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카멜레온 같은 화가, 알렉산더 칼더 - 알렉산더 칼더展 [전시]

당대 예술가들의 작품에 영감을 받고 자신만의 작품 세계를 구현한 화가, 알렉산더 칼더를 알아보다.
글 입력 2020.02.09 0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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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산더 칼더展

Calder on Pap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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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 알렉산더 칼더展이 진행 중인 K현대미술관에 다녀왔다. 국내에서 열린 알렉산더 칼더 관련 전시 중 최대 규모 회고전답게 알렉산더 칼더展 《칼더 온 페이퍼》 관람 공간은 2개의 층으로 전시되어 있었다. 직원의 안내에 따라 나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 3층을 관람하고 2층으로 내려가서 나머지 작품을 보는 감상하기로 했다.

 
우선, 3층에서는 ‘알렉산더 칼더 일대기표’, ‘움직임을 포착하는 단선 드로잉’, ‘서커스 : 예술계의 총아 칼더의 등장, 코스튬 디자인, 몬드리안의 작업실, 피에트 몬드리안과의 조우 그리고 칼더와 유기성이라는 주제로 구성되어 있다. 또한, 2층에서는 칼더의 과슈화 : 종이 위에 우주를 담다, 뒤샹과 초현실주의, 칼더의 작업실 그리고 철사의 왕, 칼더로 구성되어 있다.


칼더의 생애를 담은 일대기를 통해 그에 대해 알아보고 시간의 흐름대로 구성된 칼더의 일생에 맞추어 변화되는 작품을 통해 그의 작품 세계를 볼 수 있다. 전시는 칼더가 1920년대 초기 작품부터 작고하기 전까지 150여 점의 작품을 선보였다. 칼더의 회화 작품을 통해 그의 대표작인 모빌이 탄생되기 까지의 과정이 어떠했는지를 볼 수 있었다.



 

알렉산더 칼더, 그를 알고 싶다


 

알렉산더 칼더(1898~1976)는 1898년 미국 펜실베이니아 주 로턴의 예술가 집안에서 태어났다. 어릴 적부터 기계에 대한 관심이 많았던 그는 스스로 도구나 장난감을 만드는 취미를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1915년 그는 스티븐스 공과대학에 입학했고 1919년에 졸업하여 제도공, 엔지니어, 보험회사 연구원 등 다양한 직종에 종사했다.

 

대학에서는 기계공학을 전공했지만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이름 있는 조각가였고, 어머니 또한 화가였기 때문에 이러한 집안 분위기 속에서 칼더도 화가의 꿈을 키우게 되었다. 1923년 뉴욕 예술 학생 리그에 입학에 내셔널 폴리스 지 삽화가로 취직하여 화가의 일을 시작하게 된다. 1926년 이후 약 10년 동안 주로 파리에서 지내며 피에트 몬드리안, 호안 미로, 장 아르프, 마르셀 뒤샹 등과 교우관계를 이루면서 그들의 영향을 받은 작품들을 탄생시켰다. 이 때 그린 회화 작품은 알렉산더 칼더展에서 볼 수 있다.

1931년에 그는 대학에서 배웠던 기술을 적용하여 처음으로 움직이는 조각을 만들었고 마르셀 뒤샹은 조각의 이름을 ‘모빌’이라고 붙여주었다. 또한, 장 아르프는 움직이지 않는 조각을 ‘모빌’과 대비시켜 ‘스태빌’이라고 지칭하기도 했다. 1950년 그는 뉴욕 타임즈에서 '지난 50년 간 가장 뛰어난 삽화가 TOP10'로 꼽히며 화가로서의 명성을 이어갔다.

1953년에는 프랑스 액상프로방스에서 1년간 거주하며 과슈화에 그렸다. 그는 생전에 회화 작품뿐만 아니라 조각물 등 여러 나라에서 수많은 전시회를 열었으며, 자신의 자서전을 출간하기도 했다. 그는 세상을 떠나기 직전까지 뉴욕에서 자신의 회고전을 개최하며 화가로서의 활동을 이어왔다. 전시회가 마무리 된 몇 주 후 1976년 78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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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커스와 칼더가 만나다




“나는 공간 관계에 매우 관심이 많았고, 서커스의 공간을 사랑한다.”

