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청춘은 다 타버린 후 이야기해야 한다 [문화 전반]

기형도 '질투는 나의 힘', 무라카미 하루키 '헛간을 태우다'로 보는 청춘
글 입력 2020.01.07 1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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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은 어느 순간부터 광범위하게 쓰이기 시작했다. 특히 평균 수명이 높아지고 도전의 기회가 많아지면서 청춘은 꼭 젊은 나이대를 가리키는 말은 아니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이들이 청춘이라는 단어를 들었을 때 10대에서 20대의 모습을 떠올리기 마련이다.


그렇다면 결국 청춘에 속하는 것인지, 그 밖에 있는 것인지는 나이로 결정하는 것일까. 아니면 열정을 강조하는 광고나 강연에서 말하듯이 마음먹기에 달린 것일까. 주변 사람들에게 물었을 때 가장 인상 깊었던 대답은 ‘직장 다니기 전까지’로, 하고 싶은 것이 있고 그것에 도전할 수 있을 때 청춘이라고 하였다.

 

그 기준이 무엇이든 청춘은 언젠가 잃어버리는 것, 잃기 싫다면 끊임없이 상기하여 지켜내야 하는 듯하다. 이는 열정, 도전과 같은 것과 결부되어 ‘청춘 이후’는 약간의 우울함과 무기력함을 보인다.


기형도 <질투는 나의 힘>과 무라카미 하루키 <헛간을 태우다>에도 청춘 이후의 화자가 등장하며 작품 분위기는 전반적으로 어두운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질투는 나의 힘

/ 기형도

 

아주 오랜 세월이 흐른 뒤에

힘없는 책갈피는 이 종이를 떨어뜨리리

그 때 내 마음은 너무나 많은 공장을 세웠으니

어리석게도 그토록 기록할 것이 많았구나

구름 밑을 천천히 쏘다니는 개처럼

지칠 줄 모르고 공중에서 머뭇거렸구나

나 가진 것 탄식밖에 없어

저녁 거리마다 물끄러미 청춘을 세워두고

살아온 날들을 신기하게 세어보았으니

그 누구도 나를 두려워하지 않았으니

내 희망의 내용은 질투뿐이었구나

그리하여 나느 우선 여기에 짧은 글을 남겨둔다

나의 생은 미친듯이 사랑을 찾아 헤매었으나

단 한번도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았노라


 

<질투는 나의 힘>에서 ‘미래의 나’는 ‘현재의 나’, 청춘을 반성한다. 실제 화자는 청춘임에도 불구하고 청춘 이후의 자신을 상상하여 현재를 되돌아보고 있다. 젊은 날(현재)의 그는 마음에 너무 많은 공장을 세워 기록할 것이 많고, 지칠 줄 모르고 공중에서 머뭇거린다. 그리고 누구도 그를 두려워하지 않고 희망의 내용은 질투뿐이다.


화자는 사랑을 찾아 헤매었지만, 단 한 번도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은 것에 대해 반성한다. 결국 기형도 <질투는 나의 힘>에서 청춘은 어리석은 것이고 성찰의 대상이다. 자신을 사랑하지 못하여 남을 부러워하고 시기한 시간이며 그것을 괴로워하지만, 역설적으로 그 질투가 힘이 되어 살아간 시간이기도 하다.


즉 욕심 많고 하고자 하는 것이 많은, 자신을 돌보지 않고 타인들 사이를 헤맨 시절이 청춘이다.


 

버닝_사진.jpg

 

 

영화 <버닝>의 원작 <헛간을 태우다>는 31살의 ‘나’와 20살의 ‘그녀’, 20대 후반인 그녀의 남자친구 ‘그’를 놓고 청춘이라는 주제를 다룬다. ‘그’는 아무도 찾지 않는 헛간을 태우는 취미를 가지고 있고, ‘나’에게 아주 가까이에 있는 헛간을 태울 것이라 예고한다. 이후 ‘나’는 근처에 있는 헛간을 체크하고 매일 살펴보지만, 아무것도 타지 않았고 사라진 것은 그녀이다.


명확하게 소설 속에서 제시하지 않지만 독자는 헛간은 그녀였음을, 또한 ‘나’에게 그녀는 청춘의 비유였음을 생각해볼 수 있다. 특히 언제든 떠나가 버릴 수 있는 가벼운 존재라 ‘나’를 불안하게 하면서도 역설적으로 그것이 그녀를 마음에 들어했던 이유라는 것은 사람들이 청춘에 열광하는 이유와 비슷하다.


청춘은 언젠가 잃어버리는 것, 나를 떠나는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매일 집 주변을 돌며 헛간을 지켜보았지만, 이는 사실 무의미한 행동일 뿐이었다. 이미 타버렸는지도 몰랐고 언제 탔는지도 모른 채 ‘나’에게는 끝나버렸다는 사실만이 남아있을 뿐이다.

 

결국 청춘은 언제 가버렸는지도 모르는 것, 그저 언젠가 떠나가 버리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계속 '청춘'이라는 단어를 내뱉고, 그 단어에 열광하는지도 모른다. <헛간을 태우다>, <질투는 나의 힘>의 화자도 그러하듯 우리는 청춘 이후가 되어서야 청춘을 열망하고, 어렴풋이 알아간다. 그러니 그것이 다 타버린 후에 다시 이야기하자.

 


[안루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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