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약에 찌든다는 것은 [사람]

글 입력 2019.12.27 2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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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은 몸에 좋지 않아. 약으로 이곳을 고치면 약 때문에 다른 곳이 아프게 돼. 어쩔 수 없이, 심각한 병에 걸렸을 땐 먹어야겠지. 근데 어지간해선 안 먹는 게 좋아. 사람은 스스로 치유할 수 있게끔 만들어졌어. 그리고 그 유명한 그리스 의학자 히포크라테스는 음식으로 고치지 못하는 병은 약으로도 고칠 수 없다고 했잖니.”


 

약에 찌든 생활을 할 당시, 어머니가 자주 해주셨던 말이다. 약을 끊으라는 뜻에서, 최대한 줄이라는 뜻에서 한 말일 테지. 근데 나도 약에 의존하고 싶어서 한 게 아니었다. 일상생활이 불가능하니까, 아주 잠깐뿐인 시간에도 에너지를 쓸 수가 없으니까. 살아야 하는데, 살아야겠는데, 살고 싶은데…!

 

정신적 병은 검사해도 아무 이상이 없다고 나온다. 그럼 정신과를 가서 약을 처방받는 것밖엔 방도가 없다. 2020년이 다가오면 자그마치 10년째가 된다. 처음 5~6년은 과학적인 방법 안에서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은 다 해 봤다. 몸이 조금만 피곤해도 쓰러졌기에 서울대학병원에 있는, 뇌 쪽으로 뛰어나단 분께 검사도 받아 봤다. 뇌파 검사와 각종 검사 등등. 문제는 없었다. 내가 수면에 취약한 체질이라나. 수면 다원화 검사도 해 봤지만, 결과는 같았다. 서울에서도 유명한 정신과 병원, 고향인 대전에서도 유명한 곳, 상담 치료, 정신과지만 약물이 아닌 인지 치료를 하는 곳 등등 많은 병원에 다녔다. 그만큼 많은 의사도 만났고.

 

그들(의사) 말론 내 몸이 너무 민감하고 예민해서 다른 사람은 느끼지 못할 정도의 약 조절이라도 나는 그 조금의 차이에 크게 반응한다고 한다. 실제로 그러했다. 아주 조금, 특정 약의 용량을 정-말 소량 줄이거나 늘리면, 나는 바로 잠을 자지 못하거나 과수면이 오곤 했다. 2주 이상 같은 약을 먹어 본 적도 없다. 그때그때 내 컨디션에 따라 평소엔 잘 듣던 약도 갑자기 안 듣곤 해서 자주 약을 바꾸는 바람에 꾸준히 복용한 약 같은 건, 내게, 없다. 이제는 뭐, 온갖 색상의 약을 다 먹어본 것 같다. 그리고 내가 무슨 약을 먹는지도 모른다. 묻지도 않는다. 어차피 바뀔 거 약 이름을 안다 한들 뭐가 달라지랴. 그리고 너무 오랜 기간 먹어서 약 이름을 알 필요성도 모르겠다, 이제는.

 

그래서 한동안 약에 찌들었었다. 다 포기하고, 평생 약을 먹을 각오를 하고, 약에 의존했다. 밤엔 잠이 안 오니 수면제를 복용하고, 수면의 질도 좋지 않아 악몽과 식은땀이 심해서 자주 깨는 증상 때문에 취침 약도 먹었다. 그렇게 아침이 되면 몽롱하고 머리에 안개가 가득한 느낌이다. 그 어떤 것에도 집중하기가 힘들고 몸도 가누기 힘들다. 그래서 각성제를 먹는다. 그리고 점심쯤 항우울제와 몸에 활력을 주는 약을 먹고, 필요시 두통약과 공황장애 약을 먹는다.

