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뮤지컬 티켓을 타고 떠나는 여행 [공연예술]

글 입력 2019.10.22 1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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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은 저녁 8시, 나는 혼자 여행을 떠난다. 준비물은 뮤지컬 티켓 한 장. 카메라도, 녹음기도 필요 없다. 모든 장면을 생생히 담을 수 있는 눈과 아름다운 음악을 한껏 느낄 수 있는 귀가 있으니. 극장에 들어가 내 자리를 찾고 의자에 등을 기대어 앉는다. 조명이 꺼지면 두 시간 남짓의 짧지만 긴 여행이 시작된다.


이 여행을 통해 시공간을 넘나들 수 있다. 어느 날은 할머니, 할아버지가 태어나기도 전인 과거로 갔다가, 평생 오지 않을 것만 같은 아주 먼 미래로 가기도 한다. 또 지구 반대편에 있는 나라를 여행했다가 아직은 닿을 수 없는 북한 땅을 거닐어보기도 한다. 다양한 사람들도 만날 수 있다. 한번도 본 적 없는 사람을 만나기도 하고, 교과서에서나 봤던 위대한 인물들을 만나기도 한다. 뮤지컬 여행을 하면서, 그들이 어떻게 살아가고 어떤 생각을 했는지 느낄 수 있다. 극장이 암전되는 순간 나는 그 시대 사람이 되고 그 나라 사람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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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라흐마니노프> 티켓이 날 데려다준 곳은 러시아였다. 평단과 관객에게 외면 받고 슬럼프에 빠진 라흐마니노프의 모습을 보았다. 그때 정신의학자 니콜라이 달 박사가 라흐마니노프의 방문을 두드렸고, 라흐마니노프는 달 박사의 도움을 받으며 내면의 상처를 치유해나갔다. 뮤지컬 <라흐마니노프>를 보기 전, 모차르트나 베토벤은 알았어도 라흐마니노프에 대해서는 전혀 알지 못했다. 실제 라흐마니노프의 곡을 바탕으로 한 뮤지컬 넘버를 들으면서 그의 음악 세계를 느끼고 그의 삶에 공감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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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빈센트 반 고흐> 여행에서 만난 사람은 유명한 화가인 빈센트 반 고흐였다. 그림에 생명을 걸었던 고흐의 삶, 형을 아끼고 사랑했던 동생 테오와의 이야기는 내 마음을 울리기에 충분했다. 실제로 빈센트와 테오가 주고받았던 편지들이 노래와 이야기가 되었고 무대에는 그의 주옥같은 그림들이 펼쳐졌다. 뮤지컬을 보고 난 후, 눈에 익긴 했지만 자세히는 몰랐던 고흐의 그림들을 더 깊이 알게 되었다. 그 후로 미술관이나 책에서 고흐의 그림을 보면 그의 열정과 삶이 떠오르면서 괜스레 눈물이 날 때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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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으로부터 약 60년 전인 1956년의 우리나라를 여행하기도 했다. 뮤지컬 <명동 로망스>는 당시 글을 쓰고 그림을 그렸던 예술가들이 모였던 다방에서 일어나는 이야기를 다룬다. 첫 국산 자동차인 ‘시발 자동차’의 탄생, 검열과 통제를 받을 수밖에 없었던 예술가들의 시련 등 당시 역사적 상황이 그대로 드러난다.

 

자신이 꿈꾸는 세상을 시로 써내려간 시인 박인환, 꿋꿋하게 쓰고 싶은 글을 쓰는 수필가 전혜린, 꿈 없이 대충 살아가는 사람에게 “고따위로 살지 말고 제대로 살라!”라고 꾸중하는 화가 이중섭. 고등학교 역사 시간에 외우려면 그렇게도 안 외워졌던 근현대사와 당시 인물들이 뮤지컬을 보고 나니 자연스레 머릿속에 스며들었다.


음악, 미술, 역사에 관심이 없던 내가 뮤지컬을 보면서 그것들을 사랑하게 되었다. 누군가는 티켓값이 너무 비싸다며 아깝지 않냐고 묻는다. 물론 적은 금액은 아니지만, 그 티켓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가치는 돈으로 환산할 수 없다. 두 시간 후면 내가 사는 현실로 돌아오는 짧은 여행이지만, 뮤지컬을 여행하며 배우고 깨달은 것은 기억 속에 영원히 남는다. 티켓 한 장이면 나는 역사의 현장에 서 있고, 위대한 문학과 예술이 탄생하는 자리에 함께할 수 있다.

 

 

[채호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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