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짧기 때문에 각인되는 모든 장면들 - "제17회 아시아나국제단편영화제" [영화]

짧은 러닝타임 안에서도 많은 것을 기억하고 느끼게 하는 단편영화만의 매력
글 입력 2019.11.12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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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나국제단편영화제, 그리고 이탈리아 단편 특별전


 

나는 스스로 단편영화를 접해본 적이 없다고 생각했지만 따지고 보면 그렇지도 않았다. 본 영화가 시작하기 전에 짧게 상영된 디즈니 단편 영화들을 관람한 기억이 되살아났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내가 단편영화를 막연히 낯설게 느꼈던 것은 나의 편견 때문이었다. 왜인지 어렵고 함축적일 것 같고, 마치 미술관에서 어려운 영상작품을 맞닥뜨렸을 때처럼 혼란스러운 감정만 남을 것 같았다.

 

하지만 이번 문화초대로 아시아나국제단편영화제 관람 기회를 얻게 되어 작품 설명들을 찬찬히 읽어 보면서, 나는 새로운 기대감을 얻을 수 있었다. 모든 설명들은 간결하고 축약되어 있었지만, 짧은 문장들 안에서도 궁금증을 얻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단편영화 감독은 짧은 시간 안에 말하고자 하는 바를 효과적으로 전달해야 한다는 점에서 관객인 나 또한 새로운 흥미를 찾을 수 있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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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아시아나국제단편영화제는 아시아나항공의 순수문화 예술지업사업의 일환으로 단편영화계를 적극 후원하고 많은 이들에게 단편영화를 알려 왔다. 올해로 17회를 맞이하는 아시아나국제단편영화제는 단편영화의 상영 공간을 확장하고 단편영화의 시장 창출을 도모한다.
 
그리고 이탈리아 단편영화 센터와 함께 공동 기획한 ‘이탈리아 단편 특별전 1’은 베니스영화제나 오버하우젠국제단편영화제, 템페레국제단편영화제, 클레르몽페랑단편영화제, 선댄스영화제 등 세계적인 국제단편영화제에서 인정받은 작품들부터 최신 이탈리아 단편까지 소개하였다.
 
상영에 앞서 진행된 관객과의 대화 프로그램에서 이탈리아단편영화센터 센터장 야코포 께사는 이번 특별전에서 소개되는 영화들은 이탈리아 단편 영화 중 최고 수준이라 볼 수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중에서도 내 인상에 남았던 세 작품을 소개하도록 하겠다.
 
 

 

이탈리아 단편 특별전 1 - <진혼곡(ReCuiem,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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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발렌티나 카르넬루티 감독의 <진혼곡(ReCuiem, 2013)>이다. 작품의 제목인 ‘진혼곡’은 죽은 이를 위한 미사곡으로, 제목에 걸맞게 한 인물의 죽음을 다룬다. 하지만 그 죽음은 일상적이고 고요하다. 엠마는 어린 아이들을 잠옷으로 갈아입히고 잠자리에 든다. 그리고 아침이 밝은 뒤, 7살 레오는 엄마가 일어나지 않자 엄마를 위한 아침을 준비하고 여동생 안네따의 기저귀를 간다. 하지만 쉬운 것은 없다. 쟁반을 떨어뜨려 난장판이 되거나 방을 어지럽히기도 한다. 
 
하지만 계속 엄마가 일어나지 않자, 레오는 안네따와 함께 화분의 제라늄 꽃송이를 잘라 엄마 위에 장식한다. 그래도 엄마는 계속 같은 자세로 잠들어 있고, 이내 엄마의 남자친구가 집을 방문한다. 그는 엠마 대신 아이들의 옷을 갈아입히고, 레오는 엄마의 죽음을 알아챈 것처럼 보인다. 눈 내리는 창가에 홀로 앉은 레오의 모습을 배경으로 영화는 막을 내린다.
 
