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놓치면 후회할 뮤지컬, 빈센트 반 고흐

글 입력 2020.01.03 1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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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덕후는 아니지만, 극과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에게 뮤지컬은 언제나 뜻밖의 선물 같은 존재다. 하지만 지금부터 소개하려고 하는 뮤지컬 <빈센트 반 고흐>는 2019년 마지막으로 받은, 놓치지 않아 천만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던 소중한 선물이었다.


 

 

도화지에 그림을 그리는 뮤지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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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D 프로젝션 맵핑을 활용한 뮤지컬은 처음이다. 하지만 이전에 유사한 기술을 활용한 전시를 관람한 적이 있다. 주관적인 경험에 의하면 ‘최첨단 기술’을 적용한 작품은 '모 아니면 도'가 아닐까 싶다.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중심이 되고, 이를 기술로 극대화해 관람객의 몰입을 돕고, 보다 풍부한 경험을 제공하는 경우도 물론 있다. 하지만 자칫하면 화려한 기술에 도취해 맥락도 없이 기술을 남발하는 바람에 빈 수레가 요란한 꼴이 되기도 한다.

 

개인적으로 뮤지컬 <빈센트 반 고흐> 의 프로젝팅 맵핑 기술을 모 아니면 도에서 ‘모’에 해당한다고 생각한다. 뮤지컬 <빈센트 반 고흐> 공연장에 들어서면 하얀 벽면이 병풍처럼 서있는 걸 볼 수 있다. 티끌 하나 없이 하얗기만 한 벽면은 극이 진행되는 동안 빈센트가 생을 마감하기 직전 머물렀던 오베르의 방이 되기도 하고, 목사였던 아버지의 숨막힐 정도로 아늑한 집이 되기도 하며, 그가 스스로에게 총구를 겨누었던 갈대밭이 되기도 한다. 일종의 도화지 같은 존재인 것이다. 뮤지컬은 이 도화지에 빈센트와 테오의 이야기를 그려나간다.

  


빈센트 반 고흐_공연사진 (7).jpg

 


하지만 뮤지컬 <빈센트 반 고흐>는 단순히 공간의 확장뿐만 아니라 관계와 정서를 표현하는 데 있어서도 기술을 효과적으로 활용한다. 빈센트와 갈등을 겪었던 아버지와 아톰(아카데미에서 빈센트와 예술에 대한 의견 충돌이 있었다)을 그릴 때 벽면에 비친 빈센트는 아주 작게, 아버지와 아톰은 아주 커다랗게 보이도록 구도와 조명을 조작한다. 아버지의 반대로 사랑했던 여자와 이별한 뒤, 빈센트는 아버지에 대한 분노와 자신의 무능함에 대한 좌절감을 온몸으로 표현하며 방안을 헤집고 바닥을 주먹으로 내리치는데, 이 때 맵핑을 활용해 나무로 된 마룻바닥이 꺼지는 것처럼 만들어 빈센트의 불안감을 극적으로 드러낸다.




테오와 빈센트, 빈센트와 테오


 
테오와의 관계를 기반으로 하긴 하지만 빈센트 반 고흐가 주인공이기 때문에 극은 빈센트 반 고흐를 중심으로 흘러갈 수밖에 없다. 하지만 테오와 빈센트의 관계를 중심으로 삶의 한 토막을 풀어간다는 본래 취지를 잊지 않고 작품은 극의 앞뒤로 테오와 빈센트를 차례로 그려가면서 스토리를 전개해나간다.

 

뮤지컬 <빈센트 반 고흐>는 동생 테오가 고흐의 유고전을 준비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바로 이어지는 장면은 빈센트가 자신의 삶을 회고하며 갈대밭에서 생을 마감하기 직전의 모습이다. 극의 끝자락에서, 동생 테오는 실제 그랬던 것처럼 빈센트가 떠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세상을 떠난다. 이후 이어지는 장면에서는 초반부에 등장했던 빈센트의 죽기 전 모습이 반복된다.



빈센트 반 고흐_공연사진 (1).jpg



구조적인 부분을 넘어 테오와 빈센트가 서로 다른 시공간에서 교감하는 요소들 역시 등장한다. 앞서 언급한 유고전을 준비하는 테오와 빈센트의 죽기 직전의 모습은 완전히 단절되지 않으며 일부분이 교차한다. 그러면서 테오가 빈센트의 캔버스를 쓰다듬을 때, 빈센트 역시 그 캔버스를 쓰다듬으며 서로 다른 시간대에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두 손이 스치는 장면이 연출된다. 또한, 빈센트 반 고흐의 정신 건강이 악화됨에 따라 테오와 빈센트는 함께 다리 한 쪽을 절기 시작한다. 이러한 디테일들을 통해 뮤지컬은 테오와 빈센트의 영혼이 마치 연결된 것처럼 표현함으로써 두 사람의 끈끈한 우애를 지속적으로 드러낸다.

 

 

 

잘 만들어서 힘든 뮤지컬


 

빈센트 반 고흐 역의 배두훈 배우의 연기 때문에 극을 보는 내내 힘이 들었다. 극은 감성적인 측면에서 굴곡이 심한 편이다. 초반의 빈센트 반 고흐는 지극히 평범하다. 그러니까, 스스로 귀를 자를 만큼 정서적으로 불안해 보이지 않는다. 그저 흔한 청춘, 젊은이들과 다르지 않다. 자신이 가고 있는 길을 의심하고, 현실과 이상 사이에서 갈등하며 권태로움을 느낀다. 그러면서도 동생 테오와 짖궂은 장난도 치고, 사랑에 빠지기도 하며 그래도 나아질 거라며 긍정하는 인물이었다.


