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뮤지컬 "지킬앤하이드", 제대로 분석해 보자! (3)

글 입력 2019.11.06 1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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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글은 작품의 직접적인 내용 일부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지킬앤하이드>는 지킬의 도덕성에 대해서는 철저히 함구한다. 지킬은 엠마와의 약혼식 후에 기분 전환을 하러 나가자는 친구의 제안에 못 이겨 루시가 있는 사창가를 방문하게 된다. 그리고는 옷을 반쯤 벗고 남성들의 시선에 갇혀 노래하고 춤추는 루시를 아무 말 없이 지켜본다. 지킬은 자신의 무대가 어땠냐는 루시의 질문에 아주 멋진 공연이었다고 답하고, 무대 위에서의 모습이 루시의 전부가 아닐 것 같다고 말하면서 루시를 감동시킨다. 또 사창가의 한 남성에 의해 거칠게 다뤄지는 루시를 영웅처럼 구해준다.


지킬은 이 작품에서 한 마디로 ‘멋진’ 인물이다. 지킬은 무조건적으로 정의롭고, 여성에게 자상하며, 성실한 인물이다. 작품은 사실 비겁한 방관자에 불과한 지킬의 멋진 면모를 부각시키는 데에 최선을 다한다. 지킬 역을 맡은 배우들도 무대 위에서 지킬이라는 인물이 아닌 지킬의 ‘멋짐’을 연기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또한 작품은 지킬에게 놀라울 정도로 관대하다. 하이드가 되어 루시를 죽인 지킬은 바로 다음 신(scene)에서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본모습으로 돌아와 뻔뻔하게 엠마와 결혼식을 올리려 한다. 루시를 죽인 후 죄책감에 시달리는 지킬의 모습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그리고 지킬이라는 캐릭터를 빛내는 데에 루시가 가차없이 이용된다는 점은 부인하기 어렵다. (이는 ‘선’이라는 성역에 속한 이상적인 여성 엠마가 하이드의 공격을 받지 않는다는 점과도 대비된다.) 루시가 이유는 묻지 말고 런던을 떠나라는 지킬의 편지를 받은 후, 자신의 침대 위에서 부르는 ‘A new life(새 인생)’이라는 넘버는 그러한 점에서 설득력이 떨어진다. 남성 캐릭터인 지킬의 명령, 심지어 자신이 왜 떠나야 하는지도 알려주지 않은 명령이 루시가 자신의 인생의 방향을 바꾸는 사건이 되었다는 전개는 받아들이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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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당 넘버와 함께 극의 텐션은 증폭되지만, 사실 이 넘버의 기능은 거기에서 그친다. 결국 하이드에게 복종하며 강간당하다 죽음을 맞이하는 루시에게 ‘새 인생’이란 대체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A new life(새 인생)'이라는 넘버는 그저 ‘무력했던 여성 캐릭터의 주체성 획득’, ‘비참한 죽음을 맞이한 비극적인 여성 캐릭터의 마지막 외침' 등의 구색을 맞추기 위해 삽입된 넘버로 느껴진다. 거칠게 말해 극에서 남성 캐릭터의 넘버가 압도적인 비중을 차지한다는 점을 깨달은 창작진이 여성 캐릭터를 위한 솔로 넘버를 하나쯤 끼워넣은 듯한 인상이다.


여담이지만, <지킬앤하이드>는 사건의 인과관계를 명확히 하지 않은 작품이다. 작품을 보고 나면 다음과 같은 질문들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하이드는 대체 왜 루시를 죽인 걸까? 그냥 악의 화신으로 설정된 인물이라서? 정신 병동의 환자들을 자신의 실험 대상으로 삼을 수 없으니, 자기 자신이 실험 대상이 되어야 겠다는 지킬의 생각이 ‘지금 이 순간’이라는 웅장한 넘버로 표현될 만큼 대단한 아이디어인가? ‘지금 이 순간’은 그저 지킬이 스포트라이트를 한 번 더 받을 수 있게 하기 위해 만들어진 넘버가 아닐까?

 

하이드는 지킬의 실험에서 대체 무엇이 잘못되었길래 탄생한 것일까? 지킬은 하이드의 존재를 어떻게 그렇게나 빨리 알아챌 수 있었던 것일까? 애초에 자신의 아버지와 같은 환자들을 구원하는 데에 선악 분리 실험이 왜 필요한 것일까? 작품에서 남성 캐릭터인 지킬의 서사가 비정상적으로 비대해진 현재의 <지킬앤하이드>에서는 위의 질문들에 대한 답을 찾기 어려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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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본론으로 돌아와, 많은 배우들이 인터뷰에서 <지킬앤하이드>가 모든 남성 배우들에게 로망인 작품이며, 그중에서도 지킬 역은 뮤지컬계에서 최고의 자리에 올라야만 맡을 수 있는 배역이라고 말하고 있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무력감을 안겨준다. 지킬을 연기하는 배우들은 자신이 ‘지킬 역을 연기할 수 있어 영광’이라고 말한다. 예술이라는 이름을 방패 삼아 무대 위에서 종횡무진 폭력을 행사하고는 비난을 받기는 커녕, 빛나는 스포트라이트와 관객의 열띤 환호를 받는 그들이 무대 위에서 느낄 쾌감에 나는 동의할 수 없다. 같은 작품에서 루시와 같은 여성 캐릭터는 몇 번이나 옷이 벗겨진 채 무대 위에 전시되고, 강간당했을까.

 

지킬 역이 남성 배우의 능력과 유명세의 증표로 여겨지는 것과 달리, 루시 역은 그 험난함에도 불구하고 여성 배우들의 등용문과 같이 여겨진다. 루시 역을 거치는 것은 성공을 꿈꾸는 여성 배우들에게 관습적인 통과 의례처럼 여겨진다. 시장에서 인정받는 배우가 되었을 때 맡을 수 있는 역할이 성별에 따라 이렇게 큰 차이가 난다는 사실이 안타깝다. 덧붙여 초연 때부터 같은 역할을 맡은 조승우 배우를 포함해 지킬 역을 맡은 배우들은 모두 30대 후반인 데에 비해(조승우 배우는 무려 15년째 같은 역할을 맡고 있는 것이다), 작품의 여성 캐릭터를 맡을 배우들은 점점 20대의 젊은 배우들로 교체된다는 점 또한 생각해 보아야 할 문제이다.


<지킬앤하이드>가 한국 뮤지컬계에서 믿음직한 스테디셀러가 된 데에는 한국 뮤지컬 산업의 스타 중심형 소비 구조의 영향이 있었을 것이라 추측한다. 조승우와 홍광호 배우가 보장하는 전석 매진 행렬이 분명 <지킬앤하이드>에게 엄청난 이익을 가져다 주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해당 작품이 두 배우가 없었던 프로덕션에서도 꽤나 큰 이익을 보았다는 점을 고려하면, 그러한 소비 구조만의 문제는 아닌 듯하다. <지킬앤하이드>의 성공 신화는 뮤지컬을 쓰고, 제작하고, 소비하는 모든 사람들이 함께 성찰해 보아야 할 문제이다. <지킬앤하이드>가 비로소 스테디셀러의 자리에서 내려왔을 때, 우리나라 뮤지컬 산업이 어떻게 변화되어 있을지 궁금하다.

 

 

[이승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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