선택지를 찾는 방법을 배웠다.

 

저자인 세바스티안 헤르만은 심리학을 전공하고 <완고한 상사 설득시키기>, <질병의 환상> 등 다수의 도서를 집필했다. 2016년에는 독일 심리 학회에서 과학 출판 부문 상을 수상하기도 했다고. 여느 자기계발서처럼 뻔한 이야기를 장황하게 늘어놓는 게 아닐까 싶었지만 예상과 달리 심리학에 기반한 전문적인 내용을 다루고 있었다. 하지만 이해하기는 매우 쉽다. 감정은 판단을 지배한다는 설명에서 출발해 실생활과 사회 속에서 논쟁을 불러일으켜온 이슈를 '왜' 인지 들여다본다.


우리가 늘 익숙한 것을 선택하는 건 왜인지, 사회상이 나아질 때마다 사람들은 왜 다시 불평을 시작하는지, 왜 나쁜 소식이 대중에게 주목받는지. 카페에서 무심코 늘 같은 메뉴를 주문하는 행동이나 내가 지금까지 지지해온 정당에 투표하는 행위는 아주 다른 스케일을 가졌지만 알고 보면 기반은 같다. 책을 읽다 보면 무심코 스쳐지나갔던 내 행동과 사고의 이면을 깨닫게 된다. 내 딴에는 합리적인 판단에 의해 내린 결론이었더래도 그 이면에는 이미 나의 내면을 차지하고 있던 '감정'이 결정권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책에서는 이해를 위한 다양한 사례를 제시한다. 그중 하나를 들자면, 우리는 생각보다 사람의 첫인상에 크게 흔들린다는 것이다. 한 실험에서 아이들에게 어떠한 정치인들의 얼굴을 보여주고 가장 신뢰가 가는, 뽑고 싶은 인물을 선택하라고 말했다. 그리고 투표권을 가진 어른들에게는 동일한 리스트를 토대로 사진과 기타 정보를 제공하고 실제 투표를 진행했다. 투표 결과 놀랍게도 아이들이 선택한 정치인과 어른들이 선택한 정치인이 동일했다. 아이들이 사회와 정치에 대한 심도 깊은 이해를 할 리가 없다. 아이들의 선택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요소는 아마 시각적인 것, 외모였을 것이다. 어른들이라고 해도 소위 '스마트하고 신뢰 가는' 외모에 휘둘릴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생활 속에서 공감 갈 만한 주제를 다양한 사례를 바탕으로 풀어나가며 우리 사고와 행동의 이유를 짚어주는 책. 논리라는 이름으로 포장했지만 사실은 감정이었던, 그리고 그 감정의 표정이 무엇인지 스스로도 알지 못했던 나날들에 조금쯤 속시원한 해결책을 전해준다. 믿고 있는 모든 것을 의심하라고 당차게 말하는 책처럼 생각을 곱씹어보면 유익하고 또 재밌다. 수많은 나의 선택과 결정에서 감정을 온전히 덜어내어 놓고 민둥한 속내를 한번쯤 들여다 보는 경험은 그 자채로 새롭고 흥미로웠다. 아무리 감정 덩어리래도 때때로 합리적인 개인이 되어보고 싶으니까 한발짝 떨어져 사고하는 법을 조금씩 익히게 될듯!

 

 

[신은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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