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피하지 않고 ‘잘 싸우기’ 위해서 [사람]

글 입력 2020.01.29 0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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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성격이론 신봉자다. MBTI는 기본이고 에니어그램, Big 5, 홀랜드를 비롯해 심지어는 사주팔자까지 믿고는 한다. 물론 거기서 하는 말들을 다 철썩같이 맹신하는 건 아니다(아닐 것이다).


하지만 MBTI에서 INTJ, INTP, INFP 따위의 결과를 꾸준히 받아온 사람이라면 다른 성격 유형을 판정받은 이들보다 성격 운운하는 검사결과에 어쩔 수 없이 더 이끌리곤 할 것이다. 아무래도 그건 사회에서 기본적으로 요구하고는 하는 능력치, 즉 외향성이나 현실성보다는 다른 부분에 더 장점을 가지고 있는 이들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INTJ로 판정받은 나도 이런 주먹구구식 성격이론에 위안(?)받는 바가 좀 있다. 이상하게 나는 어떤 사이비 성격검사를 하더라도 꼬리표처럼 따라붙는 표현이 있는데 그건 바로 ‘사람을 대하는 데 어려움을 겪곤 한다’ 따위의 말이다. 내향성, 대인관계 미숙, 고독을 즐김, 뭐 기타 등등 다양하게 그 말본새가 바뀐다 뿐이지 하려는 말은 똑같다.


변명을 하자면 나라고 골방에 틀어박혀 사는 사람은 절대 아니다. 심심하다고 친구를 불러내거나 불쑥 모르는 사람에게 말을 걸기도 하고 의외의 친근함을 발휘하며 모두와 둥글둥글하게 지내기도 한다. 다만 내가 어려워하는 일이 하나 있다. 바로 갈등을 다루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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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갈등을 어려워할까? 요즘 들어 자주 생각한다. 갈등 해결에 능숙한 사람이 몇이나 되겠냐마는 유독 나는 갈등상황을 마주하면 극도의 불안과 스트레스, 대처 미숙으로 인해 허둥지둥하곤 한다. 최근 가족과의 갈등, 또 친한 사람과의 갈등을 연속적으로 겪으며 느낀 사실이다. 짐작컨대 그 이유는 첫째는 성격이요, 둘째는 경험의 부족이 아닐까 싶다.

 

난 근본적으로 갈등을 피하고자 하는 성향이 있다. 얼마 전 책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를 읽다가 무릎을 탁 치게 만든 꼭지가 있었는데 바로 다툼에 관한 부분이었다. 황선우 작가는 충돌을 회피하고 혼자 마음을 삭이는 본인의 성격을 인격적 성숙, 평화주의자 같은 말로 합리화하지 않는다.


대신 자신을 ‘미숙해서 잘 못 싸우는 사람’으로 쿨하게 정의내린다. 화가 나면 불같이 화를 표출함으로써 갈등을 수면 밖으로 기꺼이 끄집어낼 줄 아는 동거인과 함께 지내며 겪은 교훈은 ‘잘 산다는 건 곧 잘 싸우는 것’이라는 진리다. 그래, 나는 기본적으로 잘 못 싸우는 사람이구나, 싶어 무한한 공감대가 생겼다.

 

어쩌면 이러한 성격이 곧 싸움을 경험하지 못하게 만들었는지도 모르겠다. 어릴적부터 난 가족과 싸우면 아무리 눌러 참아도 눈물이 꾸역꾸역 흘러나와 할 말을 제대로 하지 못했고, 친구들과는 아예 싸움을 피해버렸다.


도저히 서로 맞출 수 없겠다고 판단되면 차라리 서서히 멀어지는 방법을 택했다. 전형적인 싸움 못하는 인간의 이런 성장과정을 겪고 나니 다 자라서도 소중한 사람과 갈등상황에 맞닥뜨리면 당황을 금치 못하는 어설픈 어른이 되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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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J 성격 유형을 이리저리 검색하다가 ‘타인의 시선에 무감한 편이지만 좋아하는 사람에게 거부당하면 굉장히 예민하게 반응한다’ 같은 구절을 발견한 적이 있다. 정확한 표현이다. 언성을 높이면서 상대에게 감정을 토해내지도 못하고 혼자 자존심이 상해 어쩔 줄 모르는 찌질한 모습이라니. 이런 내 모습이 한심해 친구에게 고민을 토로하니 친구는 간단히 한 줄로 요약해 주었다. 그건 바로 (내가 그토록 이해하지 못했던) 로맨스 드라마 속 주인공의 심리라며.

 

맞다. 결국 자신이 잃고 싶지 않고, 관계를 악화시키고 싶지 않으며, 많은 걸 공유했던 사람과 갈등을 빚으면서도 쿨하고 멋질 수 있는 사람은 없는 것이다. 그건 아마 나 같은 성격 유형의 사람들이 자신들을 감정에 휘말리지 않고, 대인관계에 집착하지 않는 멋진 스테레오타입 인간상과 동일시하는 ‘자기모에화’로부터 방해하는 뼈아픈 진실이 아닐까.


 

[한민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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