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디자이너에게 아이디어를, 디자인 매거진 CA #248호 [도서]

디자인 매거진 CA #248호 [아이디어-패키지-잡] 리뷰
글 입력 2020.02.01 0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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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처음 받아보는 디자인 매거진 CA #248호는 평소보다 더 두꺼워진 듯했다. 그만큼 열심히 준비했다는 생각이 들어 더욱 기대됐다. 무엇보다 궁금하고 기대되게 만들었던 것은 이번 호의 주제가 [아이디어.패키지.잡]이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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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디어에 대한 생각을 하다 보니 과거로 거슬러 올라간다. 입시도 하지 않았는데, 스무 살에 무작정 하던 걸 멈추고 갑자기 미술을 해야겠다고 마음먹은 나에게 미대 입시란 정말 무(無)그 자체였다. 그렇지만 미술은 하고 싶고, 대학은 가야 되고.

 

그래서 나는 열심히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는데, 아이디어만 좋으면 실기를 하지 않아도 된다는 정보를 발견하고는 그때부터 나 나름대로 아이디어 훈련을 시작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아주 달걀로 바위를 친 셈이다. 하지만 오히려 그런 무모함이 의외의 길을 만들어주는 건지, 아니면 내 나름의 아이디어가 좋았던 건진 모르겠지만 운이 좋게 대학교에 합격했고 그때부터 디자이너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하지만 오히려 미대에 오고 나니 초심을 잃은 것인지 아이디어보다는 비주얼적인 것 자체에 집중하고, 아이디어와 타협하는 나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과제를 하는 미대생들이라면 으레 공감할 법한데, 과제 제출일은 다가오고 아이디어는 계속 안 나오는 극단적인 상황에 맞닥뜨리면 결국 그냥 그런 아이디어와 타협하게 된다.


그렇지만 시각적인 것을 다루는 우리는 적당히 있어 보이게 만드는 법도 아니까, 비주얼이라도 그럴싸하면 최악의 점수는 모면하게 된다. 하지만 마지막 기말발표쯤 돼서 다른 이들의 작품 설명을 듣고 있으면 속으로 모두가 느끼고 있다. 아 저 사람은 아이디어는 별론데 비주얼을 잘 뽑았고, 어떤 사람은 아이디어는 좋은데 비주얼이 약하다던가. 아니면 둘 다 좋다거나 등등.


아이디어에 관한 얘기가 길었는데, 그만큼 좋은 아이디어란 쉽게 나오기 어려운 법이니까 그만큼 가치가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4차 산업혁명이 완전히 자리 잡으며, 그림 그리는 화가 AI를 심심찮게 볼 수 있다. 내가 봐도 썩 잘 그렸다. 그뿐인가? 커머스 몰 전용 배너를 만드는 AI부터, 앱 프로토타이핑을 제작하는 AI, 프로세싱 등의 코딩으로 그래픽을 만드는 AI까지. 도저히 인간이 설 자리가 없겠구나 싶지만, 그럼에도 내가 믿고있는 게 있다.


보는 이로 하여금 무릎을 탁 치게 만드는가 하면, 마음 깊은 곳에서 재미, 감동, 온갖 감흥을 불러일으키는 울림 있는 아이디어는 AI의 영역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건 사람만이 할 수 있다고 믿는다. 아이디어란 단순 반복이나 계산으로만 얻을 수 있는 게 아니라, 다양한 측면의 리서치와 정보를 종합해 통찰력 있게 해석해내고, 거기에 디자이너만의 생각이 더해져야 하기에. 물론 이 생각도 틀려버리게 된다면, 그땐 나도 모르겠다.


또, 좋은 아이디어가 나오기만 해서 끝인가? 그 아이디어를 실현하지 않는다면, 존재하지 않는 거나 마찬가지다. 이번 매거진 #248호에서는 이렇게 쉽게 잡히지 않는 아이디어에 대한 현직 디자이너들의 담론은 물론, 좋은 아이디어로 보는 이들에게 감흥을 전하는 디자인 작품들을 소개하고 있었다. 그런 작품들과 생각들을 엿보며 역시 디자이너라면 이런 걸 해야 한다며 자극을 받기도 했고, 알면서도 때때로 타협하기도 했던 나 자신을 반성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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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조금 읽다가 보니 내가 못 갔었던 서울디자인페스티벌 [서울 에디션; 레트로 전시]를 소개하고 있었는데, 두성종이에서 커피가 아닌 종이 메뉴를 만날 수 있는 페이퍼 카페로 참여해 종이에 대한 기존의 편견을 뒤집었다는 소식을 볼 수 있었다. 아이디어가 흥미로워서 실제로 체험했다면 더 좋았을 법하다. 그리고 아이디어에 대한 디자이너들의 담론 중에서 영국의 스튜디오 서덜앤드 창립자 짐 서덜랜드의 말은 오랫동안 기억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관객을 매료시키고 행복감까지 느끼게 하는 건 아이디어입니다.”

