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이 시국에 공부하는 오타쿠론 Part 2 [문화전반]

오타쿠의 대한 오해와 오타쿠계 문화의 현실
글 입력 2020.02.14 1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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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의 내용은 아즈마 히로키의 책 <동물화하는 포스트 모던>을 기반으로 함을 밝힙니다.


 

 

아즈마 히로키의 눈으로 본 오타쿠



이 시국에 공부하는 오타쿠론 Part 1에서는 ‘이 시국’에서도 오타쿠론을 살피는 의미에 대해 이야기했다. 다소 기형적인 존재인 오타쿠를 일본의 시대적 배경과 맥락을 통해 이해하는 것은 일본과 일본 문화, 나아가 일본과 관계하고 있는 우리나라와 전 세계의 젊은 층을 이해하는 시도가 될 수 있다.


오타쿠는 누구이고, 어떻게 생겨나 어떤 특징을 가지고 있는지도 간단하게 언급했다. 오타쿠는 일본이 전쟁의 상흔을 극복하고, 미국으로부터의 문화적 침식과, 포스트모던이라는 시대적 흐름에 대처하는 방식 중 하나로 태어났다.


오타쿠들이 취미공동체에 과도하게 집착하거나 허구를 중시하는 태도를 보이는 것은 그들이 현실과 허구를 구분하지 못하는 바보여서가 아니다. 기존의 전통적인 주체성이나 가치규범이 무너진 상태에서 오히려 인간관계와 유효한 전략으로써 오타구 문화에 빠져들기를 택하는 것이다. 사회적 현실을 택하지 않는게 오히려 사회적으로 현실적이라고까지 말할 수 있는 사회가 됐기 때문이다.


아즈마 히로키의 논의를 정리하면서 내가 놓치고 있거나 잘못 이해한 부분도 있을 수 있다. 더 자세하고 정확한 부분은 책 <동물화하는 포스트모던>을 참고하기 바란다. 오늘은 이런 오타쿠계 문화에서 어떤 표현양식이나 소비구조가 드러나는지 다뤄볼 생각이다.




이야기 소비론



아즈마 히로키는 오타쿠계 작품의 특징으로 ’데이터베이스적 소비‘를 언급한다. 이 개념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야기 소비‘와 ’커다락 이야기의 조락’에 대해 이해해야 한다. 이야기 소비부터 시작해보자.


이야기 소비론에 따르면 우리가 애니메이션이나 만화 완구 등을 소비할 때, 실제로 소비하는 것은 한 편의 애니메이션이나 물건이 아니라 작품이나 물건 그 배후에 감춰진 시스템(커다란 이야기)이다. 상품은 상품 뒤에 ‘커다란 이야기‘ 혹은 질서가 존재함으로써 비로소 가치를 가지고 소비된다. 표면적으로는 상품(혹은 작품)을 소비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 사람들이 소비하는 것은 커다란 이야기(설정이나 세계관)이다.


예컨대, 건담 피규어가 소비되는 것은 그 피규어 자체가 의미를 가진다기보다는 ‘건담’시리즈에 등장하는 로봇의 형상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는 것이다. 건담의 설정이나 세계관(=커다란 이야기) 자체를 팔 수 없으므로 그 단면인 물건이나 애니메이션이 소비된게 된다.


이처럼 현실적으로 실제 상품은 ‘커다란 이야기’이지만 사람들은 이 같은 소비행동을 반복하면서 자신들이 커다란 이야기의 전체상에 가까워진다고 믿는다. 그래서 그 단편인 ‘작은 이야기’가 실제로는 판매되는 이중전략이 유효하다는 것이다. 이 2층 구조가 이야기 소비론의 기본 틀이다.


이야기 중에서도 ‘작은 이야기’란 특정한 작품 속에 있는 특정한 이야기(에피소드 등)을 의미하고, ‘커다란 이야기‘ 이야기를 지탱하지만 표면에 드러나지 않는 설정이나 세계관을 의미한다.

 

이때, 기존의 커다란 이야기(설정이나 세계관)와 정합성을 가지면서도 존재하지 않던 2차 창작이 등장할 경우 우리는 그것을 시뮬라크르라고 본다. 다시 말해 이야기소비에서 소비자가 구매하는 것은 커다란 이야기인데 현실에서는 그 단편인 ’작은 이야기’를 구매하며, 그러므로 커다란 이야기의 단편을 보여줄 수 있는 2차 창작은 시뮬라크르가 된다는 것이다. 오타쿠계 문화에서 2차 창작이 활발하게 나타나는 이유이다.




커다란 이야기의 조락과 데이터베이스 소비



커다란 이야기는 시스템들의 통칭이다. 근대 국가에서 성원들을 하나로 묶어내 안정적인 사회를 만들기 위해 오랜 시간에 걸쳐 만들어진 것으로, 인간의 이성이나 이념, 혁명 이데올로기나 생산의 우위로 표출되어 왔다. 그런데 근대 이후에는 이런 가치들이 힘을 잃기 시작했다.


