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스키조, 정말 괜찮아? [TV/드라마]

글 입력 2019.10.22 2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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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 분열증에 대한 인식의 변화는 현대인들의 가장 큰 숙제이다. 마음이 아픈 사람들이라고 안쓰러히 여기자니 뉴스에서 나오는 조현병 환자들의 범죄 행위의 강도가 점점 심해지고, 완전히 외면하자니 저마다 각자의 사연이 안타깝고. 하지만 이러한 딜레마부터가 인식 변화의 시발점이다. 정신병자라고 칭하며 피하기만 하던 이들의 사연을 들어보고, 아픔에 공감하는 자세. 우리는 조금씩 노력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정신 분열을 앓고 있는 장재열. 장재열에게는 나이는 어리지만 소설이라는 공통점을 통해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친구 ‘강우’가 있다. 자신의 어린 시절과 비슷해 안쓰러우면서도 자신에게는 없었던 보호자가 되어주면서 강우를 지켜내고 있다. 과연 재열은 강우에게 무엇이 되고 싶었던 걸까. 친구? 보호자? 아니면 스승?
 
재열은 어린 시절 남들에게 쉽게 말할 수 없는 사고를 겪었다. 의붓아버지이 폭력과 이를 못 참고 결국 칼을 든 형. 어린 시절 이런 아픔을 겪었다는 사실을 누가 예상이나 할까 싶을 정도로 밝고 건강하게 자라난 것 같아 보이는 재열이다. 다만 침대가 아닌 화장실 욕조에서만 잠을 자는 모습이 안타까움을 자아낼 뿐.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을 있다 했는가. 우연인지 필연인지 재열은 정신과 의사 ‘해수’을 만나 자신의 병을 처음으로 고백한다. 자신의 아픔을 재밌는 에피소드인 마냥 억지스러운 폭소로 포장하는 모습은 웃음을 울음으로 보이게 하는 효과를 자아낸다. 관계가 가까워지면서 둘은 사랑을 나누고 결혼을 전제로 서로에게 진지해진다. 하지만 이들에게는 치료해야 할 숙제가 남아있다. 바로 재열의 상처. 한 번도 털어놓은 적 없는 아픔을 해수에게 온전히 고백할 수 있던 원동력은 무엇일까. 아마도 해수의 진심 어린 토탁임이 아니었을까. 재열은 해수 앞에서 몇 번의 이상증세를 보인다. 그럴 때마다 해수가 재열에게 했던 말 ‘괜찮아 다 괜찮아’ 그리고 재열을 안고 진정할 때까지 멈추지 않고 토탁여준다. 해수는 당황하지 않는다. 오히려 당연시 받아들인다. 해수의 작은 토탁임에 자신의 모든 아픔을 고백한 재열.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따뜻함으로 인해 순한 양으로 변하게 되는 어린아이의 모습이 형상화되는 순간이다.

필자는 어떤 예술 작품이든 목적성이 없다면 예술로 칭할 수 없다는 소신을 갖고 있다. 마땅한 소신인지는 모르겠으나 평론하는 글을 쓰거나 칼럼을 연재하는 입장에서는 좋은 효과를 가져온다. 따라서 이 작품 역시 의도를 파악해보자면 누구에게나 아픔은 있다는 메시지와 어릴 적 트라우마가 성인돼서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경각심이 아닐까 싶다. 서론에서 언급한 ‘강우’의 이야기로 돌아가 보면 강우는 실제 존재하지 않는 인물 ‘환시’이다. 돌이켜보면 재열과 만난 3년 내내 교복을 입고 고등학생 신분이었다. 또 강우가 사는 집은 어릴 적 재열이 살던 집으로 현재는 폐허가 돼 사람이 살 수 없는 집이다. 재열은 이를 깨닫고 어떤 심정이었을까. 강우는 재열에게 나와 유일하게 소통이 가능한 사람, 세상에 내가 아니면 안 되는 단 한 사람이었다. 강우를 통해 자신을 치유하고 삶의 이유를 찾았던 시간은 결국 어릴 적 자신에게 필요했던 어른의 역할을 스스로 취한 것이다.

어릴 적 트라우마. 완전한 가정에서도 존재하는지는 모르겠으나 완전한 가정이란 게 사실 엄청난 거라 대부분의 가정에는 결핍이란 게 존재하기 마련이다. 그 안에서 때 묻지 않은 순수한 영혼은 상처를 받고 상처를 표출할 줄 몰라 트라우마로 남게 된다. 또한 심하면 장재열처럼 정신 분열로 일어날 수도 있다. 필자는 장애아통합어린이집을 다녔던 것이 원인인지 어릴 적부터 남들과 다른, 그곳이 몸이든 마음이든, 드러나 있든 그렇지 않든 모두를 이해하고 함께 지내는 법을 배웠다. 이 때문에 초등학생 시절  나와 다르다는 이유로 친구를 놀려대는 이들이 적잖이 충격적이었다. 따라서 이 작품은 남들과 다른 사람이 결코 틀리고 잘못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일깨우기 적절했다. 남들과 다른 모습으로 놀림의 대상이 되는 이들을 보며, 정신과 치료를 받는 이들이 사실을 감추려는 모습을 보며 괜시리 본인도 억울해지고 불공정한 세상을 한탄하기도 했다. 사람들의 인식이 완전히 변화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사회적으로 어느 정도의 성공을 이룬 이들에게 정신병을 투여시킴으로써 남들과 다르지 않게 성공할 수 있다는 무언의 일침을 가한 작품이 틀림없다.

이 작품을 단순한 멜로 드라마로 받아들이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사랑이라는 둘레안에 사랑이 치료할 수 있는 무언가를 보여주었고, 우리는 그 안에서 주인공들의 마음의 상처를 함께 치유했다. 달리 말하면 작품이 전반적인 사회 분위기 조성에 일조했다고 과장할 순 없지만 같은 아픔을 겪은 이들에게는 분명 ‘고마운 작품’이었을 것이다. 결론적으로 정신질환은 감기 걸리면 병원에 가고, 소화 안 되면 소화제를 챙겨 먹듯이 자연스럽고 당연하게 받아들여지기 위한 노력은 사회에서뿐만 아닌 이러한 문화 콘텐츠로서도 이루어져야 한다는 본보기가 되었다.
 

[장정윤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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