 

빈센트 반 고흐_공연사진 (3).jpg



하지만 아버지가 돌아 가시고, 하루 한 끼도 챙겨먹기 힘든 가난한 예술가가 되고 난 이후 빈센트은 감정 기복은 극으로 치닫는다. 희망에 가득 차서 그림을 그리다가도, 동생에 대한 죄책감에 시달리며 알코올 중독에 빠진다. 끝까지 자신을 믿어주는 동생을 봐서라도 다시 잘 살아보겠다고 다짐하지만, 절망감에 자주 고꾸라진다. 이후 심신미약이 절정에 달하면서 그는 고갱에게 집착하고, 종래엔 자신의 한 쪽 귀까지 절단한다.


이처럼 들쑥날쑥하고 복잡한 감정들이 극 전반에 걸쳐 표출되다 보니 빈센트의 감정선을 따라가다 보면 관객까지 덩달아 지치게 되는 거다. 물론 지친다는 건 긍정의 표현이다. 미친 듯이 널뛰는 빈센트의 내면에 관객이 함께 올라타 있었다는 뜻이니 말이다. 그만큼 잘 만든 뮤지컬, 좋은 연기였다고 생각한다.

 



So, Who was Vincent?


 

뮤지컬 <빈센트 반 고흐> 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넘버는 ‘From 빈센트’였다. 'From 빈센트'는 극의 초반과 마지막, 빈센트가 죽음을 맞이하기 전 스스로 부르는 노래다. 이 몇 마디의 가사 안에 빈센트 반 고흐가 어떤 사람인지, 뮤지컬이 빈센트 반 고흐를 어떤 사람으로 그리고 싶은지가 여실히 드러난다.



그동안 주고 받았던 편지들

그와 함께 보냈던 수많은 작품들

열심히 살았지

그리고 그 안에 무수히 많은 사건들

테오 넌 아마 지긋지긋할지도


From 빈센트

난 아무렇지 않다고. 걱정하지 말라고.

From 빈센트 반 고흐

모든 게 잘 될 거라고. 아무 문제 없을 거라고.

From 빈센트 반 고흐”



빈센트 반 고흐는 정말 열심히 사는 사람이었다. 훗날 알코올 중독에 빠지긴 했지만, 젊은 시절 그는 선교사가 되기 위해 대학 입학을 시도 하기도 했으며, 탄광촌에서 어려운 사람들의 생활을 함께 하기도 했다. 예술가의 길을 걷기 시작한 뒤로는 테오가 뜯어 말릴 정도로 그림에 열중하곤 했다.



빈센트 반 고흐_공연사진 (4).jpg



마음이 시키는 일을 업으로 삼고 미친 듯이 열중하는 사람이었으나, 그에게는 기본적인 생활을 영위할 만큼의 경제적 여유조차 허락되지 않았다. 잘 알려진 대로 생전 빈센트의 작품은 거의 팔리지 않았고, 온전히 테오의 지원에만 생계를 의존해야 했다. 안타깝게도 빈센트는 테오의 돈을 태연하게 받아 쓸 만큼 독하지 못했다. 뮤지컬에서도 빈센트는 테오가 두고 간 현금이나 생필품을 보며 미안해하거나, 테오에 대해 노래하며 언젠가 꼭 갚겠다고 이야기하는 장면들이 자주 등장한다.


“꿈이 빚을 졌다”고 울부짖는 빈센트의 대사에서 그는 삶의 매 순간 테오에 대한 죄책감과 자신의 무능을 경멸하며 괴로워했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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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와중에 빈센트는 낭만적이고 희망적이기까지 했다. 사는 동안 그는 예술가로서 인정받지도 못했고, 세속적으로 성공하지도 못했다. 하지만 뮤지컬 <빈센트 반 고흐>는 그가 분노와 불안함에 몸부림치는 것만큼이나 자주, 희망과 미래에 대해 노래하는 장면이 등장한다. 캔버스를 살 돈이 없어 같은 캔버스가 두툼해질 때까지 덧그리고 덧그릴 수 있었던 건 그래도 언젠간 상황이 나아질 것이라며 스스로를 다독였기 때문이다. 아마 빈센트가 현실적이고 비관적이었다면 애초에 예술가로 살다 생을 마감하지는 못했을 거다. 그림 그리는 일을 그만두었거나, 자연히 생이 다할 때까지 뻔뻔스럽게 살아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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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시류와는 다른 자신의 스타일을 뚝심 있게 고수하고, 동생에 대한 죄책감과 중압감을 견디면서, 대책 없는 희망까지 짊어지기에 그는 너무 약했다. 그 나약함이 사랑스러울 만큼 무른 사람이었다. 그렇게 연약한 사람이 그토록 무겁고 날카로운 것들을 지고 다녔으니, 스스로를 없애버리지 않고서는 배겨낼 수 없었던 거다. 슬프고 아름다웠던 사람. 그게 이 뮤지컬이 그리고 싶은 빈센트가 아니었을까.


*


만약 연말에 이 공연을 놓쳤다면, 다른 사람들의 리뷰를 읽으며 스스로 포기한 선물을 무척이나 아쉬워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 글을 읽는 여러분에겐 아직 기회가 많다. 뮤지컬 <빈센트 반 고흐>의 이번 공연이 3월까지 진행될 예정이기 때문이다. 빈센트 반 고흐를 좋아한다면, 그래서 이미 그의 삶을 다룬 작품을 여럿 접해봤다면, 뮤지컬 <빈센트 반 고흐>는 후회 없는 선택이 될거라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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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자
2019.12.07 ~ 2020.03.01

시간

화, 수, 목, 금 8시

토 3시, 7시

일 2시, 6시

월 공연 없음

 

장소
예스24스테이지 1관

티켓가격

R석 55,000원

S석 44,000원


 

[반채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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