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딴짓] 여행이야기없는 여행에세이에서 조각모으기 ①

글 입력 2019.12.16 1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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딴짓 Episode.04

여행이야기 없는 여행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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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enice , Italy


 

여행을 좋아하고 여행에 대해 쓰는 것도 좋아하지만, 글을 쓸 때 최대한 피하는 주제가 ‘여행’입니다. 여행지에서의 일을 아무리 열심히 묘사하려 해도 설명으로 귀결되는 경우가 많고, 제게 감동적인 일이라고 한들 독자에게는 와 닿지 않을 가능성이 높거든요. 사람마다 여행지에서 경험하고 싶어하는 것, 인상에 남을 만한 것은 모두 다르기도 하고요. 베네치아의 섬에서 바라본 노을이 제 인생 최고의 노을이었다 해도, 누군가에게 베네치아는 그저 유럽의 동남아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그런 제가 서점에서 홀린 듯 집어와 꼬박꼬박 책장에 꽂아두는 유일한 여행에세이가 바로 이병률 작가의 것입니다.


  

“저는 여행을 갈 때 잠깐 스치면서 지나가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여행지의 아파트를 빌려주는 숙박 사이트를 뒤져서 예약하고 아주 오랫동안 묵습니다. 

관광지를 찾아 이곳저곳 돌아다니는 게 아니라 마치 내 집처럼 일상을 살아갑니다. 

아침에 일어나 밥을 하고 커피를 마시면서 창가를 통해 보이는 이국적인 풍경을 담아 놓습니다. 

느슨한 일상에서 내 글이 톡톡 발아할 때까지 기다립니다. 

 

말하자면 여행을 떠난 것이 아니라 여행지에 저를 유배시켰다고나 할까요.”

 

인터뷰 中

 

 

그는 자신의 여행 스타일을 ‘유배’라고 이야기합니다. 유배라는 표현을 썼지만, 결국 여행지에서 관광을 한 게 아니라 그저 ‘살았다’는 말을 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싶습니다. 그래서인지 이병률 작가의 글을 읽다 보면 이게 과연 여행에세이가 맞나 싶은 의구심이 듭니다. 다른 여행에세이와 달리 지역이나 도시에 대한 아주 최소한의 정보만이 담겨있으며, 여행에 대한 소감조차 찾아보기 힘들기 때문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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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신 그의 시선은 여행이 아니라 우리가 '공기처럼 지나치는 찰나'에 있습니다. 여행을 이용해 숨이 차게 달리느냐 김이 잔뜩 낀 두 눈을 뽀득뽀득 닦아내고, 집 앞 골목길에서도 발견할 수 있는 일상적이지만 아름다운 순간을 부드럽게 건져 올리는 것입니다. 이번 딴짓에서는 <끌림>과 <바람이 분다, 당신이 좋다>를 통해 이병률 작가가 여행지에서 발견한 삶의 단편들을 나눠볼까 합니다.

 

 



 

여행이야기 없는 여행에세이

첫 번째 조각 : 여행과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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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도 여행은 시간을 버리거나 투자하는 개념이 아니었다. 

여행은 시간을 들이는 일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내게 있어 여행은 시간을 벌어오는 일이었다. 

낯선 곳으로의 도착은 우리는 100년 전으로, 100년 후로 안내한다. 

그러니까 나의 사치는 어렵사리 모은 돈으로 감히 시간을 사겠다는 모험인 것이다. 


일상에서는 잡으려 해도 잡히지 않는 게 시간이지만 

여행을 떠나서의 시간은 순순히 내 말을 따라준다. 

사실 여행을 떠나 있을 때 우리가 더 많이 가지고 있는 것은 돈이 아니라 시간 쪽이질 않은가. 


<바람이 분다, 당신이 좋다>

1# 심장이 시켰다



우선, 이병률 작가가 펼쳐놓은 여행과 삶의 조각들을 살펴보려고 합니다. 그의 글을 읽다보면 흐릿하지만 뚜렷한 색깔이 번지는 듯합니다. 구름이 얕게 깔린 초저녁의 하늘처럼 흐리고 화려하진 않지만, 공간을 가득히 채우는 그런 색 말입니다.

