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영화 “기생충” 이전의 칸 영화제 진출작, 영화 "옥자"를 얘기하다 (1부) [영화]

글 입력 2019.12.28 1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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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전역에서 영화 <기생충> 열풍이 불었다. 영화 <기생충>은 2019년 제72회 ‘칸 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이후 한국에서 많은 찬사를 받으며 성황리에 상영되었고, 지금 그 찬란함은 세계 곳곳에 퍼져 나가고 있는 중이다. 특히, 미국에서 “Parasite”라는 타이틀을 걸고 상영한 이 영화는 미국의 평론가들에게는 물론 현지인들에게 뜨거운 반응을 얻고 있다.

 

 

 

 

특기할 만한 점은 현재 <기생충>을 향한 열광이 작품의 선에서 끝나지 않고 그것을 탄생시킨 ‘봉준호’ 감독에게도 향하고 있다는 점이다. 미국 현지 시간으로 12월 9일, 봉준호 감독이 미국의 국민 토크쇼 (일명 ‘지미 팰런 쇼’)에 등장하여 큰 화제가 되었다.(위 영상에서 봉준호의 티비 쇼 출연이 미국 네티즌들 사이에서 화제였음을 잘 정리하고 있다)

 

미국 네티즌들의 의견은 분분하였다. <기생충>을 보고 큰 감명을 받아 봉준호 감독에게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는 긍정적인 반응도 있었고, 영화에 그다지 특별함을 느끼지 못했다는 반응도 있었다. 또 몇몇은 <기생충> 이전부터 봉준호 감독의 팬이었다고 밝히며 <기생충> 못지않은 그의 수작들을 언급하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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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봉준호 감독의 칸 영화제 진출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바로, <기생충> 이전 2017년도에 개봉했던 영화 <옥자>가 있다. <옥자>는 국내에서 크게 흥행을 한 작품은 아니지만 2017년 《뉴욕타임스》에서 ‘올해 최고의 영화 TOP10’에 선정되는 등 그 작품성은 인정 받은 바 있다.

 

본 오피니언은 1부, 2부로 나뉘어, 올해 2019년 봉준호 감독이 남긴 성과를 기념하는 차원에서 <기생충>과 마찬가지로 ‘칸 영화제’에 초청되었던 영화 <옥자>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 보려고 한다. 1부인 이 글에서는 <옥자>의 대략적인 줄거리와 그에 대한 감상을 밝히고,<옥자>와 <기생충>사이에 존재하는 유사성을 일부 언급할 것이다. 봉준호 감독의 작품들 중에는 여타의 뛰어난 작품들이 많지만 칸 영화제에 진출한 두 작품은 세계의 보편적인 이슈에 뛰어들었다는 큰 흐름을 공유하고 있으므로, 둘을 비교하는 작업은 유의미한 일일 것이다.

 

 

 

공장식 축산을 비판한 영화, <옥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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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린 집으로 갈 거야, 반드시 함께


강원도 산골 소녀 ‘미자’(안서현)에게 옥자는 10년 간 함께 자란 둘도 없는 친구이자 소중한 가족이다. 자연 속에서 평화롭게 지내던 어느 날, 글로벌 기업 ‘미란도’가 나타나 갑자기 옥자를 뉴욕으로 끌고 가고, 할아버지(변희봉)의 만류에도 미자는 무작정 옥자를 구하기 위해 위험천만한 여정에 나선다.

 

극비리에 옥자를 활용한 ‘슈퍼돼지 프로젝트’를 추진 중인 ‘미란도 코퍼레이션’의 CEO ‘루시 미란도’(틸다 스윈튼), 옥자를 이용해 제2의 전성기를 꿈꾸는 동물학자 ‘조니’(제이크 질렌할), 옥자를 앞세워 또 다른 작전을 수행하려는 비밀 동물 보호 단체 ALF까지. 각자의 이권을 둘러싸고 옥자를 차지하려는 탐욕스러운 세상에 맞서, 옥자를 구출하려는 미자의 여정은 더욱 험난해져 간다.

