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서로를 바라본다는 것 : 뮤지컬 지하철 1호선 [공연]

뮤지컬 지하철 1호선 Review
글 입력 2019.12.09 1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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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IMF가 한국을 덮치고 수많은 사람이 일자리를 잃어야만 했던 시기이자, 갓난아기를 업고 그 위기를 버텨내던 나의 부모님이 살던 시기다. 그리 멀지 않은 과거이지만 내가 살아보지 않은 시간이기에 함부로 상상하기 어려운 시기이기도 하다.
 
지금껏 부모님을 통해, 또는 역사책을 통해 전래동화처럼 전해 들어 오기만 한 1998년의 서울. 그 시절의 서울과 서울 사람들의 모습을 생생하게 간접 체험할 기회가 생겼다. 바로 뮤지컬 '지하철 1호선'을 통해서다.
 
 
 
지하철, 그 매력적인 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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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지하철 1호선은 1998년 서울의 풍속화 같은 작품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하루에도 수많은 사람이 타고 내리는 지하철이라는 공간의 특성을 활용해 98년 서울과 다양한 사람들의 모습을 생생하게 재현해 놓았기 때문이다.
 
지하철 1호선에는 수많은 사람이 빠르게 타고 내리는 지하철 객실, 지저분한 서울역사와 청량리 588, 곰보 할매가 운영하는 포장마차, 모자로 얼굴을 가린 익명의 사람들이 오가는 길거리 등 다양한 장소와 사람들이 등장한다. 그 시절을 살아온 사람들에게는 추억이, 그 시절을 살아보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생생한 간접 경험이 될 풍경이다.
 
특히 수많은 사람이 거쳐 가는 지하철 객실에서는 UFO 전도사, 자해공갈단, 잡상인, 불량학생, 부잣집 사모님 등 다양한 인간 군상을 관찰할 수 있다. 지하철이라는 공간의 특성이 그렇다. 짧은 간격으로 열리고 닫히는 지하철 문으로 별의별 사람이 타고 내리는 공간. 뮤지컬 지하철 1호선은 빠른 템포로 등장하고 사라지는 인물들을 통해 우리 사회와 사람들이 걸어온 길을 지하철이라는 공간에 압축하여 표현한다.
 
출퇴근길, 여행길, 이동 시간에 담긴 사람들의 삶이 공간의 특성에 맞추어 속도감 있고 유쾌하게 표현되기에 다양한 삶의 형태와 인간상을 관찰할 수 있으면서도 지루하지 않다. 뮤지컬 지하철 1호선이 뛰어난 작품성을 유지하면서도, 1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대중적인 인기를 구가할 수 있었던 이유다.
 
 
 
공감과 연대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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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8년을 살아보지 않은 내게 지하철 1호선이 묘사한 서울의 풍경은 생각보다 거칠고 투박했다. 이게 우리 부모님이 살았던 시대라고? 라는 생각이 들었던 순간도 있었다. 물론 지금과 비슷한 풍경도 있었다.
 
서로를 마주 보고 앉으면서도 서로에 대해 알지 못하고, 빠르게 움직이는 지하철에 고단한 몸을 싣는 사람들의 모습 같은 것들. 아침마다 보는 지하철 속 사람들의 표정이 떠올랐다. 그때보다 많이 발전하고 깔끔해진 서울역이지만, 아침마다 지하철에 고단한 몸을 싣는 사람들의 심정은 비슷하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현대 사회는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고 변화한다. 짧은 시간에 큰 변화를 만들어내는 시대 속에서 각각 세대는 전혀 다른 인생을 살 수밖에 없다. 거기서 생겨난 '세대 차이'라는 벽은 생각보다 굳건하다. '요즘 것들', 또는 '꼰대'라는 말이 유행처럼 퍼져 나가고 있는 것만 봐도 그렇다.
 
그때와 많이 다르지만 결국 같은 서울의 모습을 그려내고 있는 뮤지컬 지하철 1호선의 가치는 이런 사회에서 더욱 빛을 발한다. 젊은 세대는 뮤지컬 지하철 1호선을 통해 98년의 서울을 간접 경험하고, 그 시대를 살았던 인물들에게 공감하며 살아보지 못한 시대와의 유대감을 형성한다. 따지고 보면 크게 다르지 않은 사람 사는 이야기를 통해 각 세대는 서로에게 공감하고 연대한다. 공감과 연대의 장을 만드는 서울의 풍속화 같은 뮤지컬 지하철 1호선이, 오늘날 더 특별한 가치를 지니는 이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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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 1호선에는 수많은 사람이 등장하지만, 이야기는 주로 연변에서 약혼자를 만나러 온 '선녀'의 시선으로 전개된다. 선녀는 약혼자를 찾아 집창촌인 청량리 588을 헤매던 도중 '걸레'를 만난다. 언뜻 보면 전혀 다른 것 같은 이 두 사람에게는 아주 큰 공통점이 하나 있다. 바로 이루어지지 못할 꿈을 간직한 채 살아간다는 것이다.
 
