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나와 타인까지 사랑하는 삶에 대하여 - 인생에서 너무 늦은 때란 없습니다 [도서]

자기 자신을 돌보면서 타인을 품어주었던 모지스 할머니 삶에 대하여
글 입력 2019.11.24 2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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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농부, 화가

어떤 모습이든 자기 자신을 잘 챙겼던 모지스 할머니


  

 

다들 세 시 반 뉴욕행 열차를 타야 했거든요. 해가 지기도 전에 집이 텅 비었지만 나는 별로 개의치 않았어요. 결혼식과 피로연이 끝나고 모두가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설거짓거리가 무척 많았거든요.

 

 

나에게 이 책의 저자인 모지스 할머니가 어떤 사람이냐고 묻는다면, 저 책의 구절로 할머니를 소개해드릴 것이다. 정말 사랑하는 딸을 다른 가족의 품으로 보냈는데도 모지스 할머니는 그것에 오래 매몰되어 있지 않다. 할머니는 그저 설거짓거리 같은, 자신이 해야 할 일에 집중할 뿐이다.

 

이 책을 읽는 내내 내가 본 할머니의 모습은 그런 것이었다. 타인의 평가에 연연하기보다는, 자신이 해야 할 일과 하고 싶은 일에 집중해서 열심히 살아가는 분이었다. 화가가 되기 전에 모지스 할머니는 일주일에 73kg씩 손수 버터를 만들어 시장에 내다 파는 분이었고, 대량의 감자 칩을 튀겨내 부자가 될 정도로 장사도 잘하시는 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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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서 할머니의 남편 토마스가 할머니에게 당신이 죽고 난 뒤, 모지스 할머니를 걱정하는 장면이 있었다. 토마스는 자신이 죽고 할머니가 혼자 남겨질 걸 생각하면 차라리 할머니가 땅에 묻혀 있는 걸 상상하는 게 낫다는 식으로 말했다. 그 말에 모지스 할머니는 이렇게 말하며 시원하게 응수한다.

 

 

토마스

난 당신을 만나기 전에도

혼자 잘 살았거든요?

 

 

삶에 최선을 다해 잘살고 있는 사람만이 말할 수 있는, 자신만만한 응수이지 않은가? 모지스 할머니는 화가가 된 뒤에도 사람들의 시선이나 말에 전전긍긍하지 않는다. 모지스 할머니의 그림이 대중적인 인기가 높아져도, 미국 화단과 평단에서는 모리스 할머니의 그림을 B급으로 치부했다고 한다. 하지만 모지스 할머니는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아, 유명세는 크게 신경 쓰지 않는 편이고요. 그보단 다음엔 어떤 그림을 그릴지만 생각합니다. 그리고 싶은 게 정말 많거든요.

 

 

내가 이 책을 읽으며 모지스 할머니를 진심으로 대단하다고 느낀 부분은 이것이었다. 사실 나는 글을 쓰는 사람인데 남의 시선에 신경을 많이 쓰는 편이다. 어떤 플랫폼에 글을 기고하고 나면, 계속 사이트를 들락날락하며 내 글의 조회 수가 어떤지 확인하곤 한다. 그리고 요즘 소설 스터디를 하고 있는데 내 소설에 대한 평이 부정적이면, 하루 종일 우울해하고 자신감을 잃을 때가 많았다. 내가 모지스 할머니라면 미술 평단이 나의 작품을 B급 치부하면 붓을 다시 들기 어려워했을 것 같았다. 내가 얼마나 열심히 그려도 내 작품은 B급에서 벗어날 수가 없는데 뭐, 식으로 자포자기해서 말이다.

 

나는 모지스 할머니는 어떻게 그럴 수 있었는지 생각을 계속해보았다. 답은 책의 구절들에서 발견할 수 있었다. 할머니는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를 정확히 알고 있었다. 할머니는 그림을 그리는 걸 서두르기보다는, 여유를 갖고 꼼꼼하게 완성하는 걸 좋아하신다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할머니는 옛날 풍경들을 그리는 걸 좋아한다고 이 책에서 말한다. 오래된 건물, 다리, 여인숙, 옛날식 주택 같은 것들 말이다.

 

이제 얼마 남지도 않았고 빠르게 사라져 가고 있는 것들임에도 불구하고, 거기에 애정을 담은 할머니는 그림으로 그들을 남겨 영원히 존재하게 해주었다. 모지스 할머니에게는 미술 평단의 평가보다는,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하고 좋아하는 것에 마음을 쏟는 게 중요하지 않았을까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나는 오래된 접이식 탁자에서 그림을 그립니다. 35년 전 고모가 물려준 탁자인데, 원래는 통나무 집에 놓을 용도로 만든 것이었지요(..중략) 그 뒤로는 또 오랜 세월 동안 우유를 놓아두는 탁자로 쓰였다고 합니다. 그러던 어느날 고모가 화분 받침대로 쓰라며 내게 이 탁자를 놓아두었지요. 지금은 이젤로 쓰고 있습니다.