 

그는 지금까지 100여 개의 국가를 여행했습니다. 언제부터 한국에 있었고, 언제부터 이국 땅에 있었는지, 왜 그 도시에 갔으며, 어째서 오랫동안 돌아오지 않았는지 독자인 저로서는 더욱 알 길이 없습니다. 그렇게 흘러갔는지도 모르게 떠다니는 구름같은 사람이지만, 그의 방랑엔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을 원하는 만큼 누려보겠다는 분명한 목적과 이유가 있습니다.



마른 손수건을 접을 적에 당신은 어떻게 하는가. 

수건을 십자 형태로 접는가. 아니면 길게 두 번 접어서 다시 반으로, 반으로 이렇게 접는가.

상표가 가장 안쪽으로 들어가게 접는가. 아니면 상표가 드러나게 접는가.

접은 손수건을 다리미로 꾹 눌러 각을 세우는가. 

아니면 손수건에 선명한 주름이 생기는 걸 죽을 것처럼 싫어하는가.

괜찮다. 여행은 당신의 그런 사소한 취향을 다려 펴주는 대신

크고도, 굵직한 취향만 남게 할 테니. 


<끌림> 이야기 둘. 취향다리기

 

 

그렇게 벌어들인 시간동안, 그가 하는 일은 '다림질'입니다. 다림질을 하면, 다리미가 닿는 부분의 자잘하고 미세한 주름들이 모서리로 쫓겨나 굵고 진한 선을 만듭니다. 그는 여행을 통해 취향을 다릴 수 있다고, 크고 굵직한 취향만 남길 수 있다고 말합니다.

 

이는 살아가는 데 있어서 반드시 해야 하는 일입니다. 자신에게 가장 중요한 것과 덜 중요한 것을 가려내고, 가장 비슷한 색깔과 그렇지 않은 색깔을 구분해내서, 나라는 그림을 선명하게 완성해가는 일이요. 이병률 작가에게 여행은 그런 의미에서 삶과 동떨어진 일이라기 보다, 철저히 삶에 귀속된 일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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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enice , Italy

 


오늘 오랜만에 밥이 먹고 싶어서

쌀 파는 곳을 겨우 찾아낸 다음 쌀을 사서 밥을 하고

계란 프라이 두 개를 해서 들고는

가을 잎들이 뚝뚝 떨어져 내리는 저녁의 공원에 가서 먹었는데

나는 그 정도 행복이면 돼요.

달걀 두 개의 값과 양과 맛을 넘어서지 않는 행복.


<끌림>이야기 쉰둘. 2004년 11월 20일 생일

 

 

생일을 혼자서 겨우 계란 프라이로 때우는 건 ‘청승맞은 일’이라고 여겨집니다. 생일이란 자고로 많은 이들의 편지와 선물 속에서, 평소보다 더 맛있고 단내 나는 음식을 먹어야 하는 법이니까요. 그래서 사람들이 보편적으로 화려하게 보내는 날들, 예를 들어 생일이나 결혼식, 크리스마스를 소신 있게 보내는 것은 어렵습니다.

 

하지만 이병률 작가는 누군가의 행복을 청승으로 바라보는 세상에서 ‘나는 그 정도 행복이면 돼요.’라고 의연하게 내뱉습니다. 이것이 가능한 이유는 여행을 통해, 삶을 통해 지금껏 스스로를 다려왔기 때문이 아닐까요. 자신을 행복하는 것과 좋아하는 것에 대해 너무나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인 겁니다. 온전히 '자신만의 취향과 기준에서 행복하다'는 말은 소박하지만 강합니다.

 



 

여행이야기 없는 여행에세이

두 번째 조각 : 사랑에 대하여


 

혼자라는 사실에 개의치 않고 오히려 무엇보다도 중요시 여기는 듯한 그는 최근 <혼자가 혼자에게>를 출간했습니다. 그러고 보면 이병률 작가는 혼자가 편하고, 외로움을 즐기는 사람같습니다. 하지만, 사랑이라는 감정을 얕잡아보거나 미뤄두진 않습니다.



일단 왼쪽 벽에다가는 한 남자를 그려요.

