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당신에게 필요한 위로의 말은 무엇인가요? [음악]

선우정아의 정규 3집 타이틀곡 ‘도망가자’
글 입력 2019.12.31 15: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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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위로의 목적으로 가장 많이 건네는 말은 ‘힘내’다. 나쁘지 않다. 힘이 없는데 누군가가 나를 생각해주고 힘을 내라고 한마디 해주는 게 얼마나 감사한가. 그런데 너무 지쳐서 모든 게 부정적으로 들릴 때가 있다. ‘힘내’라는 말이 나를 놀리는 건가 싶고, 힘을 내는 것도 그럴 힘이 남아 있어야 하는 것 아니냐는 퉁명스러운 생각이 먼저 떠오르는 그런 때.

 

누구나 그렇듯이, 나도 하고 있는 일이 너무 버거워 모든 게 다 하기 싫었던 때가 있었다. 막막하고 무기력한 나에게 주변 사람들은 힘내라고, 결국은 다 잘 될 것이라고 이야기해주었다. 그런데 그때의 나는 그 말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힘내기 싫고 잘 안 되어도 좋으니 그저 지금 당장, 모두 그만두고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차마 모든 것을 다 버리고 훌쩍 떠날 용기는 없고, 그렇다고 하던 일을 계속해서 열심히 할 힘도 없어서 그냥 가만히 앉아 시간을 보내곤 했다.


그런 나의 마음을 알고, 나와 가장 가까운 사람은 그만둬도 된다고 말해주었다. 다 그만두고 그냥 단순히 행복하게 살라고, 그래도 된다고 말해주었다. 그런데 그 말을 듣고 나는 화를 냈다. 돌이켜보면 참 미안하다. 기껏 생각해주고, 걱정해주고, 원하는 답까지 제시해줬는데 나는 왜 화가 났을까. 그때는 내가 왜 화를 내는지도 몰랐다. 나는 무슨 위로의 말이 필요했던 걸까.


최근 발매된 선우정아의 정규 3집 타이틀곡 ‘도망가자’는 제목 그대로 ‘도망가자’는 위로의 말을 건넨다. 선우정아는 다음과 같이 이 노래를 소개한다.


 

‘사랑하는 사람이 힘겨워할 때, 애써 그걸 참고 있는 게 보일 때 정말 괴롭지요. 물리적인 타인이라 해줄 수 있는 게 없으니 그저 바라보는 그 고통은 정말 큽니다. 그래서 노래라도 해보는 거지요. 도망가자고. 실제로 도망갈 수는 없겠지만, 혹은 도망쳐봤자 곧 돌아와야 하겠지만, 그래도 나라도 옆에 있을 테니 힘을 내달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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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직비디오는 평범한 아파트와 집안의 풍경, 그리고 홈쇼핑 소리, 전화벨 소리 등 지극히 일상적인 소리들로 시작된다. 그 속에 멍하니 한 중년의 여성이 앉아있다. 이 장면만 보아도 자연스레 영화 <82년생 김지영>이 떠오른다. 노동이 일상이 될 정도로 일해야 했던 수많은 여성이 생각난다. 일상적이고도 답답한 그 소리 사이로 한순간 선우정아의 ‘도망가자’는 목소리가 귀에 꽂힌다.

 

선우정아가 위로의 말을 노래하는 동안, 뮤직비디오 속 인물은 어두운 집안을 멍하니 바라본다. 평범한 일상이라면 집안을 바쁘게 돌아다녔겠지만, 그는 그저 가만히 그 풍경들을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은, 마치 영혼이 아예 없는 듯한 눈빛으로 둘러본다. 그는 세탁기 앞, 화장실, 부엌을 차례로 바라보며 어떻게든 평소처럼 견뎌보려는 것 같다. 하지만 물이 흐르고 있는 화장실 수도꼭지조차 잠그지 못하고 그저 바라만 본다. 그리고 다시 거실에 가만히 앉는다.