 

- 영화 <옥자> 시놉시스

 

 

영화의 전체 줄거리는 현대의 ‘공장식 축산’ 시스템을 겨냥하고 있다. 옥자는 미자의 할아버지가 운영하는 농가에서 자유롭게 자연을 영위하고 미자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자라난 슈퍼 돼지이다. 하지만 그렇게 행복하게 자란 탓이었을까, 미란도에서 전 세계 여러 국가의 농가에 맡긴 슈퍼 돼지들 중에 ‘베스트 슈퍼 돼지’로 뽑혀 강제로 뉴욕으로 끌려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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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자와 미자의 원치 않게 시작 된 여정은 동물이 인간 세상에서 고통을 받는 경로와도 같다. 처음 시골에서 서울로 이동한 후 서울의 시내에서 벌어지는 추격전에서 옥자는 사람들에게 우스꽝스러운 구경거리가 된다.

 

물건 취급을 받으며 좁은 트럭 안에 수송되던 옥자는 미자와 비밀 동물 보호 단체 ALF에 의해 잠시나마 탈출하게 되고, 미란도 기업의 사람들과 경찰들에게 쫓긴 미자와 옥자는 몸을 피하다가 사람이 몰려 있는 좁은 공간인 지하 상가로 향한다. 괴물 취급을 받고 카메라에 찍히는 등 천대를 받으며 쫓기던 옥자는 휠체어를 탄 환자를 피하려다 넘어져 부상을 입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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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에 당도하고 나서부터는 본격적인 험난한 고생길의 시작이다. 미란도 기업의 추악한 민낯을 고발하기 위해 옥자의 귀 뒤에 블랙박스를 설치한 ALF는 옥자가 미란도 기업의 은밀한 실험실에서 당하는 끔찍한 일들을 여과 없이 목격하게 된다. 그리고 그 일부는 우리 관객들에게도 전해진다.

 

애초에 ‘실험실’이라는 공간 자체가 미란도 기업의 입장에서는 밝혀져서는 안 되는 영역이다. 옥자와 같이 ‘슈퍼 돼지’라고 불리는 품종을 자신들이 발견한 돌연변이 품종을 교배하여 만들어냈다고 거짓 진술하였기 때문이다. 실험실에는 자신들이 그런 품종을 만들어내기 위해 저지른 유전자 조작의 결과물들이 그대로 드러나 있다.

 

동물들이 실험체로서 감금되어있는 감옥과 같은 공간에서 옥자는 학대와 수모를 겪는다. 강제 교배를 당하고, 명예에 눈이 멀어 미쳐버린 닥터 조니에게 시식용 고기를 추출당하는 모진 고문을 당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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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자와 미자의 마지막 탈출지였던 ‘공장’은 생명의 존귀함이 철저히 배제되는 현장을 여실히 드러내는 곳이다. 육류에 대한 거대한 수요를 가성비 좋게 소화해내기 위한 공장 시스템은 옥자와 같은 슈퍼 돼지들을 수용소와 같은 열악하고 비좁은 공간에 몰아넣어 놓았다가 때가 되면 총으로 쏴 죽이고, 여느 육류 생산 공정과 같은 절차를 밟는다.

 

옥자의 여정이 산골에서 서울, 서울에서 뉴욕을 향하면서 겪는 고통의 강도는 점점 거세진다. 이는 어쩌면, 더 큰 자본주의 사회로 진입할수록 동물이 감수해야하는 고통의 크기가 더 커질 수 있음을 나타낸 것인지도 모른다.

 

 

 

영화 <기생충>과의 공통분모① - 불완전한 인간에 대한 고찰


 

봉준호 감독의 영화 속에서 그려지는 인간상은 다채롭다. 특히, 인물마다 하나씩 흠결이 나 있다는 점이 매력적이다. 현실에서 마주치기 싫을 정도로 추한 인간, 무섭도록 현실적인 인간, 혹은 완벽해 보이지만 사람 같은 면모를 지닌 인간 등 ‘영웅적’이라거나 ‘완벽한’ 인간은 존재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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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생충>에서의 '기택'(송강호) 가족은 첫 번째 경우(“마주치기 싫을 정도로 추한 인간”)에 속할 것이다. 누군가가 몰래 남의 집을 제 집인 양 차지한다는 것은 분명 무서운 범죄 행위이다. 그리고 그들은 그런 행위를 별다른 양심의 가책 없이 저지르는 인간들이다. 그런 점에서 그들은 영화의 제목처럼 ‘기생충’과 같다.