벽 쪽에 몸을 바싹 붙이고, 오른쪽 벽을 향해 몸을 돌리고는

살금살금 숨바꼭질하듯 눈치를 보고 있는 옆 모습의 한 남자를요.

오른쪽 벽 역시, 마찬가지로 한 여자를 그려요.

여자 역시 벽 쪽에 붙어서 조심스레 누군가를 훔쳐보기라도 하듯 

잔뜩 긴장을 하고 있는 옆 모습 여자를요.

실제 거리는 몇 센티에 불과하지만 90도로 꺾인 벽이기 때문에

상대방은 저 벽 뒤에 누군가가 가까이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죠. 


그림은 그림이기 때문에 그렇게 정지해 있지만 1초 후, 

만약 그 두 사람이 앞으로 조금만 움직인다면

코를 부딪히게 될지도 몰라요.


<끌림> 이야기 넷, 그렇게 시작됐다.

 

 

그가 이야기하는 사랑은 ‘코가 부딪히는’ 행위입니다. 아무리 서로를 열심히 추측하고, 관찰하고, 상상해도 한 걸음을 망설이면 절대 확인할 수 없는 것. 기적적으로 두 사람이 동시에 모퉁이를 돌다 코가 부딪히기라도 하면, 멋쩍은 웃음을 감출 수가 없는 것. 어리숙하지만, 용기있는 그런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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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선가 우연히 만난 두 사람은 조금씩 조금씩 좋아하는 마음을 갖게 됩니다.

그러던 어느 날 두 사람은 처음으로 남자의 집에서 하룻밤을 같이 보내게 됩니다.

낯선 곳에서 잠을 잔 여자는 

아침에 도착한 신문 떨어지는 소리에 잠이 깬 뒤로 잠을 잘 수가 없었습니다.

 

살며시 일어나 거실에서 신문을 가져다 신문을 보기 시작하는데

신문 넘기는 소리에 남자가 깰까봐 

여자가 화분 옆에 놓인 분무기를 가져다가 신문 위에 뿌립니다.

곤히 자고 있는 사람에게 신문 넘기는 소리는 굉장히 크게 들리겠죠.

얼마 후 자리에서 일어난 남자가 

신문에 물을 뿌리며 마지막 페이지를 읽고 있는 여자의 모습을 

사랑스럽게 보고는 그렇게 묻습니다.


“당신, 그런 걸 어디에서 배웠소?”

“나이 먹다보니 그냥 알게 되었어요.”


   <바람이 분다, 당신이 좋다> 3# 작은 방을 올려다보았다

  

 

당신 혼자 며칠 더 머물러야 했다.

내가 며칠 먼저 돌아와야 했기 때문이었다.

당신이 나에게, 신던 신발을 버리고 갈거냐고 물었다.

아닌 게 아니라 너무 오래 신어서 버려야 마땅한 신발이었다.

아주 어려웠던 때 사 신은 신발이라 버리기 뭐했지만 버리겠다고 했다.

뭐든 다 끌어안고 살지 말고 조금씩 버리고 살라는 당신의 말을 듣고 싶어서였겠다. 아마도.

가방을 싸면서 낡은 신발을 휴지통에 버리려 하는데 당신이 말했다.


“거기 한 쪽에 두고 가. 그냥 내가 바라보게……”


<바람이 분다, 당신이 좋다>  #53 우리는 시작에 머물러 있을 뿐


 
이병률 작가의 글에는 ‘사랑이 무엇이다’라는 문장이나 ‘사랑’에 관한 단어는 거의 등장하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저는 마음을 굳이 내어주고 싶은 사람이 생겼는데 도무지 방법을 모를 때, 그의 글을 되새기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답을 얻습니다. 용기내어 어렵게 얻은 그 사랑은, 두 손으로 살금살금 옮겨야만 하는 유리구슬 같은 것이라고 이야기해주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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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색 포스트잇에 ‘밥 꼭 챙겨 먹어요’라든가
‘내일 오후에 잠깐 들를게요’라고 써서 
냉장고에 붙였던 글자들을 

어느 날 하루아침에 ‘이제 그만 할래요’라고 바꾸고 잠적해버린들 

그것이 그만둘 수 있는, 버릴 수 있는 마음이던가. 

