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그들과 나를 마주보다 – 뮤지컬 경종수정실록 [공연예술]

글 입력 2020.02.04 1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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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정태세문단세 예성연중인명선 광인효현숙경영 정순헌철고순. 조선의 왕조 중 ‘숙경영’의 이야기. 자세히 말하자면 경종의 이야기다. 숙종은 환국 정치, 희빈 장씨로도 굉장히 유명하고 영조는 말할 것도 없이 조선왕조에서 빼놓을 수 없는 왕으로 기억된다. 그 중간에 있던, 사람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경종을 담았다. 기록되지 않은 그 날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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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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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20대 왕.

숙종 집하 시절, 세자로 30년을 지냈던 경종은 희빈 장씨의 아들로 신분상, 정치상 수많은 고난을 겪는다. 우울증을 심하게 앓았으며 환청으로 인해 힘들어했고 정신적, 육체적 고통으로 평생을 살았다. 재위 기간은 4년으로 아주 짧다. 1720년, 숙종이 승하하기 전까지 세자로서 대리청정을 수행할 때 특별한 자기주장 없이 ‘유의하겠소’를 반복하며 조용히 지냈던 것과 달리, 왕으로 즉위해 신하를 잡을 때는 확실히 잡았다고 한다.

노론들이 왕권 교체를 기도한다고 모함해 그들을 몰아내고 신임사화로 소론 정권을 수립하는 환국을 단행하며 소론이 정권을 계속해서 이어나가도록 했다. <대리청정> 넘버에서도 그의 강력한 모습이 잘 드러난다. 굉장히 당쟁을 잘 이용하며 이를 통해 자신의 뜻을 펼치고 싶어 하는 경종을 볼 수 있다.

 
 
연잉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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훗날 왕위를 이어받는 영조의 세자 시절로 숙종과 무수리 최 씨의 아들로 태어나 고귀함과 미천함을 동시에 가지고 태어났다. 그래서 더욱 집안의 눈치를 보며 어릴 때부터 자신이 왕위에 오를 수 있을까 고민하고 끊임없는 의심과 불신을 이어온 듯하다.

경종은 왕위를 이을 아들을 가지지 못했기에 삼종의 유일한 혈맥으로서 가장 왕위를 이어받을 가능성이 큰 인물이라 노론의 지지를 받게 된다. 그리고 노론의 부추김으로 왕세제까지 즉위하게 된다. 고질적인 질환으로 고생하던 경종에게 감과 게장, 그리고 부자 인삼차를 올렸는데 며칠 후 경종이 승하하여 연잉군이 경종을 독살했다는 의혹이 전해진다.
 
 
 
홍수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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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초고를 작성하는 관리 사관이다. 경종의 옆에서 일거수일투족을 기록하며 왕이 한 일들을 적는다. 국왕의 모든 말과 행동, 정사, 정치 득실 등을 집필한다. 뮤지컬 <경종수정실록>에서 탄생한 가상 인물로 경종의 스승이자 숙종이 일으킨 사화로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경종은 자신이 소중히 여기는 사람들이 희생되는 상황을 지켜만 볼 수밖에 없었기 때문에 훗날 성군이 되리라 다짐하게 되는 데 큰 영향을 준 인물이 홍수찬이기도 하다.


벗이자 스승이자 가장 가까운 곳에서 경종의 이야기를 적는 사관이다. 그리고 이 기록되지 않은 그 날의 이야기를 전해주는 인물이다. 사관으로서 소명을 다할 수 있는 일, 경종의 벗으로서 할 수 있는 일, 아버지의 죽음을 복수하고 싶은 개인적 감정이 뒤섞이지만, 묵묵히 소명을 다해나간다.

 

 

 

그냥 평범했던 그들과 나



경종, 연잉군, 홍수찬 그들 모두 사실 처음에는 내가 될 수 없는 사람으로 느껴졌다. 뛰어난 결단력과 신념과 파워를 가진 당당한 모습과 자신의 개인적 사리사욕보다는 이 나라를 살리기 위한 진심이 담긴 마음이 더 큰 모습에 내 그릇은 너무 작음을 느꼈다. 극을 보면서 괜히 전주 이씨라는 명색 탓에 내가 저 자리에 있다면 어떤 선택을 했을까 상상해보기도 했다. 나에게는 사명을 다할 만큼의 용기와 신념이 충분하지 않기 때문에 그들이 멀게만 느껴지기도 했다. 하지만 그들은 누구보다 우리와 가까운 사람이었다.
 
경종은 평생을 정신적으로도, 육체적으로도 아프며 살아갔고 수없이 많은 선택의 갈림길에서 고민하고 또 고민했다. 사람을 죽이지 않는 성군이 되겠다는 포부를 가지고 있지만, 결국엔 사화까지 일으키며 아버지의 환국 정치와 다를 바 없는 길을 걷게 되는 자기 자신에 대해서 굉장히 실망하며 괴로워한다. 죽기 전에 사초에 업적을 남겨야 한다는 강박감과 ‘누가 날 기억해줄까?’, ‘어머님은 날 자랑스러워하실까’, ’연잉군보다 내가 더 나은 왕재일까’ 등 수없이 많은 번민을 하고 자신에게 실망하고 괴로워하는 모습이 극 중 기면증 증세와 현실과 꿈을 혼동하는 장면으로 자주 등장한다. 이런 사사로운 마음들은 우리의 내면에서도 계속해서 일어나고 있다. 남들에게 인정받고자 하는 욕구와 내가 잘해나가고 있는지 자꾸 확인받고 싶은 마음, 잘 해내지 못하고 있다는 죄책감, 수많은 번민, 지금 이 시각을 잘 보내고 있는가에 대한 의문과 끝내 이어지는 실망감으로 괴로워하는 우리의 모습과 다를 게 없다.
 