 

 

최근에 나는 공모전을 위해 소설을 쓰고 있는데 자주 막혀서 우울한 날들을 보내고 있었다. 그런 날 위로해준 구절이었다. 저 탁자는 통나무집에 놓일 용도였다가, 우유를 놓아두는 탁자이기도 했다가, 화분 받침대로 쓰일 용도이기도 했다. 하지만 저 탁자는 모지스 할머니의 것이 되자 이젤이 되었다. 본래 어떤 용도로 만들어진 탁자이든 간에, 그 탁자를 쓰는 사람이 어떻게 사용하는 것이 결국 그 탁자의 정체성이 되는 것이다. 이 구절을 읽고 누군가가 나를 어떻게 평하든 내가 계속해서 글을 쓴다면 나는 결국 글을 쓰는 사람일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모지스 할머니의 그림이 아름다운 이유 : 타인의 존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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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느꼈던, 너무 사랑스러운 사진.

아이들에 대한 모지스 할머니의

따스한 시선을 느낄 수 있는 그림이다.

 

 

모지스 할머니의 작품에는 할머니의 삶이 오롯이 담겨 있다. 모지스 할머니의 작품이 인기가 있는 이유는 단순히 모지스 할머니가 노쇠한 나이에 그림을 그렸기 때문만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모지스 할머니의 작품에는 아름다운 자연과 그 안에서 살아가는 여러 사람이 함께 존재한다. 여러 모습의 사람들을 따스한 시선으로 그려낸 할머니의 그림이 많은 대중의 마음을 녹였을 것으로 생각한다. 여러 사람을 담아낸 따스한 그림처럼, 할머니도 타인을 기꺼이 품어주는 삶을 사셨다. 모지스 할머니가 애나의 친구들을 언제든지 환대했다는 부분이나, 자신의 형제가 죽었을 때 그의자식을 기꺼이 품고 함께 살았다는 부분을 보면 알 수 있다.

 

앞에서 모지스 할머니가 혼자 남겨질 할머니를 걱정하는 토마스에게 난 당신 없어도 원래 잘 살았다고 응수했다고 소개했다. 그런 모지스 할머니의 말을 듣고 토마스가 다음으로 한 말을 서술하도록 하겠다.

 

 

나도 그건 알아요. 하지만 당신이 지금 혼자가 된다면 그때와는 다를 거예요. 만약에 이승으로 돌아올 수만 있다면 나는 다시 이곳으로 돌아와 당신을 보살필 거예요.

 

 

물론 우리는 혼자서도 잘 살 수 있어야 하지만, 타인과 교제를 하고 나면 그 타인이 없던 삶으로 다시 돌아가기 어려워지는 건 사실이다. 모지스 할머니는 자신이 그림을 꾸준히 그릴 수 있었던 건 토마스가 자신의 그림을 참 좋아해 주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아무리 좋아하는 일이라고 그걸 열심히 한다고 해서, 그걸 알아주는 타인이 조금도 없다면 그 일을 계속하기 어려워질 것이다.

 

 

그날부터 마지막 몇 주 동안 내가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면 토마스가 내 곁을 떠날 줄 몰랐습니다. 바로 옆에서 지켜보면서 내 그림을 참 좋아해주었어요.

 

본격적으로 그림을 그리게 된 건 토마스가 도와주었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나는 늘 생각합니다. 어쩌면 정말로 그이가 돌아와 날 돌봐주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고.

 

 

<인생에서 너무 늦은 때란 없습니다> 책을 읽고 나 자신도 챙기며 타인도 기꺼이 사랑하는 모지스의 할머니 삶이 진정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나도 내가 좋아하는 일에 집중하면서, 타인을 내 삶에도 그리고 나의 작품에 기꺼이 참여시킬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모지스 할머니의 첫 전시가 열렸다는 소식을 듣고 많은 노인들이 찾아갔다는 것으로 안다. 그분들이 모지스 할머니의 전시를 보고 또 얼마나 영감과 용기를 얻었을지 생각을 하면 마음이 따스해진다. 그림 그리는 자신을 지지해주었던 토마스처럼, 모지스 할머니의 그림들은 새로운 걸 도전하는 이들에게 또 다른 지지가 되어줬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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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에서 너무 늦은 때란 없습니다
- 모지스 할머니 이야기 -


지은이
애나 메리 로버트슨 모지스

옮긴이 : 류승경

출판사 : 수오서재

분야
에세이

규격
165*210*16.7 / 무선

쪽 수 : 288쪽

발행일
2017년 12월 16일

정가 : 13,800원

ISBN
979-11-87498-18-6 (03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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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해윤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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