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오늘 헤어지면 다시 만날 수 있을까? - 라 뮤지카

글 입력 2019.12.06 1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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촬영 - 박태양



60분 동안 공연하는 상당히 짧은 연극이다. 작고 어두운 극장에서 두 배우가 한 시간 동안 어떤 이야기를 보여줄 수 있을까? 궁금했다. 호텔에서 만난 두 사람 사이에 극적인 사건은 일어나지 않는다. 사건이 벌어지려면 남녀가 사랑에 빠져야 할 텐데, 그런 일은 없다. 대신 이미 화려하게 불태우고 난 자리에서, 남은 열기를 쬐는 아쉬움이 있을 뿐이다.

 

연극은 전남편 미셸 노레(김기범 분)의 등장한다. 미셸은 극의 시작부터 끝까지 감정선을 이끌고 가는 역할을 맡는다. 헤어진 것에 대한 미련을 숨기지 않는 미셸은 우연히 전부인 안네 마리를 만나 먼저 말을 걸고, 계속 질문한다. 잘 지내? 좋아 보인다. 우리 어쩌다 이렇게 됐을까? 가끔은 내 생각해?


어디서 많이 들어본 질문들이다. 이해는 하지만, 멀리서 보면 한숨이 나온다. 깔끔한 개인주의를 선호하는 이 시대에, 미셸의 태도는 상당히 구질구질한 편이다. 나중에 갈수록 이 둘이 왜 이혼을 하게 되었는지에 대한 사연이 나오기 시작하면 좀 더 한심하다.


미셸과 안네 마리의 결혼은 익숙한 파국의 과정을 밟았다. 권태기로 시작해서 불륜으로 이어지다 시끄럽고 구차한 싸움에 하는 데 지쳐 이혼한다. 이 경우에는 쌍방 불륜으로 남편은 아내가 바람피우는 장면을 목격한다. 그리고 결혼 내내 그녀가 얼마나 비밀스러웠는지, 자신에게 거짓말을 하고 혼자 영화를 보러 간다거나, 산책하는 등의 모습을 미행하며 자기가 얼마나 혼란스러웠는지를 고백한다. 당신의 속내를 알 수가 없었어.

 

전 부인인 안네 마리는 처음부터 내키지 않는 태도로 미셸을 상대한다. 먼저 바람을 피운 건 미셸이고 (당신이 너무 비밀스러워서 내가 얼마나 외로웠는지 알아!) 그 사실을 전해 들은 안네 마리도 뒤이어 바람을 피우는데 그 모습을 본 미셸은 총을 들고 그녀를 죽이려다 그만둔다.


미셸은 계속 묻는다. 좋았어? 그날에 대해 자세하게 말해 봐. 그 사람이 뭘 했는지, 당신은 어땠는지, 하나하나 꼼꼼히! 음, 아무리 극적인 서사가 없다고 하지만 이렇게까지 세속적일 필요가 있을까? 하는 생각에 머리가 아프다. 연애를 둘러싼 문답은 시대를 불문하고 다 거기서 거기인가. 사실 50년 전 작품이라 그렇게 오래되지도 않았다.

 

마지막에, 미국으로 간다는 안네 마리를 가지 말라고 붙잡고 애인들 몰래 만나자는 미셸의 대사까지 들으면 입이 떡 벌어진다. 지금 저 둘이 뭐 하자는 거지? 다행히 침착한 안네 마리는 미셸의 객기를 잘 받아넘긴다. 그럴 수는 없어. 미셸. 우리 추억이 사라지지 않으려면 여기서 헤어져야 해.

 

*


나는 미셸의 미련을 차가운 눈초리로 바라봤지만, 사실 사랑을 두고 깔끔한 게 있을 수 있나. '순백의 눈도 녹으면 질척거리는 것을, 지는 모습까지 아름답기를 바'랄 수는 없다. 타인을 열렬히 사랑한다면 모든 걸 원하는 법이고, 상대와 내가 같지 않다는 사실이 죽이고 싶을 만큼 고통스럽다. 한때 인생의 반려자로 맞이하고, 모든 걸 내 것으로 만들고 싶어 했던 사람과 남남이 되어야 한다니 번민과 갈등이 오죽하겠는가. 연인 사이의 만남과 헤어짐이 꼭 사랑의 부재 때문에 이뤄지는 건 아니라는 것, 그런에도 더는 붙잡을 수 없는 괴로움에 대해 노래한 시가 얼마나 많나. 때로 이렇게 두 인간 사이의 부조리를 한탄한 시들이 가슴을 울린다.

 

미셸은 다행히 한 시간 동안 헤어짐의 다섯 단계 (부정-분노-협상-우울-수용) 를 착실히 밟아간다.


'우리가 끝났다고 생각해? 죽음보다 더, 끝이 나버렸다고?' 미셸은 반복해서 묻는다. 안네 마리와의 헤어짐이 그에게는 죽음만큼 강렬한 것이다. 암 선고를 받은 사람처럼 그는 괴롭고 힘들다.

 

타인과의 관계 자체가 피곤하게 여겨지는 요즘, 이렇게 짙은 사랑의 욕망에 대해 짧고 깊게 풀어낼 작품이 또 있을까? 미셸도 안네 마리도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 인물들이기에 그들의 감정과 욕망은 우리 모두의 것이다. 50년 전 작품이라 약간 고루한 느낌은 있지만, 두 남녀는 희망적인 가능성을 암시하며 헤어진다.

 

'이건 시작일까... 끝일까?' 이렇게 헤어지고 나면 당신과 다시 만날 수 있을까? 우리는 앞으로 어떻게 될까?


이 순진한 질문에 대한 답 없이 두 사람은 다시 고독한 세상으로 돌아가야 한다. 서정주의 시 '여행가'가 읊조렸듯이.


*

 

애인이여

아침 산의 드라이브에서

나와 같은 잔에 커피를 마시며

인제 가면 다시는 안 오겠다 하는가? 

그렇다

그것도 또 필요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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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나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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