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글을 쓰는 이유 [문화 전반]

글을 쓰는 이유 - 과거, 현재, 미래
글 입력 2019.10.28 0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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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쓰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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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이 써지지 않을 땐 무작정 시도하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하나는 글이 쓰고 싶어질 때까지, 마음속에서 무형의 생각이 언어로 구체화 될 때까지 조용히 기다리는 일이고, 또 다른 하나는 닮고 싶은 문장을 무작정 필사하는 일이다. 특히 첫 문장이 생각나지 않을 때, 다른 사람의 문장을 천천히 눈과 마음과 손에 담아보는 일이 꽤 큰 자극을 준다.

 

최근 나에게 가장 큰 자극을 주는 것 중 하나는 9월부터 소소하게 진행해온 글쓰기 모임이다. ‘글을 경험하는 곳’이라는 컨셉으로 전문적인 글쓰기가 아닌, 소소한 일상 속 글감으로 글을 쓰고 이야기를 나누고, 문장을 나눈다. 글쓰기 모임을 진행할 때마다 하나의 글감이 무수히 많은 문장으로 진화하는 과정을 본다. 사람들이 그려나간 언어의 지도를 따라가면서, 왜 이런 글을 쓰고 싶었는지, 왜 그런 제목을 붙였는지 같이 글에 대한 뒷이야기를 듣는다. 사람마다 글을 쓰는 이유가 다르고, 좋아하는 문체도 달라서 그 다름의 맛을 알아가는 재미도 쏠쏠하다.

 

매 첫 모임마다 ‘글을 쓰는 이유’를 묻는데, 지난번 모임에서 아주 흥미로운 대답이 나왔다. ‘글은 다른 사람과 함께 이야기하는 재미있는 놀이’라는 대답이었다. 글을 쓰고, 글을 읽고 이를 통해 여러 생각을 나누는 과정을 ‘놀이’라고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이 새삼 놀라웠다. 늘 ‘나’에 대해 표현하고 기록하고 정리한다는 취지의 이유에 대해 듣다가, 잊고 있던 ‘소통’이란 글의 또 다른 국면을 맞이한 순간이었다. 이 대답을 듣는 순간, 나는 과연 얼마나 소통하고 있었던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 나만의 시각에 빠져 도취 되어있지는 않았는지, 그동안 얼마나 다른 이들의 의견에 귀 기울였는지, 자문하게 되는 순간이었다.

 

이 대답을 듣고 글쓰기 모임에 오시는 분들의 여러 생각을 들으면서, 사람들이 글을 쓰는 이유에 대해, 글쓰기를 통해 얻길 기대하는 바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다. 왜 글을 쓰냐는 질문에 대한 대답은 다양했다. 글을 쓰면서 자신을 더 잘 알 수 있기에 글을 쓴다는 분, 글을 쓰려고 온전히 집중하면 잡념이 사라진다던 분, 기록은 힘들지만 후에 과거를 더 풍성히 추억할 수 있다던 분, 조금 더 정교하게 생각을 표현하기 위해서 글을 쓴다던 분 등 여러 사람이 각자의 이유로 글을 써 내려가고 있었다. 그리고 모임마다 꼭 한 번씩 나오던 대답이 있었다. 글을 쓰면 스트레스가 풀린다. 이분들은 감정을 기록하는 글이 아니라, 감정을 배출하기 위해 글을 쓰는 분들이었다. 그래서 궁극적으로는 감정을 휘발시키기 위해서.

 

 

 

01 자기 해방의 글쓰기


 

글을 쓰는 행위는 실제로 감정을 객관화시킨다. 무형으로 존재하는 감정과 생각들을 ‘언어’라는 매개를 통해 마음속에서 세상 밖으로 내뱉는 행위엔, 항상 언어의 논리가 들어차 있다. 추상적이고 시시각각 변하는 감정을 ‘언어’라는 도구로 표현하기 위해서 우리는 조금 더 구체적이고 정교하게 감정과 마음을 들여다보아야 한다. 특히 조금 더 빠르게 날아가 버리는 말보다 글로 자신의 마음을 기록할 때, 이 사고의 과정은 더 정교해진다. 글을 쓰는 동안 우리는 감정을 나에게서 분리하고, 후에 활자로 남은 우리의 감정을 바라보면서, 조금 더 객관적으로 자신을 바라볼 수 있게 된다.

 

 

글을 써나가는 동안

우리에게 변화가 생기고 축적됩니다.

 

제 아무리 복잡한 감정이라도

글을 쓰는 논리적인 과정을 통해

우리는 강해지게 됩니다.

 

글을 쓸 수 있는 한,

우리는 살아있습니다.

 

 

김영하 작가의 ‘자기 해방의 글쓰기’ 강연은 이러한 글쓰기가 주는 ‘감정으로부터의 해방’을 아주 적절하게 설명해준다. 글을 씀으로써 감정의 자신의 내부에서 외부로 끌어내면, 우린 감정을 디디고 일어서 더 강해질 수 있다. 이 글쓰기의 힘은 내가 직접 경험한 바가 있었기에 내가 진행하는 글쓰기 모임에서도 자주 언급했던 글쓰기의 이유였다.

