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나의 마지막 이십 대의 순간 [사람]

서른을 위해 달려온 나의 10년
글 입력 2020.01.01 1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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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의 마지막 문단, 마지막 문장만이 남았다. 온점을 찍고 나면 새로운 장이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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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미성년에서 성년이 되는 전환점, 대학 입학과 사회인으로 첫걸음 등 알을 깨고 나오게 되는 순간, 무한한 가능성 중 하나를 골라서 자신의 길로 선택하는 시작점. 우린 20대를 살아가는 것만으로도 많은 것들을 경험한다.

 

나에게는 스무 살이라는 전환점이 유난히 크게 느껴졌다. 성인이 되면, 대학생이 되면 세상이 변하는 줄 알았는데 내가 변해야했기 때문일까. 부담스러웠고 버거워서 눈을 감고 피하고 싶었다. 그저 약간의 시간이 흘렀을 뿐인데 자라나는 청소년에서 성숙해져야 할 어른이 되어야 했다. 해야 할 게 많은데 어디서 어느 것부터 시작해야 할 지 몰라 막막했다. 다들 일단 아무거나 해보라는데 내 눈에는 그 '아무 것'이 보이지 않아 시작점 찍는 것조차 많은 고민을 필요로 했다. 새로운 만큼 혼란스러웠다.

 

대학생이 되었어도 벚꽃이 피는 계절에는 늘 시험을 봤으며, 중간기말이 끝나고 방학이 되면 어학시험과 자격증 시험도 준비해야했다. 어디에다 쓸지도 모르면서 필요하다고 하니까 남들 따라 시험을 접수했다. 스펙이란 걸 쌓기 위해 대외활동을 알아보고 자기소개서 한 칸 채울 내용을 만들기 위해 이리저리 움직였다. 그러다보니 금세 20대 중반이 되었고, 학생에서 사회인으로 전환할 시기가 찾아왔다.


학생에서 직장인으로 순조롭게 흘러가는 줄 알았는데 학생은 학생이고 신입사원은 신입사원이었다. 선배들은 이력서 넣을 때 학생 신분이면 좋다고 해서 졸업을 유예했는데 정신을 차리고 보니 그새 취업시장은 경력 있는 신입을 선호하기 시작했다. 내가 취업할 수 있을까, 미래가 불확실로 칠해지기 시작했다.

 

졸업을 준비하느라 취업을 제쳐뒀다. 하지만 치워둔다고 존재감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취준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말았다. 스트레스는 면역체계에 영향을 주었고 나는 피부질환을 얻었다. 치료를 위해 취업준비는 미뤘고 취준 공백기가 생겼다. 서류를 제출하고 면접 제안이 올 때마다 공백기를 설명할 이유부터 생각했고 반응이 나쁘지 않았던 이유를 들고 이곳저곳 돌려막았다.


하지만 면접이 거듭될수록 점점 더 초조해졌다. 컴퓨터 앞에 앉아서 끊임없이 서류를 제출하던 때는 아무데나 불러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내가 원하는 곳은 나를 부르지 않았고 나를 부르는 곳은 성에 차지 않았다. 내가 이렇게나 형편없는 사람이었나, 면접을 보고 돌아오는 길에는 늘 생각이 많아졌다. 좋은 곳에 가라고 좋은 정장을 마련해주던 엄마의 얼굴이 떠올랐다. 엄마가 사준 정장의 의미를 내가 깎아내리는 것 같았다. 내 자신이 하찮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어뒀던 최저선은 점점 아래로 내려갔다. 놓치지 않으려던 조건들을 하나씩 타협하기 시작했다.

 

조바심이 불러온 과한 타협은 좋지 않은 선택으로 이어졌다. 그 결과, 내가 20대에 잘한 일중 하나는 퇴사가 되었다. 걱정은 되었지만 후회는 없었다. 잘못된 선택을 철회하는 것도 하나의 성장이라고 생각했다. 내 잘못을 인정하고 어줍잖은 편안함에 나를 눌러 앉히지 않기로 했다. 내 인생 몇 안 되는 과감한 선택이었다. 공백기가 길어지면 안 되니까, 나이 한 살 더 먹기 전에. 어디든 들어가야 할 것 같아서 최저선을 낮추고 여러 조건을 접는 건 그릇된 결정이었다.

 

지나고 보니 학생에서 직장인이 된다는 건 수 갈래로 뻗어있는 가능성 중 하나를 골라 집중해서 키워나가는 시작점이란 걸 알게 되었다. 내가 가지고 있는 여러 가지 가능성을 접어야하는 게 취직이란 걸 일찍 알았더라면 더 치열하게 고민하고 신중하게 결정했을텐데, 누군가 알려주지 않으면 모르는 일이었고, 스스로 깨우치기엔 어렸다. 어디로 가야할지도 모르면서 냅다 둥지를 벗어나 날개짓을 하려했다.

 

서른을 눈 앞에 두니 20대는 인생을 살아갈 준비를 하며 막 발을 떼는 시기라는 걸 알게 되었다. 30대를 잘 걸어나가기 위해 지반을 다지는 때. 무언갈 이뤘으면 했지만 이루지 못했고 아직 눈에 띄는 성과 하나 얻지 못했다. 하지만 20대를 되돌아보면 나는 제법 멀리 걸어 나왔고 전에는 보지 못했던 것들을 깨달았다. 세상의 많은 보편적인 감정들을 배웠고 이해의 폭이 전보다 넓어졌다. 20대의 내가 세상을 하나하나 경험했기 때문에, 나는 이제 세상을 좀 더 이해할 수 있다. 다가올 서른이 설렌다.

 

그래서

나는 나의 스물에서 스물아홉까지의 모든 순간이 뿌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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