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그럼에도 희망은 있다, "인간의 흑역사" 리뷰

글 입력 2019.11.14 0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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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부터 마음에 들었던 책 <인간의 흑역사>를 읽었다. ‘흑역사’라는 단어 때문에 인간이 벌인 기상천외한 실수, 혹은 Y2K 같은 집단적 믿음에 대한 책일거라 생각했다. 예상과는 달랐다.

 

책은 ‘바보짓의 서막’이라는 서문으로 시작한다. 타이틀에 걸맞게 나무에서 떨어져 죽은 유인원 ‘루시’의 이야기를 들려주며 시작한다. 저자는 인간의 사고력과 창의력이 발전의 원동력이기도 하지만, 인간이 ‘바보같이 꼬박꼬박 사고를 치는 이유’라고 말한다. 이 책은 인간의 이기심과 무지로 인해 벌어진 일, 그러니까 대부분 인간이 잘못한 일의 일대기를 다룬다. 흑역사라고 말하기엔 너무 거대하고 치명적인 일들도 많다. 그럼 왜 <인간의 ‘흑역사’>냐고? <인간 잘못의 역사>라고 했으면 누가 읽고 싶을까? 나같아도 읽고 싶지 않을 것 같다.


지은이 톰 필립스는 서양 사람 치고는 꽤나 중립적인 세계관을 갖고 있다. 제 7장 ‘식민주의의 화려한 잔치’를 보면, 서양인의 오만함 때문에 아시아의 문명이 제대로 꽃피우지 못했다고 말한다. 서구가 세계의 중심이라는 생각이 기저에 깔린 사람이나 창작물을 많이 접했다. 대놓고 말은 하지 않지만 자신이 더 우월하다는 의식을 가지고 있다. 책을 읽다 보니 저자가 균형잡힌 사고를 갖고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오랜만에 이런 창작물을 만나 굉장히 신기했다.


뿐만 아니라 환경에 대해서도 제대로 된 시각을 갖고 있다. 제 2장 ‘아, 좋았던 환경이여’에서는 지구온난화와 인간의 무지로 인한 생태계 교란 등 우리가 직면하는 문제를 보여준다. 어떤 영국인 때문에 호주 생태계가 교란된 장을 보고 우리나라 황소개구리가 떠올랐다. 어렸을 때 황소개구리 때문에 토종 개구리와 뱀 등의 개체 수가 줄어들었다는 뉴스를 봤다. 한국에 너무나도 잘 적응한 그들은 새는 물론 박쥐나 뱀을 먹는 상위 포식자가 됐다. 이게 우리나라에서만 일어난 일이 아니라니. 역시 여기나 거기나다.


인간이 저지른 실수가 엄청 많아 책을 넘겨도 끝이 없었다. 다행히 역자가 번역의 맛을 잘 살려주어 책장을 빠르게 넘길 수 있었다. 책을 읽다 보니 내가 저지른 ‘흑역사’를 돌아보게 됐다. 예를 들면 이렇다. 새로 사귄 친구가 있다. 어느 날 카페 쇼케이스 앞에서 한참을 서성이는 모습을 봤다. 그 친구가 케이크를 먹고 싶어하는 줄 알고, 친해지려고 케이크를 샀는데 알고 보니 그녀는 다이어트 중이었다. 제 10장 ‘미래를 못 내다본 실패의 간략한 역사’처럼 조금만 잘 살펴봤어도 파국을 막을 수 있었는데. 그 친구와는 어색한 사이가 되었으며, 지금은 인스타그램에서 서로의 사진을 좋아요 하는 사이버 친구다. 또 다른 예도 있다. 창작물에 피드백이 있어 수정하기로 했다. 그런데 작업자의 스케줄을 확인 안 하고 작업 시간만을 이야기 했다. 작업자에게 연락을 하니 최소 5시간은 걸린다고 한다. 이런. 다시 또 연락을 한다. 이러한 사정을 이야기 하고 스케줄을 바꾼다. 흑역사는 지금도 일어나고 있으며 앞으로도 쭉 쓰여질 거다. 


책을 읽을수록 인류애가 바사삭 사라지는 기분이 들 것이다. 특히, 당신이 인권이나 환경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라면. 인류의 탄생부터 지금까지 매순간 인류는 지구에 폐를 끼치지 않은 적이 없다.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말처럼 인류는 지구의 ‘바이러스’일지도 모른다. 언젠가 바이러스를 자가 치유하기 위해 빙하 시대나 이상적인 고온 현상이 지속될지도 모른다. 읽다보면 인류는 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리고 앞으로도 이럴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좋은 점은 있다. 거대한 실수를 기록함으로써 다음에 일어날 실수를 방지할 수 있다. 조선 왕조가 오래 동안 유지될 수 있던 이유는 바로 ‘조선왕조실록’ 덕분이 아닌가. 그와 똑같은 실수는 안 하겠지만 다른 방식으로 실수할 수도 있다. 계속 실수하고 오류를 고쳐나가면서 성장할 수 있는게 아닐까?


인간의 흑역사는 인류사를 한 권으로 압축한 책이다. 보면서 화가 나고 답답하겠지만, 이게 우리의 운명일지도 모른다. 그동안 완벽주의를 추구했는데, 이 책을 보며 또다시 인간은 미완의 존재일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덤벙대고 실수하는 게 인간의 디폴트라는 걸 다시금 깨달은 책이다.


 




인간의 흑역사
- Humans -


지은이 : 톰 필립스

옮긴이 : 홍한결

출판사 : 윌북

분야
역사/문화

규격
145*220mm

쪽 수 : 276쪽

발행일
2019년 10월 10일

정가 : 14,800원

ISBN
979-11-5581-239-6 (03900)



 

 

 

[김나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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