선녀는 뱃속 아이의 아버지이자 약혼자인 '제비'를 찾아 연변에서 서울까지 먼 길을 여행한다. 하지만 멋진 나무꾼이라고 믿었던 제비는 그녀를 제대로 기억조차 하지 못하는 별 볼 일 없는 남자다. 걸레는 유일하게 자신을 성적인 대상으로 보지 않는 '안경'을 사랑한다. 그녀는 안경이 독립투사로서 전쟁을 치르다 다리를 잃었다고 믿지만, 사실 안경은 독립투사도 아니고 두 다리도 멀쩡한 평범한 남자다. 선녀와 걸레의 꿈을 감당하기에 그들의 현실은 너무나 작고 초라하다.
 
그들은 삶의 유일한 빛줄기처럼 믿고 따르던 꿈이 왜곡된 현실이었을 뿐이라는 것을 알게 된 이후 크게 좌절한다. 아이러니한 것은, 약혼자의 실체를 알게 된 이후 무너져버린 선녀를 일으켜준 것이 그녀의 꿈도, 아이도, 약혼자도 아닌 바로 걸레라는 점이다. 비록 걸레는 자신의 꿈을 꿈으로 남기기 위해 스스로 목숨을 끊지만, 선녀는 걸레의 손을 잡고 일어서 그 이후를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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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에 오르는 모두의 꿈을 품기에 우리의 현실은 너무나 작고 초라하다. 어쩌면 우리가 꾸는 꿈은 모두 '제비'와 '안경'처럼 별 볼 일 없는 것들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언젠가 그 초라한 실체를 드러낼 꿈을 품고 살아가야만 한다. 그리고 그 힘겹고 초라한 여정에서 우리가 유일하게 의지할 수 있는 곳은 꿈도 미래도 아닌, 오늘 지하철 맞은편에 앉아 있었을지 모를 평범한 누군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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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지하철 1호선은 우리가 하루에도 수십 번씩 어깨를 스치는 평범한 사람들을 통해 우리의 삶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존재할 하나의 희망을 남긴다. 그래서 별거 아닌 꿈을 안고 오늘도 지하철에 오르는 우리는 모두, 지하철 1호선의 주인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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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 1호선
- 원작을 뛰어넘는 감동 -


일자 : 2019.10.29 ~ 2020.01.04

시간

화~금 19시 30분

토 14시, 18시 30분

일 15시

 

*

월 공연없음

12/25 (수) 14시, 18시 30분


장소 : 대학로 학전블루 소극장

티켓가격

전석 60,000원

 
기획/제작
학전

관람연령
만 13세 이상

공연시간
170분
(인터미션 : 15분)



 
 
학전
 
 
1991년 3월, 대학로에 소극장 학전을 개관하면서 출발한 학전은 다양한 예술 장르간의 교류와 접목을 통한 새로운 문화창조 공간으로서의 역할을 해왔다. 극단 학전, 학전블루 소극장과 학전그린 소극장, 도서출판 학전을 통해 뮤지컬, 연극, 콘서트, 무용 등 다양한 공연의 기획•제작과 음반 및 대본 발간 사업, 문예강좌 기획 등을 활발히 펼쳐온 학전은 뮤지컬 작업을 중심으로 다양한 실험과 새로운 시도를 바탕으로 한국 공연문화의 튼실한 못자리로 자리잡기 위한 노력을 계속해오고 있다.
 
극단 학전은 1994년 록뮤지컬 <지하철 1호선>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뮤지컬 작업을 시작했다. 록뮤지컬 <모스키토>, 뮤지컬 <의형제>, 록오페라 <개똥이> 등 우리 정서와 노랫말이 살아 숨쉬는 한국적 뮤지컬뿐만 아니라 <우리는 친구다>, <고추장 떡볶이>, <굿모닝 학교>, <도도>, <그림자 소동> 등 우리 어린이, 청소년을 위한 공연을 꾸준히 선보이려는 노력을 해오고 있다. 특히 공연횟수 4000회를 넘긴 록뮤지컬 <지하철 1호선>은 한국 공연계의 대표작으로 자리잡고 있으며, 2011년에는 '박물관으로 간 지하철1호선전(서울역사박물관)'을 선보이기도 했다.
 
학전은 앞으로 이러한 뮤지컬 작업들과 함께 오랜 기간 호흡을 맞춰온 탄탄한 스탭진과 제작 노하우를 바탕으로 수준 높은 어린이, 청소년극을 지속적으로 만들어나갈 예정이다.

 
[황혜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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