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등교거부를 시작한 청소년, 일년 후에 타임지 선정 '올해의 인물'이 된 까닭은 [사람]

글 입력 2020.01.28 0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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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6월, 학교에 앉아 공부해야 할 15세 소녀가 학교 가기를 거부한 채 피켓을 들고 자신의 나라인 스웨덴 국회의사당으로 향했다. 그 소녀의 피켓에는 기후 변화 대책 마련을 요구하는 문구가 쓰여 있었다. 툰베리는 여덟 살 때 처음으로 기후변화 문제를 접하고 기후변화 문제가 왜 해결이 되지 않는지에 대한 의문을 가지기 시작했다.


의문은 곧 좌절로 이어졌다. 8개월 동안 깊은 무기력증에 빠져 있던 툰베리는 이후 적극적인 행동을 시작하기에 이른다. 그 어떤 동물성 식품도 섭취하지 않는 채식주의자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CO2 배출량을 조절하기 위해 비행기를 타는 것도 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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툰베리는 시위에 이어 연단에 올라 직접 입을 열기 시작했다. 그의 연설은 강력했다. 그는 사람들을 회유하지도, 설득하지도 않았다. 특히 2019년 9월 열린 유엔 기후 행동 정상회의에서는 기후 위기 대응에 책임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적극적인 대처를 하지 않는 각국의 책임자들에게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 ‘how dare you’라며 날 선 분노를 쏟아냈다. 같은 행사석상에서 2015년 파리기후협약에서 탈퇴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보는 그의 눈빛 역시 연설에서 보여줬던 분노를 그대로 이어가는 듯 차갑고 냉랭했다.

 

툰베리의 영향력은 세계로 퍼지기 시작했다. 특히 유럽과 미국 곳곳에서는 툰베리의 등교 거부 운동에 발맞춰 매주 금요일마다 청년과 청소년들이 대규모로 참석하는 결석시위가 열렸다. 이들의 주장은 툰베리와 같았다. 기후 위기에 적극적으로 대처하라는 것. 이와 같은 영향력을 인정받아 툰베리는 작년 골든 카메라상 기후보호 특별상, 15회 레이첼 카슨상을 수상했을 뿐만 아니라 타임지의 최연소 ‘올해의 인물’로 선정되기도 했다.

 

이런 툰베리를 향한 비판의 시각도 적지 않다. 툰베리의 직접적인 비판의 대상이 되었던 트럼프 대통령은 툰베리를 두고 ‘분노조절 문제에 더욱 신경을 써야 한다’라며 그의 연설을 조롱했다. 그뿐만 아니라 미국의 화석연료 회사에 대한 툰베리의 투자 철회 요구를 들은 미국 재무장관인 스티븐 므누신은 ‘투자 철회를 요구하는 사람들은 그것이 중요한 경제와 일자리 문제와 관련되어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툰베리가 경제와 관련한 학위를 따지 않은 채로 경제 문제에 대해서 목소리를 높이는 것에 대해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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뿐만 아니라 툰베리가 기후 변화에 대한 구체적인 대안 없이 목소리를 높이는 것은 무책임하다는 비난도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다. 더불어 지난 UN 기후행동정상회의에 참여하기 위해 탄소발자국 제로를 주장하며 택한 요트 여행이 사실은 보기에만 친환경적일 뿐, 툰베리를 제외한 선원들은 요트 여행을 위해 비행기를 이용하는 등의 내막이 있었다는 사실도 툰베리의 운동이 무의미하다는 주장을 끌어내기에 충분했다.

 

물론 누군가의 주장을 무조건 받아들이는 것은 위험하다. 때문에 툰베리에 대한 비판은 정당한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그의 운동이 지금까지 우리가 간과하고 있었던 환경 문제에 대한 경각심을 다시금 일깨워 준 것은 툰베리 환경운동의 정당성을 따지기 전에 인정할 수밖에 없는 선명한 사실이다.


무엇보다 그는 지구의 환경오염을 주도한 세대가 아니다. 현재 17세의 나이로 지구의 환경오염을 회피할 수 없이 그대로 마주해야 하는 청소년 세대일 뿐이다. 그런 그의 운동을 조롱하고 해결책을 내놓으라며 그의 목소리를 낮추려는 것은 그 어떤 문제 해결에도 도움이 안 되는 태도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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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작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예쁜 쓰레기’라는 말이 유행했다. 동시에 생활에 꼭 필요하지는 않지만 내 취향을 나타낼 수 있는 ‘예쁜 쓰레기’를 사서 모으는 것이 하나의 생활 방식으로 자리 잡기 시작했다. 나 역시 그런 ‘예쁜 쓰레기’에 한창 몰두했을 때가 있었다. 그런 것들을 사고, 사진을 찍어 SNS에 올리는 행위를 통해 내 정체성과 자아가 확립된다고 믿었다. 실제로 도움이 된 물건들도 있었다. 여행지에서 산 몇 개의 기념품, 친한 친구에게 받은 선물 등은 아직도 꺼내 볼 때마다 추억을 되새기게 해 주거나 물건을 살 때 했던 다짐을 다시 하게 해주는 계기가 됐다.

 

그러나 아무 의미 없이 단순히 예쁘다는 이유로 사서 장식장이나 책상 한구석에 있다가 나중에는 버려지는 물건들도 많았다. 그리고 그 물건의 대부분은 잘 썩지 않는, 버려지면 환경에 해를 끼치는 소재로 된 것들이었다. 이렇듯 우리는 모든 걸 소비하는 게 너무나 당연하고, 심지어 미덕이 되는 사회에서 살았다. 그 모든 것이 결국에는 지구에 해를 끼치고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이제 한 번쯤은 멈춰 서서 내가 지금까지 지구에 너무 무심하지는 않았는지 돌이켜 볼 때가, 더욱 더 안전한 환경에서 살고 싶다는 다음 세대의 목소리를 들을 때가 온 것 같다.

 

 



[권묘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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