종교적 가치관은 이미 힘을 잃은지 오래고, 근대에 추종되어 왔던 ‘인간의 이성‘은 인간이 언제나 합리성을 전제하지 않는 존재라는 것으로 반박된다. 사회주의가 몰락하고 자본주의도 부의 양극화 등 다양한 문제를 드러내고 있다. 절대적으로 옳거나, 적어도 모두가 지향할만 하다고 여겼던 공통의 가치들이 몰락했다.


이제 사람들에게는 절대적으로 따라야할 기준이나 가치가 사라졌다. 다시 말해, ’커다란 이야기가 조락’했다. 이런 사회에서 사람들은 어떤 양상을 보일까? 일부는 다시 초월적인 존재에 의지하고 일부는 이성에 의존하고 일부는 돈이라는 교환가치에 맹목적으로 매달린다. 그리고 그들 중 일부는 커다락 이야기가 조락해버린 공백을 메우기 위해 “쓰레기같은 서브컬처를 재료로 신경증적으로 ‘자아의 껍데기’를 만들어낸다.”는 것이다.


앞선 논의를 정리해보면, 그들은 신이나 아버지나 국가의 권위가 없더라도 스스로 귀속해야 할 집단을 찾아야 하기 때문에 오타쿠가 되어간다. 허구와 현실을 구분하지 못해서가 아니라 취미공동체에 갇히는 것이 사회적 현실이 부여하는 가치규범보다 인간관계에 유리하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사람들이 다양한 서브컬쳐를 탐닉하게 되는 현상의 배경에는 ‘커다란 이야기의 조락’이 있으며 그 공백을 메꾸기 위해 보다 효율적인 가치규범을 찾는 과정에서 특정 취미 공동체에 스스로 갇히게 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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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찬가지로 포스트모던 시대에는 우리가 심층이라고 불렀던 트리 형태의 ‘커다란 이야기’(=설정이나 세계관)가 소멸한다. 이제 그 심층에는 하나의 설정이나 세계관이 있는 것이 아니라 읽어내기에 따라 만들어지는 ‘정보의 집합체‘가 있다.


이제 이 구조에서는 “시뮬라크르가 깃드는 표층과 설정이라는 데이터베이스가 깃드는 심층”이 명확히 구분된다. 즉 원작도 사람들이 향유하는 데이터베이스에 정리되어 있는 데이터의 조합으로 만들어진 하나의 설정에 불과하며, 그 데이터베이스 아래에서 얼마든지 2차 창작이 만들어지거나 향유될 수 있으므로 사실상 시뮬라크르와 원작의 경계는 불분명해져가는 것이다. 작품은 더 이상 개별적으로 평가되지 않고, 그 뒤에 있는 데이터베이스에 따라 측정된다.


책에서는 <건담>과 <에반게리온>의 예시를 통해 이를 설명한다. <건담>의 향유자들이 건담의 세계 자체-건담 유니버스(큰 이야기)를 읽어내고 향유하려는 것과 반대로 <에반게리온>에서는 그 세계관보다는 캐릭터 위주로 향유된다. 예컨대 다소 미스터리적이거나 불친절한 세계관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고 아야나미 레이의 2차 창작을 만들어 향유하는 것에 더 큰 관심이 있다는 뜻이다.


아즈마 히로키는 원작자가 2차 창작에 영향을 받거나 개입하는 사례를 통해 <애벤게리온> 자체가 특권적인 오리지널이 아니라 오히려 2차창작과 함께 놓이는 시뮬라크르로서 제시되어 있었다는 사실을 지적한다. 그는 이런 데이터베이스적인 심층을 ’커다란 비이야기‘라고 부르며, 데이터베이스를 통해 소비하는 오타쿠에 대해 주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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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터베이스의 대표적인 부분 중 하나는 모에에 관한 것이다. 그 중에서도 ‘보컬로이드‘에 대해 설명해보려고 한다. 우리가 흔히 ’미쿠쨩’으로 알고있는 캐릭터가 바로 보컬로이드의 일종이다. 한국에서도 큰 인기를 얻었던 보컬로이드는 사실 기괴한 형태를 띄고 있다.


보컬로이드는 기존에 우리가 이야기를 소비하던것과는 다르게 목소리를 마음대로 설정할 수 있는 음악 엔진으로 등장한다. 아주 간단한 최소한의 설정이나 일러스트 하나만을 프로그램과 함께 제시하는 이 독특한 서비스에 사람들은 열광했다.

 

앞에서 논의한 ‘데이터베이스적 소비‘를 증명하기라도 하듯이 애초에 커다란 이야기 자체가 존재하지 않고, 기본적인 설정조차 알아서 정립해야는 이 프로그램은 자신이 원하는 모에요소를 마음껏 집어넣을 수 있는 재미있는 장난감이었던 셈이다. 보컬로이드는 이제 어떤 사람들에게는 커다란 이야기의 존재가 무의미하고 데이터베이스 자체를 소비한다는 ’데이터베이스적 소비‘를 증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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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규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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