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무관심 속에 감춰진 욕망과 억압된 욕망의 희생자 - "지하철 1호선" [공연]

글 입력 2019.12.14 1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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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대에 대한 첫 인상


 

대학로는 나에게 친숙한 공간이지만, 학전블루 소극장은 이번에 <지하철 1호선>을 감상하기 위해 처음 방문하게 된 공간이다. 극장에 들어가기 전, 나는 건물 밖에 서서 잠시 극장의 외관을 바라보았다. 갓 해가 떨어진 어두운 하늘을 배경으로 두고 있는 극장은 옛날 벽돌 외벽과 함께 묵은 세월의 향수를 품고 있는 듯하였다.


극장의 내부는 예상한 것보다 크지 않았다. 사실, 관객석의 규모보다는 무대의 규모가 예상보다 작았다. 나는 이 공연이 ‘록뮤지컬’ 형식이라는 걸 알았을 때 무의식적으로 밴드가 무대의 가장자리 한 켠을 차지하고 공연을 할 것이라고 생각하였는데, 실제로 그곳에 당도해보니 밴드의 자리는 무대의 정면 2층에 유리창을 하나 두고 관객과 마주하고 있는 것이었다. 신기한 구조가 아닐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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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을 중심으로 좌우로 어렴풋이

밴드의 실루엣이 보인다.

그곳이 그들의 자리이다.

 

 

 

현실을 강렬하게 재현하다


 

공연은 이야기의 주인공인 ‘선녀’의 솔로와 함께 시작한다. 제비를 만나기 위해 서울역을 방문한 연변 처녀 선녀, 그리고 그 서울역에 상주하는 노숙자들이 관객들을 처음 맞이한다. 90년대 서울역의 모습이 생생히 재현되는 것을 보고 있자면, 이곳은 예나 지금이나 정신이 없고 온갖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머릿속에 떠오른다.

 

이야기는 장소의 이동과 함께 흘러간다. 서울역을 기점으로 그 다음은 선녀와 함께 지하철 1호선을 타고 향하는 청량리역이다. 그녀가 청량리역에 온 것은 다름이 아니고 제비를 만나기 위함이다. 그녀는 길을 물어물어 찾다가 끝내 집창촌인 ‘청량리 588’에 다다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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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창촌이라는 장소는 직접 닿아본 적이 없기에 내게는 상상을 동원해야만 하는 미지의 공간이지만, 아마도 무대에서 구현한 청량리 588의 모습이 그 당시 집창촌의 모습을 현실적으로 그려낸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외벽마다 붙어있는 음란한 간판과 눈길을 끄는 화려한 조명, 그리고 마네킹처럼 전시된 노출 있는 옷을 입은 여자들은 공연에서 보기 드문 파격적인 연출이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상상력을 발휘하는 공간인 무대에서조차 파격적으로 느껴지는 것이 실은 철저히 현실을 반영했을 뿐이라고 생각하니 더욱 무섭게 느껴지는 것이었다.

 

또한 본 공연은 단순히 집창촌의 겉모습만을 그대로 옮겨 오고 있지 않다. 그곳을 찾아오는 사람들이 어떠한지, 업소 여성들은 그들을 어떻게 대하는지, 또 그녀들의 삶은 어떠한지 공연은 말해주고 있다.


그곳을 찾는 사람들은 휴가를 나온 군인부터 교수, 스님까지 그 부류가 다양하다. 여자들을 찾는 목소리와 그것에 능숙하게 응하는 여성들의 목소리가 한데 어우러져 자아내는 왁자지껄한 분위기는 선녀가 타고 온 지하철의 분위기보다 오히려 화기애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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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창촌이 일상을 마치고 찾아 와 돈을 지불하여 날 것의 욕망을 풀어내는, 어찌 보면 가장 정직하게 정기를 쏟아내는 공간이라면 지하철은 모두의 자아가 억압되고 서로에게 일절 관심을 두지 않는 삭막한 공간이다. 서로 눈을 마주치는 것만으로 불쾌감을 느끼고 맨날 보는 얼굴임에도 반가움을 느끼지 않는다.

 

또한, 지하철은 집창촌과는 달리 자신들의 욕망을 어설프게나마 감춰야 하는 곳이다. 그래서 그 욕망은 더욱 비뚤어지고 은밀한 방법으로 표출된다. 그래서 ‘몰래’ 누군가의 몸을 만지고, 속으로 남을 험담한다.


