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잊지 않음'으로 이루는 문학의 공동체 [도서]

최은영, 『쇼코의 미소』(2016)가 보여주는 문학의 윤리
글 입력 2019.10.22 0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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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자꾸 망각한다.



우리는 자꾸 망각한다. 타인이 겪고 있는 고통을, 내가 겪은 고통을 빨리 망각하고 싶어 한다. 신자유주의의 통치성이 지배하는 자본주의 사회 속의 개인은 무한경쟁체제 속에서 발버둥 친다. 또 사회의 효율성을 따라 ‘합리적인 선택’을 한다. 그 ‘합리적인 선택’은 이기심으로, 무기력함으로, 또 혐오의 모습으로 나타난다. 그러면서 개인은 ‘희망 없음’의 상태에서 불안에 떨고, 여러 이해관계 속에서 고통 받고 공감 받지 못하며 주변부로 밀려나 계속해서 잊혀진다. 그러는 동시에 개인은 또 다른 타인의 고통은 보지 못한다. 따라서 공동체는 해체되었고 갈등과 분쟁이 넘치는 사회가 도래했다.

 

이러한 상황 가운데서 최은영 작가는 주변부에 있는 많은 존재들에 대한 기억과 윤리의 서사를 담담한 문체로 보여주고 있다. 최은영 작가의 첫 소설집인 『쇼코의 미소』는 각자의 고통과 슬픔, 우울을 가지고 있는 외로운 존재들이 서로 유대하고 공감하며 서로를 향해 편위(偏位)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들은 서로에게 무조건적인 환대를 베풀며 철학자 낭시가 말한 무위(無爲)의 공동체를 이룬다.


『쇼코의 미소』 속에서 「쇼코의 미소」, 「씬짜오, 씬짜오」, 「한지와 영주」는 국경을 넘은 우정과 사랑의 관계를 다루며 타인의 고통에 대한 공감을 이야기하고 있고, 「언니, 나의 작은, 순애 언니」와 「먼 곳에서 온 노래」는 여성 인물들 간의 유대에 대하여 그리고 있다. 또 「미카엘라」와 「비밀」은 세월호 이후 문학으로서의 윤리를 지키려는 이야기들을 보여준다. 이 일곱 편의 소설은 공통적으로 타인의 고통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경험의 공유불가능성을 인지하면서 서로에게 온기를 나누는 인물들의 관계를 보여준다.

 

 


누군가에겐 망각해야할, 누군가에겐 공유불가능한 ‘사건’


 

「씬짜오, 씬짜오」의 한국에서 온 ‘나’의 가족과 베트남에서 온 ‘투이’의 가족은 독일이라는 또 다른 나라에서 만나 ‘이방인’으로서 초국적 정체성을 갖는다. 이는 두 가족이 소통하고 연대하는 계기가 된다. 두 가족의 만남에 ‘나’의 엄마는 평소답지 않게 단장을 하고 베트남 인사법을 외우며 그 만남을 기뻐한다. 응웬 아줌마와 가족들은 아무 조건 없이 ‘나’의 가족을 환대한다. 그렇게 두 가족은 함께 요리를 나누어먹고, 노래를 부르고, 가진 것을 나누어 주면서 지속적인 관계를 쌓고 무위의 공동체를 이룬다. ‘서로를 경멸하는 부모 밑에서 영혼의 밑바닥부터 떨던’ ‘나’는 투이가 지어준 ‘우드스탁’이라는 별명에서 엿볼 수 있는 관심과 응웬 아줌마의 애정으로 채워졌다. 서로를 싫어하고 무시하던 ‘나’의 부모가 투이네 가족의 무조건적인 환대와 호의가 가득했던 그때만큼은 서로를 보고 웃을 수 있을 만큼, 두 가족의 관계는 행복했다.