 

다시, 견뎌보기 위해 그는 부엌으로 간다. 습관처럼 냉장고에서 반찬통을 꺼내 보지만, 무언가 더 할 힘이 없다는 듯 그대로 다시 앉는다. 아무런 표정의 변화도, 말 한마디도 없지만, 그의 삶의 무게가 견딜 수 없을 만큼 무거움이, 그 얼굴에 빛 한 줄기도 존재하지 않음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도망가자 

어디든 가야 할 것만 같아

넌 금방이라도 울 것 같아

괜찮아


우리 가자

걱정은 잠시 내려놓고

대신 가볍게 짐을 챙기자

실컷 웃고 다시 돌아오자

거기서는 우리 아무 생각말자

 

가보는 거야 달려도 볼까

어디로든 어떻게든

내가 옆에 있을게 마음껏 울어도 돼

그 다음에


돌아오자 씩씩하게

 

너의 얼굴 위에 빛이 스며들 때까지

가보자 지금 나랑 


도망가자

 


뮤직비디오 속 인물의 모습을 눈으로 좇으며 선우정아의 노래를 찬찬히 듣는데, 유독 나에게 더 큰 위로로 와 닿는 가사가 있다.


“그 다음에 돌아오자 씩씩하게”


뮤직비디오의 마지막에서 그는 현관이 열렸다가 닫히며 조명이 켜지는 것을 본다. 아마 그가 어딘가로 도망갔다가 돌아온 것이 아닐까. 그는 일어나 가스 불을 켜고 무언가 하기 시작하고, 냉장고에서 무엇을 꺼내는 것 같은 소리와 함께 뮤직비디오는 끝난다.

 

뮤직비디오가 시작할 때와 비슷한 일상적인 소리지만 왠지 다르게 느껴진다. 어디론가 도망을 갔다가 가스 불을 켤 정도의 힘을 가지고 돌아온 그는 밥을 먹으며 더 큰 힘을 얻을 것이다. 그리고 여성이라는 이유로 해야만 했던 그런 일상 대신 새로운 일상을 꾸려나가리라 기대한다. 뮤직비디오 끝에서의 밥을 차리는 듯한 일상적인 소리는 그가 만들어갈 새로운 일상의 소리로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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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그만두어도 된다고 말해준 사람에게 나는 왜 화를 냈을까? 왜 나는 ‘도망가자’라는 말보다 ‘돌아오자’라는 말이 더 기억에 남을까?

 

그때 나는 도망가고는 싶었지만 다 버리긴 싫었던 것 같다. 그만두라는 말은 왠지 내가 지금껏 열심히 버텨왔던 것이 잘못된 길이었다고 인정하는 것 같았다. 그만두는 게 행복해지는 길이라면 지금까지 난 뭘 한 걸까, 난 그만두어도 될 것을 미련하고 답답하게 견디고 있었던 걸까, 등의 생각이 무의식중에 있었던 것 같다.

 

선우정아의 ‘도망가자’는 ‘그만두라’는 말과 다르게 느껴진다. 선우정아는 자신과 함께 도망가서 거기서 만큼은 아무 생각도 없이 실컷 웃고, 달려도 보고, 마음껏 울고, 힘을 얻어 씩씩하게 돌아오자고 말한다. 그 말은 지금껏 내가 해왔던 것이 틀리지 않았음을, 그리고 그것이 멀리 도망가서 충분히 쉬었다가 와야 할 만큼 힘든 일이었음을 알아주는 것 같아 더 위로가 된다.

 

설령 내가 지금껏 걸어왔던 길이 영영 도망쳐야 했을 잘못된 길이었어도, 틀린 길을 걸어봤던 ‘나’는 틀리지 않았다. 선우정아의 ‘돌아오자’는 말은 똑같은 일상을 견뎌낼 힘을 가지고 돌아오자는 것보단, 어떤 일상을 살든 그 자체로 온전한 ‘나’에게로, 일상을 바꿔야 한다면 그럴 힘을 가지고 돌아오자는 말일 것이다.

 

이 글을 읽는 분들은 어떤 위로의 말이 필요할까. 알 수 없지만, 금방이라도 눈물이 날 것처럼 힘들다면 어디론가 도망가 보자. 그곳에서 마음껏 쉬어 빛을 머금고 돌아오자. ‘나’에게로.

 

 

 




[정다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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