 

 

이탈리아 단편 특별전 1 - <새로 온 이웃(New Neighbours,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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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드레아 만니노와 사라 브루지오, 지아코모 리날디의 <새로 온 이웃(New Neighbours, 2018)>은 이번 이탈리아 단편 특별전의 유일한 애니메이션 단편영화로, 백인 우월주의자 도날드와 그의 이웃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다. 어린 딸을 둔 도날드는 옆집에 새로 이사 온 이웃이 못마땅하다. 그래서 각 집의 마당을 경계로 드높은 담장을 쌓고, 이웃 또한 덩달아 담장을 쌓는다.

 

하지만 도날드의 딸은 이웃집 딸과 친해지고 싶어 안달이다. 아이들은 서로 만나기 위해 높은 담장을 기어 올라가고, 담장이 위태롭게 흔들리며 무너지려 하자 아버지들은 기겁하며 담장에서 떨어지는 아이들을 붙잡는다. 하지만 도날드는 이웃의 딸을, 이웃은 도날드의 딸을 안고 있었다.

 

이 작품은 성인의 왜곡되고 비틀린 편견을 무색하게 만드는 아이들의 순수한 시각에 집중한다. 서로를 향한 분노를 담은 느낌표들이 와르르 무너진 담장 속에서 물음표로 바뀌는 장면은 영화 속의 도날드뿐만 아니라 우리에게도 부끄러움을 안겨 준다.

 

 

 

이탈리아 단편 특별전 1 - <매직 알프스(Magic Alps,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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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안드레아 브루자와 마르코 스코투치의 <매직 알프스(Magic Alps, 2018)>는 실화를 바탕으로 제작된 작품이다. 아프가니스탄의 양치기 사이드는 그가 키우는 염소 살리마와 함께 이탈리아 국경에 다다르지만, 이탈리아 이민국은 예방주사도 맞지 않은 염소가 국경을 통과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 그러나 사이드는 알프스에 데려가 눈을 다시 보여주겠다는 살리마와의 약속을 어길 수 없었다. 그러나 살리마는 고삐가 매인 채 사이드와 격리되고, 그는 살리마를 만나게 해 달라고 애원한다.

 

결국 다시 만나게 된 살리마에게 사이드는 베갯잇을 뜯어 깃털 뭉치를 흩뿌려 준다. 살리마는 쨍쨍한 햇살 아래에서 마치 눈처럼 흩날리는 깃털들을 맞으며 즐거워한다. 입국관들은 그 둘의 모습을 바라보고, 결국 살리마는 이탈리아 최초로 난민과 함께 망명한 동물이 된다. 그들의 에피소드를 시작으로, 그 이후로도 여러 난민들은 반려동물들과의 이별을 피할 수 있었다. 모든 개인을 위한 배려가 불가능한 행정 제도 하에서도 살리마에 대한 사이드의 순수한 사랑은 반려동물들이 주인과 함께 새로운 나라에서 정착할 수 있도록 커다란 변화를 이끌어 낸 셈이다.

 

*

 

광화문 씨네큐브를 떠나 기숙사로 돌아가는 지하철 안에서 안내데스크에서 받은 책자를 펼쳤다. 내가 관람한 영화들에 대한 소개를 읽으며 기억을 되살리던 중 러닝타임이 눈에 들어왔다. 대부분의 영화들은 10분에서 20분 정도였고 그중에서도 <새로 온 이웃>은 5분에 불과했다. 10분은 보통 장편영화가 상영하기 직전의 광고 시간이다. 고작 광고 시간 정도의 러닝타임 안에서도 모든 작품들은 장편영화 못지 않은 인상을 남겨 주었다. 오히려 짧은 시간이었기에 영화의 매 순간과 장면들이 깊이 각인되기도 했다.
 
이번 아시아나국제단편영화제는 단편영화에는 문외한이었던 내가 단편영화의 매력을 충분히 느꼈던 귀중한 경험들을 안겨 주었다. 뿐만 아니라 단편영화의 지평을 넓히기 위해 개최되는 아시아나국제단편영화제가 제 목적을 톡톡히 달성하고 있다는 것 역시 알아볼 수 있었다.

 

 
[유수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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