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첫사랑을 엿보다 –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도서]

20년이나 흘러버렸지만 다시금 닿을 수 있도록
글 입력 2020.01.10 02:18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1.jpg

 

 

소설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을 원작으로 한 동명의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본인의 인생 영화라며 한정판 블루레이를 구매하는 사람, 영화의 한 장면을 타투로 몸에 새기는 사람 등 한동안 영화에 대한 인기를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그래서 몹시 궁금한 작품이기도 했다. 감상하고 싶은 영화 리스트에 올려 두기만 한 채 보지 못했지만 언젠가 나도 꼭 감상하리라고.

 

1983년 여름의 이탈리아를 배경으로 아버지의 보조 연구원으로 찾아온 청년 올리버를 만난 열일곱 엘리오 시점에서 이야기는 전개된다. 어디서든 이목을 주목시키는 올리버에게 매료된 엘리오는 그에 대한 감정을 숨기려 애쓰는 동시에 처절하게 표현한다. 그리고 나는 올리버의 감정선을 따라가는데 조금 벅참을 느꼈다.

 


당신과 같이 있기 위해서요. 올리버, 당신과 같이 있기 위해서예요. 수영복을 입고서든 입지 않고서든, 당신과 내 침대에 같이 있기 위해서. (중략) 당신이 밀어붙인다면 움직이지 않고, 몸의 근육 하나 움직이지 않고 기꺼이 항복할 뜻이 있음을 전하기로 결심했어요. 난 이미 항복했고 머리부터 발끝까지 당신의 것이라고.


 

자신의 모든 것을 다 주고 싶을 정도로 그에게 빠져버린 엘리오의 모습에 나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도대체 어느 부분에서 저렇게 사랑에 빠진 것일까? 혹시 내가 놓친 장면이 있나 앞장을 다시 읽어 보았다.


어쩌면 점심 식탁에서, 어쩌면 점심 식사 후 휴식을 취할 때, 어쩌면 해변에서, 어쩌면 엘리오 스스로도 전혀 눈치채지 못한 사이에 그를 사랑하기 시작했을지 모른다는 엘리오의 독백을 읽던 나는 나에게 모순을 느꼈다.

 

사랑이라는 감정이 예고하고 찾아오는가? 수학 공식처럼 딱 맞아떨어지지 않고 인과관계가 불분명하기에 우리는 사랑을 어렵게 여긴다. 엘리오의 감정을 인정한 나는 그가 표현하는 감정의 깊이에 그제야 몰입할 수 있었다.

 

 

watching-best-picture-noms-01-videoSixteenByNineJumbo1600.jpg

 


"당신이 알았으면 해요." 나도 모르게 튀어나왔다. "당신 말고는 말할 사람이 아무도 없으니까요." 말해버렸다. 도대체 말이 되기나 하는 걸까? - 95p

 

마침내 집에 온 느낌이었다. 그동안 난 어디에 있었던 거지? 올리버, 내가 어릴 때 당신은 어디에 있었나요? '이게 없는 삶은 무슨 의미일까?' 라는 질문이기도 했다. 끝에서 한 번도 아니고 여러 번 "여기서 멈춘다면 난 죽도록 괴로울 거에요." 라고 말한 사람이 그가 아니라 나인 이유였다. - 172p


  

스스로의 감정에 혼란스러워하지만 동시에 적극적으로 그를 원하는 엘리오의 모습과 나를 비교해보기도 했다. 작중 엘리오는 나보다도 어리지만 엘리오보다 몇 해를 더 산 나는 엘리오 같은 사랑을 한 적이 있나.


어쩌면 보편적인 이성애를 하는 나보다도 더 힘든 길을 걷게 된 엘리오가 나보다 더 용기 있는 사랑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부러워졌다. 자신의 감정에 저렇게나 솔직할 수 있는 열일곱의 엘리오가.

 


"네 이름으로 나를 불러 줘. 내 이름으로 너를 부를게." 태어나 처음 해 본 일이었다. 그를 내 이름으로 부르는 순간 나는 그전에, 어쩌면 그 후에도 타인과 공유한 적이 없는 영역으로 들어갔다.

 

소설의 제목이기도 한 이 구절을, 책을 읽기 전부터 나는 항상 궁금했다. 도대체 어떤 맥락에서 이런 문장이 쓰였을까. 책의 중반부에서 올리버와 엘리오가 몸을 섞으며 나온 대사였다.


다소 놀란 것은 엘리오가 아닌 올리버가 저 문장을 뱉은 것이었다. 상대방이 나를 그의 이름으로 불러주는 것이 어떤 느낌일지 짐작조차 되지 않는 내가 여태껏 소설이 쌓아온 서사 앞에서 올리버의 저 대사를 마주했을 때 몸에 소름이 돋는 것을 느꼈다.

 

사실 소설은 처음부터 끝까지 엘리오의 관점으로만 진행되기 때문에 둘의 관계가 진전됨에 따라 독자는 올리버의 이야기가 궁금해진다. 올리버가 이전부터 엘리오를 사랑하고 있었다고 고백하는 장면에서 특히 궁금증이 심화된다.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에서는 올리버의 이야기도 나온다던데, 올리버의 속마음을 알기 위해 영화도 꼭 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pic_5_3814955_k2737446_1200.jpg

 

 

작가의 세심하고도 뛰어난 감정묘사는 소설을 읽는 독자를 모두 절절한 첫사랑의 열병을 앓는 엘리오로 만든다. 전부 다 기억하고 있다는 올리버는 엘리오와 다시 시작할 수 있을까? 엘리오를 다시 올리버의 이름으로 불러줄까? 닿지 못한 채 20년이나 흘러버렸지만 다시금 닿을 수 있도록 기도하며 책을 덮었다.


그 후의 이야기를 담았다는 작가의 <파인드 미>가 궁금해진다.

 

 


 

 

콜미 바이유어네임.jpg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 CALL ME BY YOUR NAME -


  

지은이

안드레애치먼(André Aciman)

 

옮긴이 : 정지현

 

출판사 : 도서출판 잔

 

분야

영미소설

 

규격

130×195(mm)/ 페이퍼백

 

쪽수 : 316쪽

 

발행일

2019년12월 16일

 

정가 : 13,800원

 

ISBN

979-11-90234-01-6(03840)


 

[김혜정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04.25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