 

문제는 약 부작용과 남용, 과복용이다. 내가 내 손을 놓게 되면, 이 약들은 ‘치료’란 본래의 목적을 잃고 ‘마약’이 된다. 예를 들면, 오늘 기분이 좋지 않은 날이라 치자. 평소보다 훨씬 일찍 잠자리에 든다. 저녁 7시쯤? 당연히 잠은 안 온다. 물론, 수면제를 먹지 않으면 밤을 새울 정도라 늦게 자도 잠은 안 오지만, 정신이 더 똘망하다고 할까? 그래서 이런 날은 애초부터 약을 기본 2봉지 먹고 시작한다. 생각하지 싫은 일들은 어느새 잊힌다. 그러나 약을 과복용했어도 의식만 잠들었을 뿐, 무의식은 깨어있다. 나는 이때의 상태를 ‘약에 취한다’라고 표현한다. 약에 취한 채로 본능만 남은 나에게 나를 떠넘기는 거다. 잠은 자지 않는다. 그 상태에서 약을 더 먹어서 최대한 멍한 정신 상태를 만든다. 그러다 어느새 잠이 든다. 중요한 건, 다음날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건 참으로 위험한 행동. 이런 식으로 약을 과복용해서 밖을 돌아다니거나 운전을 해서 죽은 사람이 꽤 많다고 한다. 난 혼자서 영화까지 보고 올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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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약에 찌들어있는 이의 주변 사람들은 처음에나 걱정하지 나중엔 지켜보는 자신들이 더 힘들다며 토로한다. 근데 그들은 이걸 알까? 완전히 고칠 순 없겠지만 최소한 약에 중독돼서 남용하는 행동을 막을 방법이 자신들에게 있다는 것. 처음에 했던 그 걱정이 사실은 일종의 리액션 같은 표면적인 대화의 한 수단으로 느껴진다는 것. 진심으로 관심을 줄 때야 비로소 약 남용이 멈춘다.

 

다들 지켜보는 본인들이 더 힘들다며 말하고 떠나지만, 글쎄. 본인만큼 답답할까? 본인만큼 미칠 것 같을까? 당사자는 정말 답답함을 넘어 괴롭고, 미칠 것 같음을 넘어 죽고 싶을 정도다. 그러니 1~2년 정도 잠깐 겪은 것 정도로 쉽게 조언하지 않길 바란다. 요즘 우울증 있는 사람들이 많으니까 자신은 괜찮다고, 이해해 줄 수 있다고 말하면서 쉽게 다가오지 않길 바란다. 당신들이 그렇게 다가오고, 조언하면 우리는 친구가 생긴 것 같아 기쁘단 말이다. 관심받고, 사랑받는 것 같아서 순간적으로 엔도르핀이 돈단 말이다.

   

 

내가 놓은 내 손, 누가 잡아줬으면 좋겠다. 따뜻한 온기로 차가운 내 손을 감싸며 부드럽게 잡아 줄 그런 사람. 왜 너 혼자 이겨내려 하느냐고 뭐라 하면서도 막상 잡은 손은 내 손을 다 잡을 만큼 크고 든든한. 네가 너를 포기하면 어떡하냐며 혼내면서도 슬며시 내 손깍지를 끼워줄 그런 사람.

 


요즘의 나는 비과학적인 방법으로 다시 시작하고 있다.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걸 해보고 있단 뜻이다. 내가 지금 뭘 가릴 처지가 아니라서. 이 글을 읽는 약에 찌든 사람들에게 한 가지 희망적인 말로 끝을 맺는다면, 약을 많이 줄였고 과복용하지 않은 지 4개월이 넘어간다. 물론, 아직도 취침 약, 아침 약, 점심 약, 필요시 약을 먹지만 적어도 내가 약에 지고 있단 생각은 들지 않는다. 전엔 항상 내가 약에 지고 있단 느낌이었는데-.

 

아무리 똑같은 하루가 반복될 것 같은 느낌이 들어도 삶은 재밌게도 그렇지 않다. 그래서 죽고 싶지만 이렇게 살아있는 건가 싶다. 드라마 <이번 생은 처음이라>에 이런 말이 나온다. 어제를 살아봤다고 오늘을 다 아는 건 아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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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서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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