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view] 열기에 바람이 지나듯, 올해도 9월이 지난다

연극 <9월> Preview
글 입력 2019.11.14 1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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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의 시를 좋아하던 친구가 있었다. 손바닥만 한 노트에 이상의 시를 잔뜩 적어서 다니던 친구였는데, 고등학생이던 그때는 알 수 없는 은유로 가득 찬 난해시를 좋아한다는 친구가 신기하고 멋있어 보였다.
 
그 때 내게 이상의 시는 이해할 수 없는 문자의 나열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이 단어를 이곳에 쓴 이유가 뭘까, 띄어쓰기는 왜 안 했을까, 저자가 이 시를 통해 말하고자 하는 것은 뭘까. 아무리 생각해도 정답이 보이지 않는 이상의 시를 친구는 어떻게 다 이해하고 좋아하는 걸까.
 
하지만 친구의 답변은 생각보다 간단했다. 그냥 느낌이 좋다. 친구는 이상의 시에서 배어 나오는 분위기, 단어의 말맛, 읽을 때 느껴지는 몽환적인 운율 같은 모든 것들이 좋다고 했다.
 
그 때 깨달은 것이 있다. 정답을 찾으려는 시도가 예술 작품을 즐기는 유일한 방법은 아니라는 것, 그리고 작품을 읽으면서 느꼈던 ‘좋다’, ‘따뜻하다’와 같은 사소하고 단순한 내 감정도 작품의 새로운 해석이 될 수 있다는 것.

 

9월재공연포스터이미지파일 _ 가로.jpg


 
예술에서 정답을 찾으려는 시도를 언제부터 하게 된 건지는 모르겠다. 오지선다형 문제를 기계처럼 풀어내던 입시의 영향일까. 타인의 의도와 모범 답안을 찾아내기에 바빴던 나는 언젠가부터 내 스스로의 경험과 감각에 소홀해졌다. 그래서 더욱 연극 <9월>의 모토에 끌렸다.
 
무대와 객석, 배우와 관객의 경계가 없는, 내면의 이야기를 발화하고 타인과 나누는 순간 자체가 연극이 되는 연극. 숨 가쁘게 바뀌는 현대 사회를 살아내는 작고 초라한 개인들의 모임. 서로가 서로의 사소한 미시사를 관람하는 연극.
 
이 극이야말로, 정답이 있는 문제를 풀 듯 연극을 관람해 온 내게 필요한 극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말할 상대가 필요해요.
난 어때요?
비밀, 지켜줄 수 있어요?
그럼요.
어떤 것도?

 

 
2018년 초연에 이어 오는 11월 21일부터 24일까지 공연되는 극단 907의 연극 <9월>은 ‘공론장’ 이라는 연극적 공간에서 관객들과 만날 예정이다. 객석에 앉아 무대의 기차역과 인물들을 바라봤던 초연과 달리, 이번 2019년에는 객석과 무대를 분리하지 않은 공간에서 배우와 관객이 모두 이야기의 인물이 된다.
 
<9월>에는 우리가 찾아야 할 작가의 의도도, 복선도, 반전도 없다. 그저 ‘공론장’ 이라는 만남의 공간과 타인과 이야기를 나누고 공감하는 순간, 그리고 그 순간에 오가는 사소한 감정만이 있을 뿐이다.
 


열기에 바람이 지나듯,

올해도 9월이 지난다.
풍경도 계절도 거짓말처럼 모두다.

 

 
거짓말 같은 속도로 변화하는 사람들과 풍경 속에서 아무 일 없이 지나가는 내 안의 9월은 작고 초라하며, 빠르고 위대하게 변화하는 거시사 속에서 나는 그저 거칠고 답답한 매일을 살아낸다.
 
정답을 찾는 것에 익숙해져 어느새 내면의 감상을 말하는 것이 부끄러워진, 사소하고 초라한 9월을 보낸 현대인이라면, 이번 겨울 연극 <9월>의 공론장에서 그 사소함과 초라함에 귀 기울여보는 것은 어떨까.





9월
- 2019 유망예술가 후속지원사업 -


일자 : 2019.11.21 ~ 2019.11.24

시간
평일 오후 8시
토/일 오후 4시

장소 : 언더스탠드에비뉴 아트스탠드

티켓가격
전석 30,000원

주최/기획
907
 
후원
서울문화재단
신한은행

관람연령
만 13세 이상

공연시간
90분





극단 907


907은 주변의 상징과 은유를 찾아, 방식에 구애받지 않고 자유롭게 이야기합니다. 소중한 만남과 대화의 자리가 그러하듯, 당신과 만나는 지금 이곳의 이야기를 나누고자 합니다.
  
 
[황혜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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