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엄마 나 자살해도 돼요? - 내일이 궁금하지 않은 이들에게 [사람]

글 입력 2019.12.10 0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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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새 들어 많은 연예인들의 자살 소식이 심심치 않게 들려온다. 가장 최근인 남자배우 차인하의 자살과 더불어 가수 구하라와 설리의 자살. 자살했다는 연예인들의 비보를 뉴스로 접할 때마다 기분이 이상해지는 건 나뿐만이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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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가장 최근에 자살한 남자배우인 차인하의 이름이 생각나지 않아 뉴스를 찾기 위해서 자살이라는 단어를 검색창에 쳐 보았다. 그러고 안 새로운 사실이 있다. 맨 처음 접할 수 있는 것은 자살에 대한 정의와 설명보다는 이런 것을 접하게 된다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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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보다도 도움"

 

 

설리의 자살, 그리고 연이은 구하라와 차인하의 자살로 자살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은 조금 더 무덤덤해진 듯하다. 한국의 자살률은 1위인데 비해 우울증 약 복용은 최하위권이라 한다.

 

이 밖에도 한국 자살률에 대한 특징이 있다. OECD 회원국 중 노인과 청년 자살률이 유일하게 오르고 있는 나라라는 사실이다. 또한 우리나라는 자살률이 줄어들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는 특징이 있다. 사회의 경제가 안정될수록 자살은 줄어들어야 하는데 우리는 왜 그렇지 못할까를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

 

한국의 민족성은 불과 같은 민족성이라고 흔히들 말하곤 한다. 불과 같은 민족성이면 열정이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또 한 번에 화르르 타올랐다가 금방 식는다는 말이다. 앞에 말은 동의하는 바이지만 뒤에는 잘 모르겠다. 열정이 있는 나라기에 조그마한 이 땅덩어리에서 다들 치열하게 각자의 삶을 살아나간다. 그렇지만 식지 않는 열정이 있기에 경쟁은 고조되고 한민족의 나라라는 말에 무색하게도 우리는 서로의 적이 되어 학교에서 직장에서 사회에서 치이고 치이는 그런 경향을 보인다.

 

학교에서는 공부에 대한 압박과 경쟁이 어려서부터 아이들을 짓누른다. 인기리에 방영되었던 드라마인 '스카이 캐슬'이 많은 사랑을 받았던 것도 사람들이 이것을 보고 공감을 느낀 탓이라 생각이 든다.

 

직장과 사회에서의 경쟁은 또 다른 치열함을 맞이한다. 어릴 때의 순수함을 벗어난 눈치싸움이라고나 할까. 치열한 경쟁은 획일화된 우리를 만들었다. 누구 하나 튀면 그게 틀린 것이 되는, 아니면 조금은 특별하게 보이면 다른 거라고 칭해버리기도 하는 사회가 되었다.

 

또한 다른 아이디어로 좋은 성과를 받고 싶지만 경쟁으로 뺏겨버리거나 무참히 꺾여버리는 직장에서의 삶, 사회에서는 웃으며 사람들을 대하지만 달라 보이기라도 하면 언젠가는 내쳐지지 않을까에 대한 생각, 격의 없이 누군가를 대하고 싶지만 언제 또 경쟁상대가 되어 상처를 받지는 않을까라는 두려움 때문에 사람들은 더더욱 벽을 친다.

 

또 보이지 않는 곳에서 서로를 험담하면서 상처를 주며 내가 더 나은 사람이라고 느낀다. 이렇듯 마음의 벽을 치는 사람들은 자기 스스로에게 상처를 주며 벽을 치고 그 안에서 살아가며 경쟁을 두려워하는 마음이 더해져 마음속에 병은 커져가고, 또 다르게 그들에게 상처를 받은 사람은 그 상처로 인한 두려움으로 마음의 병이 더 깊어진다고 느낀다.

 

생각하며 느낀 것 중 더 재미있는 것은 더 나은 삶은 원하기에 치열하게 경쟁하지만 튀는 것은 원하지 않는다. 우리는 튀는 것이 싫어서 획일화된 모습으로 묻혀가길 원하지만 또 특별한 것을 원하는 우리는 인스타그램에서의 스타에 동경하는 그런 모습을 보여주기도 하며 흥미로운 연예 기사에는 항상 수백 개 수천 개의 댓글과 악플이 달리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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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번에 아이들과 학교에서 자살한 설리에 대해 얘기를 나눈 적이 있다. 그중 한 친구는 주변 사람들을 생각한다면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지 않을 텐데 하며 자살이라는 선택에 의문을 표하는 친구도 있었다. 물론 자살하기 앞서 주변 사람들을 생각하면 그런 생각이 덜해지긴 할 것이라 생각이 들었지만 한편으로는 덜해져도 앞으로의 희망을 꿈꿀 수 없다며 최악을 생각하는 사람들이라면 자신의 선택이 마땅하다고 생각할 것이다.

 

희망을 꿈꿀 수 없는 지금의 것들이 아닌 새로운 부분으로 나아갈 수 있는 더 나은 미래를 그린다면 자살이라는 선택이 조금은 줄어들 것이다. 내가 더 나은 내가 되면 나은 미래를 그릴 수 있겠고 그것이 희망으로 연결이 되겠지만 이런 이야기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것보다도 도움을 줄 수 있는 말은 내 페이스대로 나의 주어진 길을 묵묵히 눈치 보지 않고 걷는 것이라 생각한다. 아니더라도 지금 주어진 상황에서 바꾸거나 눈치 보지 말고 내가 조금이라도 행복할 수 있는 작은 상황을 만드는 것도 또 다른 예로 들 수가 있다.

 

그렇지만 가장 중요한 것, 내일이 궁금하지 않은 사람들에게 자살이라는 결정을 내리기 전에 그것 한 가지만 말해주고 싶다. 그냥 당신은 당신 자체로 이 세상을 살아갈 이유라고. 다른 어떤 따가운 시선들이 당신을 괴롭혀도 나는 당신에게 손 내밀 것이라고 말이다. 그리고 그저 안아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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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연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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