 

그러나 그들은 ‘기생충’ 같지 않은 행동을 하기도 한다. 온 가족과 함께 남의 집 거실에서 남의 집 음식으로 잔치를 벌인 기택은 뒤늦게 자신이 자리를 빼앗은 기사의 안위를 걱정하기도 하고, '충숙'(장혜진)은 뒤늦게 '문광'(이정은) 부부를 생각하며 파티 음식을 챙겨주려고 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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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자>에서 조니 박사는 대외적으로 ‘동물 애호가’의 이미지를 지니고 있다. 그리고 그런 이미지 덕에 미란도 기업의 마스코트로 자리매김하여 자신의 명성을 이어 나가게 된다. 그러나 실상은 옥자를 비롯한 실험체들이 수감된 끔찍한 실험실에서, 자신이 진행하는 티비 프로그램에서의 이미지와는 전혀 딴판인 모습을 보여준다.

 

조니 박사는 영화 내내 미란도 기업의 편에 서서 좋지 않은 인간상으로 그려지지만, 그가 그 자리까지 갈 수 있게 만들어준 그의 우호적인 이미지는 그가 실제로 동물을 사랑하고 동물과 잘 교감할 수 있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만들어진 것이었다.

 

그는 계속해서 분열된 모습을 보여준다. 옥자를 실물로 처음 만났을 때는 경이로움을 금치 못하는 얼굴과 함께 생명에 대한 순수한 열망이 담긴 눈빛을 했다가도, 금방 그것이 시청자들의 이목을 끌 거란 생각에 얼른 자신을 찍으라고 재촉한다. 또 옥자와 단 둘이 실험실에 있을 때 동물에게 모진 짓을 하는 타락한 자신을 자책하며 후회하다가도, 자신에게 창피를 준 루시에게 앙갚음을 하겠다는 생각으로 옥자에게 상처를 입혀 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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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생충>에서 기택 가족과 <옥자>에서 조니 박사의 분열된 모습은 관객으로 하여금 그들의 본질을 탐구하도록 만든다. 이런 모습도 저런 모습도 지닌 인물이라면 어느 쪽이 진짜일까, 하고 말이다. 물론, 인물이 드러내는 어떤 모습도 그의 진실된 모습일 것이다. 하지만, 기택 가족의 범법 행위의 이면에는 “가진 자들이니 이 정도는 괜찮겠지”라는 부의 차이에서 비롯된 정당화 기제가 감춰져 있음을, 또한 조니 박사가 동물 애호가였음에도 불구하고 더러운 사업에 발을 들인 것은 명예에 대한 욕망을 좇기 위함이었음을 각 인물들을 탐구해보면 어렵지 않게 깨달을 수 있다.

 

즉, 우리의 윤리관에 어긋나는 행동을 인물들이 저지르는 이유는 그 인물 자체가 태초에 악하게 설계되었다기 때문이라기보다는, '도덕'과 '자신들의 생존'이라는 기준 중에서 '자신들의 생존'에 가까운 선택을 벌일 때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볼 수 있다. 물론, <기생충>에서 기택 가족이 벌인 행동은 기본적인 생존 욕구의 충족을 뛰어 넘는 사치스러운 행동이었지만, 이는 어찌 보면 그동안 반지하 집에 살며 여윳돈이라고는 없었던 그들이 그동안 만족시키지 못했던 세련된 삶의 욕구(청결한 주거 환경이라거나 질 좋고 건강한 식사, 유희의 욕구 등)를 한꺼번에 분출시킨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이와 같은 맥락으로 바라보면 조니 박사의 악행도 자신이 진행하는 티비 프로그램의 시청률이 낮아지고 있는 상황에서 미란도 기업의 제의는 달콤한 것이었던 데다, 자칫하면 한국에서 온 시골 소녀에게 그 자리를 빼앗길 판이니, 그가 했던 선택은 지극히 자기 이익과 생존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던 것이다.

 

이처럼 일관되지 않은 인간상을 통해 봉준호 감독은 그들의 성격과 행동의 함의하는 바를 전한다. <기생충>에서는 그것을 통해 사회의 계급 갈등을 심도 있게 다뤄내었고, <옥자>에서는 사회에서 생존하려는 몸부림이 어떻게 명예욕과 연관되는지, 또 이 명예욕으로 인해 인간이 어디까지 타락할 수 있는지 여실히 보여주었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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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는 여기서 마친다. 2부에서는 본격적으로 앞서 글의 도입부에서 밝혔던 <기생충>과 <옥자>가 공유하고 있는 범세계적인 흐름에 대해 얘기할 것이다. 더하여 <옥자>만이 가지는 영화적 매력을 이후의 이야기에서 마저 다루도록 한다.

 


- 1부 마침.

 

 

[박소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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