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엄마를 엄마로 보지 않은 순간, 엄마를 더 이해하게 됐다. [도서]

글 입력 2020.01.31 00:12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부끄럽지만 나는 오랫동안 엄마가 엄마인 채로 태어난 줄 알고 있었다. 그러니까, 내가 학교에서 필요한 준비물을 빼놓고 오면 몰래 뒷문으로 가져다주고, 내가 아프면 밤새 내 옆에서 간호해 주고, 빨래와 청소를 해주고, 피곤한 내 짜증도 종종 받아주는 존재가 내 주위에 있는 게, 해와 달이 하늘에 떠 있는 것처럼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했다.


사실은 그게 아니라 엄마 역시 저녁에 TV 앞에 누워서 깔깔거리는 걸 좋아하고, 사람들을 만나는 걸 좋아하고, 나처럼 낮잠을 좋아하고, 자주 집안일과 내 뒤치다꺼리를 귀찮아하기도 한다는 사실을 불현듯 알게 됐을 때가 있었다. 다만 엄마는 자신의 역할을 외면할 수 없었기에 지금까지 그런 일들을 착실히 해 왔던 것이다. 그때 나는 나 자신이 부끄러워 눈물을 찔끔 흘릴 수밖에 없었다.

 

그렇지만 아직도 나는 엄마의 존재를 자주 당연하게 생각한다. 아직도 엄마의 이름이 ‘엄마’가 아니라 ‘김미영’이라는 사실은 생경하다. 『나는 울 때마다 엄마 얼굴이 된다』를 처음 펼쳐 읽기 시작하고, 저자가 자신의 엄마를 엄마가 아니라 ‘복희’라고 적어 놓았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도 똑같은 생경함이 들었다.


자신의 엄마가 아니라 친구의 이야기를 적는 듯한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저자의 어머니는 자신의 딸이 자신을 엄마가 아니라 이름으로 부른다는 걸 알게 되었을 때 어떤 느낌이었을까. 하는 궁금증도 들었다.


 

131.jpg

 

 

책을 읽어내려 갈수록 처음의 생경함은 없어졌다. 저자의 어머니 역시 이런 명명법을 좋아했을 거라는 확신도 들었다. 저자는 자신의 어머니가 단지 저자 이슬아의 어머니가 아니라 복희라는 한 사람으로 읽혔으면 하는 바람을 가지고 이 책을 쓴 것 같았다. 나에게 저자의 의도는 적중했고, 나는 이 책을 읽는 내내 복희에 대해서 생각했다.


열심히 공부해서 대학에 붙었지만 입학금이 없어 대학생이 될 수 없었던 복희, 대학 접수가 끝나는 날 소주를 들고 다락방에 들어가 3일 동안 나오지 않았던 복희, 3일 후에 바로 구직활동을 시작한 복희, 딸의 운동회 날, 하이힐을 신고 나타난 복희, 하이힐을 신고도 달리기 경주에서 당당히 1위를 차지한 복희에 대해서 말이다.

 

*

 

물론 딸의 시점에서 쓰인 이야기도 많기 때문에 복희에게서 엄마라는 정체성을 지울 수는 없었다. 하지만 그녀는 단순히 누군가의 엄마가 아니라 아름다운 여성이었고 착실한 점원이었고 아버지에게는 연인이었다. 이런 그녀의 정체성을 모두 아울러 볼 수 있으며, 그 과정에서 ‘복희’라는 한 사람에 대해 알아갈 수 있었다.


동시에 복희의 딸 이슬아라는 사람에 대해서도 알아갈 수 있었다. 엄마가 똥을 쌀 때 항상 엄마 무릎에 앉아서 엄마의 가슴을 만졌던 슬아. 엄마의 구제 옷 가게에서 잘생긴 남자를 기다렸던 슬아. 시간을 벌기 위해 누드모델 일을 시작한 슬아. 예술의 전당 무대에서 누드의 모습으로 이곳저곳을 뛰어다녔던 슬아에 대해서 말이다.

 

이윽고 책을 덮었을 때, 나는 내가 우리 엄마 미영에 대해서 얼마나 알고 있는지, 그리고 그 엄마의 딸인 나에 대해서 얼마나 알고 있는지 반추하게 되었다. 엄마라는 존재가 당연하지 않다는 걸 처음 눈치챘을 때처럼 찔끔 눈물이 나왔다.


이처럼 『나는 울 때마다 엄마 얼굴이 된다』는 알고 있었지만 의식하지 못했던 것들에 대해서 다시금 생각하게 해 준 책, ‘복희’와 ‘슬아’라는 사람에 대해서 알게 해 준 책이었다.

 


[권묘정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04.26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