- 알렉산더 칼더

 

칼더는 삽화가로 일하면서 1925년 『동물 스케치』를 출간하고 링글링 브로스 앤 바넘 앤 베일리 서커스단을 취재하게 된다. 이 시기는 칼더가 처음으로 서커스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1926년 그의 인생에 서커스가 등장하게 된다. 그는 뉴욕에서 파리로 이주하면서 본격적으로 <칼더의 서커스 Cirque Calder>라는 미니어쳐 서커스 공연 작업을 시작한다. <칼더의 서커스>는 철사, 가죽, 천 등 다양한 재료로 만들어졌고, 서커스 공연 때는 칼더가 직접 움직이며 공연하였다고 한다.


전시관 내에는 <칼더의 서커스> 영상과 그 시기에 만들어진 서커스 공연 포스터가 전시되어있다. 영상을 보다보면 자그마한 철사 인형이나 천으로 싼 인형들이 움직이거나 줄에 연결되어 다양하게 움직인다. 요즘 시대에는 로봇이 스스로 움직일 수 있는 시대이니 크게 감흥이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칼더가 살았던 시대에서 바라보니 왜 공연 초기부터 당시 파리 예술계 내에서 화제가 되었는지, 다양한 예술계의 인사들이 찾았던 이유는 무엇인지 그리고 한 공연에 백 여 명이 넘는 관람객이 몰렸는지에 대한 이유를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는 일생동안 서커스 공연을 꾸준히 이어갔다고 한다. 자신의 장점인 기계공학을 서커스 부품에 접목해 ‘움직임’을 표현하고 자신만의 예술 세계를 만들어간 점에서 ‘서커스 : 예술계의 총아, 칼더의 등장’ 공간은 인상적으로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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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드리안 스튜디오


 

칼더가 몬드리안 작업실을 방문한 후, 그의 작품 세계는 큰 변화를 맞이한다. 그는 몬드리안의 작업실과 그의 작품을 보고 충격 아닌 충격을 받았고, 기하학적인 형태를 사용하는 추상미술의 세계로 빠지게 된 것이다.

 

우리는 한 번 쯤 몬드리안 화가라고 하면 그의 유명한 작품 <빨강, 파랑, 노랑의 구성, 1930>을 떠올릴 것이다. 단순한 색면과 검은색 선만으로 표현하였는데 사진이 대중화되던 시대에 사진이 보여줄 수 없는 회화만이 가진 것들을 보여주기 위해서 그렸다고 한다. 몬드리안은 이러한 자신만의 작품 세계를 가지고 있었고 자신의 작업실에도 직사각형의 색깔 종이를 배치한 것으로 보인다.


칼더는 이러한 몬드리안의 작업실을 통해 본 것들과 몬드리안이 예술적인 실험을 위해 계속하여 배치한 직사각형의 색깔 종이들을 보고 큰 감명을 받는다. 그 후, 집으로 돌아와 칼더는 자신의 그림에 기하학적인 도형을 그리고 그 안에 빨강, 파랑, 노랑 등 강렬한 원색을 사용했으며, 테두리와 배경을 검정색과 흰색을 사용하여 자신만의 추상미술을 구현해냈다.


그의 작품을 보다보면 그 당시 칼더의 감정을 짐작할 수 있을 것 같다. 실제로 칼더의 작품을 보면 몬드리안을 통해 받은 충격이 전해질 정도로 여러 기하학적인 도형과 단순한 색채가 등장하는 그의 작품들이 눈에 띄기 때문이다. 전시관 내에는 몬드리안이 배치한 2차원의 직사각형과 3차원의 다양한 사각형으로 구현된 전시 공간이 있다. 이 구간을 지나며 칼더가 느꼈던 감정을 직접 몸으로 느껴보자.