그만두겠다고 하는 순간부터 멀어져도, 헤어져도, 보이지 않아도 

사랑은 여전히 사랑이질 않은가. 

사랑이어서 일어난 그 많은 일들을 단번에 지울 수 있을 거라 생각하는가. 

 

< 바람이 분다, 당신이 좋다> #47 사랑도 여행이다

  

 

저자는 그런 사랑이 끝났다고 해서, 사랑이 변질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하는 듯 합니다. 오랜 연인을 가진 친구들이 제게 고민상담을 할 때, 그 이유를 물으면 그간의 시간이 아까워서인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도 3년을 만났는데…군대를 기다렸는데…

 

하지만 이별이 곧 새드엔딩이나 실패는 아닐지도 모릅니다. 물론 심장 반쪽을 어거지로 뜯어내는 듯한 슬픔을 느끼거나, 울렁거리는 속에 밥 한 술 대신 찬물을 들이킬지도 모릅니다. 그렇다고 이제 그만하고 싶다는 말이 상대를 사랑하지 않았다는 뜻은 아닐 겁니다. 그래서 그는 여리고 소중했던 순간들을 '여전히 사랑'이라고 이야기 합니다.

 

 



 

여행이야기 없는 여행에세이

세 번째 단편 : 관계에 대해

 

  

그가 주목한 또 다른 삶의 조각은 ‘관계’입니다. 흔히 말하는 ‘사랑’은 사실 수많은 관계 중 하나입니다. 이병률 작가는 주로 혼자 여행을 떠나는 것 같지만, 그 와중에 관계의 맥을 뜨문뜨문 만들어갑니다. 그리고 그 속에서 본래 자신이 가지고 있던 관계들도 떠올립니다.

  

 

“죄송해요. 좀 씻고 나오느라 많이 늦었습니다.”

나를 위해 빈 의자를 조금 뒤로 빼주며 그녀가 말했다.

“나이 많은 사람 만나러 나오는데 뭐하러 씻고 나와요?”


아, 맞아. 이런 분이었지.

자기는 없고 언제나 다른 사람만 생각하는 것 같은 사람.

늦었다는 게 문제가 아니라 자기를 위해 뭘 준비를 하느라 늦은 게 마음에 걸리는 사람. 

 

<바람이 분다, 당신이 좋다> #8 나를 덮어주는 사람

 

 

역지사지를 여러 번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이런 식입니다. ‘카페 기프티콘이라도 하나 보내고 싶은데, 니 성격에 뭐 하나 받는 것도 어려워하니까 그냥 둘게.’ 상대방의 입장을 생각하기 바쁜 사람들 말입니다.

 

그런 사람들에겐 어쩔 수 없이 마음이 동합니다. 그들의 속이 오히려 아리지 않을까 싶거든요. 이렇게 고맙고도 짠한 그들을 두고 이병률 작가는 ‘자신을 덮어주는 사람’이라고 이야기합니다. ‘나’라는 사람을 받아들이기로 결정한 이상 상대의 어리숙함과 미련스러움, 그 모든 것을 이불처럼 포옥 끌어안고 가는 사람을, 그는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이렇게 글로 적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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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선배 가고 돌아와 보니 마루에다 먹은 걸 토해놨더라구요.
겨준 사료는 건드리지도 않았구요.”

“아니, 왜? 나 있을 땐 아무렇지 않았는데. 어디 아픈거야?”

“아뇨. 선배 여기 올 때 큰 여행가방 가지고 왔을 거 아니에요?
떠날 때는 큰 여행가방 들고 나가셨을 거구요. 걔가 여행가방에 민감해요.
정들었는데 떠나는 걸 알고 마음이 많이 안 좋았나봐요.”

 

<바람이 분다, 당신이 좋다> #57 이별이었구나



캄보디아 앙코르와트에 다녀와 잔뜩 밀린 일을 하고 있었다.

전화가 걸려왔다. 모르는 번호가 찍혔다. ‘던’이란다.

던은 내가 두 번째 앙코르와트에 갔을 때 사흘 동안 사원을 안내했던 친구.

스물한 살이었고, 얼굴이 까맸고, 축구를 좋아했고
사원에서 나를 기다린다고 해놓고 잠이 들어 나를 잃어버렸던 친구.