연잉군은 무수리 최 씨의 아들로 어렸을 때부터 집안의 눈치를 보며 살아오면서 재빨리 왕손의 운명을 깨닫게 된다. 왕이 되지 못한 왕자는 죽임을 당했기에 내가 죽든지 형을 죽이든지 결정을 해야 하는 상황임을 안 연잉군은 극 내내 그 선택의 갈림길에서 고민하며 대립한다. 또한 극에서 연잉군은 한 번도 자기 뜻대로 행동을 옮기지 못한다. 노론의 부추김으로 왕자에서 왕세제로 오르게 되었고 대리청정 또한 노론의 급진적 결정이었으며 노론의 역모 계획도 뒤늦게 알아채 계속해서 고민한다. 그리고 성군의 자리에는 형보다 자신이 더 맞는다는 생각으로 훨씬 더 임금답게 자리할 수 있다는 자신감에 차 있던 그가 그간의 상황과 노론이 꾸린 역모와 신임사화 등으로 흔들린다.
 
그리고 경종이 날카로운 목소리로 백성들을 피눈물 흘리게 하는 신하들을 꾸중하고 벌을 내리며 강력한 모습을 보이자 그가 조선을 위한 완벽한 왕의 모습을 갖추고 있음을 느낀다. 오히려 자신의 입지가 좁아졌기에 좋은 임금이 되고자 한 자신의 마음이 어쩌면 자신의 사리사욕을 채우기 위한 알량한 마음이었을까 혼란을 느낀다. 그리고 자신의 소명을 이뤄나가기 위해서라면 목숨까지 바칠 수 있다는 흔들림 없는 홍수찬을 보며 나 역시도 그저 욕심만 많은 허영된 사람인가 괴로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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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그는 경종에게 올릴 부자인심차에 독을 넣어 역모를 계획한다. 그의 선택은 이 현실에서 죽임을 당하기보다 죽이는 것이었다. 하얀 무지개는 역모가 실패할 때마다 떴다고 한다. 결국 부자 인삼차에 독이 든 것을 경종은 연잉군이 말하기 전에 알아챈 듯했다. 경종이 희빈 장씨에게 사약이 내려졌을 때 떴던 무지개를 기억하냐며 물어보는데 결국 경종은 자신의 손으로 독이 있는 차를 마신다. 결국 연잉군은 자신의 선택을 끝까지 하지 못한다. 역모를 꾀했지만, 자신의 선택으로 왕위에 오른 것은 아니다. 연잉군의 강력해 보이지만 여린 마음은 극의 마지막 부자 인삼차 장면에서 굉장히 두드러진다.
 
홍수찬 또한 사관으로서 소명을 다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경종의 벗으로서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며 아버지의 죽음을 복수하고 싶기도 한 복잡한 마음이다. 하지만 그는 사관과 경종의 벗으로서 할 수 있는 일을 자기만의 최선의 방법으로 실행한다. 정직하게 사관으로서 임금 곁을 지키면서 노론의 역모를 고발하기 위해 그 증거들을 계속해서 잡아낸다. 그리고 그 증거들을 경종에게 전하고 죽음을 맞이한다. 그럴 수 있기까지 수많은 고민과 생각이 그의 머릿속을 스쳐 갔을 것이다.

그런 그가 있었기 때문에 이 경종수정실록이 완성된다고 생각한다. 그가 비중이 적은 인물이라고 느껴질 수 있지만, 이 극에서 빠져서는 안 될 정말 중요한 인물이다. 경종이 가지고 있는 그 ‘성군이 되고 싶다’는 꿈의 시작에도 그가 있고 경종이 모함에 빠지지 않도록 최대한 방어하는 인물도 그이며, 연잉군을 흔들며 그 자기 자신을 돌아보게 만들기도 하는 인물도 홍수찬이다. 그 때문에 경종과 연잉군의 심리가 더 극명하게 드러난다. 경종에게 꿈을 꾸라고 전하는 홍수찬의 마지막 장면 또한 그들의 결말을 향해 가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다.

 

*

 

그들 한 명 한 명을 들여다보면 내가 있었다. 거시적으로는 군주의 이야기, 왕손의 운명과 정치싸움으로 보이지만 미시적으로 그들 각자를 바라보면 지금의 보통 사람들과 다르지 않음을 알 수 있다. 나의 고민, 괴로움, 자책감과 나약함, 흔들림, 선택의 갈림길에 선 나를 만났다. 그래서 더 이 작품을 좋아했고 그들의 기록되지 않은 이야기에 흠뻑 빠졌던 것 같다. 동떨어진 이야기 같았던 경종수정실록이 나를 너무나 충실히도 잘 위로해주었다. 내 선택보다 타인의 생각과 주장에 좌지우지되는 평범한, 그저 그런 학생인 나를 마주 보게 해주었다. 이 경종수정실록을 보내줄 때가 왔으니 나도 이제 그런 나를 버리고 바꿀 다짐과 용기를 내본다. 나에게는 ‘자신의 뜻을 온전히 전하고자 했던 경종, 연잉군, 홍수찬과 나’로 기록된 경종수정실록의 마침표를 찍는다.

 

[이수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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