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가득 찬 한국의 오페라 "이중섭" - 서울오페라페스티벌
오페라, 그 매력 - 오페라 <이중섭> Review
글 입력 2019.10.19 1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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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오페라라니, ‘낯설다’라는 단어가 머릿속에 맴돌았다. 음악을 공부하며 여러 오페라를 다루어봤지만, 한국의 오페라는 단 한 번도 연구해 본 적이 없다. 그래서인지 오페라 <이중섭>에 대한 나의 감정은 갈피를 잡지 못했다.영화를 보기 전 설레는 감정과, 뮤지컬을 보기 전 설레는 감정은 분명히 다르지 않은가? 하지만 그 둘은 비교적 정확하다. 익숙하기 때문에 그 감정이 뚜렷한 것이다. 그런데, 이번만큼은 그러지 못했다. 본인이 오페라를 즐겨 보지 않으니 그만큼 익숙하지 않았기 때문이다.공연장 특유의 긴장감과 설렘을 안고 공연은 시작됐다. 1막은 이중섭이 생활했던 제주도를 배경으로 이루어졌다. 오페라 무대 위의 제주 풍경, 제주말, 제주 사람들은 그 생동감을 직접적으로 불어넣었다. 연주하는 오케스트라와 합창단 모두 제주의 단원들이었으며 그들이 만들어낸 제주도의 해녀들, 아이들, 정답게 모여 이야기를 나누는 어른들까지 셀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이 무대 위로 올라와 제주도를 만들었다.그렇게 시작되는 오페라의 첫 노래는 너무나도 싱그러워 갈피를 잡지 못하던 내 마음을 설렘으로 고정시켰다. 뛰어난 성악가들이 노래하는 아리아들과 그 안의 감정들은 굉장히 클래식하며 깊었다. 그들은 마이크를 일체 쓰지 않았으며, 이는 클래식 오페라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어린아이부터 어른까지 아무도 마이크를 쓰지 않고 노래했으며, 기계음이 조금이라도 섞이지 않은 본연의 목소리로 넓은 공연장을 채우는 성악가들이 다시 한번 대단하게 느껴졌다.
한국의 오페라로서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은, 역시나 자막에 대한 내용일 것이다. 그동안 본인이 관람했던 오페라들과는 다르게 자막에 완전히 의존하지 않아도 되니, 극에 훨씬 몰입할 수 있었다. 송출되는 자막은 익숙하지 않은 제주말과, 높은 음에서 잘 들리지 않는 단어들을 더욱 정확히 파악하게 도왔다. 또한 영어 자막까지 지원하고 있어서 외국인 손님들도 충분히 관람할 수 있는 기회를 남겼다.유명한 서양의 오페라를 관람하다 보면, 자막을 보느라 무대를 놓치고, 무대를 보느라 자막을 놓치는 경우가 허다하다. 물론 사전에 극에 대해 공부하고 관람한다면 그 사정은 나아지겠지만, 그래서 장벽이 높다고 하는 것이 아닐까. 그 높은 장벽에 아름다운 음악이 들리지 않아, 보통 사람들은 쉽게 오페라에 다가가지 못한다. 오페라 <이중섭>은 음악의 아름다움이 선명하게 드러났다. 공연이 끝나고도 입안에 그 멜로디가 맴돌 만큼 아름다운 음악이었다.이중섭 <서귀포의 환상>또한, 오페라 <이중섭>은 이해하기 쉽게 공연되었다. 2시간의 짧은 공연에 그의 모든 생애를 다룰 수는 없었지만, 중요한 사건들 위주로 간추려진 이야기가 진행되었다. 오페라의 특성상 이를 가능하게 해준 것은 ‘막’의 개념이다. 막 별로 분위기가 전환되며 이야기가 흘러간다. 막이 끝날 때마다 강렬한 박수소리가 공연장을 울리고 다른 분위기에 적응할 준비를 마친다.오페라 <이중섭>은 각 막마다 이름을 달아 자막 화면에 띄웠고, 관객들의 적응을 빠르게 도왔다. 곳곳에서 느낄 수 있었던 클래식한 오페라의 특징들이 반가운 순간이었다. 또한 화가 ‘이중섭’에 대한 이야기이니 만큼, 여러 그림들이 띄워졌다. 그저 책에서만 봐왔던 그 그림들을, 이중섭의 시점에서 음악과 감정을 따라 마주하니 그 울림이 참 컸다. 음악과 미술이 함께 무대를 꾸며 거대한 울림을 만들어냈고, 이중섭의 열망과 그리움들을 끌어모았다.그렇게 이야기를 천천히 따라가며 마주했던 이중섭은 그동안 내가 아무런 감정 없이 생각하던 ‘천재 화가’가 아닌, 안쓰러운 예술가였다. 이 오페라에서 그려진 이중섭이, 그 모습 그대로 나와 마주쳤다. 천재 화가가 아닌 그냥 사람 이중섭 말이다.이중섭 <황소>그렇게 이중섭, 음악, 미술이 모여 오페라 <이중섭>을 완성했다. 그래서 이젠 어떤 감정이 생겼냐고 묻는다면 ‘궁금함’이 생겼다고 답하겠다. 클래식을 공부하면서도 무지했던 오페라에 궁금증이 생겼다. 더 집중해서 보고 싶어졌고, 완전히 즐겨보고 싶어졌다. 오페라는 분명 그만의 매력이 있다. 여러 장벽에 가려 그 아름다운 매력을 놓치는 것은 너무 안타깝지 않은가.
본인이 간직한 오페라의 매력은 ‘가득 참’이다. 오페라 특유의 대사 없이 진행되는 가득 찬 음악들, 1분도 음악이 끊기는 경우가 없다. 몇 개의 막으로 이루어지는 가득 찬 스토리, 공연장을 가득 채우는 뛰어난 성악가들의 힘 있는 목소리는 그를 관람하는 사람들의 마음까지 가득 채운다. 그 풍부한 가득 참이 더 많은 사람들에게 퍼져나가 마음속에 간직될 수 있기를 바라본다.
[임보미 에디터]<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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