 

하지만 이 관계는 전쟁의 상처로 얼룩진 두 민족의 역사로 인해 깨어지게 된다. 두 가족의 개인적인 관계에는 문제가 없었지만 결국 그들은 역사적 관계를 떼어낼 수 없었다. 이는 개인이 전혀 관계없어 보이는 타인과도 필연적으로 연결되어 있을 수 있음을 보여준다. ‘나’는 그저 부모님께 인정받고 싶은 어린 마음에 학교에서 배운 대로 ‘한국은 다른 나라에 잘못한 게 없다’고 말한다. 독일의 학교에서나 한국의 학교에서나 베트남전쟁은 잊혀졌다. 그것은 신자유주의의 통치성의 기준에서 빠르게 망각해야 할 사건이었다. “아닌데요.”라고 진실을 말하려는 투이의 목소리는 삭제되었다.

 

그렇지만 그것은 분명한 ‘사건’이었다. ‘나’의 가족이 가해자인 한국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환대했던 응웬 아줌마는 어린 시절 분명히 그 사건을 경험했으며 그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 그래서 그 상처를 서재 안 제단에 두고, 고통을 껴안고 살아가는 항상적 애도의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 이러한 고통은 공유 불가능한 단독성을 가지는 ‘사건’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나’의 아빠는 전쟁 때문에 형이 죽었다는 자신의 고통에 눈이 멀어 응웬 아줌마, 즉 타인의 고통에는 공감하지 못했다. 따라서 엄마의 여러 노력에도 불구하고 그 관계는 돌이킬 수 없었다. 사실 응웬 아줌마의 환대는 자신의 고통을 재단 뒤에 감추고 내어주는 ‘증여’였을 지도 모른다.

 

 

 

‘씬짜오’, ‘씬짜오’, ‘씬짜오’


 

그 후 ‘나’의 가족이 플라우엔을 떠나게 되었을 때 ‘나’는 투이에게 “아무것도 몰랐던 거, 미안해”라고 사과한다. ‘나’는 그 말이 아무것도 되돌릴 수 없다는 것을 알았고, ‘나’는 전쟁에 직접 관련된 사람도 아니었지만 오래도록 그 말을 하고 싶어 했고, 조심스럽게 그 말을 전했다. 이 말은 타인의 고통에 대한 무공감이 나쁜 것이며, 타인의 상처와 고통은 모두가 계속해서 공유해야 하는 것임을 보여준다. 그렇게 ‘씬짜오’라는 인사를 나누며 헤어지고 난 후, 오랜 시간 뒤에 ‘나’는 다시 그곳을 찾는다.

 

‘나’는 이별의 상처를 통해 엄마의 고통을 직접 대면하였고 응웬 아줌마가 베풀었던 환대를 돌아보며 그 ‘사건’을 잊지 않고 그들의 고통을 진심으로 받아들인 윤리적 주체로 성장하였다. 응웬 아줌마는 길 건너에 서있는, 엄마를 빼닮은 ‘나’를 본다. 서로의 상처를 알고 있는 응웬 아줌마와 ‘나’는 처음 만났을 때 나누었던 ‘씬짜오’라는 인사를 떠올린다. 다른 말은 잊은 듯 몇 번이나 반복하여 되뇌는 ‘씬짜오, 씬짜오’라는 말은 결국 서로의 고통을 공유한 그들이 그 ‘씬짜오’라는 한마디로 증여가 아닌, 진정한 환대의 공동체로 나아갈 것을 암시한다.

 

소설 속에서는 ‘씬짜오’, 우리말로 ‘안녕’이라는 단순한 한마디가 세 번 등장한다. 처음 ‘씬짜오’로 서로 다른 사람들이 관계를 맺었고, 두 번째 ‘씬짜오’로 이별했으며, 마지막 ‘씬짜오’를 통해 다시 만났다. 이 한마디에 수많은 기억과 감정이 담겨 서로의 상처를 어루만지고 위로를 건넸으며, 결국에는 진정한 환대로 이루어진 공동체를 형성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저 잊지 않아야 한다.



