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대학가서 미팅할래? 공장가서 미싱할래? [사람]

특별한 직업에 던지는 특별한 시선들
글 입력 2020.01.14 21:42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배경.JPG



“수능 7등급 받을 정도면 호주에 가서 용접하는 게 나아요”


 

어느 스타 강사의 발언은 온종일 많은 이들의 화두에 오르며 비판받았다. 강사의 말은 공부가 힘들면 다른 길을 알아보라는 의도였지만, 특정 직업에 대한 비하로 해석됐다. 결국 강사는 사과 영상을 올렸고, 자숙의 시간을 갖겠다고 말했다.


이번 사태는 말의 중요성을 일깨우기도 했지만, 한편으론 ‘직업에 귀천이 없다’라는 말을 다시 한번 되새기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혹시, 어쩌면 나 또한 누군가의 고된 노동을 웃음거리로 치부하진 않았는가.

 


 

‘높은 직업’과 ‘낮은 직업’


 

11.JPG

 


학창 시절 수능이 얼마 남지 않았을 때, 숱하게 들었던 말이 있다.

 

‘대학가서 미팅할래? 공장가서 미싱할래?’

 

이는 한때 여느 반의 교훈이 될 정도로 대표적인 수험생 자극 문구였다. 잠과 땡땡이의 유혹에 벗어나지 못하는 우리에게, 선생님들은 자극을 주고자 이 말을 종종 건네곤 했다. 그러면 우리는 왁자지껄하게 웃으며 다시 공부에 매진했다. 선생님들은 지금 공부를 열심히 해야 대학에 가서 미팅을 할 수 있다고 가르쳐줬지만, 공장 일이 입시실패의 결과를 상징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가르쳐주진 않았다.

 

사실 나도 선생님들을, 이러한 문구를 만들어낸 이를 욕할 자격은 없다. 나 또한 당시 그 문구를 그저 웃어넘겨 버리는 식으로 치부했기 때문이다. 무엇이 문제인지 모르고 그냥 웃어버리기, 돌이켜보면 그랬던 적이 알게 모르게 많았던 것 같다.

 

아주 어렸을 적 다녔던 동네 목욕탕엔 흔히 ‘때밀이 아줌마’라고 하는 분들이 계셨다. 때밀이 아줌마는 손님들의 등을 밀어주고 어깨나 얼굴 마사지를 해줬는데, 어느 손님이든 때밀이 아줌마에게 다녀오면 한여름 냉수를 마신 듯 시원한 표정이었다. 일곱 살이었던 내게 단 10분 만에 누군가를 행복하게 해주는 ‘때밀이 아줌마’는 참 멋있는 직업이었다.

 

그래서 어른들이 ‘꿈이 뭐니?’라고 물으면 나는 아주 해맑은 표정으로 ‘때밀이 아줌마요’라고 답했다. 충격이었던 건 내 꿈이 때밀이 아줌마라고 했을 때, 어떤 어른이 건넨 말이었다. 그분은 내 꿈을 듣곤 박장대소하며, ‘너 엄마 말 안 듣고 말썽 피우면서 학교 안 다니면 이렇게 될걸?’이라고 말씀하셨다. 아니, 엄마 말을 잘 듣고 학교를 성실히 다녀야 훌륭한 사람이 되는데, 그 반대로 행동해야 때밀이 아줌마가 될 수 있다고?

 

이후 내가 꿈으로 삼은 직업은 다양했다. 드라마 작가, 시인, 화가, 발레리나, 선생님, 의사, 변호사 등등 초등학생이면 꿈을 꿀 법한 직업들을 한 번씩은 지망했다. 그런데 그중 어른들로부터 가장 반응이 좋았던 직업은 대게 의사, 변호사, 선생님과 같은 흔히 ‘안정적’이라 불리는 것들이었다. 아마도 그때 의사, 변호사, 선생님은 훌륭한 직업, 때밀이 아줌마보다 ‘높은 직업’이라는 일종의 가치관이 정립됐던 것 같다.

 

‘높은 직업’, ‘낮은 직업’. 글로 써보면 빨간 줄이 보일 만큼 맞춤법에 어긋나는 비문이지만, 우리는 학교에 다닐 때도 은연중에 늘 직업의 높고 낮음을 구분하곤 했다. 예를 들어 특성화고에 진학해 전문 직업교육을 배우는 친구를 향해 ‘공부를 못해서 이런 길로 간다’고 생각하거나, 의대에 다니는 친구를 보면서 ‘나보다 잘난 사람’이라고 규정하면서 말이다.


학교를 졸업한 후 펼쳐진 사회에선 연봉의 액수가 곧 직업의 계층을 나누는 기준이 됐다. 어떤 결혼정보회사에선 대기업 직원, 의사, 약사 등의 직업을 A등급이라 칭하며, 이들이 곧 상위계층임을 각인시켰다.


 

22.JPG

 


예전에 한 잡지에서 20대 청소부를 소개한 적이 있다. 그는 청소하는 게 행복하기에 이 일을 평생직장으로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한편으로 그는 자신의 직업을 청소부라고 소개할 때 받는 의문의 시선에 불편을 표하기도 했다. 이처럼 직종에 따라 우리의 시선은 ‘동경’을 표하거나 ‘동정’을 나타내면서 시시각각 달라진다.

 

지난 시간을 돌아봤을 때 누군가의 꿈을 그저 실패의 결과라고 치부하진 않았는지, 어떤 직업에 막연히 등급을 매긴 적은 없었는지 유념해야 한다. 어느 강사의 발언은 모두를 천인공노하게 했다. 하지만 화살을 던져야 할 대상이 진정 그 강사가 맞는지, 혹시 나 자신은 아닌지 반성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이를 계기로 훗날엔 청소부라는 직업을 택해도 아무런 시선을 던지지 않는 사회가 만들어지길 바란다.

 

 



[황채현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이름
비밀번호
자동등록방지
50101
 
 
 
 

등록번호 : 경기, 아52475   |   E-Mail : artinsight@naver.com
발행인/기사배열책임자 : 박형주   |   청소년보호책임자 : 박형주
Copyright ⓒ 2013-2020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트(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