또한 개인의 자아와 욕망은 억압되지만 마주하고 싶지 않은 일상의 추한 민낯은 선명히 비추어진다. 잡상인, 사이비 종교 신자, 자해공갈남, 거지 등 건강하지 않은 사회를 암시하는 존재가 하나둘씩 지하철에 올라탄다.

 

 

 

무엇을 말하고 싶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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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 1호선은 고달픈 서민들의 삶을 그려내고 있다. 사회 문제를 극단적으로 보여주는 과장된 인물들도 등장하지만, 일반 서민들의 삶도 담담하게 전해지고 있다. 보험회사에 다니며 생계를 유지하는 여성, 자신을 교수라고 했지만 실상은 시간 강사인 남성, 자살 소식이 들려와도 이상할 게 없는 세상, 잡상인의 입을 통해 전해지는 회사들의 부도 사실 등 90년대 서민들의 삶을 잠식했던 어두운 일면들이 낱낱이 드러난다.

 

이러한 풍조의 사회에서 앞서 언급했듯이 개개인의 다양한 욕구는 충족되지 못하고, 결국엔 현대에는 음지의 영역으로 여겨지고 범죄 행위로 간주되는 영역인 성매매 업소가 욕망의 분출 장소로 상정된다.


자신의 얼굴을 들고 다니는 대낮의 일상에서는 억눌러 왔던 욕망을, 시간 강사인 자신을 교수라고 속일 수 있는 그곳에서 대가를 지불하고 토해낸다. 그 당시에는 성매매가 중대한 죄로 여겨지지 않았지만, 익명성 안에 숨어 어두운 욕망을 표출할 수 있고 성 구매자 공급자 이상의 관계는 형성되지 않는 비인간적인 장소였음은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은 듯하다.

 

결국, 그 모든 욕망의 분출을 받아내는 것은 온전히 업소 여성들의 몫이 된다. ‘걸레’는 그러한 구조의 희생자이다. 언제라도 자신의 손목을 그을 준비가 되어있고 뽕을 맞으며 걸레짝처럼 굴러다니는 그녀는 그 시절이 안고 있던 암울함을 온몸으로 흡수한 것처럼 보인다. 후에 선녀에게 들려주는 그녀의 노래에서 가사가 말해주듯이 그녀는 불우한 성장배경을 지녔으며 사회 극빈층을 표상하는 인물이다. 모두가 우울한 시대에 가장 최하위 계층에 속한 이들은 어떻게 희생되는지, <지하철 1호선>은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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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 1호선을 타고 돌아오며


 

공연이 끝난 후 나는 다시 1호선을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1호선은 여전히 쾌적하지 않고 어렵지 않게 눈에 띄는 행동을 하는 사람을 목격할 수 있다. 공공연하게 상업 행위를 한다거나 큰 소리로 전도하는 사람들이 자주 보이는 편은 아니지만, 공허한 시선으로 남을 쳐다본다거나 뜬금없이 욕을 내뱉는 노인들은 꽤 심심치 않게 보이는 편이다.

 

사실, 다른 노선을 타보면 모든 지하철이 1호선의 풍경과 같지는 않다. 대학가를 지나는 2호선에는 젊은 사람이 많고, 이태원을 지나는 6호선 안에는 외국인이 가득하고, 강남의 부유한 동네를 지나는 열차 안에는 행색이 깔끔한 사람들이 많다. 지하철로 몇 개의 역을 지나고 강을 건너고 말고의 차이로 차 안의 풍경이 바뀐다는 것은 신기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씁쓸하게 느껴지는 부분이다.

 

4호선에서 1호선으로 갈아타며 “1호선스럽게” 바뀌는 풍경을 보면서 나는 지금의 지하철 1호선이 직면한 문제에 대해 고민하게 되었다. 뮤지컬 <지하철 1호선>에서 그려지는 사회의 문제는 다수적인 것으로 느껴지는 것에 반해, 지금의 지하철 1호선 풍경은 어째서 소수적인 차원의 문제로 느껴지는 것일까. 그리고 다른 노선들에 비해 유난히 1호선이 <지하철 1호선>에서 그려지는 풍경과 닮아있는 것은 어떤 이유에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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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그 시절의 상처를 기억하고 있는 이들이 1호선이 지나는 자리에 머물러있기 때문은 아닐까.

 

 



[박소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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