소설집 속 다른 단편 「미카엘라」의 엄마는 세상의 모든 일에 한없이 감사하며 고통 받는 타인의 아픈 마음을 함께 나누고 싶어 하는 사람이었다. 또 딸을 세례명인 ‘미카엘라’로 부르며 그녀의 존재 자체를 고마워했고, 그녀의 행복과 편안함을 위해서라면 어떤 일이든 다 할 수 있었다. 반면, 딸은 그런 엄마를 이해하지 못했고 매사에 감사하는 그녀가 원망스럽기까지 했다. 딸은 ‘부딪쳐 싸우기보다는 편입되고 싶었’고, ‘세상으로부터 초대받고 싶었’다. 그녀 또래의 청춘이 바꿀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기에 그녀는 타인의 고통에 무감해진 사람이었다.

 

엄마는 딸의 편안함을 위해 딸의 집으로 가지 않고 찜질방으로 간다. 그 곳에서 엄마는 한 할머니를 만난다. 그 할머니는 엄마에게 안쪽 자리를 내어주고, 엄마는 할머니에게 큰 수건을 내어준다. 그렇게 관계를 형성한 두 사람은 서로의 이야기를 나눈다. 할머니는 자신의 친구가 세월호 사건으로 손녀를 잃은 이야기를 해준다. 할머니와 함께 광화문에 가면서 엄마는 그때를 생각한다. 그녀는 자주 눈물을 훔쳤고 그들과 직접적인 관계가 없음에도 죄책감을 느꼈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사람들의 고통은 무뎌졌고, 어떤 이들은 도리어 빨리 잊어버리고 싶어 했다. 대통령마저 이제 과거는 잊어버리고 미래로 나아가야 한다며 그 ‘사건’을 축소시키고 망각하려했다.

 

광화문 세월호 텐트에 도착한 엄마는 할머니에게 목숨을 잃은 아이의 세례명도 ‘미카엘라’였음을 듣는다. 엄마를 찾으러 광화문으로 뛰쳐나간 딸은 “엄마”하고 부르며 한 여자를 돌아본다. 엄마는 아니지만 엄마의 모습, 소지품, 목소리까지 닮은 여자가 “아가씨, 내 딸도 그날 배에 있었어요.”라고 말한다. 사고로 떠난 아이의 이름 ‘미카엘라’와 딸의 이름 ‘미카엘라’, 엄마와 똑같은 유가족의 모습은 모두가 서로의 딸이고 엄마이며, 필연적으로 연결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그렇게 작품의 끝에서 모든 인물은 광화문 세월호 텐트에 모인다. 이는 아주 작은 보잘것없는 힘일지라도, 그것이 아무런 변화도 일으키지 않을 것처럼 보일지라도, 그들의 아픔에 동참하고 그들과 숨결을 나누는 행동을 실천하며 무위의 공동체를 이루어야 한다는 것을 말한다. “내 딸을 잊지 마세요. 잊음 안 돼요.”라고 광장에서 아무리 외쳐도 생명이 다시 돌아올 수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해야 할 것은 그저 잊지 않는 것이다.


 


문학의 윤리를 실천하는 문학, 『쇼코의 미소』



「씬짜오, 씬짜오」, 「미카엘라」외에도 『쇼코의 미소』 속 소설들은 계속해서 타인의 고통을 잊지 않고 서로의 단수성을 공유하는 편위의 존재들이 서로를 향해 기울어진 삶을 살아가고 있음을 보여준다. 또한 인간은 결국 모두 타자와 연결되어 있음을 상기시키고 외존(外存)의 상태, 무위의 공동체를 이룰 것을 요청하고 있다. 현시대 문학이 해야 할 일은 사회 속에서 잊히고 있는 타인의 고통을 대면하는 것이며, 그 고통과 사건을 계속해서 기억하고 전달하는 일일 것이다. 또한 문학은 그 기억을 독자들이 이어나가게 함으로서 문학의 공동체를 이루며 윤리적 주체로 거듭나도록 한다. 최은영 작가의 『쇼코의 미소』는 이러한 문학의 윤리를 잘 실천하는 소설이다. 이러한 문학을 향유하면서 우리는 윤리적 주체로 거듭날 수 있을 것이다.

 


[정다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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