 

 


 

 

 

02 감정의 구체화



또 다른 글쓰기의 이유는 애매하게 존재하는 생각과 흐릿한 인상들을 구체적인 형태로 기록하고 붙잡아두기 위해서, 그래서 조금 더 나의 생각과 마음이 명확해지기 위해서다. 유시민 작가의 『공감필법』에 대한 강의에서 이런 말이 나온다.

 

 

문자로 표현해보기 전까지는,

내가 가지고 있는 생각과 감정은

내 것이 아니에요.

 

 

이 문장을 듣는 순간, 지금 현재. 그리고 꽤 오랫동안 내가 글을 쓰는 이유의 상당 부분은 이를 위해서였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를 조금 더 명확히 알아보기 위해, 나를 조금 더 풍성하게 만들기 위해. 사실 고향에 내려오면서 내 일상은 조금 더 여유로워졌다. 일주일에 두세 번 연극을 보고 영화를 보고 갤러리에 간다. 독서 모임을 만들고 글쓰기 모임을 만들고, 대구 이곳저곳 다양한 문화 활동들을 해나간다. 생활비에 대한 압박도 서울에 있을 때보단 덜하다. 다만 문화 예술은 일상이 되었는데, 그에 비해 문장으로 나오는 글의 양은 적다. 붕 뜬 채로 날아가버리는 흐릿한 인상들이 가득하다. 글을 쓰고 싶을만큼 인사이트가 없는 것인지, 그저 글을 쓰고 싶지 않은 것인지 판단이 서지 않을 때도 많다.

 

이런 기분이 들 때마다 저 문장을 생각한다. 기록하지 않으면, 활자로 남지 않으면 어떤 것들은 사라지고 만다. 내가 남기고 싶은 것들에 대한 기준을 세우고 그것들을 더듬더듬 적어 나가야한다. 과거의 감정을 해방시키기 위한 글쓰기를 떠나 이제 나의 글쓰기는 이 이유로 지탱되고 있는 것 같다. 내가 가지고 있는 생각과 감정을 보다 뚜렷하게 내 안에 각인시키기 위해.

 

 

 

 

<흐려지는 감정>

 

눈 앞에서 멀어지는 감정을,

마음에서 멀리 떠나 보낸 감정을

 

다시다시 오라고 조를 수 없는 건,

다시다시 오라 하며 간절히 떠올려봐도

 

흐릿하게 퍼져버린 형체는

결코 짧은 시간에 흐려진 것이

아니기 때문이며

 

다시 오는 일도

단단해지는 시간을

또 다시 거쳐야 하기 때문이다

   

흐려지도록 내버려둔 마음과 머리는

결코 흩어진 감정의 쉬운 되풀이를

허락하지 않는다

 

- 강민경, 『서른 결의 언어』

 

 

 

 

03 소통의 놀이


 

마지막 글쓰기의 이유는 ‘대화하기 위해서, 이해하기 위해서, 소통하기 위해서’다. 쓰다 보니 내가 글을 쓰는 이유의 과거, 현재, 미래 버전이 되는 것 같다. 다른 사람과 잘 ‘대화’하기 위해서 글을 쓰는 것이 어쩌면 궁극적으로 추구해야 할 글쓰기의 이유가 아닐까 생각한다. 가장 실천하기 어려운 글쓰기의 이유이기도 하다.

 

『대통령의 글쓰기』 저자 강원국 작가는 <사람을 움직이는 글을 쓰는 법>에서 사람의 마음에 닿기 위한 여러 글쓰기 팁들을 알려주었다. 구체적으로, 이익을 주면서, 강요하지 않으며, 납득할 수 있고, 공감할 수 있게, 정확한 단어와 이야기를 활용 해야 사람의 움직이는 글을 쓸 수 있다고 말이다. 하지만 끝에서 이런 말을 덧붙였다. 잘 살아야, 잘 쓸 수 있다고. 사람들은 글보다 사람을 먼저 인식하기에, 나 한 사람의 인생을 잘 산다면 내 인생의 이야기가 나의 글들을 더 풍성하게 해 주기에 좋은 글에 앞서 좋은 인생이 필요하다고 말이다.

 

나는 어떤 글을 쓰고 싶은지 찬찬히 생각했다. 그리고 어떤 인생을 살고 싶은지도 생각했다. 나는 끊임없이 새로운 관점을 제공하는 글을 쓰고 싶었다. 나는 새로운 것들을 끊임없이 탐험하는 삶을 살고 싶었다. 내가 살고 싶은 삶의 형태가 고스란히 내 글에 옮겨진다면, 사람들은 어떤 것들을 얻어갈 수 있을까 질문했다.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이 아마 내가 글쓰기라는 소통의 놀이를 조금 더 잘 해낼 수 있는 열쇠가 될 것이라 생각한다.

 

 


 

 

지금까지 일곱가지를 말씀을 드렸는데...

사실은 이건 스킬에 불과해요.

 

제가 맺음말로 드리고 싶은 말씀은

‘잘 살아야 잘 쓴다.’

.

.

.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했죠.

사람이 설득되는 것은

'에토스'다.

그 사람 자체다.

사람은 누가 썼는냐를 보고

그 글에 설득당하고 감동받는다.

.

.

.

사람을 보고 글을 판단하기 때문에

글을 잘 쓰기 위해서는 잘 살아야 한다.

그래서 마음을 움직이는 글을 쓰기가 어렵죠.

 

 



[한나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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