 


“몬드리안의 작업실을 처음 봤을 때, 한 방 얻어맞은 듯한 기분이 들었다. 넓고 아름다운 작업실은 그 자체로도 이색적이었다. 하얀 벽에는 검은 선으로 나뉜 칸막이가 그려져 있었고, 원색의 사각형도 몇 개인가 그려져 있었다. 그 위로는 빛들이 서로 교차하며 들어왔다. 그 때 나는 생각했다 - 이것들이 전부 움직일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1930년 10월
몬드리안 작업실을 방문한 이후의 칼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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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더와 유기성 : 초현실주의와 호안 미로


 

알렉산더 칼더는 비슷한 시기에 자신의 작품 세계에 영향을 미칠 또 다른 사건을 맞이하게 된다. 바로 1930년 파리로 이주하고 난 후 파리에서 만난 예술가들 : 호안 미로, 페르낭 레제, 마르셀 뒤샹 등과 교류하며 예술적 영감을 얻게 된 것이다. 칼더와 가깝게 교류하던 예술가는 호안 미로(1893~1983)과 마르셀 뒤샹(1887~1968)이었다고 한다. 뒤샹은 전시 기획자이기도 해서 칼더와 함께 전시를 개최하기도 했는데 칼더가 만든 움직이는 조각에 우리에게 익숙한 ‘모빌’이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 뒤샹의 영향으로 칼더는 그림에 의도적인 우연성을 부여하고, 레디메이드 오브제를 사용하였다고 한다.


한편, 호안 미로는 1928년 칼더가 개최한 <칼더의 서커스> 공연에 참석했던 예술가 중 한 명이었다. 공연 이후에 둘은 지속적으로 교류하며 친분을 이어나갔다고 한다. 칼더는 호안 미로를 통해 초현실주의 핵심 요소를 받아들이게 되는데 초현실주의가 특히 무의식과 꿈의 세계에 집중하고 있다는 점은 그의 작품 속에서도 찾아 볼 수 있다.

호안 미로의 초현실주의 작품에 대해서 설명하자면 그는 작품 속에 무의식을 자유롭게 풀어 놓고자 했다고 한다. 해, 달, 동물 등 자연속의 물체를 가져다 특유의 생물과 같은 기호로 표현하였다고 한다. 그는 초현실주의 작품을 그려가면서 시간이 갈수록 단순화하여 유기적인 미생물과 같은 그림의 형태를 띄게 되었는데 칼더는 미로가 구현한 ‘유기성’에 관심을 가졌고 자신의 회화 작품과 모빌에 적용하였다고 한다.

전시회 한 편에는 초현실주의를 상징하는 공간이 마련되어 있다. 천장에 줄로 매달려있는 베게들과 텔레비전 속 영상들은 인간의 무의식을 설명해주는 것 같다. 칼더가 초현실주의 미술을 통해 느꼈던 감정을 비디오 아트로 느껴보는 것도 이색적이고 새로운 경험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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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유행하고 있는 신종코로나바이러스 때문인지 내가 관람했던 오전 시간대에는 관람객을 찾아보기가 힘들었다. (미술관도 그 여파를 받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조용하고 여유 있는 관람을 원한다면 오히려 만족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전시관 내에는 사진 촬영이 제한된 구역이 있다. 전시를 관람하기 전 안내원이 설명하는 주의 사항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오디오 가이드가 마련되어 있으며, 유튜브로 들을 수도 있다고 하니 참고하기를 바란다. 도슨트는 주말 오후 3시에 마련되어 있으며, 상황에 따라 변동될 수도 있으니 미리 알아보고 가는 것이 좋겠다.

 

K현대미술관에서 선보이는 이번 전시회는 그동안 국내에서 볼 수 없었던 칼더의 회화 작품을 선보인다. 칼더의 대표작은 ‘모빌’이 나오기 전 기반이 되는 작품들에 대해서 궁금하다면 반드시 이 전시회를 관람하기를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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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윤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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