 

 

다만 그는 이런 말도 덧붙였다. 잘 팔리는 아이디어는 철저한 조사 끝에 탄생한다고. 나 역시 동감하는 말이기도 하고, 아이디어가 신이 내려야만 가질 수 있는 추상적인 창조의 영역이 아님을 말하는 것 같아서 좋았다. 언제든 나의 노력에 기반한 논리와 인사이트들로 얻을 수 있다는 건, 아이디어가 안 나올 때 답답해하는 나에게 필요한 말이다.


그 외에도, 아이디어가 사회적으로도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한 작품을 볼 수 있었다. 쓰레기 제도를 국가화하자는 움직임을 담은 AMV BBDO의 ‘쓰레기 제도’ 캠페인이나, 여성들의 ‘소음순 성형수술’의 비율을 보고 자신의 성기를 당당히 여기자는 취지의 리브레스 <여성 성기여, 만세> 등은 감흥을 주기에 충분했다.


책을 넘기다가 나를 한동안 생각하게 하였고, 이번 호에서 가장 좋았다고 느끼게 했던 부분은 도시를 연구하는 데이터 시각화 분야의 소원영 디자이너에 관한 이야기였다. 내가 좋아하는 텀블벅의 공동 창립자이기도 하고, 데이터 수집가이자, 데이터 운동가인 소원영 디자이너는 소규모 그래픽 디자이너들과 그 주변 협업자들의 관계를 그려낸 네트워크 지도 애플리케이션을 만들기도 했다. 무엇보다 그가 학부 졸업 이후 진행했던 프로젝트 <조물주 위의 조물주>를 보며, 디자인의 역할이 무엇인지 다시금 생각하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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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물주 위의 조물주>는 거리의 개성이 전적으로 그곳에 살고, 가꾸는 사람들에게 발현되는 것이고, 그러한 역할을 담당하지만, 입소문을 타 유명해진 거리에 임대료 인상으로 반응하는 건물주에 의해 보잘것없어지는 존재에 주목했다. 이러한 관점으로 그는 서울에서 가장 빠르게 변해온 거리의 양상을 추적해보는 젠트리피케이션 지도작업을 완성했다. 좋은 아이디어와 아이디어 실행력이 탁월할 때 비로소 이런 작품이 나올 수 있나 보다.

 

무엇보다 이 작업이 나올 수 있었던 배경이 더 흥미롭다. 당시 소원영 디자이너가 이 프로젝트를 진행할 당시에는 구글 지도 등 각종 지도 앱이 등장하기 전이라, 참고할 만한 비주얼 데이터가 부족했다고 한다. 한참을 궁리하던 그는 생각을 멈추고 밖으로 나와 자전거를 타고 다니며 직접 건물 데이터를 그렸다고 했다. 그래서인지 더욱 큰 인사이트를 던져 주는 것 같다.


그리고 <잡> 부분과 관련해 디자인학과 졸업생들의 취업에 관해 이야기하는 부분들은 공감이 많이 가서 따로 스크랩해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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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외에도 언제나 창작의 중심이었던 손이 도구와 만나 어떤 새로움을 줄 것인지에 관한 시도를 담은 , <퓨처 디자인 워크숍> 전시는 여러모로 흥미로웠다. 시각적으로도, 절대 손으로는 일일이 구현해내기 어려운 기계의 맛을 아날로그와 잘 융합해 신선했고, 무엇보다 이런 비주얼을 만들어 낸 도구가 궁금해서 추가로 찾아보기까지 했다. 아그파의 대표 보안솔루션인 Arziro는 사실 패키징, 상품, 문서 등의 보안을 위한 보안 디자인 솔루션이라고 하니, 기능과 목적이 확실한 도구의 또 다른 용도를 모색했다는 점이 흥미로웠다. 그리고 아티스트들 중 좋아하는 교수님의 이름이 있어서 더욱 재밌기도 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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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든 올해의 시작을 이번 호와 함께할 수 있어서 든든하다. 올해의 나에게 정말 필요한 말들이 담겨있어서 그런 걸지도 모르겠지만 다른 디자이너들의 분투를 보며 위안을 받기도 했고. 런던의 디자이너조차 일을 찾는 것이 가장 큰 도전이었다고 말하는 것을 보면서 한국에 사는 디자이너이자 사회 초년생인 나만 그런게 아니라는 생각에 놀라기도 했다. 그리고 쉬지 않고 <노오오오력!>하면서 작업해도 언제나 모자른 기분이 들어 지쳐있던 요즘, 다른 디자이너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위안과 함께 올해는 꼭 즐기면서 디자인과 함께 성장해가고 싶다고 느꼈다.


Design Magazine CA 이번 호는 정말 여러모로 읽기를 잘했다고,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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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유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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