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뮤지컬 "지킬앤하이드", 제대로 분석해 보자! (1)

글 입력 2019.11.06 0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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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글은 작품의 직접적인 내용을

일부 포함하고 있습니다.

 

 

지난해 11월 첫 공연을 올린 뮤지컬 <지킬앤하이드>(이하 <지킬앤하이드>)가 올해 9월 15일, 서울 앵콜 공연을 마지막으로 비로소 막을 내렸다. 투어 공연 포함 공연 기간 약 10개월, 2004년 초연 이후 누적 관객수 150만명 이상이라는 이 대기록은 꽤 오랫동안 정상의 자리를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 <지킬앤하이드>는 공연될 때마다 관객들의 큰 호응을 얻고 있는, 명백한 한국 뮤지컬계의 스테디셀러이다.

 

그러나 화려한 기록의 이면에는 <지킬앤하이드>에 대한 적지 않은 비판과 우려의 목소리도 존재한다. 작품의 '만 7세 이상'이라는 석연치 않은 관람등급과, 많은 뮤지컬 작품에서 반복되고 있는 작품 속 여성 혐오의 문제는 꽤 오랫동안 논의되어 온 문제이다. 실제로 <지킬앤하이드>에 대해 잘 알지 못한 채 작품의 유명세를 믿고 해당 뮤지컬을 관람한 많은 사람들이 예상치 못한 작품의 선정성에 놀라기도 했다. 15년 동안 정상의 자리를 지켜온 뮤지컬 <지킬앤하이드>이지만, 작품은 긴 시간 동안 관객들의 거센 비판을 받아야만 하기도 했다.

 

안타까운 것은 그러한 비판의 목소리가 실제 공연 제작 과정과 연출에 큰 영향을 끼치지 못했다는 점, 그리고 작품에 대한 비판적 논의가 그동안 하나로 통합되지 못하고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다는 점이다. 그래서 본 글은 지금까지 각론으로 남아 있던 뮤지컬 <지킬앤하이드>에 대한 비판적 논의를 한데 모아 해당 뮤지컬을 다양한 각도에서 꼼꼼하게 분석해 보려고 한다. 본 글이 <지킬앤하이드>를 보다 세심하게 이해하고, 독자들에게 작품의 소비에 대해 재고해 보는 기회를 마련해 줄 수 있길 바라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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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뮤지컬 <지킬앤하이드>는 탄탄한 서사나 상호 유기적인 대사, 내면 묘사의 탁월성을 기대하기 어려운 작품이다. <지킬앤하이드>는 ‘인간 내면의 선악에 대한 고찰’을 그 주제로 표방하는 듯 보이지만, 사실 작품에서 창작진이 해당 주제에 대해 성찰한 흔적은 찾아보기 어렵다.

 

<지킬앤하이드>에게 선악의 대비 구조란, 관객의 눈에 선명하게 각인되는 무대를 연출하기 위한 피상적인 도구일 뿐이다. 그렇기에 작품을 관람할 때 <지킬앤하이드>라는 극이 정의한 ‘선’과 ‘악’, ‘위선’의 구체적인 의미가 무엇인지 파악하기가 쉽지 않다. <지킬앤하이드>에서 위의 개념들은 모호하게 설명되고, 이들 간의 관계와 경계 또한 명확하지 않다. 개인적인 감상으로는 해당 작품이 ‘악’과 ‘위선’을 혼동한 듯한 인상이다.


<지킬앤하이드>는 ‘악’과 ‘위선’이라는 요소를 ‘기독교 세력의 기만적 행태’라는 비교적 익숙한 주제와 함께 뭉뚱그려 버렸다. 지킬은 아버지와 같이 정신질환으로 고통받는 자들을 구원하기 위해 병원의 이사회로부터 선악 분리 실험에 대한 허가를 요청한다. 그리고 자신의 허가를 내어주지 않은 이사회 사람들을 위선자라고 칭하며 분노를 표출한다.

 

작품에서 ‘주교’와 같은 캐릭터들이 저지르는 미성년자 강간과 같은 만행들은 분명 위선이라 말할 수 있다. 하지만 ‘선’을 주창하며 정신병동의 환자들을 대상으로 선악 분리 실험을 하겠다는 지킬의 요구를 이사회가 거절한 것에 대해선 동일한 평가를 내리기 어렵다. 누구든지 상식을 가진 사람이라면 정신병 환자를 실험 대상으로 하는 이 위험하고 기괴한 실험을 허락하지 않을 것이다.

 

지킬이 분노를 표출하는 일명 ‘이사회 신’은 그래서 설득력이 없다. 이 장면은 그저 극의 중후반부에서 하이드가 분노에 찬 채. ‘정의 구현’이라는 미명으로 '위선적인’ 이사회 사람들을 죽이게 만드는 도화선 쯤으로 이용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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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관객의 입장에서 ‘악’의 표상인 하이드가 여성 강간과, (비록 살인이라는 수단을 사용하기는 했지만) ‘정의 구현’을 동시에 행하는 캐릭터인 점 또한 상당히 혼란스럽게 다가온다. 작품에서 하이드는 자신을 사랑하는 루시를 폭력으로 길들여 그녀를 수차례 강간한다. 성범죄는 어째서 이토록 쉽게 무대 위에 재현되고, 수만 명의 관객들에게 소비될 수 있는 것인가? 창작진은 하이드가 악의 화신이라는 점을 임의로 이용하여 무대 위에서 벌어지는 강간이라는 끔찍한 범죄 현장을 방관하고 말았다.


또한 선악 분리 실험을 하던 지킬의 내면에서 자라나 그에게서 분리되는 하이드라는 새로운 자아가 태어난 순간부터 숙주인 지킬의 존재를 알고 있는 것은 차치하더라도, 지킬이 자기 내면의 ‘악’의 결정체인 하이드의 존재를 그의 탄생 직후부터 인지했다는 것은 상당히 부자연스럽게 느껴진다. 개인적인 의견이지만 지킬이 하이드의 존재를 처음부터 알고 있는 것보다는, 지킬이 모종의 계기로 인해 하이드의 존재를 깨닫고 충격을 받아 고뇌하는 것이 더 설득력 있게 느껴진다.

 

<지킬앤하이드>는 그러한 고뇌의 과정을 작품에 충분히 녹여내지 못했다. 이렇게 지킬을 ‘선’으로, 하이드를 ‘악’으로 간주하는 이분법적인 설정 아래에서는 지킬의 그러한 내면적 갈등이 작품에서 충분히 묘사되었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작품은 하이드라는 괴물의 존재로 인해 선악에 대해 고민하게 되는 지킬의 모습이 아닌, 하이드의 괴력에 잠식되어 육체적으로 고통스러워하는 지킬의 모습을 주로 그린다. 앞서 언급했듯 <지킬앤하이드>에게 선악의 대비란, 구색을 맞추기 위한 피상적인 장치일 뿐임이 여기에서 드러난다.

 


2편에서 계속.

 

 



[이승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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