 

내가 앙코르와트가 좋아 그곳에 한 달 정도 살고 싶다고 했을 때
다시 오면 알려지지 않은 작은 사원에도 데려다 준다고 했던.
다시 오게 되면 농담처럼, 그땐 일반 숙소가 아니라 너의 집에 머물겠다고 했을 때
‘좋아, 근데 다 좋은데 우리 집은 전기가 안 들어와서 어두워.’라고 말했던.
 

 

<끌림> 이야기 아홉. 캄보디아 던

 

  

우리는 누군가에게 사랑 받지 못해 상처받고, 좌절합니다. 그런데 모순적이게도, 나 자신 역시 옆에 있는 사람을 아프게 하고, 또 받은 사랑을 제대로 되돌려주지 못하기도 합니다.


보통은 나를 아프고 슬프게 한 사람은 쉽게 찾아내고 기억하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이병률 작가의 글에서는 자신이 상처를 줬을지도 모르는 이들, 자신이 사랑해주지 못한 이들이 훨씬 자주 눈에 밟힙니다. 그가 머무르는 동안 잠시 함께 지냈던 후배 부부의 강아지가 그렇고, 앙코르와트에서 스치듯 만났던 던이라는 친구가 그렇습니다. 그러니 그는 받은 사랑을 고마워하기만 하면 될 것을, 미안해하고 아파하느냐 따끔거리는 사람인 겁니다.


*

 

어린 시절 읽었던 책을 다시 한 장 한 장 넘겨가며 글을 골랐습니다. 지금도 제 가슴을 울리는 글들을 위주로 가져와 보았어요. 이병률 작가의 여행에세이가 삶에 대한 이야기라고 생각하고 나니, 그렇다면 어제와 오늘을 관통하는 삶의 단편이 무엇일지 궁금해서였습니다.

 

<끌림>과 <바람이 분다, 당신이 좋다>에서 저는 삶, 사랑, 관계의 모습들을 긁어모았지만, 또 다른 사람에게 이 두 권의 책은 다른 모양의, 다른 조각들로 기억될 것입니다.

 

다음 딴짓에서는 <내 옆에 있는 사람>, 그리고 최근 출간된 <혼자가 혼자에게>, 그의 시집 <바다는 잘 있습니다> 에서 또 한 번 조각들을 주워 담아 와 보려고 해요. 어린 시절 해변이나 강가에서 예쁜 조약돌을 보면 현기증을 이기지 못해 바짓주머니에 가득 넣은 채 어기적어기적 걸어오는 모양으로.

 


:: About 딴짓 ::



아무것도 하기 싫은데 시간이 모래알처럼 손가락 사이로 슝슝 빠져나가는 게 아쉬울 때, 여러분은 주로 무엇을 하시나요? 저는 요즘 유투브를 보거나, 인터넷쇼핑을 하거나, 아니면 음악을 들으며 멍을 때리곤 합니다. 하지만 딴짓엔 역시 앨범 뒤져보기가 최고인 것 같아요. 사진을 훑어보며 지나간 여행, 가족이나 친구들과 보냈던 즐거운 한 때, 조그마한 동네 길 고양이, 마음에 쏙 들었던 카페 등을 들춰보면 창문을 꽉 닫아놓아 이산화탄소만 가득 찬 방에 신선하고 깨끗한 바람이 불어오는 듯 합니다.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의 추억을 들여다보는 일도 그렇습니다. 아니, 오히려 효과가 더 클 수도 있어요. 카메라 렌즈를 돋보기 삼아 나의 과거를 들여다보는 것만으로도 환기가 되는데, 타인의 사진을 들여다본다는 건 전혀 다른 시공간에 잠시 발을 담가보는 거니까요. 그래서 지금부터 제가 딴짓을 할 때 꺼내보는 체코에서의 추억을 여러분과 나눠보려고 합니다. 이 글이 여러분에게 잠시 딴짓하기 좋은 아지트가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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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채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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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1
  •  
  • kcy4282
    • 정말 예쁘고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ㅎㅎ책도 읽고싶어지고 곧 떠날 여행도 더욱 기다려집니다:)
    • 0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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